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네 편 내 편 (1)
교수들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늘 보는 교육생들은 항상 반쯤 감긴 눈으로 바라보는 흐릿한 존재들이었다.
잠을 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흰자위가 드러난 눈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들곤 했다.
그랬던 교육생들인데…….
“선생님, 관사로 오신 거예요? 일주일에 수업 딱 두 번만 해요?”
“식사는 어디서 하세요?”
“두 분이 용산 세무서에서부터 붙어 다니셨다면서요. 신문 기사로 봤어요.”
앞문으로 걸어 나오는 신재현과 황민우를 향해서 교육생들이 붙어 질문을 던졌다.
‘말도 안 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교육생들이라고 바보는 아닐 텐데 수업 한 번에 저렇게 사로잡았다고?’
‘……우리가 잘못 생각했나? 아닌데, 절대 저럴 수가 없는데.’
교수들이 멍하니 복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업했기 때문인지 질문하는 모습이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나이대도 비슷해서 그런지 신재현은 교육생들과 매우 잘 어울렸다.
그들을 바라보던 교수들은 신재현이 생각보다 젊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서른도 안 됐다고 했던가? 어리군…….’
신재현과 황민우는 교육생들에게 둘러싸여 복도 끝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멍하니 서 있는 교수들을 발견하고는 멈춰 섰다.
신재현은 먼저 교육생들을 보냈다.
“다음에는 실제로 저희가 조사했던 사례들 갖고 와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혹시 듣고 싶은 건 있으면 그때 말해주세요.”
“정말이죠? 그럼 20억 얘기 꼭 해주세요.”
“음, 그날 봐서요. 그럼 얼른 다음 수업 가세요.”
교육생들이 아쉬운 얼굴로 복도를 빠져나갔다.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신재현이 교수들을 향해 돌아섰다.
미소가 사라지자 훈훈했던 분위기가 씻은 듯 사라지고 날카로운 공무원이 하나 서 있었다.
넥타이를 고쳐 맨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특강 세무조사 실무를 맡은 신재현입니다. 이쪽은 강의 보조를 맡은 황민우입니다.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뵙게 되네요.”
아까와는 상반된 분위기에 교수들의 말문이 턱 막혔다.
교육생들과 함께 있을 때는 정장을 입지 않았으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친근하고 풋풋한 느낌이 가득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정말 전형적인 공무원이었다.
수험생들은 멀리서 봐도 수험생 티가 나고, 공무원은 일반 회사에서 봐도 티가 난다.
정돈되어 있고 절제된 분위기.
‘아니, 경력 3년 맞아?’
‘겨우 3년이면 교육원 거쳐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
교수들은 생각을 수정했다.
교육생과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평가가 약간 올라간 정도였지만 그 정도만 해도 교수들에게는 엄청난 상위 조정이었다.
아무리 순수하고 착한 교수라고 해도 학벌에 대한 편견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반갑습니다. 오신다는 소식 듣고 만나길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제주도가 머나먼 섬이라지만 신재현 씨의 이야기는 매체를 통해서 듣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정말 좋네요.”
교수진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까 신재현도 우리가 가르친 교육생 중 한 명이잖아. 그러면 우리 공도 좀 있는 거 아닌가?’
교수진 중 몇몇은 김칫국을 마시는 중이었다.
***
나의 첫 강의는 나름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뭐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교육과는 거리가 먼 내가, 교육생 때 이후로 절대 돌아올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교육원에서 후배님들을 가르친다는 걸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첫 강의치고는 꽤 잘한 것 아니었나 싶다.
……자화자찬은 아니다.
뿌듯해서 조금 들뜬 것뿐이다.
지나서 생각해보니 상황 재연한답시고 황민우와 연기한 게 좀 오버한 것 같다.
다음엔 하지 말아야지.
나도 이렇게 배워 나가면 되는 것 아닌가.
교육생 중 열정적인 몇 명의 질문을 받아 주고 강의실 밖으로 나오자 또다시 열렬한 인사가 이어졌다.
내가 교육생 때도 이랬던가?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아서 일일이 인사를 받아 주다가 문득 그들을 발견했다.
교육원의 핵심인 사람들.
전국에서 세법 면에서는 어디다 내놔도 뒤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나도 가르침을 받기도 했고.
3년 전과 비교해서 그닥 달라지지 않은 얼굴에 반가움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생과 교수 신분으로 만난 것이 아니다.
교수님, 당신께서 가르친 그 교육생이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나는 그들 앞에 똑바로 섰다.
그리고 그들 틈에서 익숙한 얼굴 둘을 발견했다.
며칠 전 관사에 처음 도착해 짐을 풀고 있을 때, 좌천된 놈이 어쩌구 하며 도발하던 놈들이다.
그때는 오자마자 싸우기 싫어서 놔뒀는데 교수들 틈바구니에 껴 있는 걸 보니 무슨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어떻게 됐나 보러 가자며 부추겼든가 분위기 파악하러 따라왔겠지.
문제는 교수진이다.
그래서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며 반응을 확인했는데, 다행히도 교수진들은 딱히 나를 배척하는 것 같진 않았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속으로는 못마땅하게 생각해 손경진 원장과 손을 잡을 수도 있는 거고.
내 사고의 흐름이 이렇게 흐른 후, 문득 나는 생각을 멈췄다.
또 어느 샌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있었다.
진의를 의심하고 그 사람이 어느 쪽 라인인지 정리하려 한다.
내 편이 될 수 있는 사람과 적이 될 사람을 구분한다.
그것이 나와 우리 쪽 라인에 이득을 가져올지를 계산한다.
모두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것들이었다.
여기까지 와서도 이런 사고방식이라니.
그사이 반갑다며 한 차례 수선을 떤 교수들은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러지 말고 휴게실로 가시죠.”
“아, 휴게실이 있나요?”
“그럼요. 신재현 선생도 강의 없을 때는 언제든 들렀다 가면 됩니다.”
나름 선생이라고는 불러주는구나.
나는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손경진에 대해 조사하고 교육원 내부 사정을 알아보려면 대화는 필수다.
민치호가 나에게 맡긴 일 중 하나니까 이것도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따라나서자 황민우가 어김없이 뒤에 붙었다.
그리고 관사에서 봤던 두 남자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날 흘끔거렸다.
원했던 전개가 아닌 모양이다.
“여기에요, 여기. 얼른 들어와요.”
꽤 쌀쌀한 밖과는 다르게 휴게실은 훈기가 가득했다.
꽤 넓은 공간에 책꽂이와 소파, 의자 등이 늘어서 있었다.
여기는 처음 들어왔는데 이렇게 생겼구나.
당분간은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우리가 의자에 앉자 은근슬쩍 또 따라 들어온 팀장 둘이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저 둘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캐봐야겠다.
먼저 교수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꽤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3년 전에는 신재현 씨가 여기 교육원을 거쳐 가셨죠? 어때요, 도움이 됐나요?”
가장 궁금한 게 뭔가 했더니 이거였구나.
나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그럼요. 공무원 시험공부만으로는 솔직히 실무 투입하기 부족하잖습니까. 교수님들께서 알려주신 게 없었으면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제가 단기간에 많이 옮기면서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것에는 교육원에서의 경험도 큽니다.”
“그렇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교수 몇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하는 걸 보니 정말 때 묻지 않은 학자들이라고 느꼈다.
그 후로도 몇 가지 질문이 이어졌지만 나는 시종일관 정중하고도 듣기 좋게 답했다.
교수들이 이제는 눈만 마주쳐도 빙그레 웃어줄 정도다.
그럼 이쯤에서 슬슬 파고들어 볼까.
지금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세 명이다.
둘은 당연하게도 관사에서 만난 남자들인데 교수들의 대화에서 추정컨대 운영팀과 지원팀의 팀장이라는 것 같다.
시험 문제와 교육 자료도 준비하고 교수들과 교육생을 지원하는 곳이다.
이 둘은 애써 미소를 짓고 있지만 내게 적대적이라는 것이 대번에 느껴졌다.
문제는 한쪽에 조용히 앉아 팔짱을 끼고 있는 중년 남자다.
저 사람 역시 교수였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내가 휴게실에 들어와 앉는 순간부터 관찰하듯 훑는 시선이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그렇다고 팀장 둘과 한패냐 묻는다면 굉장히 애매했다.
중년 남자가 중간 중간 팀장에게 시선을 보낼 때마다 적개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교육원도 원래 이렇게 물밑싸움이 있는 곳이었나?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약간의 실망이 스쳤다.
더 실망하기 전에 캐낼 건 캐내자.
나는 자연스럽게 두 팀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두 분은 팀장님이라고 하셨죠? 지원팀이면 앞으로 저도 신세를 질지도 모르겠네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별말씀을요.”
서로 품속에 칼을 숨기고서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제가 온 지 얼마 안 되기도 하고, 경험도 부족해서 잘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팀장님은 오래 계셨으니 많이 좀 도와주세요.”
그 순간 두 팀장이 움찔했다.
말문이 막힌 둘을 대신에 지켜보고 있던 중년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 두 분도 교육원 오신지 얼마 안 됐습니다. 신재현 선생님보다 기껏해야 2주? 1달 정도 빨리 오셨던가요? 두 분, 일은 손에 좀 익으셨나요?”
“예, 예에.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교수님.”
두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이 교수라 불린 중년 남자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남자의 입꼬리 한쪽이 슬쩍 올라가 있었다.
마치 ‘네가 알고 싶은 건 이거였지?’라고 답하는 듯했다.
그는 이어서 내게 설명하듯 말했다.
“저희 교육원에 원장님이 새로 오셨잖습니까. 그때 함께 오신 분이십니다.”
역시 손경진의 심복이었구나!
“아, 그렇습니까? 더더욱 반가워지는데요. 두 분 말고도 최근에 더 오신 분이 계신가요?”
“없습니다. 두 팀장님께서 원장님을 모시고 온 이후로는 드나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남자는 내가 원하는 정보만 쏙쏙 골라 답했다.
대화가 좀 이상하다 싶었는지 교수들이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
원장이 직접 움직일 순 없으니 적어도 이 둘이 현재 손경진의 유일한 패, 손발이라는 뜻이다.
이 둘의 움직임만 잘 살피면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쯤 되자 오히려 궁금해졌다.
왜 이 교수는 나를 돕는 것일까.
이것을 호의라 생각하고 넙죽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아까 두 분 팀장님께서 신재현 선생님에 대한 관심이 아주 지대하시더군요.”
“그건…….”
“아, 알고 있습니다. 신재현 선생님이 워낙에 유명하다 이거죠? 관심 없는 공무원은 없다고. 그런데 말입니다. 관심이라는 것은 꼭 좋은 쪽으로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게 말한 교수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건 두 팀장과 대화하는 것처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나에게 하는 말이다.
-저 둘은 너의 적이다. 조심해라.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꺾었다.
목에서 우둑, 하는 소리가 났다.
“죄송하지만 교수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순간 옆에 앉아 있던 교수들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왜 그런가 하고 돌이켜 생각했다가 아차 했다.
말투가 너무 공격적이었구나.
하지만 그걸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저 남자의 신상이 너무 궁금했다.
중년 남자는 기분 나쁜 기색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양도세를 가르치는 이제학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진심이에요.”
이제학은 먼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쩐지 얘기가 통할 것 같은 분이네요. 하실 말씀도 있는 것 같고.”
“역시 눈썰미가 있으시군요. 어떻습니까. 제 연구실로 가시겠어요?”
마다할 필요가 없지.
나는 단번에 수락했다.
“어어, 이 교수! 그렇게 신 선생 독점하면 씁니까? 아직 얘기 다 안 끝났는데…….”
자리에서 일어서던 이제학이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린 듯 가볍게 대답했다.
“아까 교수님들께서 수업준비 도우라고 하셨잖습니까. 그 얘기 할 겸 가는 겁니다. 자료가 제 방에 있으니.”
내가 일어서자 교수들이 멍하니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인지 얼굴에 다 드러났다.
방금 뭔가가 지나갔는데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순진한 교수님들을 자꾸 놀려먹으면 안 되지.
이제학 교수가 먼저 휴게실을 나갔다.
뒤를 따라 나가려던 나는 발길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손경진 원장의 사람인 두 팀장을 향해서였다.
“제가 원장님께 인사를 아직 안 드렸네요. 이 교수님께 가르침 좀 받고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말씀 좀 전해주세요.”
“감히……!”
붉으락푸르락하는 팀장을 뒤로 하고 휴게실을 나섰다.
복도에 서 있던 이제학 교수가 왠지 활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