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제주세무서 (4)
-사락.
조용한 조사과 사무실에 종이를 넘기고 마우스를 달칵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서로 대화는 없었다.
어제, 그러니까 법인세과 직원 하나가 현실적인 질문을 하고 쫓겨난 일로 사기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의욕이 떨어진 이유에는 나도 한몫했다.
지금 이들이 건드리고 있는 것은 어제 내가 과장에게 부탁한 일이었다.
과장은 내 손을 들어 줬다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설득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임시 조사팀의 구성원이 아닌 과장에게 부탁한 것은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이 세 명의 유력자를 조사해야 할 이유.
솔직히 내 입장에서야 근거가 차고 넘친다.
이런 일을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니고.
남들이 기본 자료부터 모으기 시작할 때 나는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보이는 사람의 이름부터 찾는다.
당장 이 카지노의 경우에도 그랬다.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과 일용직지급조서를 뒤져 직원부터 훑었다.
그들 중 별다른 게 없으니 그다음은 세금계산서를 뒤져 거래처를 훑는다.
다음은 통장을 뒤져 단 한 번이라도 자금 거래가 있었던 사람을 찾는다.
남들이 보기엔 하릴없이 겉핥기로만 보고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러나 그런 반복 작업 몇 번을 하고 나면 내 눈에 떡하니 걸리는 것이다.
이걸 정상적인 방법으로 찾으려면 몇 날 며칠을 자료 수집하고 정리하고 가느다란 실마리를 거슬러 올라가 한 명 한 명 파고들어야 가능하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생략할 수 있지만.
[670,309,810]
문제는 이걸 남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은 다른 이유를 갖다 붙이곤 하는데 어제는 딱히 둘러댈 말이 없었다.
그래서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자신감과 의미심장함을 곁들이자 과장은 흔들렸다.
내게 다른 정보 라인이 있는 것 아닐까 긴가민가해 하는 얼굴이었다.
거기에 하루라는 시간제한을 더하자 과장은 결국 수락했다.
다만 영문도 모른 채 조사해야 하는 직원들은 표정이 안 좋았다.
조사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굴러들어온 돌의 지시대로 팀이 휘둘리는 것도 그닥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세무조사는 보통 속전속결인데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더 그렇겠지.
그러나 반드시 해야만 했다.
“저어…….”
나와 같은 조가 된 임민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침부터 내내 뭔가 생각에 잠긴 얼굴이더니 드디어 물을 용기가 생겼나 보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이제 같은 팀인데 서로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좋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팀장이었던 경험에서 한 얘기였다.
당장 첫날부터 생긴 균열이 내내 신경 쓰이던 참이다.
봉합할 기회가 있다면 해야 했다.
임민지가 흠칫하며 입을 열려는데 뒤쪽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일을 시키나?”
작은 목소리였지만 사무실이 워낙에 조용했기 때문에 내게도 똑똑히 들렸다.
임민지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나는 어깨너머로 누가 말한 것인지 확인한 후에 목소리는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만 물었다.
‘저 사람 누구죠?’
임민지가 대답하기 전에 황민우가 마찬가지로 입 모양으로 대답했다.
‘법인세과 직원입니다.’
임민지가 놀란 얼굴을 했다.
그야 황민우는 낯선 곳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사람 파악이라서 그렇다.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정보가 되는 데다, 내가 다른 곳에 전념하도록 돕기 위해서라고 했다.
불만을 구시렁거린 직원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슬쩍 그에게 눈치를 줬다.
그것이 역효과였다.
남자는 자존심이 강한 편인지 결국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왜요. 맞잖아요. 그렇게 팀 화합을 생각할 거면 이렇게 소통 없이 일을 시키면 안 되지.”
다각거리던 키보드 소리가 뚝 멈췄다.
찬물을 끼얹은 것마냥 얼음장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이 맞다.
이 팀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조사과장을 쳐다보니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짚고 있었다.
중요한 일에 앞서 팀이 깨지면 곤란하다.
그러나 조사과장은 딱히 수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면 은근히 저 직원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서 두고 보는 것이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조사과장도 바보는 아니니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수습은 하겠지.
나는 잠시 그를 빤히 바라보며 고민했다.
내가 나설까 말까.
그 잠시간의 고민에 남자가 찔린 모양이다.
“맞는 말 했으니까 사과는 안 할 겁니다.”
사과는 안 하겠다라.
그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본인이 사과할 만한 말을 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 아닌가.
임민지가 겁먹은 얼굴로 나와 그 직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저 정도라면 그다지 적대라고 할 것도 아니다.
진정한 악의를 마주하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따가운데 지금 이 직원에게는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저 약간의 짜증 정도.
나는 먼저 그의 생각을 짚어 보기로 했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기에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까마득하게 어리고 경험 없는 제게서 지시를 받았다고 생각해서 불쾌하신 것도 있을 테구요.”
지금 이 분위기가 된 이유는 사실 어제 자리를 박차고 나간 직원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이미 수습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금 여기서 내가 풀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그것을 공략해야 했다.
“지시는 뭐…….”
그런데 구시렁대던 직원의 얼굴이 기묘했다.
지시라는 말에는 그닥 반발이 없었다.
설마 그건 괜찮다는 건가?
굴러들어온 돌이 건방지게 지시를 내려서 불쾌한 게 아니었어?
거기서 날 고깝게 본 게 아니었나?
‘보고와 명령체계를 무시한 공격적 의견 개진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원래라면 이 말과 함께 달래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빗나간 반응이라 나는 다음 계획을 잊어버렸다.
내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자 직원이 벌컥 화를 냈다.
“그쪽이 능력 있는 거야 알고, 나름의 정보망이 있다는 것도 알아요! 원래 팀장이었고 그 뭐냐, 팀으로 실적 올린 것도 많으니 그런갑다 하는데.”
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위아래가 중요한 공무원 조직사회에서 이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그쪽한테 위계가 어떠네 그런 말 할 생각 없어요. 이미 실력으로 다 증명해 온 사람인데 조사 방향 잡을 수도 있지. 내가 짜증 난 이유는 아까 물어봤을 때 제대로 된 설명을 안 한 게 문제인 거라고.”
직원이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도 나름 이 바닥에서 좀 굴렀습니다. 일단 지시 받으면 아, 이건 어떻게 해야 더 빠르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한다고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왜 이 사람들을 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그쪽이야 이유가 있겠죠.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죠. 그러면 그렇다고 말해 줄 수는 없는 거였습니까? 지금 오히려 그쪽이 우리를 배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한 문장을 골랐다.
“그쪽이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음…….”
나는 탄식했다.
결과로 증명하겠다는 의욕이 앞서서 이들의 심정은 헤아리지 못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동안 우리 팀은 내가 뭘 하든 조용히 믿고 따라와 주었다.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나중에 사정을 말해 주긴 하지만 급하면 내 독단으로 결정하고 지시를 내렸다.
굳이 말하자면 서울청의 특수조사 2팀은 나를 중심으로 한 원맨팀이었다.
나에 대한 전적인 믿음으로 굴러가는 팀이다.
그런 구조에 너무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 실수가 맞네요. 팀원으로 일하는 건 오랜만이라 그랬나 봅니다.”
“아니 그렇게 말하니까…….”
이해가 가잖아, 라고 남자가 중얼거렸다.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줄어들어서 마지막 단어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자기가 화내고 자기가 납득하고.
알아서 한 풀 꺾인 남자는 한국인 특유의 도입부 ’아니, 그게…….‘ 를 꺼냈다.
“우리 이제 같은 팀이니까 조금 서로 얘기를 터놔도 되지 않겠냐 이 뜻이죠. 안 그래도 어제 그 사달이 나서 분위기 안 좋은데. 남은 사람끼리는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자는 나와 똑같은 방향으로 팀을 걱정하고 있었다.
다만 해결하는 방법을 몰라 표현이 서투르게 나왔을 뿐이다.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늦었지만 잠시 제게 기회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남자는 세 번, 네 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다른 직원들, 그리고 내내 침묵을 유지하던 과장도 고개를 들었다.
“이 법인의 탈세 증거는 어차피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난 회계 기수에 대해서는 손댈 수 없으니까요. 맞죠?”
“장부야 마감 전까지는 뜯어고친다 치지만, 날짜를 돌리지 않는 이상 이미 전산에 기록된 은행 기록이나 신용카드 기록 같은 건 일반인이 손댈 수가 없죠.”
“그러니 지금 급한 건 탈세액을 찾는 게 아닙니다. 그건 시간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예요.”
“속전속결로 탈세액 계산해서 세무조사하고 몰아쳐야 하는 건 아닙니까?”
“그게 맞는데, 이번엔 성질이 좀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뒤에 힘 있는 사람이 얽힌 경우엔 순서를 다르게 잡아야 합니다. 압박이 들어오기 전에 쳐야 하거든요.”
남자의 얼굴이 도로 팍 구겨졌다.
“이 사무실 안의 일이 새어 나갈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명백한 탈세의 증거를 갖고 법인을 치는 게 깔끔하지 않습니까? 반박 못할 증거를 찾으면 권력자도 무시 못 할 겁니다.”
“아뇨. 힘 있는 사람에게 증거 유무는 상관없어요.”
내 말에 직원들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너무 적나라하게 말해서인지, 힘 있는 놈들을 쳐오던 내가 하는 말이라 더 확실하게 와 닿아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인데.
이들도 겪을 일이고.
“우리가 뭘 찾든 그들의 행동은 두 가지로 나올 겁니다. 첫째는 법인 조사를 적당히 끝내라고 외압이 들어올 거예요. 이거야 깡이 있으면 적당히 무시하고 법인 털면 됩니다. 탈세야 명확할 테니까.”
“두 번째는요.”
“상황이 불리해지면 법인에서 자기들에게 이어지는 선을 잘라 버리려 할 겁니다. 법인은 세금만 내고 그대로 영업하면 그만이에요. 조사는 카지노 법인 하나만을 조사하고 끝나겠죠. 그 뒤에 있는 사람은 조용히 묻어 두고요.”
남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대신 입을 연 것은 그 옆의 남자였다.
“그럼 신재현 조사관님은 법인 선에서 끝날 생각이 없군요?”
“당연한 일 아닙니까. 뒤에 뭐가 있든지 줄줄이 끄집어내서 세무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 깨닫게 해 줘야죠.”
“아…….”
조사과장에게서 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것을 못 들은 척했다.
서울청 국장급 회의에서 익히 들었던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조사 대상인 법인 자체보다는 그 뒤를 먼저 캐야 합니다. 압박이 들어올 것 같으면 그때 우리 손에 패가 몇 개 준비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그다음은 말싸움과 힘겨루기의 영역이다.
일부러 다음 단계는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직원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런 수순입니다만 그 세 명을 고른 이유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탈세액이 보였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들을 기만하는 식의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식이든 거짓말은 티가 난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자 남자가 피식 웃었다.
“아, 됐어요.”
“네? 지금 설명드리겠습니다.”
“뭘 그렇게 당황하시나. 상황은 다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 셋의 출처는 민감한 사항이죠? 추궁하지도, 캐묻지도 않겠습니다. 신재현 조사관님.”
내내 그쪽이라고 불렀던 호칭이 바뀌어 있었다.
아직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 것 같은데 정말 이해했다는 건가?
내가 갸우뚱하고 있자 남자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신재현 조사관님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한 건 아니라…… 정보 출처를 꼭 듣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그 뭐냐, 서울청에서 있다 파견 왔다고 좀 무시하나 싶어서 욱한 것도 있고. 뭐, 직접 얼굴 맞대고 얘기했으니 됐습니다.”
생각보다 결말이 싱거웠다.
아니면 애초에 날 갈구는 게 목적이 아니었던가.
그를 말렸던 옆자리의 직원이 우는소리를 했다.
“그럴 거면서 왜 그렇게 험악한 소리를 해서 분위기를 무섭게 만들어요. 적당히 좀 하시지.”
“그래도 나 덕분에 얘기 들은 거 아닙니까!”
“미치겠네!”
그들은 툴툴대며 도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뭔가 마무리가 어색하긴 했지만 그거야 머쓱해서 그런가 보다 했고, 분위기 자체는 많이 풀린 것 같으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나 역시 자리로 돌아오자 임민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이 세 명 조사하는 게 맞는 거죠?”
“네. 그건 저를 믿으셔도 됩니다.”
자신 있게 대답하자 뒤에서 또다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 있으시답니다! 전국에 자자한 그 실력 우리도 한 번 믿어봅시다! 기한은 오늘까지라고 했으니까 시간 얼마 안 남았어요. 후딱 해 봅시다!”
“예!”
아까보다 그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확실히 경력 있는 사람들이라 의욕이 깃드니 종이를 넘기는 손길부터가 달랐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좋아! 나왔다!”
누군가가 실마리를 잡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