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87화 (287/500)

287화. 선동과 날조 (3)

우리는 지금 도로 제주세무서에 들어와 있었다.

퇴근한다던 사람이 양쪽에 남자 둘을 끼고 들어오니 사무실에 남아 있던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중 한쪽 팔을 잡은 건 나고 반대편 팔을 잡은 건 처음 보는 남자일 테니.

우리 뒤를 조용히 따라오던 황민우는 한쪽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응접실 문을 열었다.

미리 봐 둔 것이었다.

“어어! 남석현 조사관님 아니에요? 무슨 일 있어요? 옆에 있는 분은 누구시고요?”

“서울중앙지검 검사님이십니다.”

“검사님…… 헙!”

과연 검사라는 이름값은 대단한 것이었다.

우리 진로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불에 덴 것처럼 삽시간에 물러났다.

“진짜 대박이다…….”

“검사까지 온 거면 뭔가 터진 거 아닐까요?”

“근데 왜 검찰청으로 안 가고 여기로 왔을까요.”

“서울지검에서 왔댔죠? 뭔가 수속이 꼬였나?”

“이야, 서울지검이면 아무나 못가는 곳이잖아요!”

뒤에서 수런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당황스러움은 느껴졌지만 걱정은 섞여 있지 않았다.

어지간히 남석현의 행실이 별로였나 보다.

원래부터 좁은 사무실이라 응접실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동그란 원형 테이블 하나에 의자 세 개가 간신히 들어갔다.

지현석 검사가 남현석을 거칠게 자리에 앉혔다.

그는 이런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의자 뒤에 서서 등받이를 양손으로 눌렀다.

그리고 남석현을 머리부터 쭈욱 훑어 내려가더니 흐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석현은 그의 자그마한 행동에도 흠칫했다.

“제대로 소개하죠. 서울중앙지검의 지현석 검사입니다.”

지현석은 테이블 위에 공무원증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사람은 내면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처음 본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외모와 그 지위를 보게 된다.

거기서 편견이 생기고 대우가 달라진다.

지현석의 경우도 그랬다.

그의 검사라는 직업에 더해 서울중앙지검이라는 직장은 최고의 배경이었다.

제주지검도 아니고 서울에서 일부러 내려와 그를 찾았다는 사실에 남현석의 머릿속은 복잡할 것이다.

그렇게 점점 공포를 새기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남석현 씨.”

“예? 예.”

“우리 이름도 비슷하네요. 지현석, 남석현.”

“예에…….”

“이름이 비슷하니까 더 기분이 나쁘네. 남현석 씨 이름 부를 때마다 내가 잘못한 기분 들잖아요.”

“무슨 말씀이신지…….”

지현석은 느슨하게 맨 넥타이를 꽉 조였다.

코트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정장 단추를 잠갔다.

흘러내렸던 안경까지 추켜올리니 해맑고 사람 좋아 보이던 지현석은 온데간데없었다.

“왜 그랬어요?”

지현석은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남석현은 숨을 들이켰다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뭘, 말이에요?”

그 순간 지현석의 눈길이 슬쩍 내게 닿았다.

나는 남석현 바로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일부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왜 그러셨어요…….”

남석현이 입술을 악물었다.

우리는 절대 무엇을 알아냈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알아낸 ‘척’을 했다.

남석현은 지금쯤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겠지.

어디까지 알아냈나, 설마 모든 걸 알고 온 건가.

떠보기가 아닐까 생각했다가도 정말 다 알고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에 몸서리칠 것이다.

이걸 다 어떻게 아느냐면, 지금 남석현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바뀌고 있어서 그렇다.

방금 또다시 의심의 감정이 스쳤다.

나는 방향을 바꿨다.

“제가 왜 지검으로 안 가고 여기로 데려왔을 것 같습니까. 남석현 씨에게 마지막 기회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이 남석현 씨가 우리 동료로서 잘못을 털어놓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예요. 어떻게 보면 남석현 씨도 서울에 가족을 놔두고 혼자 이 먼 곳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는 안타까운 처지니까요.”

“그걸 어떻게 안 겁니까…….”

가까스로 남석현이 입을 연 이때가 기회다.

“남석현 조사관님 앞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섰을 것 같습니까? 저는 정보망이 있습니다. 남석현 조사관님 같은 일반 공무원들은 어떻게 알아내야 할지 방법조차 모르는 그런 정보가 제 손에 들어와요. 몇 가지 예를 좀 들어 볼까요?”

남석현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쳤다.

“남 조사관님의 아내분은 사치가 심하시더군요. 그동안에는 그럭저럭 버틴 것 같은데 그것도 이젠 한계죠? 당장 다음 카드값이 부족하시더군요.”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눈을 치켜떴다.

“500만 원 정도 받으신 것 같은데 카드값 메우는 데에 쓰셨나요? 아니면 아직 현금으로 들고 계신가?”

“허억!”

남석현이 기절할 듯 놀랐다.

탈세액에서 역산한 금액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나 보다.

남석현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저, 정말 다 알고 있는, 겁니까?”

“아는 것, 조사한 것만요. 우리가 모르는 건 남 조사관님이 가르쳐 주셔야죠. 그래서 붙잡은 건데요.”

주도권은 완전히 넘어왔다.

남석현은 더 이상 회피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저는 남 조사관님이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사람이 좀 못나긴 해도 탈세액은 없던 사람이다.

요 며칠 사이에 생긴 걸 보면 그 사이에 누가 접근해서 흔들어 놓은 것일 테고.

“잠깐의 유혹이 있었겠죠. 상황은 힘들고 눈앞에 눈먼 돈이 왔다 갔다 하니. 그래서 잠시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검찰에 맡겨 두자니 제가 마음이 급하기도 하고.”

남석현은 아무 말 없이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돈, 누구한테 받았습니까? 어디까지 말했습니까? 오늘 만나기로 한 건 누구입니까?”

이 상황이 되어서도 남석현은 망설였다.

거기에 이번엔 지현석이 끼어들었다.

그는 테이블에 슬쩍 걸터앉은 채로 협박했다.

“신재현 씨가 알아낸 것에 더해서 저도 한번 말해 볼까요? 세무서보다 검찰이 알 수 있는 게 아주 많은데. 예를 들어 남석현 씨의 통화기록을 뜯어 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누구와 만나기로 했는지도 거기 나올 것 같은데.”

나쁜 놈들을 여럿 상대하면서 느낀 게 있다.

이들은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소위 높으신 분들을 칠 때는 뒷배를 한껏 이용했고, 이런 자질구레한 잡범의 입을 열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손에 들린 것을 이용하는데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정석적인 일은 아니다.

깨끗한 누군가가 본다면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들은 선을 쉽게 넘으며 온갖 더러운 수로 우리를 압박해 온다.

그렇다면 우리도 무방비로 얻어맞을 순 없지 않은가.

지현석과 내가 영장도 없이 남석현을 붙잡아서 캐묻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도 나름 최저한의 선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정보를 팔아넘기고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상대로 대화로 해결하는 것만 해도 꽤 많이 참은 거다.

-덜덜덜.

남석현이 이를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히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저,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지른 일에 따라 다르겠죠. 500만 원 이외에 뭔가 받은 게 있습니까?”

“그게 끝입니다. 그쪽에서 정보를 더 요구하긴 했는데 제가 가져가는 정보에 따라 가격을 쳐주겠다고 했습니다. 500은 계약금인 거고요.”

남석현은 무언가를 내려놓은 것 같았다.

물어 보는 족족 자판기처럼 대답이 튀어 나왔다.

“어디까지 말했습니까?”

“신재현 씨가 조사팀에 합류했다는 것, 조사대상이 카지노 회사라는 것, 조만간 세무조사가 나갈 것.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나와 지현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생각보다 대단한 정보는 없었다.

첫날에 바로 쫓겨났기 때문인 듯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부지사를 조사한다는 건 모른다는 뜻인데.

자신이 공격당하지도 않았는데 선제공격으로 날 친다는 건가?

물론 선빵필승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냥 내가 조사팀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날 죽일 놈 만드는 건 도가 넘지 않았나 싶다.

“제일 중요한 걸 묻겠습니다. 정보를 유출한 대상이 누구입니까?”

남석현은 잠시 멈칫하다가 중얼거리듯 답했다.

“부지사입니다.”

장막이 걷혔다.

내게 칼을 들이밀던 자가 드러났다.

***

남석현에게서 대답을 들은 우리는 그를 데리고 서장실로 향했다.

응접실에서 한참을 얘기했지만 법인세과 직원들은 아직까지도 야근 중이었다.

그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터덜터덜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남석현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일행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6시 반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서장은 이미 퇴근한 상태였는데 신재현이 전화를 하자마자 부리나케 관사에서 뛰어 왔다.

조사과장은 야근 중이었기 때문에 바로 서장실로 쳐들어왔다.

서장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서장실 소파에 힘없이 앉아 있는 남석현과 신재현 일행을 보더니 멈칫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더니 곧이어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서장님. 이미 퇴근하셨는데.”

“신재현 조사관이 전화할 정도라면 큰일 아닙니까.”

“맞습니다. 웬만한 일이었다면 이 시간에 서장님께 연락드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서장은 코트를 벗지도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숨을 푸후 내쉬고는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거기 계신 분은 누굽니까. 우리 식구는 아닌 것 같은데.”

지현석의 소개가 이어지자 탄식이 낮게 흘렀다.

다른 사람도 아닌 검사가 등장했다면 불법적인 일이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신재현과 지현석은 방금 있었던 사정을 순서대로 설명했다.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마다 남석현은 더욱 고개를 숙였으며 서장과 과장은 핏발 선 눈으로 듣기만 했다.

설명이 끝났지만 서장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검사가 직접 와서 설명하는 걸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과장은 뚜벅뚜벅 소파로 다가오더니 남석현의 뒤통수를 때렸다.

-빠악!

남석현은 뒤통수를 문질렀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과장이 머리를 때렸던 손을 부여잡고는 소파에 기댔다.

제정신으로 서 있기 힘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저희가 파악했어야 하는 건데.”

“그렇게 자학하실 필요 없습니다. 부지사가 세무서 직원을 매수할 거라는 생각을 감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서장님께서는 직원들을 믿고 계실 텐데요.”

사실 밑에서 누가 배신한다 해도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는 알아내기 어렵다.

이번 일이 비정상적으로 빨리 들킨 것뿐이다.

지현석은 그걸 듣기 좋게 포장해 말해 주었다.

서장과 과장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검사님이 밝혀내신 거니 검사님의 판단에 따르겠습니다.”

서장은 지현석이 수사팀을 지휘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현석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신재현 씨가 시작했습니다. 저는 신재현 씨의 의견을 따릅니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서장의 표정이 흔들렸다.

상식적으로 반대여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의 검사가 세무직 7급에게 판단을 맡긴다니, 서장은 귀를 의심했다.

“그, 그렇습니까? 그럼 신재현 조사관의 의견을 들어 보죠.”

시선이 쏠리자 신재현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현석 검사님께서 도와주신 건 감사하지만 일단 국세청에서 내부 감사 돌린 후에 검찰로 넘기겠습니다.”

뇌물을 받은 것이니 검찰로 넘어갈 만한 일이지만 액수가 작다.

그리고 바로 넘기면 검사가 국세청 내부를 사찰한 것이 된다.

두 기관 사이가 안 좋아질 수도 있었다.

“국세청 기관 내의 자정작용으로 보였으면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지현석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재현 씨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남석현 조사관님은 한 가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네?”

남석현이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오늘 7시에 약속 있다고 하셨죠. 곧 약속 시간입니다. 7시까지 나오지 않으면 전화가 오겠죠?”

“그렇겠죠…….”

지금 택시를 타고 달려간다 해도 이미 늦었다.

시간 여유가 있다 해도 이들이 자신을 보내 줄 리가 없다.

남석현은 왜 다 끝난 일을 묻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전화가 오면 이렇게 말씀하세요.”

서장실 안의 시선이 한 군데에 모였다.

신재현은 무언가를 꾸미는 악동 같은 미소로 말했다.

“다음 주 초, 카지노에 기습적으로 세무조사가 있을 예정이라구요.”

그리고 제주세무서의 서장실에서 이들의 계획이 수립되는 동안, 한 남자가 부산에서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이 새끼들. 어디서 감히 이딴 기사를 써? 나한테서 술까지 받아간 놈인데 아주 천하의 개새끼로 만들어 놨구만!”

국장급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몸소 기자의 손모가지를 부러뜨려 주겠다며 씩씩대며 게이트를 통과한 남자는 바로 부산지방청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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