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징계위원회 (2)
“……그만 놀리세요. 사정 모르는 사람 놀리면 못 씁니다.”
교수는 징계에 대한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이미 한 번 속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여기 있는 공무원들이 신재현의 편일 것을 알게 된 이상 실제로 징계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징계위원회 개최 자체가 겉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했으니 더더욱 그렇다.
“교수님께 장난이나 거짓말을 하진 않을 겁니다. 교수님도 이제 저희랑 공범이니까요. 그렇죠?”
신재현이 눈을 찡긋했다.
교수는 공범이라는 말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럼 어차피 길어질 것 같으니 가볍게 다과라도 드시면서 들으세요.”
신재현은 책상을 갖고 와 붙이더니 한쪽에 마련되어 있던 다과를 가져와 늘어놓았다.
그 양이 상당해서 과장 하나가 혀를 내둘렀다.
“신 팀장, 이 정도면 아주 작정한 건데요.”
“어차피 오전 내내 징계위원회로 시간 때워야 하잖습니까. 할 일도 없는데요.”
“그렇게 길게 시간 빼앗아도 되겠습니까?”
“아이고, 교수님 때문이 아닙니다. 꽤 심각한 논의가 매우 격렬하게 오간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오전 내내 회의하는 꼴을 보면 징계 결과가 성에 안 차도 위에서 그냥 넘어가 주지 않겠냐는 계산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점심때까지는 시간을 끌기로 되어 있어요.”
과장이 교수를 살살 달랬다.
그 사이 신재현은 포트에 뜨거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정수기 있는데 포트까지 가져왔어?”
“청장님이 따로 챙겨주신 거거든요. 오래 갇혀 있을 거면 먹을 거라도 먹어야 한다면서요. 아, 정 심심하면 연락하라십니다. 결재서류 넣어준다고.”
“청장님도 참 무서운 말씀을 하신다니까. 우리가 심심할 리가 없죠. 안 그렇습니까, 국장님?”
“그거 의외로 농담 아닐 수도 있어요. 청장님은 진지한 얼굴로 말씀하시면 진담과 농담이 잘 구분이 안 된다니까요.”
물을 끓이며 차를 준비하던 신재현이 끼어들었다.
“아, 구분법 제가 알려드릴게요. 의외로 쉬워요. 청장님이 눈썹 꿈틀하면서 대화 상대방 반응을 살피면 농담입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대…… 이래서 심복인가.”
“이런 거 보면 청장님이 부럽네요. 의중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부하직원이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니까 청장까지 가셨지.”
공무원들의 대화가 왁자지껄하게 이어졌다.
교수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나름의 배려였다.
“자자, 일단 따뜻한 차 드세요. 교수님은 어떤 걸 드릴까요? 커피, 녹차, 율무차, 생강차 있습니다.”
“아, 생강차 하겠습니다.”
“그래도 외부위원이 교수님이셔서 다행입니다. 꼼짝없이 몇 시간을 쓸모 없는 문답만 해야 하나 싶었네요.”
“징계, 정말 받는 겁니까?”
교수의 걱정 섞인 목소리에 신재현이 물을 붓던 손을 우뚝 멈췄다.
“교수님, 국세청에서는 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컵에 마저 물을 붓고 교수 앞에 내민 후, 신재현은 초코칩 쿠키 하나를 까 우적우적 씹었다.
“징계위원회에서 내리는 징계는 크게 여섯 가지잖습니까. 파면, 해임, 강등, 정직, 감봉, 견책이요. 여의도 쪽에서는 무조건 파면, 해임, 강등, 정직 넷 중 하나는 하라고 압박이 왔답니다. 청장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구요.”
교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사이 국장과 과장들은 편안하게 저마다 과자를 골라 들었다.
밥 먹기 전에 과자로 배 채우면 안 된다느니 하는 아저씨들다운 이야기와 함께였다.
“팀장님. 그러면 못 해도 정직은 시키라는 표시나 다름이 없잖습니까.”
“그나마도 국민 여론을 의식해서 정직을 넣어준 겁니다. 이번에는 그만큼 여의도에서 화가 많이 났어요. 직접적으로 국세청에 연락이 올 정도로요.”
국장이 딸기맛 파이에 어울리는 차를 고르느라 고심하며 거들었다.
그는 녹차와 율무차 중에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국 녹차를 골랐다.
분명히 심각한 상황인데 여유로워 보이는 공무원의 모습에 교수는 정신이 없었다.
“그럼 가장 낮게 때려도 정직 아닙니까! 그냥 조용히 끝낼 수는 없잖아요.”
“그들은 어떤 사유로든 제가 국세청 주요 업무에서 손을 떼고 눈앞에서 사라져주길 원할 겁니다. 그러니 소원대로 해줄 거예요. 징계위에서는 좌천으로 결론을 내려주시면 됩니다.”
원래라면 외부위원 보기에는 적당히 토론하는 척하면서 좌천으로 유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왕 교수를 끌어들이기로 했으니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걸로 저들이 만족하겠습니까?”
“여기서 좌천이라 함은 제가 아예 세무직 조사업무에서 손을 뗀다는 소립니다. 저는 제주도 국세공무원교육원으로 갑니다. 가서 뭘 할지는 모르겠는데 뭐 안 되면 사감이라도 시켜주겠죠. 이거 말고도 뭔가 먹힐 만한 딜을 하실 생각인 것 같은데 이건 내부정보라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이 정도면 이해가 되실까요?”
신재현은 밝게 대답했지만 교수의 속은 타들어 갔다.
교수가 생각하기에 지금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 이후로도 신재현이 무언가 설명을 더 이어갔지만 교수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설명이 끝나자 교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재현은 교수가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감사 인사를 전했지만 실상 교수가 품은 각오는 달랐다.
교수는 지금이 움직여야 할 때라고 여겼다.
-타다닥, 타닥.
예정된 시각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교수는 항상 들고 다니는 노트북을 꺼내 열정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교수가 일이라도 한다고 생각했는지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심지어 따로 책상을 주고 공무원들은 조용조용하게 목소리를 낮춰 대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수가 쓰는 것은 강의 준비도, 논문이나 연구도 아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정의로운 국세공무원 신재현의 징계를 막아주세요.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으로 청원글을 적어 내려갔다.
평생을 연구에 바쳐 오면서 갈고닦은 필력이 새하얀 인터넷 창 위에서 펼쳐졌다.
논문을 쓸 때에 비견할 만큼 엄청난 집중력이었다.
육하원칙에 맞추어 사건 배경과 주장을 논리적으로,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쓴 글이었지만 읽을수록 문장에서 현기가 느껴졌다.
‘공무원은 청원글 올리긴 어려우니까. 이 역할은 내가 해드리겠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쓴 장문의 청원글이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청와대 홈페이지에 등재되었다.
***
모두가 예상했듯 교수는 1층을 나서자마자 기자들에게 붙잡혔다.
“징계위원회는 어떠셨습니까? 결과는 언제쯤 발표될 예정입니까?”
“꽤 복잡한 사안이라 오랜 시간 검토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말씀드리긴 어렵고 국세청 측의 발표를 기다려주시면 되겠습니다. 다만, 민감하고 복잡한 사안인 만큼 심혈을 기울여 검토했으며 꽤 격론이 오간 건 확실합니다.”
“격론이요?”
“예. 징계 수위도 생각보다 좀 높습니다. 공무원 사회가 원래 절차와 질서를 중시하긴 합니다만, 저로서는 이렇게까지 갈 문제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교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표정을 굳혔다.
연기와는 인연이 없던 사람인지라 이것이 최대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기자들은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긴장한 것이라고 생각한 데다, 교수의 발언이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교수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그 순간에도, 빠른 사람들은 즉석에서 노트북으로 기사를 작성해 송고했다.
[속보] 신재현 징계 수위 높아
[속보] 서울지방국세청 징계위원회 참여 외부위원, 징계 수위에 불만 표출
‘강의실에 서는 거랑은 느낌이 다르네요. TV에서 그 청년이 하는 걸 봤을 땐 쉬워 보였는데.’
교수는 긴장으로 말이 꼬이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위원회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청원글에 동의도 했습니다. 이건 대통령님이 대답을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그 말을 끝으로 교수는 서울청을 떠났다.
“청원?”
“청원 올라왔나 보네. 하긴, 난리니까 올라갈 만하지.”
교수가 슬쩍 흘린 ‘청원글’이라는 말은 금방 화제로 떠올랐다.
기자의 손과 입을 통해 기사화되면서 청원의 존재도 일반 여론에 퍼졌다.
교수의 청원글은 사전에 논의된 것이 아니라 교수 혼자의 독단이었지만 청장실에 모인 민치호와 이선균, 그리고 신재현은 바로 깨달았다.
이건 이용해야 한다고.
공무원인 이쪽의 입장을 배려해서 일부러 알려주지 않고 올린 교수가 마련해준 절호의 기회다.
청원의 동의수가 8천 명을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때, 국세청에서 공식적으로 신재현의 징계를 발표했다.
제주도로 즉시 이동하며 기한은 일주일.
거기에 나학진 기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유배’라는 자극적인 단어가 들어간 기사를 쓰면서 여론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그 기사에는 신재현뿐 아니라 그 팀원의 처우가 적혀져 있었다.
서울청의 특수조사 2팀 팀원 네 명은 경기도나 대전 등의 세무서로 이동할 것이라고.
서울청장 또한 부임 3달 만에 서울청에서 물러나게 될 거란 기사였다.
이것은 단숨에 여론에 불을 붙였고 청원은 단 사흘 만에 20만을 넘겼다.
엄청난 속도였다.
이제 발에 불이 떨어진 것은 정치권이었다.
“이,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왜 이렇게 들고 일어나죠?”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뭔가가 잘못됐습니다. 저희 계산으로는 이렇게까지 난리 날 일은 아니었어요.”
“국세청에선 해임, 파면은 당연히 안 할 테고 분명히 강등이나 정직으로 마무리할 거라는 게 우리 쪽 예상 아니었습니까? 근데 겨우 좌천으로 끝내놓고 이 난리라니!”
“아무리 봐도 우리가 손해예요! 이렇게 극렬한 반응이 나올 것 같았으면 차라리 안 건드는 게 나았습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여야가 합이 맞은 건 오랜만인데, 이 기회에 싹을 자르는 게 옳은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나중에 어떻게 감당할 작정입니까!”
잘했다, 못했다고 여야가 다툴 때 정치판을 뒤흔드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전직 국세청장, 국회에 출사표 던지다]
[전 국세청장 정상훈, 신당 창당 선언]
국세청장 직함을 끝으로 공직을 은퇴한 정상훈이 여의도 입성을 선언한 것이다.
게다가 신당 창당.
정치를 좀 해본 사람도 어렵다는 신당을 아직 당선도 되지 않은 사람이 입에 담은 것이다.
원래도 청장 시절부터 ‘국세청장님 여의도 가시려고 저러나?’ 하는 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
타이밍을 노리다가 딱 봐도 국세청에 쏠린 인기에 좀 편승해 보려는 노림수가 보였다.
그러나 정상훈 전 청장도 무조건 자신이 꿀만 빨겠다는 생각으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내가 후배들 길은 못 열어줘도 잠깐 방패는 해주마. 여론 모아줄 테니까 버텨 봐라!’
전 청장의 지원과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운 동안, 신재현은 조용히 서울청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그에게 새로 맡겨진 사건은 없었다.
맡았던 것도 이미 다 정리했다.
남은 건 사적인 물품 정리와 인사뿐이었다.
“팀장님 정말 가시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에요. 마음 같아서는 1인 시위라도 나가고 싶어요.”
“팀장님이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청장님이 이러실 수는 없는 거예요!”
인사차 들린 조사과에서는 분노한 직원들이 이번 국세청의 처사를 성토했다.
일반 직원에게는 자세한 사정까지는 알려주지 않았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청장은 차라리 자신들이 욕먹는 게 낫다며 방치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걱정 마세요. 저 이렇게 끝날 사람 아닙니다. 나중에 돌아오면 꼭 아는 척해주셔야 합니다.”
“당연하죠! 꼭 오셔야 해요!”
인사하러 각국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신재현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렸다.
“너무 많이 받았는데…….”
초콜릿 하나, 주스 하나.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한 손에 들기도 힘들어지자 어떤 직원이 쇼핑백에 담아주었다.
그런 식으로 받은 선물이 자그마한 쇼핑백에 가득이었다.
‘무슨 간식 수금하러 다니는 것 같네. 이러고 다니긴 좀 그런데.’
신재현은 특조팀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단발머리의 한 여성이 자신의 사무실 앞에 침울한 얼굴로 등을 기대고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 권 팀장님!”
괜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권현아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지금 그 상황에 웃음이 나와요?”
어쩐지 권현아는 화를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