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교육원 견학 (2)
“준비는 다 됐지?”
대강당 앞에 선 손경진이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네.”
당연하게도 두 팀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손경진이 강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십 명의 교육원 내부인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왠지 그들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강당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에게 모여야 할 집중과 관심이 어딘가로 흩어진 느낌이었다.
“무슨 일 있었어? 분위기 왜 이래.”
손경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지만 두 팀장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그들에게도 손발이 있어서 후다닥 달려와 무슨 상황인지 전달했겠지.
그러나 팀장들은 내내 손경진과 붙어 있었다.
대강당에서 어떤 소동이 있었는지 알 리가 만무했다.
“쓸모없는 놈들.”
손경진이 차가운 한마디를 남기며 단상 위로 올랐다.
남겨진 두 팀장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모멸감에 가득 찬 얼굴을 감췄다.
단상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자 그제야 시선이 자신에게 모였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 많이 서본 손경진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평소와 다르다.
아마 대강당에 앉아 있는 교수 중 아무나 한 명 잡아서 여기에 올려도 똑같이 말할 것이다.
그들도 다수 앞에 서는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었으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부산스럽네.”
손경진의 중얼거림에 대강당 내에 소곤거리던 대화가 뚝 끊겼다.
그러자 이번엔 그들의 시선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대체 뭘 보는 거야.’
손경진은 천천히 시선을 좇았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기자, 교수들, 직원들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같이 맨 뒷자리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거기엔 누가 앉아 있는가.
‘신재현, 이 새끼가……!’
자신이 돋보이려고 만든 자리다.
손경진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거기에 겸사겸사 신재현이 끈 떨어진 연이라는 것을 전국에 알려주기 위해 만든 자리라 이 말이다.
그런데 정작 주빈이 오기도 전에 다른 놈이 주연 자리를 꿰차고 있는 꼴 아닌가.
“그, 그럼 견학에 앞서 저희 교육원의 역할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손경진 원장님의 인사 말씀 있으시겠습니다.”
다급하게 사회자 역할을 맡은 팀장이 식순을 진행했다.
어차피 결론은 견학이니 딱히 행사랄 것도 없는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사람까지 모아 식순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보여주기.
‘계속 집중을 못 하네.’
그런데 진행하는 내내 기자들은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것 같았다.
녹화야 계속하고 있으니 상관없다는 투 같았다.
원래라면 손경진이 들어오자마자 기자들이 벌떡 일어나 인사해야 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가 받았던 대우는 그랬다.
그래서일까.
짧은 행사가 끝났을 때의 손경진은 평소보다 날카로워져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교육관으로 이동하면서도 손경진은 내내 얼굴을 펴지 않았다.
“교수님, 식순도 끝났으니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할 일이 있어서요.”
“아이고, 어서 가 보세요. 저는 좀 더 구경하다 가렵니다.”
대다수의 교수와 직원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몇 명은 남았다.
그중에는 홍대안과 이제학도 있었다.
물론 교수들이야 굳이 따라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까 기자들과 신재현의 대화를 지켜본 사람들은 쉽게 돌아갈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 것이다.
강당에서 교육관으로 이동하는 행렬의 맨 앞에는 손경진과 기자들이 이어졌다.
그 뒤로 열 명 남짓한 교수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이제학은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신재현과 황민우가 맨 끝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현재 수업 중이니 조용히 관람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조용히 해달라고는 해도 열 명이나 되는 사람이 한꺼번에 강의실로 들어가는데 집중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래도 미리 언질은 있었던 일이니 교수와 교육생들 모두 애써 수업에 집중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기자들은 복도와 강의실 뒤를 왔다 갔다 하며 수업 중인 교육생의 사진을 찍었다.
누가 봐도 열심인 것이 보이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되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강의가 끝나고도 교육생들을 제자리에 앉아 있게 한 후, 빈 강단에 손경진이 올라섰다.
막 강의를 마친 교수가 엉거주춤 눈치를 보다가 결국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서 구경하던 다른 교수를 붙잡고 질문을 던졌다.
“분위기 왜 저래요? 원장님이 부른 거 아닙니까?”
“그렇죠? 저한테만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니죠? 하도 살벌해서 무슨 일 치를까 봐 따라온 겁니다.”
“아, 그래서 교수님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신 겁니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경진이 입을 열었다.
“최근 국세청의 꼴은 눈 뜨고 봐줄 수 없을 정도의 참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세청과 교육원의 역할을 설명하고 신입 공무원의 미래에 대한 덕담이 나올 줄 알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무슨 소리를 하려나 했는데 교육생과 기자들을 앞에 두고 하는 말 치고는 꽤 부적절했다.
“저저, 말려야 하는 것 아니에요? 원장님 뒤에 꼭 붙어 다니던 팀장님 어디 가셨습니까. 좀 말려 봐요.”
교수들은 우왕좌왕하면서도 감히 말릴 생각을 못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손경진의 악담은 계속되었다.
“공무원이란 무엇입니까? 국가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이라고 단순히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국민의 일꾼으로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공무원 면접 때도 봉사 정신을 가장 크게 보는 건 알고 있겠죠. 그런데 요즘 국세청 내에서는 그걸 잊은 사람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외부인까지 있는 자리에서, 그것도 기자들 앞이다.
교육생들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술렁였다.
“우리는 세법에 한정되어 있다고는 하나 법을 다루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다른 어떤 곳보다도 질서가 명확한 곳이죠. 굳이 공무원이라서가 아니라.”
이것은 평소 신재현도 하고 다니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가 좀 이상했다.
“그런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국세청에 있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그 일원이 있군요.”
손경진의 시선이 창 너머 복도로 향했다.
강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좇았다.
복도에서 지켜보던 신재현은 피식 웃더니 눈이 마주친 사람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손경진의 힐난이 이어졌다.
“공무원은 물론 능력도 중요하죠. 하지만 세상은 혼자 잘났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화합과 조화, 질서를 잊은 공무원은 분란의 씨앗일 뿐입니다. 지금 국세청의 꼴을 보십시오. 분열되고 서로 잡아먹기 위해 안달 나고. 그리고 놀랍게도 그 말로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자들은 순간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야. 스스로 인정하는 거야? 그럼 지금까지 한 얘기가 다 자조인가?’
자조라면 지금까지 한 얘기도 이해는 간다.
물론 기자들의 생각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손경진은 아예 대놓고 손을 들어 신재현을 가리켰다.
“그렇게 날뛴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이제 앞으로 공무원이 되어 민원인을 상대할 여러분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눈에 띈다고 최고가 아닙니다.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고 사고 치지 않는 것이 바로 최고의 공무원입니다. 조용히 일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죠? 그 사람들이 바보겠습니까? 여러분이 목표로 해야 할 것은 눈에 띄기 위해 발악하는 관심병 환자가 아니라 묵묵히 제 자리에서 일하는 공무원입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똑똑히 새겨들으세요.”
원장이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인가.
너무 막 나가는 것 아닌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의 머리에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기겁하기로는 손경진을 모시는 두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원래 이런 말 하기로 했었어요?”
“모, 모릅니다. 뭔가 원장님 심기를 거슬렀나 본데요. 평소보다 더 날카롭게 내뱉으시는데.”
혀에 칼을 품었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적나라한 저격이었다.
기자들이 다급하게 손을 들었다.
“원장님, 질문드리겠습니다. 방금 하신 말씀은 신재현 팀장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게 맞으신지요?”
기자들은 돌려 물어보는 법이 없었다.
“글쎄요. 해석은 자유입니다만.”
긍정이나 마찬가지인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신재현 팀장님의 행적이 나쁘다는 뜻입니까!”
“사람으로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공무원으로서는 실패한 것이 맞습니다. 본인은 미친놈처럼 날뛰었죠. 혼자 그만한 업적을 만든 것은 인정합니다. 사람 자체는 유능해요. 그러나 우리는 공무원입니다. 저 혼자 유능하고 앞서나간다고 만사가 해결될 것 같습니까. 실제로 지금은 그 좋아하는 세무조사도 못 하고 있잖습니까.”
“머잖아 도로 서울로 가신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잠깐의 유예 아닙니까?”
“유예라. 글쎄요. 제가 보기엔 끈 떨어진 연 아닌가 싶은데. 굳이 제주도로 보낸 이유가 뭐겠습니까. 만약 정말 아낀다면 다른 지방청으로 보냈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를 따라 했던 팀원도 각 세무서로 뿔뿔이 흩어졌던데.”
“그럼 지금 이 이야기를 하신 이유가 뭡니까? 미래의 공무원들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꿈과 희망을 좇다가 인생을 잃을 수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요즘 우리 교육생들이 신재현 씨를 보고 헛바람이 드는 것 같아서요.”
손경진의 말에 교육생들이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꼭 저렇게 말씀을 하셔야 하나?’
‘현실이야 당연히 겪어보면 아프겠지만 그래도 꿈은 꿀 수 있는 거 아닌가.’
너무나도 적나라한 발언에 듣고 있던 교수들마저 눈을 찌푸릴 정도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손경진은 단상 위에 놓여 있던 책상을 쾅 내리쳤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쓰게 들릴 거예요. 하지만 원장으로서 여러분을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교육생 여러분은 현실을 봐야 합니다. 기왕 이렇게 말이 나왔으니 잠시 카메라는 내려두고 기자 여러분께 묻죠. 이분들은 몇 년간 국세청 전담 기자로 활동해왔던 분들입니다. 기자 여러분, 앞으로 우리 교육생들과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르니 현실을 봐온 사람으로서 한 말씀 해주시죠.”
손경진은 절실하게 소리쳤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 교육생들을 위해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참 교육자였다.
교육생들마저 순간 흔들릴 정도였다.
기자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편들어달라고 일부러 불렀나?’
‘아, 노골적이네.’
‘손경진 원장님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기자들은 이것이 신재현을 망신주기 위한 자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 속셈이 뻔히 보여서 민망할 정도였다.
‘아, 이걸 받아줘야 되나? 정보 몇 번 얻어먹은 게 이렇게 돌아오네.’
기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손경진이 공을 던졌으니 받아치기는 해야 하는데.
일전에 기삿거리 받은 게 있으니 그 의리로라도 맞장구를 쳐 줘야 하는가.
아니면 이대로 무시해 버릴까.
손경진 같은 사람은 적으로 돌리면 무서우니 무시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기자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뒷줄에서 잠자코 있던 나학진이 물었다.
“다른 교수님들도 같은 의견이십니까? 직접 가르치시는 건 교수님들이시잖습니까. 이 가치관에 동의하십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홍대안이 강의실 안으로 벌컥 들어왔다.
그는 손경진과 눈빛을 한 번 교환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님께서 말투가 좀 날카롭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맞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 교육생들이 한순간만 반짝 빛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 천재나 가능한 겁니다. 공무원은 대단한 능력을 요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실무에서 일하다 상처받는 건 여기 있는 교육생들이에요. 저는 이들이 20년 넘게 세무직을 천직으로 삼으며 건강한 마음으로 일하길 바랍니다.”
홍대안은 부드럽게 돌려 말했지만 신재현을 부정하는 것은 같았다.
기자들이 탄식하는 순간, 뒷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게 지금 공직자를 키워내는 요람에서 할 소립니까!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못하는 소리가 없네요!”
참다못한 이제학이 난입하며 소리쳤다.
“7년 만에 교육원을 밟은 기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윗사람 눈치 보고, 튀지 말고, 가늘고 길게 살아라. 지금 그렇게 말한 것 아닙니까, 홍대안 교수님! 당신이 그러고도 교수야!!!”
이제학이 이토록 흥분하는 것은 동료 교수들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교육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진 가운데 이제학이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꾹꾹 눌러 새기듯 말했다.
“여러분은 빛나야 합니다! 국세청은 바뀌고 있어요! 여러분 하나하나가 저 밤하늘을 수놓는 1등성이 되세요! 여러분이 곧 국세청의 미래입니다!”
진심이 담긴,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