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선동과 날조 (2)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면서도 하얗게 비워졌다.
화가 나면 머리에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랬다.
무조건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내 잘못도 아닌 이유로 미움을 받는 건 너무하지.
그동안 나에 대해 까는 더러운 기사를 꽤 많이 봤는데 이건 좀 선을 넘은 것 아닌가 싶다.
“……괜찮으세요?”
드물게 황민우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굳이 거짓말할 이유도 없는데.
“괜찮지 않네요. 개빡쳐요. 죽여 버리고 싶네.”
황민우는 탄식했다.
“정말 죽여 버리실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죠. 조져버리고 싶다는 뜻이지.”
“조져버린다는 게 물리적으로 쥐어팬다는 건 아니죠?”
황민우는 끈질겼다.
“누군지만 알면 확 그냥 의자 집어다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
황민우의 얼굴이 점점 험해졌다.
나는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리며 이야기를 돌렸다.
“……은데 그렇게는 안 되니까 열심히 불법적인 걸 찾아보겠다는 뜻이죠!”
이 정도면 충분히 냉철한 판단 아닌가?
황민우는 나를 관찰하듯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음식이 나오고 나서야 시선을 거뒀다.
“많이 겪어 보셨으니 선은 아실 것 아닙니까. 부지사를 쥐어박는다든가 다짜고짜 쳐들어가서 사무실을 엎어버린다든가. 이런 건 안 하실 거라 믿습니다.”
어지간히 걱정되는지 그는 몇 번이고 쐐기를 박고 내 대답을 듣고서야 숟가락을 들었다.
후룹, 갈치조림의 달큰한 국물로 입가심을 한 뒤 나는 입을 열었다.
“외압 예상은 했는데 대놓고 절 표적으로 할 줄은 몰랐네요.”
“주사보님이 제주세무서에 오신 건 사실 비밀이 아닙니다.”
“그렇죠. 당장 세무서 사람들 다 알 텐데.”
첫날 법인세과 직원들이 환영까지 해 줬다.
소문이 났다는 뜻이다.
다른 과라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고, 세무서 전체가 알고 있다면 기자든 뭐든 밖으로 새어나가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럼 정보 새어나간 건 더듬어 봐도 별거 없겠네요.”
우리는 가능성을 한 가지씩 지워 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손은 한 점의 오차 없이 갈치 살을 발라냈다.
양옆의 생선 가시를 빼내고, 갈치토막을 가로로 갈라 중간의 큼지막한 가시를 잡아 뺐다.
하얀 김이 올라오는 살에 뜨끈한 조림 국물을 적신 후 흰 쌀밥 위에 얹었다.
그렇게 한 입 먹고 나자 입안에 달짝지근하면서도 짭쪼름한 양념이 퍼지고 포슬포슬한 갈치 살이 혀끝에 느껴졌다.
순간 대화가 멎었다.
“어우, 맛있네요.”
“그러게요. 갈치가 실하네.”
정신없이 먹다 보니 문득 대화가 끊겼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다시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압박이 들어왔을까요?”
“서장님이나 과장님, 조사팀 직원에게라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신문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인데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라는 얘기 정도는 들어올 수 있죠.”
뉴스의 내용은 기가 막혔다.
내가 뭐 술을 마시다 말실수를 했다는데, 내가 제주도에 와서 술을 마신 건 딱 한 번 빼고 다 관사에서였다.
그나마도 그 한 번은 국세청장이 왔을 때 접대용으로 가볍게 마신 거고.
덕분에 그날 내가 운전대를 못 잡고 대리까지 불러야 했다.
즉, 기사에 나온 말은 전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제주도를 비하했다느니, 잘나간답시고 오만방자하게 굴다가 좌천당해서 그에 앙심을 품고 국세청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느니, 제주도에 내려온 것 자체에 불만을 갖고 있어서 태도가 좋지 않다느니.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쓰지 않았을 법한 말이다.
즉,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기사를 냈으며 취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혹시 기자나 낯선 사람이 오진 않았는지 교육원 쪽에 알아볼까요?”
“아뇨. 기사는 아마 책상에 앉아서 대충 휘갈겨 썼을 겁니다. 보통 진실 속에 한 줌의 거짓을 섞어서 날조하는데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가짜잖아요. 제 근처에도 오지 않은 사람의 솜씨입니다.”
“기사 쪽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누군가에게서 의뢰를 받고 쓴 기사입니다. 기자가 누군지 알아내도 의미는 없어요. 다만 생각보다 빠르네요.”
명백히 나를 타깃으로 했다.
내가 제주도에 내려와서 한 짓이라고 해 봤자, 교육원에서 손경진과 좀 투덕거린 거랑 제주세무서에서 세무조사에 합류한 것뿐이다.
손경진과의 일은 나름 잘 해결했고, 시기상으로 봐도 이번 세무조사 때문에 선동과 날조를 벌인 거겠지.
근데 왜 나지?
서울청 특수조사 2팀장이었던 시절이라면 나를 목표로 잡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파견 나온 조사팀원 중 한 명으로 되어 있는데.
“혹시 제가 조사팀 지휘를 잡았다는 걸 아는 걸까요?”
“그렇다면 세무서 내에 정보를 흘린 사람이 있다는 뜻인데요.”
황민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믿고 싶지 않긴 하지만 공무원이라고 다 깨끗하고 청렴한 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착한 사람이 있는 반면 나쁜 사람도 있다.
사람이 모이면 그렇게 된다.
“역시 아까 그 사람일까요?”
“남석현 말이죠?”
우리는 갈치 살을 바르며 다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머리 위에 없던 탈세액이 갑자기 생긴 것도 그렇고 시기상으로는 딱 맞긴 한데.
아까 들어오자마자 내 얼굴 보고 놀라서 소리친 거 보면 아예 처음부터 알고 왔던 것 같지는 않고.
대체 뭘까 싶다가도 뜨끈한 국물을 한 입 마시자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그래!
붙잡아서 물어보자!
“그 사람 조사 일단락되면 직접 만나봐야겠네요.”
“……네.”
잠시 침묵 속에 갈치를 먹던 황민우가 난데없이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근데 진짜 치사하네요. 굳이 없는 얘기를 지어냈어야 했나.”
“있는 얘기로는 더 캐낼 게 없으니까 없는 걸 지어낸 거겠죠.”
나는 푸흐흡 웃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으세요?”
“그렇게 기삿거리가 없나 싶어서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형 새끼랑 집안 사정, 제가 왜 회사에서 잘렸는지까지 다 기사로 나왔잖아요. 진짜 제 개인 사정이 거의 공공재 수준이라니까요?”
공개된 것들이 하나같이 정상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 인생이 그만큼 파란만장했다는 뜻이다.
웬만한 얘기가 아니고서야 사람들이 기사에 관심도 주지 않겠지.
그래서 기자가 이렇게 극단적인 날조를 선택했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황민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밥에 갈치 국물을 부었다.
“예에. 더 하면 연예인병 되겠습니다. 얼른 드세요. 멀리 나와서 들어가려면 힘듭니다.”
우리는 서둘러 갈치토막을 해체해 입안으로 넣었다.
밥 먹는 내내 따라붙었던 시선은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올 때도 여전히 뒤통수에 콕콕 박혔다.
그러든가 말든가.
시선이야 익숙하다.
나는 식당 밖에 붙은 메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한 게 있네요. 갈치국? 갈치로 국도 끓이나 봅니다. 다음엔 이거 먹어 봐요.”
황민우가 주춤했다.
***
시곗바늘이 6시를 가리키자 남석현은 부리나케 짐을 챙겼다.
계획이 실패했다고, 접근은 어렵겠다고 말하고 다른 정보를 주겠다며 양해를 구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저녁 7시에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먼저 들어갑니다!”
“아, 남 조사관님! 일 진짜 많은데!”
가뜩이나 사람이 부족하던 법인세과에서 몇 명이 조사과로 빠져나갔다.
임시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파견 나갔다고 해서 있던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히 파견 간 사람들의 업무는 남은 이들에게 재분배되었다.
조사팀에 간 사람들에게 불만은 없었다.
그들은 지금 법인세과보다 더 힘들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남은 사람끼리 힘을 합쳐야 하는 건 당연했는데 요즘 들어 자꾸만 남석현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내일 할게요!”
“결재가 당장 내일 아침에 올라가야 하는 건이 11건이란 말이에요! 남 조사관님!”
애타는 부름에도 남석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섰다.
남들이야 야근을 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당장 자신이 잡은 줄이 중요했다.
세무서를 헐레벌떡 뛰어나간 남석현이 큰길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을 때였다.
누군가가 그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흐억!”
손목을 잡은 손끝이 너무나도 차가웠다.
오랫동안 밖에서 기다린 티가 났다.
혹시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인가 싶어 돌아봤다가 남석현은 숨이 넘어갈 듯 놀랐다.
“으아악!”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남석현 조사관님.”
새카만 코트를 단정치 못하게 풀어헤친 사이로 흰 와이셔츠와 파란 넥타이가 보였다.
딱 공무원이구나 싶은 단색의 향연이었다.
그러나 그 흑백의 차림새와 냉기가 풀풀 느껴지는 손에서는 더없는 불길함이 풍겨왔다.
“저를 왜…….”
“왜 그렇게 말을 흐리세요? 그날 조사과에서는 저 일하는 거 보더니 제주세무서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다면서 소리 치셨잖아요. 어디 한번 지금도 그렇게 해 보세요.”
“대체 무슨!”
놀리는 듯한 말에 울컥하며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올라왔다가 목구멍을 통과하기도 전에 도로 내려갔다.
남석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그때는 사람이 많아서 그랬나?’
보는 눈이 많아서 물러날 수 없었던 건가?
그렇다고 치기에는 지금도 보는 눈이 많았다.
퇴근 시간이었고 제주세무서는 종합청사 안에 있었으니 다른 정부 부처 사람들이 나왔다가 흘끔흘끔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뭔가 싸움이 났나 싶어 다가왔다가 신재현인 걸 알고서는 아예 걸음을 멈췄다.
이런 시선은 그로서는 처음이었다.
당혹한 기색으로 남석현이 팔을 뿌리쳤다.
“뭐 하는 겁니까!”
“오, 이제 좀 그때 소리 지르던 분 같으시네요. 그렇게 나오셔야죠.”
눈앞에서 청년이 씨익 웃자 남석현은 불길함을 느꼈다.
신재현, 이놈은 탈세범은 가차 없이 조지기로 유명한 놈이다.
그래서 자문해보았다.
나는 탈세했는가?
‘걸릴 게 없는데.’
며칠 전 수고한다고 500만 원을 받긴 했지만 그걸 신재현이 알 리가 없었다.
정말 적은 금액이라 탈세했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떳떳한 것은 아니었다.
‘비서랑 만나는 걸 들켰나?’
찔리는 구석이 있으니 그 앞에서 주눅 든 건지도 모른다.
남석현은 애써 어깨를 폈다.
“기사에서 막말하셨다더니 들은 대로네요. 예의가 없으십니다. 다짜고짜 뭐 하는 겁니까?”
“흠, 제가 심증이 하나 있거든요. 100%까지는 아니고 한 99% 정도로 남석현 조사관님이 의심스러운데, 저녁 때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선약이 있습니다. 바빠요.”
“어떤 약속이신가요? 가족분입니까?”
“예, 가족이에요.”
귀찮은 벌레를 떼어내듯 손을 흔드는 남석현을 향해 신재현이 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가족분은 서울에서 따로 거주 중이지 않습니까. 가족분이 제주도로 왔다는 항공편 기록은 없는데요.”
남석현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세무서 직원으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를 들이밀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신재현은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그거 말고도 또 뭘 알고 있을까요?”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는 의미심장했다.
남석현의 두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당신 대체 뭐야. 정체가 뭐냐고.”
“글쎄, 뭘까요.”
신재현은 즐기는 어투로 말을 돌렸다.
“누군가는 칼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괴물이라 부르더군요. 그런 낯부끄러운 호칭이 왜 생겼을 것 같습니까?”
신재현이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정색한 청년은 초겨울 날씨만큼이나 싸늘했다.
“내 손에 걸리면 다 조져버리기 때문이죠.”
“아니, 아냐. 나는 몰라. 가, 가야 해!”
겁에 질린 남석현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누군가에게 부딪혀 멈추었다.
신재현을 항상 따라다니는 그 보좌인가 싶어 얼굴을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세무서 직원이 입기에는 가격대가 좀 나가 보이는 정장을 헤프게 풀어헤치고 넥타이마저 대충 느슨하게 묶은 30대 중후반의 남자였다.
그는 안경을 치켜 올리더니 공무원증을 내밀었다.
검찰청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렇게 급하게 달려 나가다니. 어떤 약속인지 저도 굉장히 궁금합니다.”
서울지방검찰청의 검사 지현석이 범죄자를 보는 눈으로 잔뜩 겁에 질린 세무공무원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