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반가운 손님 (4)
우리는 일주일을 매우 바쁘게 지냈다.
일할 때도 바쁘면 시간이 훅훅 지나는데 놀 때는 더했다.
우리에게만 시간이 다르게 적용되는 것 아닐까 싶었다.
팀원들과 함께 돌아다니는 내내 날씨가 좋았다.
제주도는 날씨가 매우 변덕스러웠는데 같은 섬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일기가 휙휙 바뀐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1달 반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직접 겪어본 바로는 그랬다.
조사 내내 섬 반대편에 있는 교육원 관사에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아침저녁으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곤 했는데, 때로는 나와 어머니가 서로 다른 날씨를 얘기할 때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운이 좋았다.
어딜 가든 청명한 하늘이 반겨주었고 그 밑에 햇빛을 받은 것은 무엇이든 반짝거렸다.
바다든, 풀이든, 건물이든.
그러니 어딜 가든 즐거웠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 이런 기분일까.
우리 집은 가난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여행 가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수학여행을 가는 것도 부모님께 어렵게 말씀드리곤 했다.
그렇게 가는 여행은 즐겁지 않았다.
부모님이 어떻게 고생해서 일했고 얼마나 절약해서 모은 돈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겨우 25만 원 남짓한 돈을 받아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 그렇게도 죄스러웠다.
멀리 떠난다 해도 항상 마음은 무거웠다.
그러나 지금은 가벼웠다.
마음의 짐이 덜어지니 주위를 살필 수 있게 되었다.
타지에서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새로운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스쳐 가는 창밖의 귤나무 하나마저 눈에 담을 수 있다.
이것을 표현한다면 그래, 마음의 여유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은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으악! 벌레다!”
“갯강구입니다.”
“이게 갯강구라고요?”
“해안가라 그런가? 진짜 많네.”
바닷가를 따라 쭉 뻗은 올레길을 걷다가 갯강구를 보고 기겁하기도 했다.
따사로운 햇볕에 짠 바닷바람을 맞으며 올레길에 시커먼 벌레 같은 것이 우글우글했다.
그런데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우리가 다가가면 순식간에 돌 틈으로 사라졌다.
처음에는 징그럽다며 뒤로 빼던 팀원들도 나중에는 얼마나 빨리 도망가는지 보겠다며 갯강구 무리를 보면 우르르 달려 나갔다.
그러다 지현석이 어? 하고 쭈그리고 앉았다.
일어선 그는 손을 살짝 쥔 채였다.
딱 봐도 뭔가를 잡은 느낌이었다.
“설마 갯강구 그거 잡으신 거예요?”
강혜원이 질린 얼굴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라지만 절지동물 특유의 생김새는 내가 봐도 소름이 돋는다.
강혜원이 장세훈 뒤로 숨었고 나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지현석은 그답지 않게 음습하게 웃으며 얼굴에 손바닥을 들이밀었다.
“짠!”
“으악!”
“안 돼!”
갖가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앞에 다리 많은 것을 들이밀면 누구라도 그렇다.
그렇게 안 봤는데 지현석 이 잔인한 놈!
“응?”
나는 상체를 뒤로 쭉 뺐다가 도로 원위치시켰다.
지현석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은 다리가 많긴 했지만 갯강구는 아니었다.
10개의 다리로 손바닥을 단단하게 지탱하고 선 자그마한 갑각류는 집게발을 위협적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크기 자체는 내 엄지손톱만 했다.
“게네?”
“네. 게예요. 이렇게 작은 것도 있네요.”
지현석은 잔뜩 겁먹은 우리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깜짝 놀랐잖아요! 얘도 꽤 빠를 텐데 손으로 잡으셨네.”
“도망가다가 상황을 보는 건지 바위틈에 걸려 있더라고요.”
똑같은 절지동물에 갑각류인데도 게는 귀여웠다.
특히 이렇게 작다면.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손톱만 한 게를 잔뜩 구경했다.
게는 이리저리 손바닥 위에서 도망치려 하다가 거대한 얼굴이 앞에 들이밀자 걸음을 멈추기를 반복했다.
구경하고 난 뒤에는 원래 있던 바위틈에 살며시 내려주었다.
익숙한 풍경이 되자 게는 순식간에 어두운 틈으로 사라졌다.
사라진 게를 본 안길진이 입맛을 다셨다.
“게 맛있는데. 킹크랩도 맛있고.”
“저녁에 게 먹으러 갈까요?”
“게 좋죠. 게딱지 볶음밥도 먹고 라면도 먹고.”
계획을 세세하게 짜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일정은 이런 식으로 맞춰졌다.
어딜 갈까, 뭘 먹을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도 재밌었다.
때로는 목장에서 방목한 말과 마주치기도 했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길을 비켜주는 우리를 지나치며 말이 푸르릉, 하고 콧김을 뿜는 것이 의기양양하게 들렸다.
“저놈이 우리 비웃은 거 맞죠?”
“……말이 뭘 안다고 비웃겠어요.”
“동물도 감정이 있다잖아요.”
그렇다고 말이 우리를 비웃을 리가 없잖은가.
나중에 가서 알게 되었다.
강혜원은 말을 타 보고 싶었는데 금액이 너무 비쌌던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말 타 보자고 권하기엔 미안할 정도의 가격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도 못 하고 괜히 화풀이나 한 것이었다.
강혜원의 속내를 알게 된 우리는 진지하게 토론했다.
보트를 탈까, 말을 탈까.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그냥 가면 나중에 아쉬울 것 아니냐.
둘 중 하나를 골라 타보자.
때아닌 토론회가 목장에서 벌어졌다.
“보트는 강이나 다른 바다에서도 충분히 탈 수 있습니다. 그 지역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체험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말이죠.”
완벽하게 우리 팀 분위기에 적응한 지현석이 가장 먼저 논리를 펼쳤다.
매우 그럴듯했다.
“제주도 앞바다는 아름답잖아요. 여기서 타는 보트도 특별할 것 같은데요?”
“바다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잖아요. 말은 구경하는 것보단 타는 거죠.”
딱히 대단한 논리는 없었다.
모두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든 불만이 없었으니까.
다만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에 쓸데없이 진지한 토론회가 된 것뿐이다.
다들 표정은 매우 진지해서 마치 조사 회의를 방불케 했다.
결국 다수결에 의해 결과는 말을 타는 것으로 기울었다.
그런 것마저도 즐거웠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우리는 여행에 굶주린 것처럼 적극적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그간 너무 바빴다.
추가수당을 한계치에 도달할 정도로 야근을 밥 먹듯 했다.
더군다나 그 돈을 쓸 시간도 없었다.
숙소는 들어가서 잠만 잤다.
싼 곳으로 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남쪽으로 가 볼까요?”
“폭포 갔다가 교육원 가면 되겠다. 신재현이랑 황민우가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도 볼 겸.”
“좋네요. 세무공무원 교육원이 그렇게 시설이 좋다면서요?”
“에이, 그냥 평범해요. 아무리 좋아도 사법연수원만 하겠어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은 강혜원과 장세훈이었는데 거기에 지현석까지 가세하면서 셋이 아주 죽이 잘 맞았다.
문제는 막바지 공부에 한창일 교육원에 우리가 가도 되냐는 건데.
거기다 지현석은 검찰이다.
팀원들이야 예전에 교육원에서 연수 받았다지만 지금은 엄밀히 따지면 외부인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자 눈치 빠른 팀원들이 재빠르게 계획에서 교육원을 뺐다.
“거긴 다음에 가도 되죠, 뭐!”
“음. 아니에요. 수업 듣는 교육관 안에만 안 들어가면 되죠. 꼭꼭 폐쇄된 곳도 아닌데.”
“그럼 진짜 가요?”
“넵.”
나도 꽤 오랜만에 가는 교육원이다.
이게 다 세무서와 교육원이 출퇴근이 어려울 정도로 멀어서 그렇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느긋하게 풍광을 구경하고 가다 지치면 간식을 사 먹었다.
“그 얘기를 왜 이제 하세요! 팀장님 어머니가 관사에 계시면 빈손으로 가면 안 되지!”
“그냥 가도 되는데요. 관사 들리려구요?”
“겉만 보고 올지 관사까지 구경할지는 몰라도 절대 안 돼요! 어휴, 진짜!”
가면서 교육원 얘기를 하다 보니 관사에 어머니가 있다는 것까지 말해버렸다.
그냥 가도 된다고 했는데 강혜원은 굳이 무언가를 사 가야 한다며 답답해했다.
결국 중간에 잠시 내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다원에 들렸다.
강혜원이 선물을 고르는 동안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몇 가지를 샀다.
찻잎은 우려먹기 귀찮을 것 같아서 내가 고른 것은 티백이었다.
민치호와 이선균은 나중에 올라갈 때 사기로 했다.
그래서 내 손에 들린 것은 이제학 교수의 것과 손경진 원장의 것이었다.
손경진 것은 왜 샀는지 나도 모르겠다.
분명 적대하던 사람이었는데 신경이 쓰였다.
뒤끝이 없어서 그런가.
우리는 바리바리 무언가를 사 들고 길을 달렸다.
익숙한 길이 나오면서 반가움이 들었다.
여기서 얼마 지내지도 않았는데 내 집 같았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고요한 교육원으로 들어섰다.
우리 후배님들은 수강 중이거나 자습 중이겠지.
들키면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우리는 조용히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관사로 걸었다.
“이야, 변한 게 없네.”
“조용하고 깔끔하네요. 관리를 잘했다는 티가 나요.”
지현석은 교육원 부지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사법연수원은 어때요?”
“거긴 고양시에 있어요. 바로 옆에는 아파트, 뒤에는 고양지청이랑 고양지원이 있죠.”
“풍경은 어때요?”
“바로 앞에 호숫가 있긴 한데 음…….”
지현석은 잠시 멈춰 서서 큰길 쪽을 바라보았다.
짠 바람과 함께 바닷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현석은 사법연수원을 다녔구나.
그렇다면 사법고시 출신이라는 말이 된다.
하긴, 경력을 생각해 보면 그게 맞다.
“환경은 여기가 더 좋아 보이네요. 집에도 못 가고.”
“그건 그렇죠. 주말에 잠깐 나갔다 오려고 해도 비행기를 타야 하니까.”
“공부하기 딱 좋겠어요.”
“으악! 공부요? 아, 맞다. 사법연수원은 빡세죠?”
“엄청나죠. 매일 박 터지게 공부해요.”
“어후, 우린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잡담하다 보니 어느새 관사였다.
우리는 먼저 황민우 집으로 들어섰다.
좁은 방 안에 여섯 명이 들어가자 꽉 들이찬 느낌이 났다.
“엄청 깔끔하네…….”
장세훈이 두 눈을 끔벅였다.
꽤 비워서 먼지가 쌓인 것을 빼면 입주 때와 그닥 달라진 것도 없다.
역시 어지르고 사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황량하게까지 느껴지는 황민우의 집을 본 이들은 처음에는 당황했다가 곧 아무렇지 않게 한쪽에 짐을 풀었다.
비어 있어야 할 황민우의 집에서 인기척이 느껴져서인지 바로 옆집의 문이 열렸다.
곧이어 누군가가 황민우의 집을 두드렸다.
“아, 엄마다.”
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뛰어나가 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역시나 어머니가 서 있었다.
놀라서 멍하게 뜨였던 눈이 나를 천천히 훑었다.
어디 크게 상한 데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다 무엇이 맘에 안 드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밖에 있어도 옷은 빨아서 꼬박꼬박 갈아입어야지! 사람들이 흉봐! 밥은 끼니마다 챙겨 먹었지? 네 짐은 이틀 전에 택배로 도착했어.”
만나자마자 정신없는 잔소리가 퍼부어졌다.
“오면 온다고 전화라도 했어야지, 으이구! 그럼 미리 장 봐다 놨을 거 아니니!”
“어? 팀장님, 미리 연락 안 하셨어요?”
뒤에서 강혜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와 나는 동시에 뜨악했다.
나는 연락한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어서였고 어머니는 내 뒤에 황민우를 포함해 5명이나 되는 사람이 더 있어서였다.
“우, 우리 팀원들이야. 저기 저분은 자주 도와주시는 검사님…….”
지은 죄가 있으니 말이 기어들어 갔다.
어머니는 내 팔뚝을 철썩 후려쳤다.
“이 화상아! 손님이 오면 더 미리 말을 했어야지!”
“아! 아야! 아퍼!”
“내가 정말 못 살아!”
어머니는 몇 대인가를 더 때리고 아쉬운 듯 손을 내렸다.
더 때리고 싶은데 손님이 있으니 참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한 대여섯 대는 맞은 것 같은데.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 국세청의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분도 어머니 앞에서는 얌전하네요.”
“검사님! 제발 그런 부끄러운 얘기는 하지 마세요!”
지현석이 웃음을 터뜨렸고 강혜원이 가장 먼저 싹싹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팀장님의 밑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는 강혜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악덕 사장 같지 않은가.
내가 입을 쩍 벌리자 기회를 잡았다 싶은지 장세훈과 안길진도 비슷하게 소개했다.
어머니는 팀원들을 반색하며 맞았다.
강혜원이 사 온 선물을 보고는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
강혜원이 ‘제 말이 맞죠?’ 하는 얼굴로 날 보았다.
저녁까지 먹을 거면 굳이 숙소를 잡을 필요가 없다.
조금 좁긴 하지만 우리는 관사에서 나눠서 자기로 했다.
어머니와 함께 오랜만에 장을 보고 약속한 것처럼 술판을 벌이고, 미뤄두었던 이야기를 나눴다.
밤을 새우다가 잠이 든 것은 새벽 5시가 다 되어서였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저물고 일행을 배웅했다.
“다음엔 서울에서 봐요!”
“팀 꾸릴 거면 빨리 꾸려. 한가하니까 좀이 쑤신다.”
“팀장님. 곧 볼 수 있죠?”
“그럼요. 다음에 만나면 정말 밥 먹을 시간도 없을 테니까 푹 쉬어 두세요.”
팀원들과는 나중에 또 보자며 아쉬움을 달랬고.
“승진하면 승진 턱 내세요.”
“네. 밥은 서울 가서 살게요.”
지현석과는 덕담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다시 내가 교육원 소속이 된 날.
-똑똑.
“들어와.”
나는 한 손에 차 세트를 들고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