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적으로 돌리기는 쉽다 (2)
“오늘 과제는 이번 주 금요일 저녁 6시까지 제출하세요. 이상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법인세과 교수 홍대안은 어딘지 멍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방에 앉아서도 쉽사리 교육자료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창문을 열었다가 저 밑에 건물 주변을 산책하는 청년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정장 재킷의 단추를 풀고, 바지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교육원 여기저기를 거니는 것이 보였다.
굉장히 편안해 보인다.
어디다 갖다 놔도 그림이 될 법했다.
그 모습에 왠지 짜증이 솟구쳤다.
홍대안이 스스로의 감정에 화들짝 놀랄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속이 좁은 인간이었나?’
왜 청년이 고까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강사 자격으로 새로 온 청년에게 안 좋은 감정을 느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홍대안은 도로 창문을 탁 닫고 돌아섰다.
억지로 세법 책을 펼쳤지만 판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정신 상태로 법조문 해석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홍대안은 결국 방을 나섰다.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교수 휴게실.
차라리 방에 틀어박혀 책상 앞에서 판례 하나라도 더 보는 홍대안의 특성상 좀처럼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가 휴게실로 들어가자 교수들이 놀란 눈으로 본 것도 당연했다.
“아니, 홍 교수님. 휴게실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지금까지도 몇몇 교수들이 남아 있었다.
홍대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안쪽 자리로 향했다.
교수라면 누구든 쓸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교수 휴게실이다.
자신이 못 올 것을 온 것도 아니고.
홍대안은 잠시 안을 두리번거렸다.
“누구 찾으시는 분 있습니까?”
“아, 아뇨.”
홍대안이 얼버무리자 다른 교수들이 알겠다는 표정을 했다.
“아하, 신재현 선생 찾으시는구나! 그 선생이 워낙에 유명하긴 한가 봐요. 휴게실이 이렇게 붐비는 건 난생 처음 봅니다.”
그 말에 홍대안은 휴게실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아까 신재현을 찾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이 홍대안의 눈에 들어 왔다.
창가며 안쪽 벽 자리며 할 것 없이 자주 못 보던 얼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홍대안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다.
교육원에 온 지 몇 년 됐지만 식사나 회식 자리에서 몇 번 마주친 게 다인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홍대안과 눈이 마주치자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문가에 앉아 있던 휴게실 죽돌이 교수가 웃으며 달랬다.
“이상할 건 없지만요. 우리는 학자 아닙니까. 궁금하면 해결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족속이죠. 잘 오셨습니다, 홍대안 교수님.”
“예에. 그럼 말씀 나온 김에 묻겠습니다. 신재현 씨는 어디 갔습니까? 아까 얼핏 보기로는 휴게실로 온 것 같던데요.”
“아, 수업하느라 놓치셨군요. 한참 떠들다가 원장님께 인사하러 갔습니다.”
“그렇군요…….”
원장과 새로 온 선생이 무슨 관계인지 모르는 홍대안은 방금 교수의 말이 얼마나 거대 사건인지 몰랐다.
“그럼 여러분께서는 신재현 씨를 만나 보신 겁니까?”
“그럼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질문을 받은 교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홍 교수님은 카리스마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홍대안이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리자 신나 있던 교수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아이쿠, 제 말이 좀 뜬구름 잡는 식이었나요. 저도 교단에 서다 보니 어떻게 하면 집중시킬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그냥 존재만으로도 시선을 끄는 그런 사람이 있죠? 절로 눈길이 가고 그 사람이 말하면 듣고 싶어지고.”
“지금 신재현 씨가 그렇다는 말씀인가요? 그거야말로 뜬구름 잡는 소리 같습니다.”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분위기가 아주…….”
신재현을 직접 만나봤다는 교수들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황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으려는데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 한 명의 교수가 손바닥을 짝 쳤다.
“제가 예전에 민치호 청장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아직 세종시 국세청 국장 시절이었죠. 다른 국장들, 과장들 쭉 앉아서 떠들다가도 민치호 청장님 들어오면 바로 조용해졌거든요. 그냥 들어오기만 했는데 그랬어요. 아까 딱 복도에서 수업 끝나고 나오는데,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니까요?”
다른 교수들이 맞장구를 쳤다.
“아, 무슨 얘긴지는 알겠네요. 젊었을 때의 민치호 국장이라는 느낌이 딱 들었죠? 역시 같이 일하면 분위기가 닮아가나? 아니면 거기서 잘 가르친 걸까요?”
“아, 대체 어떻게 가르칠까 궁금하긴 하네요. 학생들 표정 아까 보셨죠? 이야, 나중에 몰래 도강이라도 들어볼까.”
심심하고 하릴없는 교육원에서 오랜만에 생긴 이슈에 신난 교수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에 정작 홍대안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하필 예시로 민치호를 든 것이 결정타였다.
‘민치호한테 국장 자리 안 밀렸으면 지금 그 자리가 내 건데.’
한번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든 것이 거슬리는 법이다.
아까 수업 때부터 계속 홍대안을 쿡쿡 찌르던 불쾌감이 지금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잘못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생들 표정 보셨죠? 신재현 선생 수업만 기다리고 있다잖아요. 허허허, 열과 성을 다하니 그런 거겠죠? 이런 것까지 잘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느 정도는 입바른 칭찬일 것이다.
교수들이 워낙에 들떠있기도 하고 떠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휴게실이니까.
그러나 그 순간 홍대안은 도저히 자신의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열과 성? 카리스마? 개 같은 소리.’
자신의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교육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재현에게 들은 것을 신나서 늘어놓는 그 모습.
자신의 성역이 침범받은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홍대안은 자신이 질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인정해 버리면 스스로 추레한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
대신에 홍대안은 신재현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결정했다.
‘건방진 놈.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 말 뼈다귀가.’
점점 그런 확신이 들었다.
조용한 학습 분위기였던 교육원이 이렇게 어지러워진 것은 모두 신재현 때문이다.
자신의 수업이 어긋난 것도.
홍대안이 일그러진 얼굴을 숨기느라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는 척을 할 때, 교수 휴게실이 열리고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30대 중반쯤 되었을까.
얼굴이 익히 알려진 신재현과 달리 홍대안은 그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오오, 신재현 선생과 함께 내려온 분이죠? 뭐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선생이신가?”
“저는 신재현 팀장님을 따라온 것뿐입니다. 황민우라고 합니다. 편히 불러주십시오. 앞으로 자주 뵐 것 같은데요.”
“오, 그래요?”
“부끄럽게도 저는 한가해서요. 그렇다고 놀 수는 없고, 저도 밥값은 해야죠. 그래서 공부하러 왔습니다.”
“오오! 괜히 신재현 선생 따라다니는 게 아니네요. 그런 자세 너무 좋아합니다.”
황민우는 능숙하게 교수들 틈에 섞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못 보던 사람들의 얼굴을 빠르게 살폈다.
표정 관리를 못하는 홍대안이 황민우의 스캔에 걸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흠, 벌써부터 대립각을 세우는 사람도 있군.’
황민우는 교수들의 얼굴을 재빨리 외웠다.
이름이야 나중에 천천히 비교하며 알아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인사는 잘했습니까? 아까 이제학 교수하고 팀장님들하고 분위기가 좀 그렇던데…….”
“아, 신경 쓰이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황민우는 잠깐의 틈을 갖고 머리를 굴렸다.
신재현 옆에서 따라다니며 보고 배운 것이 있다 보니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지 계산이 섰다.
결론은?
솔직한 척하자는 것이다.
“음, 서울에서 있었던 일을 여기까지 끌고 내려오게 되어 버렸네요.”
모든 걸 다 말해줄 필요는 없다.
이들도 다른 세무서에 아는 사람쯤은 있을 테니, 전화만 돌려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을 들려주면 된다.
반응도 볼 겸, 솔직한 척해서 호의를 얻을 겸.
물론 신재현에게 배운 것들이다.
“으잉?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서울에서 두 팀장님이랑 싸웠단 말이에요? 아닌데, 신재현 선생은 서울청 출신이고 팀장님은 중부청에서 온 거 아닙니까?”
“서울청과 중부청이 경쟁 관계에 있는 건 익히 아실 겁니다. 그 과정에서 중부청 쪽이 공중분해 되었죠.”
“아, 소문은 들어본 것 같은데. 자세한 내막은 몰랐네요.”
“교수님들 귀에 이런 일이 들어가게 하면 안 되지요. 저희도 사실 좀 당혹스럽긴 합니다. 신재현 팀장님도 저도 힘없는 말단 직원일 뿐인데 조금 감정적으로 대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까 원장실에서도…….”
황민우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원장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찌 되었든 저희에게 어느 정도 화풀이하시면 분위기는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저희 때문에 이렇게 되어서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교수들이 순식간에 웅성거렸다.
“아니, 그럼 원장님이 화풀이를 한다는 거예요?”
“두 분이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텐데, 누가 7급하고 8급한테 책임을 묻지?”
“어떻게 원장이나 되시는 분께서…….”
황민우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워낙에 순진한 사람들이다 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첫날부터 수확을 거두게 생겼다.
‘죄책감은 조금 생기네…… 죄송합니다. 흙탕물 튀는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황민우는 마음속으로 사과하며 조용히 홍대안 쪽을 응시했다.
그는 굳은 얼굴로 무언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원장님도 신재현을 못마땅해 한다 이거군.’
의도치 않게 교육원 내에 명확하게 편이 갈리는 순간이었다.
***
신재현이 교육원에서 수업한 첫날 저녁.
구내식당은 평소보다 어수선했다.
교육생들은 저마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중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신재현에 대한 이야기였다.
“와, 신재현 선생님이 저랑 동갑이더라고요. 제가 20대 중반 때 겁나 놀았는데 신재현 선생님은 그 시간에 공무원을 했다는 거잖아요. 인생 진짜 치열하게 살았네요.”
“근데 솔직히 나이 많은 교수님 보다가 신재현 선생님 보니까 눈이 확 트이는 것 같아요.”
“아, 그거는 동감!”
신재현이 생각보다 훈훈한 얼굴이라며 좋아하는 여학생들도 있었고.
“여친 있나?”
“연애 몇 번 해 봤냐고 물어볼까?”
“연봉 대체 얼마일까?”
“형이라고 해 볼까.”
“땅에서 나온 20억 중에 얼마 꼬불쳤는지 물어봐야지.”
이상한 데에 꽂힌 남학생들도 있었다.
저마다 신재현만 보면 질문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와중에, 거짓말처럼 구내식당 입구에 신재현이 나타났다.
“어! 저녁 여기서 먹나 봐!”
“관사 안 가시나?”
교육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인기 가수라도 맞는 듯한 관심도였다.
신재현과 황민우는 굉장히 익숙한 느낌으로 줄을 섰다.
한 두 번 여기서 밥을 먹어본 자세가 아니었다.
순간 교육생들이 혼란스러워졌다.
“응? 여기 와 봤나?”
“아, 맞다. 선생님도 여기 갔잖아요. 경력 몇 년이랬더라, 뉴스에서 봤는데.”
“3년이랬어요. 그럼 진짜 우리랑 별 차이 안 나네?”
“3년이면 저렇게 될 수 있나 봐요.”
동경의 대상, 그야말로 세무공무원의 귀감이라고 기자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더군다나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고 경력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욕 넘치는 교육생들에게 3년이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자신들도 저렇게 될 수 있다, 아니 되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고양감은 곧 환호가 되어 터져 나왔다.
“와! 선생님!”
“이쪽 봐 주세요!”
“선생님, 티어 어디예요?”
“앞으로 계속 같이 밥 드실 거예요?”
자신을 부르자 신재현은 한쪽 손을 어색하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쑥스러운지 금세 고개를 돌렸다.
TV에서 장관 집을 쳐들어가던 그 신재현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모습이라 교육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뒤에 서 있던 황민우가 놀리듯 말했다.
“인기 많으시네요. 의도하신 건 아니죠?”
“어떻게 이런 걸 의도하겠습니까. 이미지 메이킹은 좀 할까 했는데, 그건 필요 없어서 다행이긴 하네요.”
신재현은 애써 담담한 척 음식을 받은 식판을 갖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도로 일어났다.
“아, 수저 안 가져 왔어요…….”
열렬한 환영에 당황한 것일까.
이런 광경 많이 봤으면서 아직도 적응이 안 되나 보다, 하고 황민우는 슬며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