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선동과 날조 (1)
법인세과의 남석현은 조사팀 사무실 앞에 서 있었다.
사실 도착한 지는 꽤 되었다.
들어가지 못하고 애꿎은 사무실 문만 바라보며 서성인 것이 벌써 30분이 흘렀다.
“돌겠네, 진짜…….”
남석현은 연신 욕설을 중얼거렸다.
그마저도 안에 들릴까 봐 목소리를 죽였기 때문에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띄엄띄엄 분리된 음절뿐이었다.
“미치…… 개새…….”
욕의 대상은 다양했다.
쓸데없이 예민한 눈썰미로 카지노 회사의 이상한 점을 잡아낸 법인세과 담당자 임민지.
갑작스레 합류해 서를 한바탕 난리법석으로 만든 신재현.
신재현의 경우에는 딱히 그에게 잘못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모난 돌은 정을 맞는다고, 그가 이름난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더 나아가서는 법인세과 직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 자체가 고까웠다.
시기심, 질투심이라고 이름 붙일 것까지도 없었다.
그냥 잘났다니까 이유 없이 싫었다.
그리고 자신을 쫓아낸 조사과장의 욕도 몇 차례 섞였고, 자신에게 이런 지시를 내린 부지사에 대한 욕도 빠지지 않고 끼었다.
‘쫓아내지만 않았으면 안에서 뭐 하는지 수월하게 알려줄 수 있었을 텐데.’
부지사의 비서라는 사람이 따로 접촉을 해 왔을 때는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정보의 질에 따라 돈을 쥐여 주겠다는 노골적인 제안이 왔을 때도 날아가는 듯했다.
‘조사팀에 들어가라니. 이게 말처럼 쉬운 줄 아나!’
비서야 세무서 내부 사정을 모르니 그런 말을 한 거겠지만 남석현은 답답했다.
‘제가 거기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이에요.’
‘그럼 더 잘됐네요. 도로 들어가세요.’
‘이……!’
비서는 반드시 내부 정보를 가져오라고 했다.
안 그럼 한 푼도 없을 거라고.
문제는 그가 조사팀에서 쫓겨나듯 나왔다는 것에 있다.
도로 기어들어 가려면 자존심을 굽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또다시 10분의 시간을 속절없이 허비한 남석현은 복도 벽에 등을 기댄 채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원래부터 사람이 부족했는데 지금쯤 한 명이라도 아쉬운 시점 아닐까? 내가 안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과장이 화를 내면서 쫓아낸 건데 부당하잖아. 이건 약간의 사과와 화해만 있으면 합류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남석현은 눈앞에 놓인 상황과 미래에 받을 돈을 저울질했다.
지금 같은 기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남석현은 결국 40분 만에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팀장님, 이것 좀 봐 주세요. 저희 반에서 뭔가를 찾아낸 것 같은데.”
“아! 맞네요. 음, 그럼 이 사람 소유한 부동산 중에서…… 아, 이거다! 이쪽 라인으로 파볼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임시팀 조사관들이 신재현에게 업무를 분배받고 있었다.
그들은 발견한 것을 신재현에게 가져갔고, 신재현은 아무렇지 않게 업무 지시를 내렸다.
신재현이 팀장 직위를 가졌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서울청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여기는 제주세무서이며 그는 파견 나온 도우미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과장님, 이게 대체 뭡니까?”
인사도 없이 대뜸 그 말부터 나왔다.
남석현이 사무실에 발을 들인 걸 본 조사과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왔습니까?”
나가라고 외치던 과장치고는 꽤 예의를 차린 것이었다.
나름 존댓말을 붙여 줬으니.
그러나 남석현은 자기 할 말만 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저 사람은 좋게 봐줘도 외부인입니다. 당신들은 자존심도 없어요? 스물여덟짜리 7급 공무원 밑에서 지시나 듣게?”
남석현에게 그것은 중대 문제였다.
조사팀에 돌아가면 자신도 신재현의 업무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되니까.
그러니 인사보다 먼저 따지는 말투가 나온 것은 남석현의 본능과도 같았다.
그리고 며칠 전에 그랬듯 이것은 남석현의 큰 실수였다.
“눈앞에 있는 것만 보는 편협함에 잘난 놈들 싫어하는 속 좁음은 여전하네. 내가 왜 남석현 씨를 쫓아냈는지 알겠습니까?”
남석현은 아차 하며 뒤늦게 용건을 꺼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온 겁니다, 과장님.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예, 말실수 좀 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쫓아낼 정도의 잘못은 아니잖습니까. 몇 마디 주의로 끝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자존심을 굽히려고 했는데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이것 역시 신재현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구성한 팀이고 남석현 씨도 내가 데려왔습니다. 서로 의견이 안 맞으니 내보냈고요. 무슨 문제 있습니까?”
“문제요? 있지요. 우리 서의 명예가 추락한 것 아닙니까. 이거 하나 해결 못해서 좌천되어 온 사람에게 지휘를 맡겼다니, 남들이 알까 봐 겁나네요.”
직원들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 팀에 왈가왈부하려고 온 겁니까? 쫓아낸 거 따지려고 온 겁니까?”
“……부당하다 싶어서 온 겁니다. 조사팀에 다시 합류하고 싶습니다.”
“허, 참!”
과장은 혀를 찼다.
“대충 알겠네요. 며칠 생각해보니 쫓겨났다는 거 자체가 억울하고, 주위에서 보는 눈도 있었겠고. 조사팀 합류한다고 갔던 사람이 그날 바로 돌아오니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겠죠? 그래서 도로 돌아오고 싶으시다?”
사실과는 다르지만 남석현은 차라리 이게 낫겠다 싶었다.
청탁을 받아서 정보를 캐러 왔다는 걸 들키는 것보다야 백번 낫다.
그래도 자존심이 상하는 건 마찬가지라서 남석현은 애써 짜증 섞인 말투를 억누르며 대답했다.
“……예. 카지노 담당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과장님도 절 팀에 부르신 것 아닙니까.”
업종이 특수하니 약간의 경험이라도 있으면 받아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과장은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시선을 내렸을 때는 임시 팀 첫날 보았던 분노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첫째, 내가 결정권자인 이상 능력에 따라 각자 역할은 알아서 분배합니다. 우리 팀도 아닌 사람이 트집 잡을 계제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내가 허락했고 우리 팀원들이 납득했는데 네가 대체 무슨 권리로 이래라 저래라야?”
과장은 먼저 남석현이야말로 팀의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그리고 말투 또한 존중을 잃어가고 있었다.
“둘째, 신재현이 왜 외부인이야? 같은 국세청 소속 아니야? 국세청에서 일부러 보낸 건데. 인재를 잘 활용해도 모자랄 판에 놀리다 보내라고? 제정신인가?”
과장은 냅다 소리를 질렀다.
“가뜩이나 바쁜데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아니, 과장님!”
“꺼지라고! 너 같은 새끼 필요 없으니까!”
나가라고 했을 때보다 한층 더 모욕적인 처사였다.
그러나 과장은 진심이었고 무를 생각이 없었다.
“내가 처음에 널 데려온 것부터가 잘못이었어. 같은 세무서에 있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어딜 뻔뻔하게 기어들어 와?”
“과장님. 말씀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직속 상관도 아닌 조사과장에게 듣는 이런 모욕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생각에 별 잘못도 아닌데 이렇게 반응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로 해서는 못 알아듣나? 법인세과 과장님도 지금 네 행동 아시나?”
인사고과 불이익을 줄 수도 있는 직속 상사를 들먹이자 남석현이 주춤했다.
“너 승진 생각도 하지 마.”
으르렁대듯 과장이 말했다.
“꺼져.”
남석현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서성거렸지만 당장 책임자가 받아주지 않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조사과장의 강경한 태도에 남석현은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직원들의 경멸에 가까운 눈빛이 그의 등 뒤에 꽂혔다.
그리고 그중에는 신재현도 있었다.
“황민우 조사관님. 지금 좀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저 사람 누구한테 엮인 것 같거든요.”
“청탁 말씀이십니까?”
“지금 시점에 음, 뭔가를 받으면서 기어들어 왔다면 청탁일 확률이 높겠죠? 시기를 보니 좀 의심스럽네요.”
신재현의 시선은 남들보다는 조금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민우는 그가 응시하는 곳을 보았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내렸다.
무엇을 보는지는 모르겠으나 신재현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었다.
황민우는 이유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여긴 정식 발령지가 아니라 제 선에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울청에 도움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허락이 떨어졌다.
황민우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남이 들어도 좋을 만한 통화 내용은 아닐 테니까.
황민우가 나간 이후에도 신재현은 남석현의 얼굴을 떠올렸다.
[485,000]
작은 숫자였지만 단 며칠 만에 생겨났다는 것이 껄끄러웠다.
게다가 숫자가 굉장히 깔끔했다.
“신고세액공제가 3%니까 485,000원 나누기 97% 하면 50만 원. 50만 원이면 세율 10% 적용, 증여재산가액은 500만 원.”
역산했을 때의 증여재산가액 암산하면 딱 아귀가 들어맞는다.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증여세 신고기한이 지나지 않았으니 가산세는 붙지 않을 테고.
결과를 보고 과정을 거쳐 원인을 찾아내는 것.
이제는 익숙해진 암산을 끝낸 후 신재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좀 멀리 걷기로 했다.
같이 따라 나오려던 사람도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자 바로 철회했다.
혹시라도 기분 나빠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기색은 없었다.
-저 둘은 정보통이 따로 있다! 방해하지 말자!
대충 이런 분위기가 생겨나 있었다.
나한테 딱히 정보원이 있는 건 아닌데, 첫날 세 명의 이름을 콕 집어 말한 것이 자그마한 착각을 불러일으킨 듯했다.
그렇다고 정정할 필요성은 못 느껴서 그대로 놔두었다.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럴 때 편하기도 하고.
“보고부터 드리겠습니다. 서울청 이선균 과장님께 따로 연락드렸습니다. 남석현 조사관은 올해 제주세무서에 온 7급 주사보입니다. 공무원이 된 지는 8년쯤 되었다고 합니다. 딱히 서류상 문제가 기록된 바는 없습니다.”
어느 사람에 대해 알아보려면 일차적으로 서류부터 뒤져보게 된다.
감사를 받은 적이 있는지,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을 만한 사고를 친 적이 있는지.
남석현은 평범하게 살았나 보다.
그래서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변 관계나 성격, 배경에 대해서는 이선균 과장님께서 좀 더 조사해보고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재산 내역은 제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다른 팀원에게는 들키지 말고 처리해주세요.”
“네.”
내가 직접 손대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조사과장이 내게 현장 지휘를 맡겼기 때문이다.
종종 직원들이 상황 보고를 하러, 조사 방향을 들으러 나를 찾고는 했다.
그런 상태에서 같은 세무서에 있는 사람을 흔적 없이 파기엔 어려웠다.
내가 손 뗄 수 없이 바쁘기도 했고.
“그럼 뭔가 찾으면 알려주세요.”
남이 들으면 안 될 대화는 이걸로 끝.
우리는 잡담을 나누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자리에 앉아 각자 메뉴를 시키고 앉아 있는데 어쩐지 사방에서 느껴지는 눈빛이 따가웠다.
어딜 가든 알아보는 사람은 꼭 있다.
그러면 보통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머쓱함을 숨기곤 하는데 오늘은 평소와 좀 달랐다.
하도 남의 시선을 많이 받아봐서 그런가?
눈빛에서 감정을 읽어낸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부정확한 방법이다.
그런데 내 뒤통수와 등에 콕콕 박히는 이 시선은 정말 노골적인 적의가 느껴졌다.
나도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쳐 보니 이건 확실히 알겠다.
같은 식당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몇 명이 명백한 적의를 품고 있었다.
“느낌이 안 좋은데요.”
나를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시선을 받아본 황민우 역시 예민하게 분위기를 파악했다.
나도 저런 적대를 안 받아본 건 아니다.
그러나 나를 저런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유가 있었다.
탈세범, 내게 까인 사람, 계획의 방해를 받은 사람, 국회의원 등.
뭔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공작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뭔지를 모르겠다.
일반인이라면 더욱.
잠깐, 일반인?
나는 혹시나 해서 스마트폰을 켜고 뉴스를 훑었다.
지역은 제주도로 설정한 상태였다.
원인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참 더러운 수작이네요.”
내가 한 적도 없는 막말이 논란이랍시고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