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교육원 (3)
신재현의 강의가 시작되자 교육원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신경이 강의에 쏠렸다.
손경진 원장에서부터 교수진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어떻게 수업하고 있는지 마음 같아서는 엿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다고 복도에서 엿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수진은 자신의 교수실을 나와 교수 휴게실로 모여들었다.
“둘이 가서 살펴보고 와.”
손경진은 자신을 따르는 두 부하 직원을 교수 휴게실로 보내 떠보도록 했다.
신재현이 교육원에서 철저히 망가지길 원하는 손경진이었으니 여론을 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둘이 휴게실로 들어가자 교수들은 난색을 표했다.
“허어, 교육지원 2팀장님하고 교육운영팀장님 아니십니까. 어떻게 교수 휴게실까지 오셨어요?”
손경진과 그의 부하 직원 둘이 정치질 하다가 밀려났다는 건 제주도에서 후진 양성에 집중하는 이들도 알고 있었다.
차기 청장 자리를 노리고 벌어진 세 파벌의 충돌이 워낙에 유명하니 그럴 만도 하다.
“당연합니다! 신 팀장, 아니 신 선생은 우리도 고대하고 있었어요. 얼마나 응원했는데.”
교수진들이 신재현에게 꽤 좋은 감정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자 팀장이 미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계획 변경이었다.
둘은 신재현을 추켜세우기 시작했다.
“저도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세무공무원이라면 신재현,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저희도 활약에 얼마나 감명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 교육원에 와 주다니 이번 교육생들은 복 받은 것 아닙니까.”
“그렇네요. 좀 걱정이긴 하지만…….”
체형이 마르고 머리가 희끗한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의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이때다 싶어 팀장이 캐물었다.
“어떤 점에서 그러십니까? 말씀해주시면 고려하겠습니다.”
“음, 지원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교단에 선다는 게 웬만한 지식 갖고는 어렵잖습니까.”
처음엔 조심스러운 말투였지만 말문이 열리자 교수는 우려했던 바를 쏟아냈다.
“공무원에 학력은 중요하지 않지만 교단에서는 중요해요. 지식의 깊이, 경험치. 그게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혼자 하는 학습이 아니니까요. 듣기로 신 선생은 학위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고졸이라던가요. 교육생들의 수준이 더 높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리 실무를 가르치는 특강이라고 해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팀장들이 기다리던 바였다.
둘은 걱정하는 척하며 신재현의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저도 우려하긴 했습니다. 서울청 특수팀에서 일했다고는 해도 교육과는 거리가 멀지요. 아는 걸 전달하려면 완벽하게 머리에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신 선생이 괜히 사고나 치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일단 첫날은 상의도 없이 수업에 들어가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후에는 저희가 챙기려고 합니다.”
“아이고, 교수님들이 귀찮으시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교육생들에게 어설픈 수업을 시켜 줄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양도세 가르치는 이 교수님이 세무서 재산세과장이셨던 것 같은데 맞나요?”
교수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구석에 앉아 가만히 커피를 마시던 중년의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과목 담당 선생님이 원하셔야죠. 양해도 구하지 않고 제가 과목을 침범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교수진끼리 상대의 수업에 토를 다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그러니 중년 남자의 말은 옳은 것이었지만 아무도 수긍하지 않았다.
물어볼 필요도 없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어보면 오히려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이럴 땐 우리가 티를 내지 말고 도와줍시다. 열심히 일한 기특한 친구 아닙니까.”
중년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를 빼고 나머지 교수진들이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나름 신재현을 배려해 호의를 가득 담아서.
“우리가 평소 수업 때 가르치던 실무 사례에서 꼽아서 정리를 해 보면 되겠네요. 그리고 세법 적용 원리에 맞춰서 풀이해봅시다.”
학구열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보니 교육자료 기반은 순식간에 뼈대가 잡혔다.
이 휴게실 안에서 재산세과장 출신인 중년 남자만이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은데…….’
9급부터 출발해 일선 세무서의 과장 자리까지 올라간 중년 남자는 저들의 노고가 헛수고가 되리라 짐작했다.
‘상대가 국회의원에 장관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군말 없이 털렸다는 건 조사 분야에서는 도가 텄다는 뜻입니다, 교수님들.’
그러나 남자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래도 열심이신데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겠지.’
가만히 커피를 마시는 남자의 눈에 공손하게 앉아 있는 팀장 두 명이 들어왔다.
한참 토론에 빠진 교수들을 바라보는 두 팀장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정치질 싫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도 이 난리네.’
남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뜬금없이 지원 역할을 하는 팀장 둘이 찾아온 것에서부터 이상함을 느끼긴 했다.
그런데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였다.
신재현에 대한 말을 꺼내 관심을 돌리고 그를 깎아내리기 위한 밑밥을 까는 것이다.
세무서에서 느껴봤던 음모의 악취가 저 둘에게서 풍겨왔다.
‘여기서까지 저놈의 정치질을 봐야 하나.’
남자는 그냥 놔둘까 생각했다가 신재현을 떠올렸다.
그 또한 어떻게 보면 이 정치질의 희생양이었고, 또 더러운 구정물 싸움에 휘말릴 위기였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지금 그냥 놔두자니 아직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 없는 청년이 마음에 걸렸다.
국세청의 인재를 이런 데서 썩게 하는 것도 마뜩찮은데, 이런 하찮은 팀장 둘에게 물어 뜯기게 하는 건 더더욱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남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팀장님, 신재현 씨한테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습니까?”
“아, 공무원 중에서 신재현 씨한테 관심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당연히 관심 많죠.”
“그야 그렇죠? 민치호 라인하고는 만나기만 하면 눈에서 빔이 나갈 정도로 부딪히던 분이니까요.”
두 팀장이 정말 빔이라도 나올 것처럼 눈을 치켜떴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열심히 학구열을 불태우던 교수진조차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렸다.
“어이쿠, 중부청에서 하시던 거 여기서도 하시네. 두 분이 신재현 잡아먹지 못 해 안달 난 건 제주도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저도 익히 아는 일입니다.”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저희 역시 신재현을 좋아합니다. 마치 저희가 신재현을 죽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얘기하시네요.”
“아닙니까? 손경진 청장님이 세종시가 아닌 제주도로 오신 과정은 다들 아는 것 아닙니까. 제가 비록 교육원에 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는 귀동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두 라인에게 한 라인이 당한 것 같다든가, 그 라인이 김칫국을 많이 마셨다든가.”
말해 놓고도 남자 스스로가 아차 할 정도로 센 말투였다.
원래 이렇게까지 쏘아붙일 계획은 아니었는데.
“이보세요, 이 교수님! 지금 원장님을 모욕하는 겁니까?”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남자는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말을 끄집어냈다.
중부청장 손경진에게는 남자 역시 악감정이 있었다.
손경진은 직원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세무서나 지방청에서 만났다면 이런 대화는 꿈도 못 꿨겠지만 손경진은 이미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계산도 있었다.
현 국세청장과 민치호가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여기까지 와서 정치놀음 하는 게 너무 추해 보여서요. 이제는 슬슬 포기하고 여기서 후학을 양성하시며 편안하게 은퇴하시는 게 어떨까 싶네요. 신입 공무원들 교육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두 분은 그보다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린 것 같네요.”
“이 교수님, 지금 이 얘기가 원장님 귀에 들어가도 괜찮으십니까? 후환, 정말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여기서도 윗분 등에 업고 협박하는 건 여전하네요.”
남자의 말투에 두 팀장이 흠칫했다.
어쩐지 예전에 자신들을 겪어본 것처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궁금한 건 이겁니다. 신재현을 건드릴 겁니까? 그런 명령을 받았을 법 한데요.”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군요.”
“그럼 됐습니다. 제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요.”
살벌한 대화가 끝나자 교수들이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정치가 뭔지도 모르고 이런 대화에 내성이 없는 순수한 학자들에게 남자의 말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교수님. 대체 뭐에 그렇게 화가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좀 진정하세요.”
“화가 난 게 아닙니다. 적어도 이렇게 말해 둬야 눈치를 보는 척이라도 하거든요, 줄을 잡은 사람들은. 듣기에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세무서에서 저들이 하던 게 떠올라서요.”
교수진에게 인사를 건넨 남자는 시선을 떨쳐내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갑니까?”
“신재현 선생한테요. 끝날 때 다 되지 않았습니까. 수업이 잘 됐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 그래요? 그럼 저도.”
남자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교수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남자를 선두로 교수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자 손경진의 심복인 두 팀장도 은근슬쩍 뒤를 따랐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전달하는 손과 발 역할을 담당하는 팀장에게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순간이었다.
***
강의실이 자리한 복도는 교육생들의 목소리로 왁자지껄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도 있었고 40대가 넘어가는 중년인도 있었지만 반응은 다들 비슷했다.
오늘 수업에 대한 감상, 그리고 앞으로에 대한 기대감이 얼굴에 잔뜩 묻어났다.
“무조건 아는 척하라길래 무슨 이상한 소린가 했어요. 얕보이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세무사사무실이라고 얕보지도 말고 얕보이지도 말라는 그거요? 두 분이 역할 나눠서 실제 대화처럼 하시는 거 보고 이해 빡 가던데요.”
“원천세 종류에 사업소득세랑 근로소득세 다 들어가는 건데 그거 모르고 납부세액 안 맞는다고 전화했다가 망신당했다는 공무원 얘기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런 사람도 있구나…….”
“수납 들어온 거랑 신고서 금액 맞추는 것도 일이겠던데요. 가산세도 붙고 그러잖아요. 그런 자질구레한 게 원래 골치 아픈 거니까.”
복도 끝에 선 교수진은 생각했던 것과 분위기가 다르자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자신들의 수업을 듣고 나면 항상 지쳐서 책상에 엎드리는 교육생들이 이런 얼굴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아, 진짜 재밌었어요. 다음 수업엔 뭘 알려주시려나. 얼른 수업 듣고 싶다.”
더군다나 교육생들은 수업에 매우 만족한 듯했다.
자신의 수업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교수들이 멍한 얼굴로 서 있자 그들을 발견한 교육생들이 지나가며 인사를 건넸다.
엉겁결에 그 인사를 받고 있는데 갑자기 강의실 쪽에서 합창과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다음 수업 때 봬요!”
막 앞문으로 나온 신재현에게 교육생들이 열렬한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