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그 사람, 잡아 (1)
내 행동을 본 사람들은 비웃을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정치질을 싫어한다.
일단 당해 보면 더럽거든.
사람을 평가하는 데 능력과 인성, 이 두 개면 충분한 것 아닌가?
유능하면 기용한다.
인성이 구리면 중히 쓰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원칙이면 모든 조직이 깨끗하게 돌아갈 텐데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만 깨끗하게 살면서 주위의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건 사치겠지.
그래서 나도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정치질을 한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교육원의 교수와 교육원 입장에서는 아마 내가 물을 흐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평화를 깨뜨리고 이 제주도에서까지 파벌 싸움을 끌고 오는 더러운 새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미안하게도 나는 싸움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평화가 공짜로 이루어질 리는 없지.
내가 손경진에게 지고 들어가면 교육원은 평화를 얻겠지만 잃는 것이 많다.
크게 본다면 민치호 라인의 패배로 보일 수도 있다.
내 사적으로도 큰 문제다.
여기 사람들의 편안함을 위해서 나보고 꿇으라고?
아,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애초에 민치호가 날 여기로 보냈을 때는 손경진을 견제하라는 뜻이 들어있었을 거란 말이다.
그런 기대감에는 부응을 해 줘야 한다.
그러니 교육원에 계시던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몇 달만 참아 주셨으면 한다.
결론적으로는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정치질 흙탕물을 끌고 온 주제에 무슨 말이 많냐고 할 수도 있다.
좀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어쩔 수 없지.
밟히는 쪽이 되긴 싫으니까.
“오늘따라 생각이 많으신가 봅니다.”
황민우가 식판에 담긴 국을 한 입 떠먹더니 물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떠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날 보호해 주는 든든한 상사가 없는 곳에서 오랜만에 싸우려니 많이 불안해졌던 모양이다.
아직 오늘의 일정은 끝나지 않았는데.
구내식당.
당연히 여기 온 것도 이유가 있다.
국회의원들이 선거 전에 시장을 찾곤 하지 않은가.
그게 다 친근감을 줘서 호감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나도 그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말하면 건방져 보이긴 한데 지금의 내 목표는 교육생들과 친해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미지 메이킹.
다행히 교육생들은 내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어서 여론을 만드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이 교육원에서 가장 높으신 분들이니까 별다른 무기가 없는 나로서는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내려놓는 황민우에게 대답했다.
“티가 많이 났습니까?”
“예. 학생들이 다가오지 못하고 있으니 표정 관리 하셔야 합니다.”
황민우는 매우 충실하게 조언을 해 줬다.
나는 즉시 싱긋 웃었다.
이선균이 그랬듯 보고 있으면 푸근해지는 미소를 만들기 위해 꽤나 연습했다.
이선균처럼 자연스럽게는 아니더라도 나름 황민우에게 검증받은 훈훈한 미소다.
황민우가 슬쩍 엄지를 치켜들었다.
“학생들한테 이렇게까지 하려니 죄책감이 느껴져서요.”
“팀장님이 아직도 여린 구석이 있으셨네요. 제가 그래서 좋아하긴 합니다만.”
“칭찬이죠?”
“정치인이라면 단점이겠지만 팀장님은 정치인이 아니잖습니까. 오히려 그게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회생활을 한다 생각해보세요. 남들에게 좋은 점 보여 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하긴, 나는 사기업에 있을 때 총무팀에 입사하고 같은 팀에 음료수를 돌린 적도 있다.
그런 의미라면 이건 여론전 축에도 못 끼긴 한다.
나는 가볍게 황민우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나서 시선을 돌렸다.
근처에 앉은 교육생들이 흘끔흘끔 이쪽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나는 먼저 웃으며 말을 걸었다.
활발한 학생이 있다면 먼저 내게 다가오겠지만 그렇게 작위적으로 일이 돌아가진 않으니까.
“안녕하세요. 밥은 어때요? 맛있어요?”
나와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학생은 지목당하자 당황하더니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앗! 넵! 학교 밥보다는 맛있어요!”
“그쵸? 여기가 밥 잘 줘요. 용산 세무서 구내식당은 별로였거든요. 완전 학교 밥이었어.”
“세무서마다 달라요?”
“그럼요. 세무서마다 체결한 업체가 다르니까요.”
가벼운 일상적 대화로 물꼬를 트자 역시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내가 밥을 먹던 테이블로 다가왔다.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학생들이겠지.
“선생님! 같이 먹어도 돼요?”
기다렸던 바다.
“그럼요. 어서 앉으세요.”
반갑게 맞아주자 테이블이 금세 꽉 찼다.
새로 합류한 인원은 4명이다.
남자 둘에 여자 둘.
대부분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보이지만 30대 중반도 한 명 섞여 있었다.
구성도 괜찮다.
어쩌면 이들이 교육생 전체를 선도해나가는 학생들일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시험 얼마 만에 붙으셨어요?”
“저는 1년 조금 넘게 했습니다.”
“와, 미쳤다. 1년이요? 실화예요? 7급 시험을 1년에 컷했다고요?”
“운이 좋았죠.”
약간의 겸손은 칭찬을 부른다.
“에이, 시험이 운으로만 되나요? 진짜 운이면 저흰 못 들어왔을 걸요? 로또 5등도 한 번도 당첨된 적 없는데.”
은근슬쩍 자기 실력도 띄울 줄 아네.
나는 웃는 눈으로 교육생을 바라보았다.
꽤 싹수가 보인다.
사회생활 좀 해 본 티가 나네.
웃으며 저녁 반찬으로 나온 소시지 야채 볶음을 먹고 있는데 저 건너편 테이블에서 두 명의 교육생이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딱 봐도 숫기 없어 보이는 학생들이라 나는 얼른 아는 척을 했다.
용기를 내서 온 것 같은데 먼저 말을 걸어 줘야지.
“안녕하세요! 아까 복도 쪽 자리에 앉으셨던 분들 같은데, 맞죠?”
아는 척을 해 주자 두 학생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아, 안녕하세요! 수업 재밌었어요. 그리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학생이 머뭇거리다가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저, 팬이에요! 팬카페도 가입했고요. 원래 부모님이 법원직 시험 보라고 하셨는데 제가 세무직으로 결정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서울직 합격도 했는데 국가직 세무 7급으로 바꿨어요.”
비슷한 성격에 비슷한 사연이 있어서 교육원에 온 뒤 친해진 모양이다.
그런데 둘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문체부 장관 집에 쳐들어가시는 모습 봤어요. 선생님 뒤에서 찍은 구도의 영상을 우연히 봤는데, 앞에 기자들 백 명도 넘게 깔려 있는 걸 헤치고 가는 걸 수십 번 돌려 봤어요. 영화의 한 장면 같았거든요. 그 후로 반해서 세무직으로 갈아탔습니다.”
“저도요! 눈 하나 깜빡 안 하시고 장관 집 걸어 들어가는데 그 순간 깨달았어요. 굳이 법원직, 검찰직 이런 거 안 가도 되겠구나! 세무직이 있었지!”
두 학생의 눈이 부담스럽게 반짝였다.
이런 일이 있지 않을까 솔직히 기대감 반, 걱정 반으로 오긴 했다.
그래도 정말 이런 순간이 오면 손이 떨린다.
부끄러워서인 것도 있지만 기뻐서다.
나라는 사람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로 인해 국세청의 인식이 바뀐 거라면, 더없이 뿌듯한 일이다.
게다가 법원직 하려다 온 거면 엄청난 인재다.
그쪽은 워낙에 시험이 어려우니까.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 굳이 세무직을 택해 준 거라면, 그 선택에 나라는 존재가 고려사항으로 들어간 거라면 고맙고도 미안한 일이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입을 헹군 후 일어나서 둘에게 다가갔다.
“잘 오셨습니다. 세무직은 힘들지만 보람 있는 직렬이에요. 여러분 같은 인재가 국세청에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국세청을 바꾸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아직도 썩은 물이 남아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러니 이런 분들이 많아져서 물갈이도 되고 눈치 보지 않고 탈세를 때릴 수 있는 깨끗한 기관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기세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여러분은 저보다 더 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실무 나가시면 후배가 아닌 동료로 만나게 되실 텐데 조금이라도 편히 적응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제가 아는 것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교육생들도 오오, 하고 감탄하더니 들뜬 얼굴을 했다.
간혹 ‘현금이나 보석도 자주 나와요?’ 하는 질문도 있었지만 꽤 성공적인 저녁 시간이었다.
***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나는 황민우가 사는 옆집으로 건너갔다.
늦게 일어나는 나와는 달리 황민우는 새벽같이 일어나 이미 커피까지 한 잔 마신 후였다.
집은 그 안에 들어 사는 사람의 성향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관사라서 우리 집과 황민우의 집은 구조가 정확히 똑같을 텐데도 분위기가 이렇게 다른 건, 아마 주인 때문이겠지.
나도 그닥 잘 꾸미고 사는 편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있어서인지 항상 사람 냄새와 음식 냄새가 났다.
퇴근하고 들어가면 불이 켜져 있고 어머니가 TV를 보고 있다가 ‘이제 와?’하고 반겨주는 그런 온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황민우의 집은 살풍경하기 그지없었다.
몇 달만 머물 거라 생각하고 짐을 많이 가져오지 않은 걸까?
아니, 아마 지금 비어있는 황민우의 집 자체도 이것과 비슷할 것이다.
“커피 드릴까요?”
“네. 한 잔 주세요.”
나는 믹스커피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황민우는 캡슐 커피를 내려 왔다.
평소에 커피를 즐겨 마신다 싶긴 했는데 집에선 항상 저런 걸 마시는구나.
싸구려 믹스커피 입맛인 나는 이게 뭔지 묻지도 못하고 일단 받아 들었다.
살짝 신맛이 느껴지며 고소한 향이 맴돌았다.
“와…… 이런 거 대체 어디서 구합니까?”
“인터넷에서 팔아요. 제주도는 택배비가 비싸서 미리 왕창 사 왔죠.”
준비성이 대단하네.
“오늘 아침은 해물 된장찌개라고 하시네요.”
요즘 황민우는 거의 우리 집에 와서 얻어먹고 있었다.
황민우는 약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긴 한데 어머니가 워낙에 완강하다.
-제주도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황민우, 그 친구는 꼭 데려와. 20대 때부터 혼자 살았다며. 얼마나 외롭겠니.
어머니는 황민우에게서 뭔가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외로움이라든가 불안함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직접 보고 나니 가만히 놔둘 수 없어서 계속 식사 때만 되면 부르는 건지도.
“어제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교수님들께 인사를 다녔습니다.”
황민우는 서론 없이 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팀장님께 적대하는 사람이 확실히 있습니다.”
“벌써 있어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걸 봐서는 이런 싸움에 익숙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럼 어떤 경우지…….”
모든 사람 마음에 들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사람 성격이 다 다른데 어떻게 완벽하게 남들에게 맞추겠는가.
더군다나 나는 들이받는 성격이라 나이 지긋한 분들이 보기엔 건방져 보일 수도 있다.
애초부터 날 싫어했든지, 뒤늦게 손경진과 손을 잡았든지.
어느 정도 적대적인 사람이 생길 것은 예상했다.
오히려 그렇게 확연하게 나뉘는 것이 편하긴 하다.
길게 끌어서 좋을 것도 없고, 어차피 대립할 거라면 빨리 성향을 파악해서 대책을 세우는 것이 낫다.
내게 익숙한 곳도 아니니까.
그래서 이번엔 조금 과감하게 움직이며 여기저기 찔러 본 것이다.
“일단 제가 보기에 명백히 적대적인 분들의 성함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팀장님의 반대편에 설 분들이요.”
학위라든가 전 직장 같은 간단한 이력 사항은 교육원 홈페이지에도 있었다.
황민우는 다섯 명의 교수에 대한 이력을 건넸다.
인터넷에서 뒤지면 나오는 기사들도 첨부되어 있었다.
“다섯 명이라. 생각보다 많긴 하네요. 홍대안, 고시훈, 윤지원, 강재환, 정채식…….”
나는 반복해서 이름을 외우고 머릿속에 얼굴을 새겨 넣었다.
절대 앞에서 틈을 보이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나머지 교수님들에 대한 것은 조사 중입니다.”
황민우도 나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가장 급한 것이 적대적인 사람들이니 이걸 먼저 가져온 거겠지.
“이제학 교수님이 좀 도와주시면 편할 텐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요.”
황민우는 이제학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듯했다.
물론 나도 그가 내 우군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긴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정보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우리 쪽의 실력도 보여 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학과의 두 번째 만남 전에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 놔야 했다.
-째깍.
벽시계가 8시 정각을 가리킨 순간, 알람처럼 핸드폰이 울렸다.
[민치호 청장님]
기다리던 전화였다.
이제학에 대해 자세히 알려달라고 전화한 것이 바로 어제다.
이 시간에 전화한 것을 보면 나름 급하게 조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 청장님.”
-한가하지? 전화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저는 오늘 수업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편하신 대로 말씀하세요.”
-결론부터 말하지. 이제학 그 사람, 잡아.
보기 드물게 명확한 민치호의 허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