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제주세무서 (1)
제주세무서에는 때아닌 비상이 걸렸다.
관련 담당 부서인 법인세과 직원들은 하루 종일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손을 떨고 있었고, 담당이 아닌 부서의 직원들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왜, 왜 하필 이런 일이 터져서…….”
해당 카지노를 담당하는 조사관은 아침부터 아무 일도 못 하고 책상에 머리를 쿵쿵 박고 있었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못했다.
비단 담당 조사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카지노 탈세라면 법인세과에 조사과까지 덤벼들어야 할 대사건이었다.
아니, 어쩌면 제주세무서 가용인력을 총동원하고 지방청과 검찰까지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탈세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환치기, 외국인 범죄, 브로커까지.
이렇게만 해도 종합범죄선물세트인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고로 돈이 있는 곳에는 뇌물도 있는 법.
요즘에는 카지노 라이센스도 돈 주고 거래하는 마당에 ‘원활한’ 운영을 위해 기름칠 좀 안 했을 리가 없다.
결국 국가적 규모의 게이트가 지금 이 섬에서 터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법인세과 사무실에는 전화 한 통도 울리지 않았다.
폭풍전야 같은 불길함이 흘렀다.
공포는 전염된다.
그렇다고 담당 조사관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터질 것이 터졌고 조사해야 하는 일이니 조사해야 하는 건 맞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세무서 전 직원이 홍역을 앓게 될 게 뻔하다는 것이다.
지금 담당 조사관이 책상에 머리를 박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좋게 끝날 수 없는 일이다.
“후, 저는 서장실 다녀오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세요.”
법인세과의 과장 송재필이 일어서자 두려움에 직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두려움과 걱정 섞인 눈빛이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발이 무거울 정도로 밀도가 느껴졌다.
송 과장은 한숨을 내쉬며 서장실 문을 열었다.
이미 다른 과의 과장들도 모여 있었다.
서장의 호출을 받고 이렇게 급작스럽게 모인 것부터가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케 했다.
“송 과장. 아침에 전화로 한 말, 다시 해 봐요.”
서장의 하얀 머리가 오늘따라 두드러졌다.
그도 이 사태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신재현 씨를 파견 요청하면 어떻냐는 얘기였습니다.”
“뭐요?”
“이봐요, 송 과장님!”
사방에서 과장들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송 과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신재현에 대한 얘기는 자신의 의견이 아니었다.
자신은 오히려 반대했다.
그러나 그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려면 손경진을 만나러 일부러 등산하러 간 것부터 설명을 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구설수 많은 전직 파벌 수장을 만나러 간 것을 얘기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렇게 운을 떼는 게 나았다.
처음엔 가만히 입 싹 닿고 모르는 척할까 생각도 해 보았는데 포기했다.
손경진과 신재현의 말을 들어 보니 올 확률이 높은 것 같았고, 막상 그때가 되어 신재현이 왜 왔는지 얘기가 돌기 시작하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였다.
‘차라리 미리 말하는 게 낫지.’
서장이 반대하는 구도를 만들어서 나중에 큰 소리 좀 쳐 보려는 얄팍한 수작도 있었다.
어디에나 있는 소시민다운 팀장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송 과장. 왜 그러는 겁니까? 이번 일이 좀 벅찰 수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과장 입에서 그런 말까지 나올 정도는 아니지요. 저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송 과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반응을 예상 못했던 건 아니다.
“이번 조사의 방향키를 잡을 사람은 바로 송 과장입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하면 어떻게 믿고 맡기겠습니까.”
이런 얘기까지 들으니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실망시켜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무작정 말을 꺼낸 건 아닙니다. 지금 어찌 됐건 우리는 카지노 세무조사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상한 점이 발견 됐으니까요.”
“그래서요? 우리 세무서 식구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것 아닙니까.”
“당연히 충분합니다. 하지만 저 카지노 뒤에 누가 있는지 아십니까?”
“누가 있는데요.”
“저도 모릅니다.”
“이 사람이 지금 장난해?”
서장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놀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송 과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문제인 겁니다. 만약 뒤에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 있으면요?”
“……그래도 조사해야죠.”
평범한 공무원들이 모였지만 어렵다고 피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송 과장은 면박을 듣는 와중에도 나름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우리도 직접 파보기 전에는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어중이떠중이 조폭 몇 놈이나 자칭 사업가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죠. 돈 몇 푼 받아먹은 정치인이 있으면요? 사방에서 압박은 들어오고 감당은 어렵고. 그러면 보고를 들은 본청은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본청에서 직접 나서겠죠. 사람을 보내든 사건을 지방청이나 본청으로 올리든.”
서장이 대답하자마자 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과장들도 납득이 가는 얼굴을 했다.
“송 과장님 말씀도 일리는 있네요. 본청에서 직접 나선다 해도 신재현이 차출될 겁니다. 마침 제주도에 있기도 하고. 이런 일엔 적임자 아닙니까.”
서장과 과장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신재현 투입의 적절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본청에서 사람을 보낸다면 반드시 신재현이다, 하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납득이 갑니다.”
과장들이 동의하자 서장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말을 꺼내기엔…….”
결국 이것이 문제였다.
자존심 말이다.
신재현이 이번 일에 끼어들 거라고 예상하는 것과 신재현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사람들이 비웃을 지도 모릅니다. 제주세무서는 그것도 해결을 못해서 신재현을 부른다고요.”
어느 과장의 말에 서장이 침음을 흘렸다.
“어차피 올 확률이 높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굳이 미리 부를 필요가 있나요. 위에서 얘기 나올 때까지 기다려 봅시다.”
서장은 소극적인 결론을 내렸다.
송 과장도 그에 동의했다.
어느 정도 결론이 나오자 서장은 한결 편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안심이 되네요. 신재현, 그 사람이 와 준다면 수월하게 돌아갈 테니.”
서장의 후한 평가에 어느 과장이 뚱한 표정을 했다.
“서장님, 신재현 한 명 온다고 일이 잘 풀리겠습니까?”
“뉴스에 나오는 거야 과장이 좀 섞였다 쳐도 민치호 국장, 아니 청장님이 곁에 두고 쓰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내용의 반만 사실이어도 도움이 되겠지만,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죠. 아니, 이름값만 빌려도 성공이긴 한가? 탈세범들이 우리보다 신재현에게 시선이 쏠릴 테니까요.”
차갑게 혹평하는 동료를 보며 송 과장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막상 오면 끽소리도 못할 사람이 센 척은…….’
회의가 끝나자 송 과장은 서장실을 나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신재현이 언제 와도 반발이 없도록 밑밥은 다 깔아뒀다.
이제 정작 오기만 하면 된다.
‘내가 이렇게 도와줬다는 걸 알려나.’
송 과장을 머리를 긁적이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복도에 우뚝 선 송 과장이 입을 떡 벌렸다.
“뭐야. 내가 왜 그놈 오기 편하게 도와주고 있지? 하, 미치겠네…….”
어느 샌가 송 과장은 신재현 편에 서서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이 씨, 와서 기대만큼 일 못 하기만 해 봐라.”
송 과장은 투덜대며 복도를 걸었다.
제주세무서는 세무조사 및 손님맞이 준비를 끝내가고 있었다.
***
결국 상황은 손경진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먼저 나는 민치호에게 상황을 보고했는데 그는 먼저 내 의향을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나?
내 의견을 물어봐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억지로 보내지 않겠다는 뜻이니까.
-저 없어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 아닙니까.
-뭐, 고생 좀 하겠지만 어떻게든 하겠지.
-그럼 제가 가면 도움이 된다는 말씀인가요?
-당연한 소릴.
민치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해 주었다.
내게 기대를 걸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부응해 주고 싶어진다.
-탈세인 것도 맞고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서 압박 들어오는 것도 맞죠?
-딱 네가 좋아할 케이스지.
-사실 그렇습니다.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가긴 싫은 건이네요.
저런 놈들만 보면, 정확히는 그 머리 위에 뜨는 탈세액만 보면 피가 끓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직 얼마나 해 먹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다.
하지만 제주세무서 법인세과장이 직접 찾아와 물어 볼 정도라면 작은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건 한 방 먹여 줘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제주 서 분들이 피해 입는 건 원치 않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굴러온 돌일 테니까 갑작스럽게 들어가면 꽤 반발이 심할 것이다.
내가 혼자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제주 서는 내 적이 아니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괜히 기 싸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자리는 청장님께서 만들어 주세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들과 실제로 부딪치며 화합하는 것은 물론 내 몫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싸우고 시작할지, 그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시작할지는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러니 조금 버릇없긴 하지만 청장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한 것이다.
-평소라면 제가 그냥 다짜고짜 쳐들어가서 부딪혀 보겠지만 이번엔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요. 제 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면 그대로 제주 서 사람들이랑 일하게 될 것 아닙니까?
-그 말이 맞군. 그 부분은 신경 쓰지 마. 미리 언질 넣어 두지.
민치호는 가볍게 수락했다.
그가 제주 서에 어떤 방식으로 손을 썼는지는 아직 모른다.
바로 다음 날 다시 전화가 와서 ‘언제든 가면 된다’라는 간단한 명령을 받았을 뿐이다.
뭐, 일단 가보면 알겠지.
그리하여 나와 황민우는 가벼운 가방 하나만을 들고 제주세무서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꽤 큰 5층짜리 건물은 푸른 유리로 뒤덮여 깔끔한 외관을 자랑했다.
건물 앞에는 야자수도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놀란 것은 이 건물에 세무서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무서랑 다른 청사가 같이 있네요.”
“그래서 정부합동청사인가 봅니다.”
우리는 잡담과 함께 합동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볼일을 보러 온 민원인이 있었고 그들을 응대하는 공무원이 있다.
이것만 본다면 여기도 다른 세무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옆에 붙은 층별 안내도를 보자 당혹감이 앞섰다.
1층에 민원실과 개인납세과가 있는데 법인세과와 재산세과는 4층에 있다.
그 외에도 고용노동청, 조달청, 통계청, 우정청 등 온갖 정부기관의 지서들이 ㄷ자로 생긴 건물에 쪼개어져 입주해 있었다.
“……일단 법인세과로 갑시다.”
아는 얼굴을 만나는 것이 우선이다.
이번 건 총지휘를 누가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법인세과장도 이번 조사에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
법인세과가 위치한 4층으로 올라가 ㄷ자의 건물 중 오른편에 위치한 한라동으로 들어섰다.
조심스럽게 법인세과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순간 시간이라도 멈춘 것처럼 모든 직원들의 행동이 멎었다.
그야말로 사진처럼 어느 한 시간을 잘라다 풍경으로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일제히 내 쪽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는 그들을 보니 소름이 오싹 돋을 지경이었다.
민치호가 뭐라고 말해 놨길래 반응이 이러지?
환영 한 번 참으로 격렬하구나.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그렇다고 주눅 들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마침 시선도 다 모였겠다 딱 인사하기 좋은 타이밍이다.
“안녕하세요. 국세청장님의 명령을 받고 온 신재현과 황민우입니다. 정식발령은 아니라 일시적인 파견이라는 형태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얼마간 함께할지는 모르겠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부러 오낙현 청장의 이름을 팔아 보았다.
위에서 보내서 왔다고 하면 어느 정도 반발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인사가 끝나자 보인 이들의 행동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법인세과 직원들이 벌떡 일어서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왔다! 진짜로 왔어!”
“감사합니다! 와 주셔서 감사해요!”
“이야! 우리는 살았다! 이러면 해 볼 만하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말없이 황민우와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 둘 다 어안이 벙벙하긴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