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징계위원회 (1)
서울지방국세청의 분위기가 초상이라도 난 것처럼 조용했다.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아 아침부터 내내 펜만 딸깍거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세금을 검산하다 틀려서 다시 처음부터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참고로 이 직원은 똑같은 세금을 벌써 6번째 계산하고 있었다.
“아악! 또 틀렸다!”
“이번엔 뭔데요.”
“세액공제까지 잘 내려왔는데 MC 눌러 버렸어요.”
계산기에 붙어 있는 메모리 기능에서 기록된 숫자를 지웠다는 뜻이다.
저 말인즉슨, 저장된 숫자가 지워졌으니 다시 처음부터 두드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걸 7번이나 두드리네. 생애 처음이다…….”
“생각이 다른 데에 가 있으시니까 그렇죠. 그냥 저처럼 오전 업무는 포기하시죠.”
“안 돼요. 이거 제척기간 얼마 안 남았단 말이에요. 오늘 오전에 고지서 넘겨야 발급이 되죠.”
“그럼 빡 집중해서 한 번에 빡 끝내세요. 이러다 열 번 채우겠네.”
성실납세국의 직원들은 저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은 아니다.
위층에서 열리는 징계위원회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국장님이 위원장님이시니까 별일 없겠죠?”
6급 이하의 공무원은 각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그 구성원은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지만 보통 위원장은 성실납세국장이 맡는 것이 관례였다.
그나마 그것이 이들에게는 위안이었다.
“그렇긴 한데 워낙에 윗동네가 난리라잖아요. 대학교 동기 중에 기재부 들어간 애가 있는데 위쪽은 아주 살얼음판이래요. 정말 너무 티 나게 행동해서 더 어이가 없을 지경이라는데. 국회에서 비공식적으로 청와대 방문해서 항의할 정도면 말 다 했죠?”
“나 진짜 어이가 없네. 일을 제대로 해도 지랄이야. 국회 그거 그냥 확 다 터뜨렸으면 좋겠다.”
“그러다 징계 먹죠. 잘해도 징계받는 세상인데.”
직원들이 다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남의 불행은 팝콘과 함께 재미로 구경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신재현의 경우만은 달랐다.
세무공무원들에게 있어 신재현이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때문에 아무 상관 없는 남의 일인데도 이렇듯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신재현이 끼친 영향력은 그만큼 지대했다.
자기 보신만 일삼는 무사안일주의에게는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일이 지긋지긋하다며 그만둘까 고민하던 사람에게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그 외에도 신재현을 보고 자극을 받아 나름의 성과를 올린 사람, 1년을 넘게 끌어 담당자까지 바뀐 건을 드디어 해결한 사람 등.
공무원은 결속력이 단단하다고는 하지만 이들에게 신재현은 의미가 달랐다.
어쩌면 자신들은 국세청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세상은 이렇게 조금씩 바뀌는 게 아닐까 하는 희망이자 상징이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항상 선봉에 앞장섰으며 이들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지만 누구보다 먼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가끔 식당이나 복도에서 마주치면 반갑기도 했다.
햇빛을 보지 못해 하얗게 바랜 얼굴에 퀭한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오며 가며 초콜릿이나 주스를 건네주면 당황하면서 건네받는 모습이 동생 같았고, 미안해하며 조심스럽게 사무실을 열고 들어와 조사 자료를 넘길 때면 귀여웠다.
떨지도 않고 탈세범 앞에서 호통을 칠 때면 든든했고 떨지도 않고 기자들 앞에 서는 모습을 보면 대견했다.
이 건물에서 일하면서 신재현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는 1년도 되지 않아 서울청에서 빠지려야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국장님이 신 팀장님을 얼마나 애지중지하시는지 잘 알잖아요. 잘 될 거예요.”
“근데 징계위 구성원 중에 외부인도 있어서…….”
공정성을 위해 공무원이 아닌 외부관계자를 구성원에 넣는 것이 규정이었다.
직원들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잘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경력 얼마 되지도 않아서 징계위라니, 본인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청장님도 국장에서 청장되신 지 얼마 안 돼서 이런 일 터졌으니 고심이 많으실 거예요. 그래도 청장님 왼팔이니까 어떻게든 해주시겠죠.”
그리고 이들이 자기 일처럼 걱정하는 장본인, 신재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면.
“어서 들어오세요. 바쁘신데 저 때문에 괜히 죄송합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매우 평온하고 홀가분한 얼굴로 징계위원회 참석자들의 안내를 하고 있었다.
***
징계위원회 외부위원으로서 초대받은 가문대학교 회계학과의 교수는 서울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신재현과는 일전에 아주 잠깐 캠퍼스에서 만난 적이 있다.
강의 때문에 금방 헤어져야 했던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면 휴강하고 신재현과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신재현을 끌고 강의실로 들어갔던가.
아주 잠깐의 만남이 교수에게는 더 큰 갈증이 되었다.
강의에 들어가자마자 학부생들에게 자랑하고, 자신을 찾아온 졸업생들에게도 자랑했다.
신재현의 뉴스가 TV에서 흘러나오면 꼭 시청했고, 특히 최근의 활약을 보고는 무릎을 쳐 가며 즐겁게 지켜보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만나고 싶다,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예상보다 빨리, 그것도 안 좋은 형태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서울청 앞을 가득 메운 기자들을 보며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고 마음에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무거웠다.
이 징계위원회 자체가 잘못되었다.
교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 자리에 자신이 위원으로서 참가하게 된다니, 징계위에서 신재현의 얼굴을 어떻게 보란 말인가.
-끼익.
주차장에 차를 세운 교수는 한참을 내리지 못했다.
이런 비슷한 사례는 뉴스에서 익히 보았다.
불 끄려고 담을 부쉈다가 기물파손으로 고소당한 소방공무원. 클럽에서 난동부리는 놈을 잡아넣었다가 알고 보니 높으신 분 아드님이라 고소당한 경찰 등.
올바르게 살았는데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짓밟히는 사람들은 결국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꺾는다.
꿋꿋하게 사건을 파헤치다 파출소로 좌천당한 경찰이 결국 불의를 보고도 외면하는 비리 경찰이 되기도 했다.
징계위원회를 연 이상 신재현의 미래도 그렇겠지.
교수는 불합리함에 치를 떨었다.
원래라면 표창장을 줘도 시원찮을 판국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교수는 손을 불끈 쥐었다.
징계위원회에서 아무 일도 없으면 된다.
위원인 교수 자신에게도 징계 수위에 대한 의견을 낼 권리는 있으니까.
절대로 아무 일도 없게 할 것이다.
각오와 함께 교수는 굳은 발걸음으로 들어섰다.
그런 교수의 각오가 무색하게도 소회의실에서 손님맞이를 하던 신재현의 얼굴을 밝았다.
순간 공청회에 잘못 왔나 싶을 정도였다.
“시, 신재현 씨.”
“어! 교수님도 오셨네요! 아, 오늘 외부위원이 교수님이시구나! 얼른 들어오세요.”
징계받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밝은 모습이었다.
‘저런, 아예 포기했나 보구나. 아니면 공직에서 마음이 아예 떠났나. 이 기회에 우리 학교에 오거나 세무사 시험이라도 보는 게 더 이 청년의 미래를 위한 일인가…… 하지만 공직사회에는 암운이겠군.’
교수의 얼굴이 도리어 어두워졌다.
신재현의 안내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도착한 서울청의 세무공무원들이 몇이 모여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보통 징계위원회라면 말 그대로 누군가를 잡아 족치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작은 곳이든 큰 곳이든 징계위원회라면 무릇 늘어서 앉은 위원들과 한편에 죄인처럼 주눅 들어 있는 징계 대상자가 음침하고 무거운 침묵을 만들어내야 정상이다.
“외부위원이신 교수님이십니다. 이걸로 인원은 모두 모였네요. 슬슬 시작하시죠.”
“응? 벌써요? 밖에 기자들이 불을 켜고 있는데 시간 좀 더 끌지.”
“외부위원도 계시는데 말 좀 삼가십시오, 국장님.”
징계위에 참가한 공무원들은 슬금슬금 교수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이름과 소속을 말하세요.”
“서울지방국세청의 특수조사 2팀 팀장 신재현입니다. 직급은 7급 주사보입니다.”
“평소 청장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존경스러우며 따를 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팀장은 항상 아슬아슬한 일을 맡아 왔습니다. 일을 험하게 시켜서 청장님께 불만을 품은 적은 없나요?”
순간 교수가 욱했다.
이건 대놓고 안 좋은 대답을 듣고 싶어서 몰아가는 것 아닌가.
‘이런 질문은 잘 피해 가야 할 텐데.’
교수의 바람도 무색하게 신재현은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좀 그런 면은 있으시죠. 근데 계산이 빠르시잖습니까.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굴려보고 이게 저와 서울청뿐 아니라 다른 곳에 미칠 영향까지 생각하시는데 그건 배울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교수는 속으로 탄식을 내뱉으며 옆을 슬쩍 보았다.
징계위원들이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다시 질문이 이어졌다.
“청장님 인상이 좀 무섭죠?”
신재현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그걸 본 교수가 결국 참지 못하고 따졌다.
“지금 이게 안건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애초에 국세청은 생각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일 잘한다고 표창을 줘도 부족할 판국에 트집 잡아서 어떻게든 깎아내리려고 하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습니다! 권력자는 누르라고 하고 국세청은 나 몰라라 내치고, 이게 성역 없이 탈세를 잡아낸 직원에 대한 대우입니까!”
50대의 나이였지만 교수의 목소리에는 힘이 철철 넘쳤다.
회의실이 떠나가라 교수가 소리치자 잠시 멍하니 그에게 시선을 모았던 공무원들이 하나둘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와…… 시원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시네.”
“저걸 국회의원들이 들어야 하는데. 어휴, 그 중생들 진짜.”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우리 신 팀장이 이렇게 인망이 높을 줄이야. 신 팀장! 나는 감동했어요!”
국장과 과장 등, 징계위에 참석한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반응을 보이자 교수가 얼떨떨해했다.
“뭐, 뭡니까. 지금 놀리시는 겁니까?”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진지하게 대답하는 과장 옆에서 성실납세국장이 펜을 탁 내려놓았다.
“신 팀장님! 그런 얼굴 하니까 교수님이 오해하신 것 아닙니까!”
국장의 호통에 신재현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가 어깨가 들썩거리더니 곧 잇새로 잔뜩 억누른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흡, 푸흐흡. 아니, 거기서 청장님 인상에 대해 질문하시니까 그렇죠! 청장님이 저번에 술자리에서 자기 범죄자로 오해받은 적도 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도저히…… 푸흐흡, 참을 수가…….”
신재현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자 국장과 과장들도 참을 수 없었는지 피식거렸다.
이제 당황한 것은 교수였다.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공무원들은 웃음을 참아가며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국장이 아예 일어서더니 교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교수님께서 신재현 팀장을 위하실 줄 알았으면 미리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하는 건데 그랬습니다.”
“무슨…….”
“사실 이 징계위원회는 요식행위입니다. 신재현 팀장의 징계를 요구하며 압력을 넣은 저기 여의도 높으신 분들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죠. 저희가 무조건 무시하기에는 좀 위험한 수위의 협박이 들어와서요. 그럴 바엔 형식상 열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옆에서 과장이 거들었다.
“신 팀장이 7급이라 다행이었습니다. 5급 이상이면 인사혁신처에 불려가서 17명 이상의 위원에게 붙들릴 뻔했잖습니까.”
“교수님께는 면목 없습니다. 휘말리게 한 것도 모자라 속인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멍하니 국장과 신재현을 바라보던 교수는 이내 힘이 빠진 듯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허허, 솔직히 화는 납니다만 반대로 기쁘기도 합니다. 아니, 기쁜 마음이 더 큰 것 같네요. 암, 그렇죠. 국세청이 신 팀장을 버릴 리가 없죠. 저는 국세청을 믿었습니다. 이런 날엔 기뻐해야죠.”
화가 풀렸는지 교수가 입가에 안도의 미소를 띠자 신재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위원석으로 다가왔다.
“이제 정말 편하게 얘기해도 되겠네요. 교수님, 정말 반갑습니다. 변명을 좀 드리자면 외부위원분을 초빙하는 게 이 계획의 핵심이었습니다. 저희는 모두 공무원이니 밖에서 온 분의 증언이 필요했거든요. 분명 높으신 분들은 오늘의 징계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 거라면 이해합니다. 아니, 나도 돕겠습니다. 징계는 어차피 없을 것 같으니까요. 인터뷰에서 아주 객관적으로 검토했다고 잘 설명하겠습니다.”
“어, 아뇨. 징계는 있을 겁니다.”
“……예?”
교수가 다시 넋 나간 표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