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제주세무서 (3)
조사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물론 내가 합류해서 속도가 붙었다기보다는 이제 정말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세청장이 보고를 들었으며 그 결과로 내가 파견까지 왔다.
이번 일은 정말 반기는 이 없는 ‘하기 싫은 일’에 속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이 꼭 생기곤 한다.
진짜 하기 싫은데 해야만 하는 일.
봉사 정신을 강조하는 공무원이라서가 아니다.
이들 또한 월급으로 먹고 사는 직장인이며 사회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제주세무서에서 팀을 꾸리는 방법은 평시와는 조금 달랐다.
보통 이상하다고 해서 무조건 세무조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조사과도 일손이 부족한데 무작정 다 세무조사로 밀어 버릴 순 없는 일 아닌가.
개인 사업자든 법인이든 해당 관할 세무서에서는 무조건 담당자가 1명씩 붙게 되는데 어느 세무서든 공무원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 명의 담당자가 맡는 업체는 수백 수천 개였으니까.
때문에 국세청은 항상 국세행정시스템에 많은 돈을 들였다.
적은 수의 인원으로 국가의 주 수입원인 세금을 관리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꽤 많은 돈을 들여 구축한 엔티스 차세대 국세행정시스템은 꽤 체계적이었다.
담당자가 처리할 업무와 기한까지 표시해 주며 여러 자료와 부합하지 않는 정보를 띄워 준다.
불부합, 즉 자료 간 크로스체크에서 맞지 않는다는 빨간 표시가 뜨면?
일단 전화를 걸어 본다.
-안녕하세요. 세무서 법인세과인데요. XX법인 담당자님 맞으신가요? 작년에 원천세 신고하신 게 퇴직연금 DB형 맞나요? 가입확인서하고 퇴직연금 납입내역서 보내 주실 수 있나요?
웬만한 불부합은 여기서 소명이 된다.
그런데 해결이 안 된다면?
조사과로 넘어간다.
법인세과에서 세부 자료를 넘긴 순간 그 담당자의 역할은 끝이며 조사과에서 진행 상황을 알려 주지도 않는다.
조사과의 업무는 같은 세무서에서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이번 카지노 건은 조사과 하나에서만 맡지 않았다.
물론 주축은 조사과다.
매우 드물게 과장이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했으며 팀원도 본인이 뽑아서 꾸렸다.
애초에 제주세무서에는 조사과 직원이 5명밖에 되지 않았다.
현 조사과 직원이 모두 임시 팀에 포함되고 법인세과에서도 몇 명 차출되었다.
그 안에는 해당 법인의 담당자도 끼어 있었다.
거기에 나와 황민우가 합쳐지면서 총 10명의 임시 조사팀이 탄생했다.
겨우 법인 하나를 조사하기에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손수 만든 임시 팀을 모이게 한 후, 과장은 우리 모두와 일일이 눈을 맞췄다.
이 팀 구성이 어떤지는 모른다.
주위를 봐도 다 모르는 사람들뿐이니까.
그래도 간접적으로 짐작할 방법은 있다.
나는 조사과장을 유심히 관찰했다.
머리 위에 탈세액은?
당연히 없다.
직원들을 직접 뽑은 걸로 봐서는 신중한 성격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표정 관리가 능숙했다.
조사과장이라는 직위 때문일까.
아니면 이번 일에 긴장하고 있어서일까.
임시 팀을 훑던 조사과장의 시선이 내게 멈췄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순간 시선이 미세하게 흔들리던 것을 보았다.
내가 현저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역할을 나누겠습니다. 얘기가 새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내는 것이 관건입니다.”
조사과장은 그렇게 말하며 하나둘 업무를 배정하기 시작했다.
“……법인세과 담당자분은 신재현 씨, 황민우 씨와 함께 자료 수집을 맡아주세요. 이상입니다.”
내가 맡은 것은 회사의 백데이터였다.
팀에서 가장 낮은 위치의 조사관이 맡는 업무였다.
나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고개를 돌리자 세 발짝 떨어진 거리에 서 있던 여직원 하나가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직원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나도 엉겁결에 목례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나에게서 시선을 뗀 후였다.
“질문 있습니까?”
“과장님. 저희 제주세무서에서 맡는 이유가 뭡니까?”
법인세과에서 온 한 남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는 아까부터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끝자리에 서 있던 30대 후반의 남자다.
진정되지 않는지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계속 꿈틀거렸다.
조사과장의 얼굴에 금이 갔다.
“외부인도 있는데 꼭 그런 걸 물어야겠습니까?”
외부인이라면 나와 황민우를 말하는 것이다.
하긴 질문 자체가 자존심이 상할 내용이긴 했다.
그깟 조사 하나 못해서 남에게 넘겨야 할 정도로 부족하다는 걸 제 입으로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하지만 겁쟁이 직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실 그렇잖습니까. 저희만으로는 어차피 안 됩니다. 하다 보면 지방청에서 나올 테고 그때 인수인계 하면서 손발 꼬이느니 차라리 지금부터…….”
남자는 변명을 끝맺을 수 없었다.
조사과장이 별안간 소리를 지른 탓이다.
“이봐요, 남석현 씨!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겁니까!”
“과장님…….”
남석현이라 불린 법인세과의 남자는 겁먹은 눈치였다.
조사과장은 마뜩잖은 얼굴로 그를 가리켰다.
“나가세요.”
“과장님.”
“나가!”
지독히도 모욕적인 처사였다.
그러나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건 잠시뿐, 곧 입술을 실룩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대각선 뒤에 자리한 나는 입가에 맺힌 안도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사무실을 나갔다.
10명이었을 땐 많아 보였는데 한 명이 빠졌다고 갑자기 숫자가 적어 보였다.
카지노와 그 뒤에 있는 것들을 엎어야 하는데 9명만으로 괜찮은가?
그렇게 생각하자 자동으로 머릿속에 나라면 어떻게 할지 시뮬레이션이 펼쳐졌다.
그동안 팀장으로 일해 봤기 때문일까.
예전 같으면 내가 맡은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을 텐데 지금은 과장의 판단에 가장 먼저 생각이 미쳤다.
“……모두 맡은 것만 잘 하면 됩니다. 위에서 누가 내려오든 우리 일마저 내려놓으면 되겠습니까.”
조사과장은 한결 힘이 빠진 목소리로 첫 회의를 끝마쳤다.
제주세무서의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그럼 우리는 어디서 작업을 해야 할까.
“저어…….”
아까 나와 눈이 마주쳤던 여직원이 다가왔다.
혹시 과장이 나더러 도우라고 했던 그 법인세과 담당자인가?
“안녕하세요. 법인세과에서 제주마이더스 카지노를 담당했던 임민지입니다. 이쪽으로 오실래요?”
담당 직원 임민지는 애써 의연한 얼굴이었지만 걱정과 불안이 스며 있었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대체 뭘 그렇게 걱정하시는 거예요?”
임민지는 정곡을 찔린 듯 자리에 멈춰 섰다.
“뭐가 무서운 겁니까?”
“……세무직이라고 다 신재현 팀장님처럼 강하지 않아요.”
“반드시 강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뭘 두려워하는지 알면 조사에 도움이 되겠죠.”
임민지는 잠시 망설이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제주마이더스 카지노는 원래 조폭의 손이 닿았던 곳이에요.”
“그럼 지금은 조폭과 상관없잖습니까.”
“글쎄요. 모르죠. 라이센스 세탁을 한 건지, 정말로 새 회사로 다시 태어났는지. 하지만 깨끗하게 처리했다면 지금 이런 사태가 안 됐겠죠.”
아하, 그런 거구나.
제주도에는 카지노가 5개 있다.
아무리 제주도가 크다고 해도 이 섬 하나에 5개나 있는 것이다.
물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관광산업 중에서 카지노가 점점 득세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나 보다.
어느 정치인은 언젠가 제주도에 더 이상 카지노 설립 허가를 내지 않기로 했다.
때문에 현재 영업 중인 카지노의 라이센스는 비싸게 거래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라이센스라는 게 양도 가능한 것이 아니라서 아마 경영자가 바뀌는 것으로 거래가 완료되었을 것이다.
임민지의 말은 이거였다.
정말 깨끗하다면 지금 세무조사를 하겠냐.
털면 먼지 나오는 것이 세무조사라지만 담당자인 임민지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무언가 봤다는 뜻이 된다.
“조폭이라…… 검은돈이 꽤 많겠네요.”
“그렇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검은돈이요.”
검은돈이라.
내가 좋아하는 게 또 하나 나왔다.
저번에 땅에서 돈뭉치를 캐낼 때 당혹스러우면서도 등골이 짜릿했다.
탈세범을 잡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쾌감이다.
“잘됐네요. 그럼 어디 한번 검은돈을 쓸어 봅시다.”
“예…… 예? 뭘 쓸어요?”
임민지가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지만 나는 대답 대신 한 손을 펼쳐 그녀가 가려던 방향을 가리켰다.
“열심히 해 보겠다는 뜻입니다.”
“네에…….”
임민지는 연신 갸웃하다가 중얼거렸다.
“이상하게 소름이 돋네…….”
***
조사과장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큰 조사를 앞둔 시점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조사과장의 태도는 0점이었다.
‘하, 남석현 개자식…….’
가뜩이나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더 어두워져 버렸다.
애초에 그놈을 팀에 합류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불안하긴 했지만 법인세과에서 실력은 있다며 추려서 보내 줬길래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다른 직원들이라고 불안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직업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다들 불안감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남석현의 질문은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담담해 보이지만 저들 마음속에 어떤 파문이 일었을지 모른다.
책임자인 과장 입장에서는 벌써부터 균열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진짜 어렵네…….’
그냥 일만 하게 해 주면 좋을 텐데.
세무와 아무 상관 없는 알력 다툼에 압박이 들어오는 것은 예사였다.
보통 이런 현상은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심했는데 여기는 세무서 중 서울과 가장 먼 제주세무서였다.
‘제주마이더스 카지노 실제 주인이 누군지부터 파악해야 해.’
조사과장은 머릿속으로 순서를 그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저 뒤에 누가 얽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벼운 지역 유지 정도라면 제주세무서 선에서 해결해 봄직하다.
그런데 정치인이 엮였다면?
문제가 이것이었다.
조사과장은 평생 어디에도 발을 들이지 않은 평범한 세무공무원으로 살았다.
인맥이고 뭐고 정보를 얻을 구멍이 없었다.
조사과장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신재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내렸다.
‘내가 미쳤지. 아무리 사정이 급해도 신재현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하다니.’
잠시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에 자괴감이 느껴졌다.
신재현에게 물어볼 거라면 차라리 윗선에 보고를 올려서 지방청을 끌어들이는 것이 낫다.
더군다나 현재 국세청의 두 파벌 중 하나인 민치호 청장의 칼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알력 싸움의 선봉이라는 소리 아닌가.
섣불리 끌어들이기엔 부담스러웠다.
결국 눈앞에 정답이 있으면서도 망설이는 것은 파벌 싸움이라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권력자 쳐 본 경험이 든든한 건 사실이지.’
조사과장이 기대하는 것은 그거였다.
카지노라는 특수한 업종에서 뭔가를 보여 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순 작업에 가까운 자료 수집을 맡긴 것이기도 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카드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어느새 노을이 창 너머로 스며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6시가 다 되어 간다.
사무실을 둘러보니 야근 확정이었다.
“일단 중단하고 저녁 먹고 옵시다.”
첫날이니까 사기도 올릴 겸 맛있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쪽 테이블에서 뭔가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신재현이 빠른 걸음으로 과장의 책상으로 다가왔다.
무슨 말을 할지 두렵다.
피하고 싶어지는 분위기가 풀풀 풍겼다.
“과장님. 이 뒤에 현 부지사가 엮여 있는 건 확실합니다.”
아, 하고 과장은 탄식했다.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과장으로서는 신재현이 정말 뭘 알고 말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앞으로 조사의 방향을 정해야 하는 책임자로서 이 모든 건 확실해야만 했다.
자리에서 일어났던 임시 조사팀 직원들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신재현을 응시했다.
그러나 신재현은 조금도 주눅 든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를 제외한 모두가 조금씩 기가 눌려 있었다.
신재현은 아예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두 명의 부지사 중 정무부지사를 비롯해 익숙한 이름이 몇 적혀 있었다.
이들이 정말 다 뒷돈을 받았다 치면 대형 스캔들이 된다.
“이게 뭡니까?”
“수상한 내역이 보이는 이름들입니다. 당장 오늘부터 이 이름을 파야 합니다.”
까무러칠 듯한 정신을 다잡고서 과장이 애써 신재현을 노려보았다.
“근거가 필요합니다.”
“파보시면 과장님도 명백히 눈에 보일 겁니다. 딱 하루면 되는 일이에요.”
이성은 무시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어쩐지 거부할 수가 없었다.
신재현의 눈을 보는 순간, 그에게서 강한 확신과 자신감을 느꼈다.
이런 사람들은 남의 뒤에 서지 않는다.
앞에 서서 방향키를 쥐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제게 하루만 시간을 할애해 주십시오.”
과장의 귀에는 신재현의 제안이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겨우 3년짜리 공무원에게 귀한 하루를 내어줄 정도로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부터 조사팀은 법인 조사를 멈추고 이 세 명을 조사합니다.”
과장은 결국 신재현의 손을 들어 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