298화. 보고 (2)
긴 설명이 끝났다.
내가 말하는 동안 손경진은 주로 듣는 쪽이었다.
첫날부터 마지막 회식 날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풀어놓는 동안 손경진은 간간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부산청장님이 직접 오셨다고?”
“네.”
“엉덩이 무거운 양반이 부산청 비워 놓고 무슨 일이야. 뉴스에서 부산청 움직였다는 소식은 못 들은 것 같은데?”
“뒤에서 따라다니기만 하셨습니다. 마지막 날 고기 사 주셨구요.”
“그 양반은 고기가 아니라 술이 목적이었겠지. 그보다 정말 따라다니기만 했어?”
“아! 하나 거드신 건 있어요. 부지사는 어떻게든 조용히 넘어가려고 애를 쓰는데, 부산청장님이 도지사를 데리고 오셨더라구요. 도지사가 얼굴 벌게져서 따지는데 부지사가 안절부절못하는 게 재밌긴 했죠.”
손경진이 허어, 하고 탄식 비스무리한 한숨을 흘렸다.
“그건 좀 재밌었겠군. 기자들이 가서 그런 걸 찍었어야 했는데. 조용한 교육원에 있으려니 정보가 느려서.”
그의 말은 어찌 보면 자신이 얼마나 얌전히 있었는지를 어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그것은 나중에 들을 문제다.
보고를 끝내고 나자 창밖에 해가 중천에 올라 있었다.
아침 일찍 나온 걸 생각하면 꽤 오랜 시간 앉아 있었다.
이미 차는 다 마신 후다.
손경진은 이번엔 커피 티백을 찻잔에 넣더니 뜨거운 물을 부었다.
향이 화악 퍼져 나왔다.
일단 내가 즐겨 먹는 싸구려 믹스 커피는 아니다.
“나는 네가 손님이라고 생각해.”
“손님 말입니까?”
“내 사람이 되려고 온 건 아니잖아.”
“원장님 사람만 교육원에서 일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원래 중부청에도 다른 파벌 사람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 가장 많았는데요.”
“그런 의미가 아닌 건 알 텐데. 넌 곧 여길 떠날 사람이잖아.”
손경진의 뼈를 짚은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오래 머물지 않을 생각으로 내려오긴 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내 예상보다도 빨라질 것 같았다.
“몸도 피하고 내 견제도 할 겸 온 거잖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서로 알 것 다 아는 사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 속마음을 터놓는 대화였다.
손경진은 커피를 마시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널 가르치거나 지원하지 않을 거거든.”
“이미 가르침을 받지 않았습니까.”
“차 얘기? 그건 네가 알아서 얻어간 걸로 치자.”
그는 어떻게든 나와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널 보낸 게 잘한 건지 잘못한 건지 좀 고민을 했어. 내 사람이 아니니까.”
“……저도 위에 보고는 했습니다. 서울청 결론도 같았습니다. 제가 파견 가는 게 낫다고요. 원장님 판단은 옳았는데요.”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고, 이놈아! 나는 이제 결정권이 없잖아!”
손경진의 말에 나는 기겁했다.
정말 내려놓은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슬쩍 눈치를 살폈지만 손경진은 정말 가벼워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를 다그치기보다는 달래는 것을 선택했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본청이나 서울청에서도 그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건 존중의 문제지. 내가 알아서 수그리니까 그쪽에서도 안 건드리는 거잖아.”
“……앞으로도 계속 존중은 해 드리지 않을까요.”
나는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한때 국세청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거물이었으니 그가 패배를 승복한 이상 이 정도 의견은 낼 수 있다.
그것을 ‘결정권’ 운운하며 스스로 입에 올렸다.
이제는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 그럼 이 얘기는 더 생각 안 해도 된다 이거지? 네 판단은 그거야?”
“그렇습니다.”
재차 확인하고 나자 손경진은 다시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이제야 기나긴 보고의 감상을 말했다.
“가서 이름값은 하고 왔으니 다행이군. 내가 가라고 등 떠밀었으니 보낸 보람은 있어야지.”
“결과를 내려고 열심히 했습니다.”
내 대답을 끝으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뭔가 말이 더 나올 것 같은데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더 할 말이 없는데.
손경진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자, 그가 짜증을 버럭 냈다.
“물어볼 거 있잖아. 얼른 물어보고 끝내! 벌써 점심시간이야.”
“……제가요?”
“그래. 네가 물어봐야 얘기가 끝나지. 밥 먹으러 안 갈 거야? 아니면 나랑 밥 먹으면서 얘기하고 싶어?”
“원장님과 식사하는 영광을 주신다면…….”
“그게 아니지!”
손경진은 답답하다는 듯 소리가 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간 잘 지냈냐, 별일 없었냐. 이걸 물어봐야지.”
아, 내가 안부를 묻지 않았구나.
아차 하는 생각에 뒤늦게 안부를 건네려는데 손경진이 내 입을 막았다.
“정말 안부를 물으려는 건 아니지? 아니다, 됐다.”
손경진은 한숨을 한차례 내쉰 후 날 대신해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했다.
“네가 그나마 덜 뻔뻔해서 대놓고 못 물어보는 것 같으니까 내가 그냥 말해 주마. 조용히 있었고 그간 교육원에 누가 찾아온 적도 없었다. 보면 알겠지만 날 따라온 두 팀장은 요즘 원장실에 찾아오지도 않아. 원장실 문턱이 닳도록 뻔질나게 드나들던 놈들이 말이지.”
그는 지금, 내가 교육원에 왔던 또 다른 목적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손경진이 허튼 생각을 품고 뭔가를 꾸미는 건 아닌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일이었는데, 떠나 있는 동안 나는 그를 살펴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직접 물어볼 수가 없어서 나중에 교수들에게 알아볼 생각이었다.
여기서 노골적으로 행적을 물어보는 건 맞먹자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손경진이 자기 입으로 행적을 말하고 있었다.
“교육원 정상화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곧 교육생들 졸업이라 수료식 준비도 한창이야. 교육원 업무 외에는 누굴 만나지도, 뭔가를 하지도 않았어. 다른 직원들한테 물어보면 금방 나올 거야.”
너무 노골적으로 말하니 나는 뭐라 대꾸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겨우 입을 열어서 한마디를 짜냈다.
“원장님을 믿습니다.”
“그래도 확인은 해 봐. 그래야 네가 깔끔하게 올라갈 거 아냐. 여기서 있던 일도 완전히 마무리되는 거고.”
그는 모든 싸움에서 종지부를 찍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물어봐도 비슷한 대답이 돌아오겠죠.”
“그래. 여기서 네가 ‘확인하겠다’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지. 그럼 확인은 네가 알아서 하고. 언제 올라갈지 얘기 나왔어?”
“아직 모르겠습니다.”
“뭐, 교육생들도 떠나고 나면 네가 할 일이 없으니까 언제 올라가든 교육원에 지장은 없어.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도 교육원에 신경은 써. 강의도 몇 번밖에 안 하고 제주 세무서로 갔잖아.”
“수료 전까지 몇 번 더 강의 잡겠습니다.”
“아니, 그거 말고. 너 이제 바쁠 일 없지?”
굳이 따지자면 민치호가 공부하라고 하긴 했다.
“승진 시험 준비 말고는 한가합니다.”
“아. 너 승진하냐?”
“시험에 통과해야 승진하죠.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데요.”
손경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승진 시험 준비할 정도면 이미 다 된 거잖아! 음, 올해 12월 지나면 꽉 채운 3년이니까 특별 승진으로 가려는 걸 테고. 그럼 따로 면접도 있겠네. 일단 필기는 좀만 하면 되고.”
손경진은 혼자서 무언가를 계산하더니 짧게 말했다.
“책 한 권 써 주고 가. 그 정도는 될 것 같은데. 시간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쓰고 가.”
“책이요?”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고, 아는 것을 글자로 남기는 것은 또 다르다.
논리정연하게 정돈해서 책으로 남기는 건 자신 없다.
“교육자료 집필하는 팀이 있어. 거기에 말해 놓을 테니까 도움 받아서 써 놓고 가. 3년짜리가 국회의원 치고 장관 목 날린 경험은 너 혼자만 갖고 있기엔 아까워.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경험담이든 뭐든 남겨주고 가. 그건 두고두고 남아서 국세청의 도움이 될 거야.”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단순히 우리 사이의 싸움을 끝내는 것만이 아니라 명백하게 국세청의 미래를 생각해서 나온 행동이었다.
은퇴까지 조용히 보낼 줄 알았는데.
“할 거야, 안 할 거야?”
그렇게까지 고려한 데다 대고 싫다고 할 수는 없었다.
승진 시험 준비도 해야 하고, 조금 빡빡하겠지만 이건 그의 말이 맞다.
내가 하면 확실히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원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겠습니다.”
“그래. 집필팀에 말해 놓을게.”
내 확답이 떨어진 후에야 손경진은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어디가?”
아까 분명히 ‘나랑 밥 먹으면서 얘기하고 싶어?’라며 빨리 말을 끝내라고 했는데.
밥은 따로 먹자는 소리 아니었나?
얘기도 끝났겠다 일어난 건데 손경진의 반응은 반대였다.
“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가.”
점심은 황민우와 함께 먹기로 했지만 하늘같은 원장님 말씀이라면 어쩔 수 없지.
“맛있는 거 사 주시면 가겠습니다.”
“구내식당도 맛있어.”
장난이 안 통하네.
내가 입맛을 다시자 손경진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내 사람도 아니고, 내 사람이 될 생각도 없는데 무슨 비싼 밥을 얻어먹을 생각을 해? 구내식당이나 가.”
내가 비싼 한정식 얻어먹고 그의 뒤통수를 친 게 아직까지 마음에 남아있나 보다.
나는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앞서 나가는 손경진의 뒤를 따랐다.
여기에 앞으로 몇 달이나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웬만하면 맞춰줄 생각이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구내식당 잘 나오더라구요.”
나는 서둘러 손경진의 뒤를 따라나섰다.
***
나와 손경진이 나란히 식당에 들어서자 시선이 단번에 쏠렸다.
그런데 그냥 호기심의 시선이 아니었다.
뜨악한 얼굴에 경악한 표정 등등.
있을 수 없는 것을 본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와 손경진이 식판에 밥을 받아 빈자리에 앉고 나서도 시선이 쿡쿡 뒤통수를 찔렀다.
교수 중에는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린 사람도 있었다.
시선에 아무리 익숙하다고 해도 이런 관심은 부담스럽다.
그래도 애써 무시하고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손경진이 내 뒤를 보더니 손을 들었다.
돌아보니 황민우가 식판을 들고 손경진과 눈이 마주친 그 상태로 굳어 있었다.
내가 손경진과 점심을 먹는다고 문자한 후, 황민우도 밥 먹으러 식당에 온 듯싶었다.
그러다 손경진 눈에 띄었고.
황민우는 우리 옆으로 올지, 아니면 다른 테이블에 앉을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는데 손경진의 손짓을 보자마자 바로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얘 손발 자처하는 놈이 뭘 따로 먹어. 같이 앉아.”
“네. 그럼 말씀대로 합석하겠습니다.”
정중하지만 어려워하지는 않는 태도로 황민우가 내 옆에 앉자 시선이 더욱 콕콕 찔러왔다.
괜히 시선을 내리자 장조림에 계란말이, 김치찌개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다.
김치찌개를 숟가락 한가득 들어 올렸다가 못 참고 황민우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오늘따라 좀 심하지 않아요? 저기 홍대안 교수님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는데.”
날 그렇게 싫어하던 교수다.
쳐다보는 것도 싫어해서 눈이 마주치면 먼저 피하던 사람이 지금은 이쪽 테이블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황민우는 홍대안을 바라보더니 손경진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한껏 목소리를 죽여 대답했다.
“절대 안 어울릴 것 같던 두 분이 사이좋게 식사하고 계셔서 그렇습니다.”
“아. 그것 때문이구나.”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아니면 내가 또 헛소리했다는 기사라도 떴나 했다.
이 정도면 양반이지.
나는 편안하게 잡곡밥 위에 장조림을 얹어 입안에 넣었다.
짭조름한 간장 맛에 절여진 소고기가 부드럽게 씹혔다.
거기에 김치찌개를 푹 퍼서 먹으니 비싼 한정식 집이 필요 없었다.
내 표정이 편안해지자 황민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팀장님은 참 멘탈도 좋으십니다.”
“음? 놀라는 게 이해는 가요. 근데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요. 사고가 터진 것도 아니고.”
이번엔 손경진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혹시 심기를 건드렸나?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한 게 있다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참 인물이다 싶어서.”
황민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저번 달만 해도 두 눈 부릅뜨고 싸우시던 두 분이 이렇게 마주 보고 계시는데 사람들이 밥이 넘어가겠습니까?”
“안 넘어갈 건 또 뭡니까. 원래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겁니다.”
계란말이를 먹던 손경진이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이 맞지. 보통 그걸 못 해서 괜히 뒤끝 남기고 티를 내거든. 그러면 내 편으로 만들었다고 한 사람한테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생겨.”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장 손경진은 곁에 있던 두 명의 팀장마저 잃었으니까.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자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황민우에게 말을 꺼냈다.
“형. 우리 이제 또 바쁠 것 같아요.”
“……예?”
황민우의 얼굴에 불안감이 스쳤다.
“세무조사 실무 관해서 교육자료 써놓고 가래요.”
“예에?”
황민우가 기겁하는 걸 보니 이것도 올바른 화제는 아니었나 보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밥이나 먹기로 했다.
다른 그 어떤 시선보다, 황민우가 옆에서 부리부리한 눈으로 보내는 시선이 매우 따갑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