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88화 (288/500)

288화. 선동과 날조 (4)

신재현은 자주 들여다보지 않지만 사실 특수조사 2팀에는 단톡방이 있었다.

같은 팀으로 활동할 때도 이 단톡방은 항상 대화로 북적거렸는데 신재현이 지시만 내려놓고 단독 행동을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실시간 업무 보고용으로 쓰는 일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날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팀이 해체된 지금은 서로의 안부와 더불어 잡담이 주가 되었다.

그렇다고 쓰잘데기 없는 얘기만 올라오는 건 아니고 간간이 서로 모르는 것을 물어 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강혜원 : 창업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에서 창업일은 뭘로 따져요? 사업개시일?

-장세훈 : 개인이야, 법인이야?

-강혜원 : 법인인데요.

-장세훈 : 법인설립등기일

-강혜원 : 오! 기대 안 했는데 바로 나오네!

-장세훈 : 아오씨 다음부턴 말 안 할 거야.

주로 대화하는 것은 장세훈과 강혜원이었고 안길진은 눈팅하다가 주요 정보만 쏙쏙 빼먹었으며 황민우는 시간이 될 때마다 안부를 남겼다.

신재현은 서울청 팀이 있을 때는 업무차 수시로 확인했지만 지금은 거의 보지 않았다.

자기 전에 한번 스윽 훑어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하루에 300개 넘게 올라오는 대화여도 신재현은 그 잡담을 일일이 읽었다.

말은 안 해도 팀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되는 것이다.

다행히 신재현이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장세훈, 강혜원, 안길진은 모두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단톡방 분위기가 며칠 전부터 조금 바뀌었다.

-안길진 : 선배님들! 이것 좀 보세요! http://news…….

-강혜원 : 신재현 막말논란, 오지에 미개인과 떨어진 기분이다.

-장세훈 : ???신재현 에반데

-강혜원 : 깔깔깔! 팀장님, 또 누구 건드렸어요? 이번 공세는 좀 쎈데?

-장세훈 : ㅋㅋㅋㅋㅋ누군데 기사 이따구로 쓰냐? 구라를 쳐도 그럴듯하게 쳐야지

-안길진 : 팀장님ㅠ 댓글 반응 진짜 안 좋은데요…….

-강혜원 : 이런 날이 하루이틀인가요!

-장세훈 : 저렇게 나왔다는 건 겁나 찔린다는 거잖아. 잘 하고 있다는 뜻이지.

-강혜원 : 위키에 신재현/논란 써도 돼요? 재밌겠닼ㅋㅋㅋㅋㅋㅋ

이들은 네거티브 기사를 보고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많이들 겪어온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조금 정도가 심할 뿐, 대응에 따라 금방 벗겨질 누명이다.

심지어 벌써부터 기사 댓글에 신재현 팬클럽의 흔적도 보였다.

그럴 리 없다, 기레기가 기레기했다, 등의 댓글이었다.

어떤 상황인지 궁금할 텐데도 굳이 묻지 않았다.

간간이 뉴스 기사를 공유하며 신재현은 밥 잘 먹고 다니냐는 둥 묻기도 했다.

다만, 걱정과 염려라기보다는 대형 조사를 앞둔 시점에 가벼운 긴장감이 서린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황민우가 자주 톡방에 나타났다.

-황민우 : [사진]

-황민우 : 전복솥밥 먹음

-강혜원 : 와; 전복 몇 개임? 개맛있겠네; 놀러갔어요?

-장세훈 : 너 일 안 해?

-신재현 : 바빠요.

-장세훈 : 아니;;;; 너 바쁜 건 알아. 너 말고…….

-신재현 : 지금 상황, 민우 형이 시간나는 대로 올려줄 거예요. 궁금한 거 있으면 형한테 물어 보세요.

-강혜원 : 팀장님! 그 상황이라는 게 혹시 밥상 상황인가요?

-신재현 : 형. 전복만 올렸어요? 저번에 먹은 해물라면이 쩔었는데.

-황민우 : [사진]

-장세훈 : 미친놈들아 그만해

-안길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혜원 : 라면에 저거 머예요? 문어예요?

-장세훈 : 어이가 없네…….

신재현이 말한 대로 황민우는 틈틈이 상황을 올렸다.

팀원들의 걱정을 덜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사실은 공부 목적이 컸다.

십몇 년을 세무서에서 일해도 겪어 보기 힘든 일이다.

하루하루가 처음 겪는 일의 연속이었고, 떨어져 있는 팀원들도 간접적이나마 느끼길 원했다.

다만 내부 자료를 반출하지 않는 선에서 설명하려니 어려움이 많았다.

-황민우 : 카지노 탈세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일단 브로커 끼는 게 있어요.

-장세훈 : 매출 누락하면 끝나는 거 아냐?

-황민우 : ㄴㄴ제주도가 비자 없어도 들어올 수 있자나요. 브로커가 외국에 가서 관광객을 모아요.

-강혜원 : 관광객 모으는 거 자체는 상관없자나요.

-황민우 : 관광객이 도박에 쓸 돈을 미리 외국 현지 계좌로 줘요.

-안길진 : ?????

-황민우 : 관광객은 맨손으로 제주도에 들어와서 카지노에 가요.

-강혜원 : ?

-황민우 : 관광객이 미리 낸 돈만큼 카지노에서 칩을 줘요. 관광객은 그 칩으로 도박하고 차액만큼 결제해요.

-장세훈 : 뭔 개소리야…….

-강혜원 : 숫자로 예를 들어 줘요.

-황민우 : 외국에서 관광객이 ‘나 카지노에서 1억 어치 놀 거다’라면 국내 들어오기 전에 외국 통장으로 1억 송금한다. 카지노에 와서 1억을 날리고 천만 원을 더 날렸다면 카지노에서 천만 원어치 카드를 긁는다.

-장세훈 : 아, 그러면 카지노에서 실제 잡히는 매출은 천만 원인 거네.

-장세훈 : 아ㅋㅋㅋㅋㅋㅋ진짜 탈세하는 놈들 머리 굴리는 건 알아줘야 돼ㅋㅋㅋㅋㅋㅋㅋㅋ

황민우가 틈틈이 수법을 설명하는 동안 신재현은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서면 조사를 시작했다.

팀을 둘로 나누어 하나는 법인, 하나는 부지사를 캤다.

동시에 두 개의 조사를 진행하면서도 신재현은 막힘이 없었다.

다음 주 초에 세무조사 나간다는 거짓정보를 주었으니 시간이 별로 없었다.

조사팀은 마음이 급해졌다.

손발이 꼬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가장 허둥거리기 쉬운 위치에 있는 신재현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부지사 앞으로 된 재산이 생각보다 적은데요. 탈세액을 생각하면 좀 더 있을 법한데…….”

“예?”

“혼잣말입니다. 배하심 부지사가 여기 오기 전에는 로펌에 있었단 말이에요. 그러면 막상 정치에 발 담근 건 얼마 안 됐을 테니 차명도 아직 덜 익었을 거예요. 완벽하진 않을 거란 말입니다.”

“관계자와 사돈의 팔촌까지 싹 뒤지란 말씀이시죠?”

“예. 증여, 양도. 재산이전 모두 훑어 주세요.”

“팀장님, 법인 파다 보니 이런 게 나왔습니다.”

“아…… 외국에 현지 법인이 있을 겁니다. 대표자와 임원들 친인척 털어서 외국 현지 법인 쪽과의 연결고리 찾아주세요.”

극한 상황에는 익숙했다.

항상 시간과 추측성 기사에 쫓기고 외압을 느끼며 조사했으니까.

서울청에서의 경험이 지금 여기서 도움이 되고 있었다.

-황민우 : 얘네가 외국에서 돈을 받잖아요? 그걸 6:4로 나눠요. 4는 브로커가 먹고 6은 현지 외화로 들여 온대요.

-안길진 : 이해가 좀 안 되는데요. 외국에 있는 돈을 아무 흔적 없이 어떻게 한국으로 가져와요?

-황민우 : 그게…… 쪼개서 전세기로 가져온다고…….

-장세훈 : ??? 미쳤네. 관세청은 뭐 해? 안 걸려?

-황민우 : 전세기로 작정하고 숨기면 안 걸리기도 하나 봐요. 저도 관세 쪽은 잘 모르겠는데, 지금 검사님이 그쪽 때릴 준비하고 있어요.

-장세훈 : 검사님? 누구? 제주지검?

-황민우 : 지현석 검사님이 직접 내려오셨어요.

-강혜원 : 와아아!

차명으로 숨겨져 있던 재산을 찾아내고, 우회해서 가족에게 증여한 흔적을 찾았다.

시간은 부족했지만 지시가 명확하자 낭비하는 시간이 없었다.

카지노 쪽의 자금흐름도 얼추 개략도가 나왔다.

-황민우 : 사실 제일 중요한 게 브로커잖아요. 직종이 여행 전문모집인인데, 일단 이들도 국적이 외국인 경우가 많고요.

-강혜원 : 전문모집인? 아, 여행가이드 비스무리한 건가요?

-황민우 : 브로커가 문제입니다. 이 사람들 우리나라에 사업자등록도 안 하고 수수료만 받아 챙기거든요.

-장세훈 : 어케 잡아?????

-황민우 : 그래서 가장 급한 게 브로커예요. 카지노하고 부지사는 사실 미끼입니다. 브로커 잡는 건 검사님하고 팀장님이 직접 나서기로 했습니다.

-장세훈 : 출국하면 끝이잖아.

-황민우 : 일단 조사하면서 손님 명단에 포함되어 있던 두 명은 출국금지 걸어 놨어요. 나머지는 직접 카지노 가서 털어 봐야죠.

-강혜원 : 아…… 알겠네요. 현재 한국에 있는지 외국에 있는지도 모르니까 일단 명단 확보하고 입국 뜨면 바로 체포하게 준비하겠다는 거죠?

-황민우 : 네. 현재로서는 최선입니다.

-장세훈 : 다음 주 초에 간다고 말해놨다며. 그럼 지금쯤 한참 준비하고 있겠네. 그 전에 가야지.

-강혜원 : 언제 가실 거예요?

정리한 자료를 넘기고 틈틈이 메시지를 보내던 황민우는 사무실을 쭉 훑어보았다.

근처 관사에 사는 사람들에게 낑겨 들어가 하루 3~4시간 자면서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다른 직원들도 초췌해진 얼굴에는 독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사람이 밤새서 일하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지는데, 그러면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했으니까 반드시 잡는다.’

그러면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집념과 독기가 생긴다.

조사과장을 포함한 현재 임시 조사팀원 전부가 그런 상태에 다다라 있었다.

황민우는 여러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자료 취합 중인 신재현을 보며 메시지를 쳤다.

-황민우 : 내일 아침 일찍 갑니다.

준비는 끝났다.

***

남석현의 가짜 정보는 비서를 통해 부지사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카지노 회사로 넘어갔다.

배하심 부지사가 카지노 회사를 예뻐해서 정보를 준 것이 아니다.

그쪽이 걸리면 여기가 걸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같이 살기 위해서였다.

“내가 그런 놈들하고 엮여서 이 고생을 하다니, 쯧. 세금 관리 하나 못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오히려 본심은 이쪽이었다.

‘사업하는데 어려움 없게 잘 봐 달라’는 요구에 합당한 성의를 조금 받은 것뿐이다.

배하심 입장에서는 세무조사 한 방에 자기까지 올라오는 줄이 존재하는 걸 원치 않았다.

관련된 줄이 보이면 다 끊어 버려야 한다.

끊지 못하면 그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 계획으로 첫째로는 스피커의 입을 막았다.

신재현이 조사팀에 합류했다지만, 그는 가짜뉴스로 제주도민에게 불신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소속된 조사팀에서 무슨 말을 하든 빛이 바랠 거란 계산에서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제주세무서장에게 적당한 때를 봐서 전화를 걸었다.

대놓고 압박을 주는 건 하수다.

부지사는 넌지시 말을 던졌다.

“요즘 세무서가 한 건 할 것 같다는 소식이 들리던데요. 유능한 직원들이 많으니 제주의 홍복입니다. 서장님이 부럽습니다, 하하.”

약 10분에 달하는 안부 전화에서 부지사는 말을 빙빙 돌리고 또 돌렸다.

하지만 서장도 단번에 알아들을 만큼 노골적인 욕망이 느껴지는 대화기도 했다.

“서장님께서는 좋은 열매만 골라 드시면 됩니다. 열매 밑에 무엇이 있는지는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어떤 공무원의 막말 파동으로 민심이 흉흉한 거 보셨죠? 서장님도 불편한 일이 계속 일어나는 건 원치 않으실 것 아닙니까.”

은근하고 탐욕스러운 말끝에 서장은 딱 한마디를 덧붙였다.

“알겠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부지사는 자신의 의도가 먹혀들었다고 생각하고 흡족한 말투로 전화를 끊었다.

10분 내내 가만히 듣고만 있던 서장은 이를 뿌득 갈며 수화기를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얕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서장의 눈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갔다.

눈앞에 부지사가 있다면 갈아 마셔 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러나 서장실에는 그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파에 편히 앉은 채 차를 마시던 풍채 좋은 남자가 품에서 자그마한 술병 하나를 꺼냈다.

투명한 유리병에 갈색 액체가 찰랑였다.

얼마 전 다짜고짜 쳐들어온 남자는 부산지방청장이었다.

제주서가 부산청의 관할이다 보니 명분도 확실했다.

처음에는 씩씩대며 뭔가 일을 칠 것처럼 하더니 서장이 직원들을 지켜보자며 필사적으로 말리자 아예 서장실에 눌러 앉았다.

“잘 참았어요. 아직은 우리가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부산지방청장은 서장의 인내심을 칭찬했다.

서장이 전화하는 내내 가만히 있었던 것은 부지사의 말을 귀담아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입을 열면 욕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였다.

서장은 화를 삭이고는 부산청장의 곁으로 다가왔다.

“곧 조사팀이 출발할 겁니다. 오늘 모든 일이 마무리되겠죠.”

“그래요? 그럼 내가 한 손 거들어 봐야지.”

부산청장이 벌떡 일어섰다.

서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청장님께서 직접 가시게요?”

“도와줄 거 있으면 도와주고. 부지사를 상대로 어디까지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부산청장은 큰 덩치를 움직여 성큼성큼 서장실을 빠져나갔다.

그 얼굴에는 재밌는 구경하겠다는 기대감과 수틀리면 엎어 버리겠다는 기세등등함이 섞여 있었다.

복도를 걷는 둔탁한 발소리가 멀어져 가자 서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신재현에 부산청장님이면 별걱정 안 해도 되겠네.”

가는 곳마다 폭풍이 분다는 재난 같은 놈과 지방청장이 함께다.

서장은 든든함을 느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