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평화로운 힐링 생활
-쿠르릉!
비행기가 내려앉자 덜컹하는 충격과 함께 요란한 충돌음이 맴돌았다.
영상으로 볼 때와는 수준이 다른 충격이었다.
나도 비행기는 처음이지만 나보다 더 걱정인 것은 어머니다.
-드드드드.
온몸으로 전해오는 진동에 천천히 멎어갔다.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 어머니가 혹시나 놀랐을까 봐 걱정이 들었다.
좀 오래 걸리더라도 배를 탔어야 했나.
아니, 배멀미는 사람을 탈진하게 만드니 지금 생각해도 비행기가 낫긴 하다.
의사도 비행기를 타도 상관없다고 했고.
그래도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서둘러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 괜찮아?”
그런데 의외로 어머니는 신난 기색으로 눈을 반짝이며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무거운 게 어떻게 하늘을 날았다 내렸다 한다니. 신기하다, 그치?”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람의 컨디션이라는 것이 마음가짐에 좌우되긴 하나보다.
어머니는 막 소풍 나온 학생처럼 들뜬 상태라 언뜻 봐서는 아픈 사람 같지도 않았다.
비행기가 천천히 게이트로 들어섰다.
어머니와 손을 꼭 붙잡고 공항에 내리니 나도 왠지 두근거렸다.
어렸을 적에는 가끔 이렇게 공원에 나가곤 했는데.
놀러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쯤은 놀아도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주말이고.
짐은 이미 관사로 부쳤고 황민우는 따로 정리해서 내려오기로 했다.
그러니 지금은 자유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큰 맘 먹고 택시를 불렀다.
“엄마. 제주도에 그렇게 볼 게 많대.”
“시간 괜찮을까?”
“어차피 당분간 여기서 살 건데 뭐. 오늘은 가까운 데만 가보자.”
“그럴까?”
공항 밖으로 나가자 따뜻한 바람과 함께 야자수 몇 그루가 우리를 맞이했다.
“와, 제주도에는 야자나무가 있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살짝 습기를 머금은 바람도 그러했고 한쪽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데 반대쪽은 먹구름이 낀 하늘도 신기했다.
“아, 저기 택시 있다.”
관광지라 그런지 택시를 시간 단위로도 빌릴 수 있었다.
미리 문자로 받은 택시 번호를 입으로 중얼거리며 뒤쪽으로 향하자 얼른 기사가 내려서 다가왔다.
“핸드폰 뒷자리 3190 되시죠? 오늘 오후, 편안히 모시겠…… 응?”
40대쯤 되어 보이는 기사는 환영 문구를 읊다가 문득 멈추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세상에…….”
기사가 입을 떡 벌리고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이런 반응을 볼 때마다 자꾸만 부끄러워진다.
“그, 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기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헉, 죄송합니다. 전혀 상상도 못 한 분이셔서. 제주도에는 관광차 오신 건가요?”
내 기사가 아직 안 나갔나?
분명히 좌천이라고 대서특필 했을 텐데.
“제주도 세무직 교육원으로 이동하게 되어서요. 말하자면 좌천이죠.”
“하이고…….”
기사가 한탄하며 안타까운 얼굴로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개새끼들, 확 불 싸질러 버리고 싶네.”
갑자기 튀어나오는 매우 걸쭉한 욕설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나 대신 화내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래서 내가 화를 안 내고도 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여기 오래 계시면 안 될 분이 오셨네. 얼른 서울로 돌아가셔서 나쁜 놈들 다 털어주세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사는 히죽 웃으며 뒷문을 열어 주었다.
우리가 올라타자 택시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이왕 제주도 오셨으니 계시는 동안 행복한 기억만 갖고 돌아가십쇼. 오늘 제주도 첫날이신데, 혹시 가보고 싶은 곳은 있으세요?”
“딱히 정하진 않았는데, 어머니가 오래 걷지 못하셔서 가까운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따 저녁 전에 교육원으로 데려다주시면 돼요.”
“어이쿠, 교육원이면 저 반대쪽인데 중산간을 타야겠구나. 그러면 갈 데가 있죠!”
기사는 신나서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차를 몰았다.
“어머니, 어떻게 이런 아드님을 두셨어요? 부러워 죽겠네. 저도 아들내미가 하나 있는데 요즘 사춘기인가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죽겠어요.”
운전하는 내내 심심하지 않도록 어머니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나중에 시간 되시면 여기는 한 번 들려보세요. 관광객분들은 보통 맛집 검색해서 오니까 잘 모르시는데, 여기는 주민들이 추천하는 집이에요. 식당 이름이랑 주소 적어서 아드님 문자로 보내둘게요. 아, 저기는 커피가 맛있습니다.”
시내를 지나가다 보이는 맛집과 카페를 체크해서 알려주기도 하고.
“한라산 올라가는 길 몇 군데 있긴 한데 이 산이 의외로 높아요. 작정하고 올라가셔야 하니까 둘레길만 걸으세요. 오후 2시면 출입 통제하니까 아침 일찍 가셔야 합니다.”
자질구레한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으며.
“여기서 사진 한번 찍고 가실게요. 관광객분들 오면 꼭 여기서 사진 찍고 가시더라고요. 제가 찍어드릴게요. 두 분 나란히 서 보세요. 오, 좋습니다! 어머니는 웃으시니까 아주 예쁘시네!”
군데군데 차를 세우고 직접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국화꽃이 만발한 곳이었다.
“차 오래 타시느라 힘드셨죠? 여기까지만 보고 한 군데만 더 들렸다가 교육원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기사는 직접 앞장서며 가이드를 자처했다.
인터넷에서 알아봤을 때는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의 배려임을 알 수 있었다.
“힘드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여기 부지가 좀 넓어서 다 둘러보긴 힘드실 수도 있어요.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까 무리하지 마시고요.”
기사는 정성으로 어머니를 챙겼다.
괜히 내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세상에, 국화가 이렇게나 많네. 관리를 잘하시나 봐요.”
“나중에 겨울 되면 동백도 활짝 피는데, 아주 장관입니다. 한겨울 되면 아드님 데리고 또 오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오늘 꽤 먼 거리를 돌아다녀서 걱정했는데 어머니는 오히려 앞장서서 국화밭을 걸어 다녔다.
말이야 좌천이긴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신나 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사진 찍어 드릴게요. 가운데 서 보세요.”
여기서도 기사의 사진 실력이 빛을 발했다.
관광객들을 태워주면서 기본 50장씩은 찍어준다더니 이미 우리는 50장을 한창 넘긴 것 같았다.
이래도 되나 싶긴 한데 기사님이 너무 열정적이라 말리지를 못했다.
국화밭까지 돌고 마지막으로 기사가 데려간 곳은 교육원 근처에 있는 서귀포 해안이었다.
11월이라 해가 뉘엿뉘엿 지는 바다에 주황색 노을이 깔렸다.
하얀 모래사장에 파도가 이리저리 떠밀렸다가 사라지고 햇빛을 받은 바다가 초록빛으로 빛났다.
바다는 다 파랄 줄 알았는데, 에메랄드를 갈아다 뿌린 것 같은 아름답고 독특한 색이었다.
어머니도 한눈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예쁘다’하는 감탄사만 연발했다.
“대낮에 오면 아주 예쁠 겁니다. 햇볕이 내리쬐면 바다 빛이 새파랗게 변해요.”
“진짜 예쁘네요.”
어머니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얀 모래사장에는 갈매기 몇 마리가 쫑쫑거리며 걸어 다녔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지 바로 앞까지 다가와 먹을 것이 없는지 올려다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곳이 많군요. 와 보길 잘했다.”
제주도로 자리를 마련해 준 민치호 청장에게 고마울 정도였다.
-찰칵.
노을 지는 바다의 색에 빠져 있는데 문득 뒤에서 사진을 찍는 소리가 났다.
기사가 내 핸드폰으로 전송해 준 사진을 열어보니 주황빛 바다를 배경으로 어머니와 나의 실루엣이 찍혀 있었다.
사진작가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사진을 돈 주고 사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네요. 혹시 프로 사진작가는 아니시죠?”
“그렇게 봐주셨다면 감사하죠. 저야 워낙에 관광객을 많이 찍어서 숙달된 겁니다. 택시업 한 지 10년쯤 됐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아까 제주도에 대한 행복한 기억만 가져가라고 하셨죠? 이미 제게 제주도는 아름답고 행복한 섬입니다. 앞으로 여기서 또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될지 기대되네요.”
기사가 뿌듯해하며 으쓱했다.
“다음에 어디 놀러 가실 때 또 저희 택시 불러주시면 더 감사하죠.”
나는 좋은 기억과 함께 기사의 연락처를 저장했다.
약 100여 장에 달하는 사진과 맛집 추천도 함께였다.
핸드폰 갤러리에 가득 찬 사진을 보면서 문득 내가 그동안 어머니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가족은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해서 변변한 가족사진조차 없었다.
추억을 형태로 남기는 것이 곧 사진이라는데, 내 사진첩에 있는 부모님 사진은 매우 초라했다.
아버지 장례식 때 영정사진도 마땅한 것이 없어서 10년 전 사진을 확대해 걸어둘 정도였다.
“사진 많이 찍어야겠네.”
그리고 오늘 택시 기사님이 찍어 준 사진은 엄선해서 인쇄해야겠다.
앨범으로 만들어 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리자.
나는 연습 삼아 몰래 어머니의 옆모습을 찍어 보았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어두컴컴한 가운데 실루엣만 찍힌 사진이었다.
…… 연습 많이 해야겠네.
그래도 내가 처음으로 마음먹고 찍은 사진이다.
나는 삭제 버튼을 누르는 대신 조용히 핸드폰을 닫았다.
***
관사는 빌라 같은 형태였다.
배정받은 집의 문을 열자 소리를 들었는지 바로 옆집에서 황민우가 튀어나왔다.
우리가 놀고 오는 동안 이미 도착해서 짐을 푼 모양이다.
“오셨습니까, 팀장님.”
“이젠 팀장 아니에요, 형.”
“입에 익어서요. 이쪽은 어머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신재현 팀장님을 보좌하고 있는 8급 황민우라고 합니다.”
황민우가 고개를 숙이자 어머니가 대뜸 그의 팔뚝을 잡았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재현이를 많이 도와주신다고요. 어떤 분인가 했는데 이렇게 훤칠한 분이었네.”
다른 팀원들과는 다르게 황민우는 이 먼 곳까지 따라왔다.
-팀장님이 가는 곳이 곧 제가 가는 곳입니다.
무척 고마운 일이다.
어머니 역시 내 보좌를 자처하는 그에게 엄청 고마워했다.
제주도에 내려간다는 말을 듣고 나서 계속 황민우에 대해 물을 정도로.
“저녁 아직 안 먹었죠? 들어와요. 뜨신 밥 꼭 해 먹이고 싶었거든요.”
어머니는 웃으며 황민우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꼭 황민우에게 맛있는 밥을 먹이겠다며 벼르고 있었던 참이다.
마침 들어오면서 시장도 봐 왔다.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줘야지, 아주 바리바리 사 온 참이었다.
20대 때 독립한 이후로 계속 혼자 살았다는 황민우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힘차게 고개를 주억거리자 황민우가 미소를 띠었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신세는 무슨. 배고플 테니까 금방 되는 걸로 해야겠네. 아, 혹시 홍합탕 좋아해요? 산지라 그런지 해산물이 너무 싱싱하더라고. 내일은 꽃게탕 해줄게요. 내일 아침도 와서 먹어요.”
어머니와 황민우가 왁자지껄 떠들며 집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나는 현관 앞에 쌓여 있던 택배 상자를 들었다.
서울에서 보낸 짐은 총 6개.
다행히 하나도 빠짐없이 도착했다.
대부분 옷가지라 그리 무겁진 않았지만, 부피가 상당했다.
내가 끙끙대며 짐을 옮기고 있자 하나둘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제의 공무원, 제주도로 좌천되다.
이미 여기서 근무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대충 이런 식의 소문이 돌았겠지.
당연히 관심도는 최상일 것이다.
마지막 상자까지 들여다 놓은 후 도로 복도로 나오자 두어 명의 직원이 저 멀리에서 나를 관찰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어차피 다음 주면 같은 곳에서 마주칠 텐데 인사해둬서 나쁠 건 없지.
나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관사에 입주한 신재현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둘의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입가에 비웃음을 띄운 두 남자는 삐딱한 자세로 복도 벽에 기댔다.
“아, 천지 분간 못 하고 날뛰다가 사람 여럿 골로 보내고 본인도 앞길 막혔다는 바로 그 신재현 씨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환영 인사 한번 아주 화려하네.
좌천이라는 게 생각보다 사람을 얕보이게 하는 모양이다.
끈 떨어진 연 취급은 또 처음인데.
아니면 나한테 된통 당해본 사람인가?
저런 소릴 듣고 가만히 있으면 내가 아니지.
평화로운 힐링 생활은 의외로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