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73화 (273/500)

273화. 교육원 견학 (3)

때아닌 원장의 독설과 교수간의 설전으로 교육관 강의실은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겉으로 뭐라 말은 못 하지만 교육생들 모두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이 교육생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냐, 하면 그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번 기수의 세무직은 그 어느 때보다 수준이 높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국세청 열풍. 신재현 신드롬.

언제부턴가 공시생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한 말이다.

공식적으로 기사 같은 곳에서 언급된 적은 없지만 공시생이라면 다 알고 있었다.

국세청 열풍이란 바로 세무직에 사람이 몰리는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행정, 교육, 검찰 등 여러 종류의 직렬 있었지만 유독 올해는 세무직의 경쟁률이 높았다.

‘신재현도 사기업 총무팀 다니다가 공무원 공부해서 합격했대. 나도 공무원 시험 좀 볼까?’

회사원들은 이직을 고려할 때 공무원도 후보에 넣어 생각하게 되었고.

‘어떤 직렬 볼까. 까짓거 세무직 한번 볼까?’

일부러 평소 관심도 없던 세무직에 지원서를 넣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덕분에 경쟁률이 폭발해서 순수하게 세무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죽을 맛이었다.

원서 접수 기간이 지난 후 경쟁률을 보고 올해 시험은 포기한 사람도 속출할 정도였다.

때문에 허수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예년보다 두 배가 된 경쟁률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매우 좁은 구멍을 뚫고 입성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공무원 시험을 치르기 전에 회사에서 몇 년 구르다 들어온 사람도 꽤 되었다.

이들은 손경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이야. 국세청도 내부가 복잡하구나.’

그리고 이제학이 난입해 따지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마냥 이상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닌가 보네.’

이들은 주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꺼냈다.

교육생 중에서도 30대 이상의 사회인끼리 만든 라인 대화방은 벌써부터 실시간 대화가 주르륵 올라가고 있었다.

-국세청도 내부가 복잡한가 보네요.

-그래도 나름 정리됐대요.

-아, 지혜 씨 가족분이 세무직이라고 하셨죠?

-네. 지금 아까 오빠한테 물어봤는데 드디어 붙었냐고 하더라고요.

-원장님하고요?

-둘이 완전 앙숙이래요.

-원장님하고요? 둘이 싸움이 성립해요? 1급하고 7급이 어케???

-국세청 내에서 신재현 영향력 엄청나대요. 국장급 청장급하고도 겸상하고 회의실에서도 큰소리친다고.

-헉. 그럼 지금 이건 아무것도 아닌 거네요?

-진짜루 뭔가 부당하다 싶으면 절대 가만히 안 있는대요. 납세자든 국장이든 엎어버리는데 신재현이 살기등등하게 가면 막 모여서 구경하러 간대잖아요.

-아ㅋㅋㅋㅋㅋ궁금하다ㅋㅋㅋㅋ보고싶다ㅋㅋㅋ

-그래야 신재현이지!!! 재현아! 누나가 너 때문에 세무직 시험 봤다!!!

-윗분 여기 익명방 아닌데요. 채팅 잘못 치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삭제하겠습니다.

잠시 채팅창에서 눈을 뗀 30대의 교육생은 주위를 훑어보았다.

뒷짐 지고 물러나 있는 원장과 그의 패거리로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복도에 서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교수와 직원들.

특종에 신나서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과 난데없이 새우 등 터지고 있는 교육생들.

‘잘하는 짓들이다.’

30대의 교육생은 가라앉은 눈으로 손경진을 노려보았다.

지금 여기서 가장 나쁜 놈은 손경진이다.

그렇게 보였다.

‘공무원도 개 같은 거 누가 모르나? 알면서도 공무원 하겠다고 온 사람들인데 꼭 이렇게 꺾어야 하나? 저 사람 교육원장 맞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연수원에서는 무조건 원칙적인 얘기만 하고 내보내는 것이 철칙이다.

그렇게 머릿속에 원칙을 주입하고 내보내도 몇 년 지나면 시커멓게 물들어 버리니까.

“홍대안 교수님. 손경진 원장님. 저는 정말 실망했습니다. 현실을 가르쳐 준다?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렇기에 이제학이 난입해 싸우기 시작했을 때는 채팅방에 그를 응원하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교수님 제대로 화나셨는데요?

-제가 듣기에도 이상한데 교수님 입장에서는 어떻겠어요.

-현실적인 거는 우리가 알아서 뒤통수 깨지면서 배울 텐데 벌써부터 의욕 꺾으시고…….

-너무 깊게 새겨듣지 마세요. 원장님이 신재현 싫어해서 그래요.

-신재현을 싫어하는 공무원도 있어요?

-당연히 있죠.

-나댄다고 싫어하고 대든다고 싫어하고. 싫어할 이유는 많잖아요.

-근데 이제학 교수님 밀리는 것 같은데요. 누가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기자까지 왔는데 쪽팔린다. 우리 국세청에 대한 기사 이상하게 나가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요. 원장님ㅠㅠ 제발 그만하세요ㅠㅠ

상대는 원장과 그의 패거리인데 이제학 혼자 상대하기에 벅찬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제학은 잔뜩 흥분한 상태여서 논리적으로 말을 풀지 못 했다.

“이제학 교수. 지금 원장인 내가 틀렸다 이 말입니까?”

손경진이 직위를 들먹이자 이제학조차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 밀렸다.

-역시 직급으로 밀면 못 이기죠…….

채팅창에 안타까움의 탄식이 흐를 때, 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나학진이었다.

“저는 이 이야기의 장본인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신재현 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신재현이 개입할 수 있도록 나학진이 무대를 마련해 주자 팀장 하나가 나지막하게 혀를 찼다.

“이런.”

나학진을 오지 못하게 막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복도에 운집해 있던 교수들이 썰물 빠지듯 좌우로 갈라섰다.

사람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신재현이 강의실로 들어섰다.

그 모습에 손경진이 이를 으득 갈았다.

뭘 하든, 상황이 얼마나 안 좋게 흘러가든 신재현이 나타나면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손경진이 어떤 노력을 들이든 상관없었다.

판을 만들어놓으면 신재현이 다 깨부수는 느낌이었다.

-오! 기대된다.

-국장급하고도 맞선다는 그걸 여기서 볼 수 있나요!

-아니 왜 다들 싸울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렇네요. 기자들도 있는데 원장님하고 싸울 리가 없구나.

-여기서 싸우면 정말 앞뒤 없는 미친놈입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채팅방의 과열된 분위기를 자제시키는 사람들이 무색하게 신재현은 입을 열자마자 모두를 경악에 빠뜨렸다.

“원장님께서는 지금 그런 말씀 하실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스스로를 돌아보시죠.”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입을 떡 하니 벌렸다.

이제학마저 예상치 못한 돌직구에 딱딱하게 굳었다.

-미, 미쳤다!

-진정이 안 되는데요!

-실제로 저런 말을 하는군요. 저는 기사가 다 과장인 줄 알았어요.

“야, 신재현!”

“예, 원장님.”

손경진이 다가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대듯 경고했다.

“너 미쳤어? 교육원에서도 발붙이기 싫어?”

신재현은 피식 웃더니 교육생들을 향해 돌아섰다.

“방금 뭐라 했는지 들은 분 있습니까? 교육원에서도 발붙이기 싫냐고 하시는군요. 슬프게도 손경진 원장님께서 말씀하신 현실이란 이런 것입니다. 당연하죠? 국세청도 사람 사는 곳이니. 폐쇄적인 것도 좋고, 위계질서 꽉 잡힌 것도 좋다 이겁니다. 위에서 중심 잡고 아래에서 받쳐 주고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조직입니까? 그런데 청장급이라고 술수 써도 되는 건 아니거든요.”

“이 새끼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첫째!”

신재현이 꾹꾹 누르듯이 내뱉었다.

“세무조사 실무는 특강으로, 성적 평가 과목이 아닙니다. 과목이야 원장님의 권한으로 평가할 수 있긴 하지만, 그럴 거면 미리 공지를 하셨어야죠. 세무조사 실무가 시험에 포함된다는 걸 가르치는 당사자인 저조차 몰랐습니다. 교육생들도 시험 과목이 뭔지, 평가 내용이 뭔지 몰랐어요. 저야 임시 강사니 그렇다 칩시다. 하지만 정당한 사유 없이 교육생들의 평가를 왜곡한 것은 명백한 월권입니다.”

“신재현!”

“둘째. 교육원 내에 중대 공지사항이 있으면 하다못해 직원들도 다 압니다. 그런데 일부러 저에게는 공지하지 않으셨죠? 이거는 정말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치졸한 행위입니다만 언급해야 하므로 말씀드립니다. 이것 역시 명백한 월권입니다.”

손경진이 얼굴을 푸들푸들 떨었다.

신재현이 하는 말만 들어보면 자신은 딱 초등학생이 할 법한 유치한 행동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셋째.”

“또 있어?”

“그럼요. 제일 중요한 건데요.”

손경진 옆에 서 있던 두 팀장이 탄식했다.

아예 처음부터 입을 막았어야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한 원장님의 발언이 문제입니다. 세법을 지키고 그 누구보다 중심을 지키셔야 할 원장님께서 방금 하신 발언은 모든 국세인을 폄훼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무슨……!”

손경진이 반박하려다가 눈을 크게 부릅떴다.

오늘 손경진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도를 넘은 발언은 몇 있었다.

예전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자기도 모르게 평소처럼 얘기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신재현 씨가 과장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은데요.”

팀장이 서둘러 진화해보려 애썼지만 무리였다.

신재현은 기자들, 정확히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저기에 다 녹화되어 있을 겁니다. 아니면 뭡니까. 기자들 불러서 불리한 건 다 지우라고 하실 생각이었습니까?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전부 간추려서 본청에 보고할 생각인데요.”

순간 기자들이 술렁였다.

신재현이 끈 떨어진 연이냐, 아니면 아직도 선이 닿아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오갔다.

그러나 지금 신재현의 말을 듣는 순간 기자들은 눈을 번쩍 떴다.

이 중에서 가장 사태파악이 느린 홍대안이 호통을 쳤다.

“공무원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건 당신 아닙니까! 신재현 씨, 외부인까지 있는 자리에서 상급자에게 대하는 태도가 이게 뭡니까? 남들이 국세청을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이미지를 생각하시겠다? 그렇게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시나 본데요. 아직도 저를 모르시네요. 저는 공무원이 되기 전부터 그런 게 싫었거든요. 공무원이 되고 나서도 눈감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그래서 원장님, 죄송하지만 이번엔 그냥 안 넘어갈 겁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교육생을 싸움에 끌어들인 순간, 신재현은 손경진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홍대안이 뭐라 받아치려 하자 손경진 곁에 있던 팀장이 그를 붙잡았다.

“뭡니까!”

“그만, 그만 하세요.”

홍대안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표정을 숨길 줄 모르는 교육생들은 하나같이 경멸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항상 존경과 선망의 눈길만 받던 그가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복도에서 지켜보던 교수들마저 혀를 차고 있었다.

“다들 왜…….”

홍대안이 주춤거리자 팀장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불난 데 부채질하지 말고 좀 가만 계세요.”

“뭐요?”

홍대안을 강제로 물러나게 한 팀장이 손경진의 의중을 살폈다.

손경진은 잔뜩 벌게진 얼굴로 무언가 반박하려다가 주변의 반응이 영 좋지 않자 입을 다물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뭐라 하든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완전히 말렸네.’

손경진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확실히 페이스가 넘어갔다고.

뭐라 말하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하락한 이미지를 되찾아오긴 어려울 것 같았다.

뭐라 말해야 할까, 어떻게 수습할까 머리를 굴리던 손경진은 문득 깊게 한탄했다.

‘내가 이렇게도 추락했구나.’

겨우 7급 공무원 하나에게 농락당하는 꼴이라니.

옆에 있는 놈들이라곤 무능한 팀장 둘에 알아서 여론 악화를 시켜주는 멋모르는 교수 하나.

손경진은 천장을 바라보며 회한에 빠졌다.

이젠 더 이상 힘이 나지 않았다.

팀장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까부터 말없이 어깨가 축 처진 채 손경진 옆에 자리할 뿐이었다.

신재현은 생각했던 거친 반박이 돌아오지 않자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자세를 돌렸다.

아무도 이 상황을 수습하지 않고 있었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누군가는 해결해야 했다.

“그럼 이제 수습을 해보겠습니다. 교육생 여러분. 좋지 못한 꼴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것만은 알아주세요. 국세청은 깨끗하고 열심인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수많은 노력으로 더 나아지고 있고, 제가 그 증거입니다. 제가 자랑스럽게 추천해 드릴 수 있는 곳이에요. 그러니 여러분도 가슴을 펴세요. 국세청은 여러분이 만들어가는 겁니다.”

“네, 네!”

“그리고 기자님들은 잠시 저 좀 보시죠. 견학은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전에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합니다.”

“예.”

원래라면 이런 역할도 대표자인 원장이나 실무자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신재현 대신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다들 지금은 이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손경진이 소리도 없이 조용히 자리를 떠나고 교수들도 강의실을 나갔다.

우두커니 강의실에 남겨진 교육생들은 교수들이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 저마다 입을 열었다.

“방금, 방금 봤어요?”

“저 하나 배웠어요. 조목조목 근거 갖고 따져야 되는 거구나.”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7급이 1급하고 싸운 거라고요! 공무원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저는 결심했어요. 국세청에 뼈 묻을 거예요. 이 정도 자정 능력이면 정부 기관 최곤데!”

“누구 하나 뇌물 받다 들키면 신재현한테 바로 개털리는 거죠? 바로 상상되는데요.”

“부당함에 맞선다는 게 뭔지 알 것 같네요. 깨달았습니다. 저도 저렇게 할 거예요.”

“신재현하고 일하면 제 명에 못 죽고 신재현 일하는 거 구경하면 재밌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네요.”

꽉 찬 강의실에는 잔뜩 상기된 얼굴의 교육생들이 국세청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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