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여야 모두까기 (3)
2022년 10월 말, 뉴스에는 땅에서 나온 주인 모를 돈 20억 원과 지하 경제에 대한 추측으로 온갖 보도가 나왔다.
전임 대통령 중 누군가가 비자금으로 묻어 놨다는 설에서부터 재벌가 사생아가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해 감춰 놨다는 설까지.
그야말로 추측의 파도였다.
-저희 취재진은 30년 전부터 이 동네에서 살아왔다는 어르신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이 지역은 호텔이 들어서기 전, 동네 유지의 소유였는데 약 10년 전 서울의 어느 자산가가 투자 명목으로 일대 전체를 사들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등기부 등본을 떼 보니 5명이 되는 사람이 지분을 나눠서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호텔과 주차장, 그리고 문제의 돈이 나온 나대지를 이 5명이 소유하고 호텔 측에 매달 대지 사용료를 받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다섯 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소지가 모두 불확실했기 때문입니다.
-호텔에서 매달 낸다는 사용료를 추적하면 땅의 주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우리는 취재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만나 본 이는 호텔의 관리 전반을 담당하던 지배인이었다. 그는 매달 토지 이용료를 현금으로 출금하여 대표에게 전달한다고 했다. 그러면 그 돈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는 호텔 대표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응, 그 돈 땅에 묻혀 있음.
└기사가 왜 쓰다 만 것 같냐? 대표 통장 열어 보면 되는 거 아님?
└멍청아, 현금으로 받아서 지 통장에 넣었겠냐? 내 생각에도 비자금이나 뇌물로 쓰였을 것 같다.
└검찰에서 수사 중인 거라 자료 입수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일단 기다려봐야 할 듯.
└아, 내가 먼저 가서 팠었어야 했는데. 오늘부터 전국의 주차장 다 뒤지고 다닌다.
└나 저 근처 사는데 진짜 후회 중이다. 가서 파 볼걸. 20억 꿀꺽인데.
└그래서 20억 주인 누구임? 아깝지도 않냐? 빨리 나와서 가져가라.
└저걸 미쳤다고 가져오냐? 드러난 게 20억이면 발견 못 한 게 한 100억쯤 되겠네. 안 되겠다, 굴삭기 사러 간다.
당연하게도 20억의 주인과 행방, 그리고 지금도 조사 중인 수많은 지하 경제 페이퍼 컴퍼니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렸다.
신재현이 혹시 또 조사하다 10억 파오는 거 아니냐는 농담도 종종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11월 초가 되자마자 돈세탁 루트와 그 주인에 대해 추측하던 보도는 귀신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미 게재되었던 기사마저 깔끔하게 삭제된 상황이었다.
돈세탁, 20억, 땅에서 돈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어디 어디에서 현금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성 보도만이 떠올랐다.
댓글에 이 돈이 누구의 것이라며 추리를 펼치던 사람들은 ‘명예훼손 등 운영정책에 의하여 삭제된 댓글입니다’라는 공지사항만 봐야 했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기사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사가 사라진다고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놓고 묻으려는 기미가 보이자 사람들의 반응이 더욱 뜨거워졌다.
온갖 커뮤니티에 삭제된 기사들의 흔적이 올라왔고 댓글에 추리가 가열차게 진행되었다.
-그것을 알고 싶다에서 방송 안 하냐? 나 제보할 거 있는데.
-뭐임? 거기서 일했음?
-ㄴㄴ 그런 건 아니고 명동에서 일했음.
-명동이 뭔데.
-지하 경제 하면 명동이지. 사채업 좀 하셨나 보네.
익명의 힘을 빌려 그럴듯하게 썰을 푸는 사람도 있었다.
-저거 뉴스에는 수법 자세히 소개 안 됐네. 따라 할까 봐 그런가? 호텔은 손망실 처리하기도 쉽고 가짜 수주 넣기도 쉬움. 봐 봐, 침대 하나 부서졌다고 하고 손망실 처리한 담에 잘 아는 가구점에서 하나 사면 500만 원 꿀꺽. 화장실에서 물 샌다고 시공 하나 치면 공사비 천만 원 꿀꺽. 나간 흔적은 있는데 돈은 실제로 안 나가잖아. 비자금 완성 짜잔!
-???침대를 사서 들여 놨는데 왜 500만 원 꿀꺽이라는 거임? 침대는 어디로 가고?
-윗댓 아는 척만 하지 말고 자세히 설명 좀 해 줘라. 저런 경우엔 진짜 침대를 주문한 게 아니라 가짜로 주문한 척만 한 거임. 가구점도 한패고. 그러면 호텔은 통장에서 500만 원 합법적으로 뺄 수 있고, 가구점은 돈 들어온 흔적만 적당히 만들면 됨.
-와…… 대충 알겠다. (이해 못 했다는 콘)
-저거 호텔 아니라 다른 업종이어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냐?
-근데 저게 일반인이 가능해? 저 돈 만들어서 뭐 해?
-뭐 하긴 뭐 하냐. 뽀찌도 좀 찔러 주고! 조폭도 좀 거느리고! 마, 사업하는 데 기름칠도 좀 하고 그러는 거지!
-그럼 뒤에 누가 있다는 거네?
-지금 국세청이랑 검찰청이랑 손잡고 오지게 치잖아. 솔직히 나는 엄청 위험해 보임. 걔네 언제 자살 당해도 이상할 거 없음. 당장 내일 ‘신재현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이라는 기사 떠도 고개 끄덕끄덕할 듯.
-진짜 목숨 걸고 일하는 거 아니냐? 대충 기사 보니까 호텔만 밝힌 것도 아님. 거기서 돈 나와서 제일 관심 많이 받은 것뿐이지. 지금 한 10개도 넘게 치지 않았냐? 분위기 보니까 벼르고 벼르다가 작정하고 조져 버리는 것 같던데?
-국세청이나 세무서에서 일하는 공무원 없냐? 내부 분위기 좀 들려줘.
-나 세무서에서 일하는데 다들 할 말 잃음. 어려서 겁이 없는 건지 언론 좀 타니까 간이 부은 건지 모르겠음. 쟤 국세청 오래 일하기 싫은가 봄.
-에이, 그래도 어떻게 공무원한테 압박을 줌? 신재현 신변에 무슨 일 생기면 바로 기사 뜨고 경찰 조사 들어갈 텐데.
-윗댓 ㅈㄴ 머리 꽃밭이라 할 말이 없다. 인감도장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줄 듯ㅋㅋ 맘먹고 조지면 못 조지는 공무원 없다. 지금까지는 걍 긁어 부스럼 될까 봐 냅둔 거지. 목까지 물려고 덤벼드는데 높으신 분들이 가만있겠냐? 신재현은 좀 오래 버티면서 입지 키워서 구린 놈들 쳐주길 바랐는데 이번엔 좀 오바한 듯.
-그럼 비자금 주인이 ㄹㅇ 높으신 분들 맞음?
-그럼 누구겠냐?????
정치에 관심 없는 맘카페나 마이너 카페까지 사건 요약본이 올라갈 정도로 뜨거운 감자였다.
그 후로 올라오는 기사는 무미건조한 어투로 사실만을 전달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담담했으나 커뮤니티에는 온종일 관련 정보로 도배가 되었다.
모두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눈 가리고 아웅 상태가 지속하였다.
그러는 사이 국세청에서는 한 통의 공문이 내려왔다.
-징계위원회
윗선의 압력이 드디어 들어온 것이다.
***
10월 말의 신재현을 단 한마디로 설명하라면 단언컨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지금까지 용산세무서, 삼성세무서 그리고 서울지방국세청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거물을 잡아 왔지만, 이번에는 정말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소문이 돌았다.
-신재현 팀장님 저래도 되나요? 혹시 로또 1등 당첨되셨대요? 아니면 나을 수 없는 중병이라도 걸리셨나?
-아무리 엿 같아도 몇 년만 더 참으시지…….
-국세청의 저승사자? 대체 누가 그런 별명 붙인 거예요? 날아다니는 작두, 달리는 폭주 기관차, 그 어떤 수식어도 부족하다!
-혹시 국세청장님이 서울청에 계실 때 밉보였나? 국세청장님 취임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옷 벗기려고 작정한 것 같은데요.
신재현은 정말 평소 살생부라도 만들어 두었던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칼날을 휘둘렀다.
그런데 또 그것이 하나같이 돈세탁 루트여서 경악스러웠다.
이쯤 되면 어떤 제보를 받은 것 아니냐는 말도 돌았다.
세무직 공무원들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지켜보았지만 역시나 결과는 그들의 걱정대로였다.
징계위원회가 소집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마자 청 내에는 어두운 분위기가 침잠했다.
윗선에서 벼르고 있다는 둥, 곧 신재현이 최고위 수준의 징계를 받을 거라는 둥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도 희한한 것은 정작 신재현과 청장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는 것이었다.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아니, 예상은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난리 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지만 직원들이 생각하기에 저렇게 침착할 일도 아니었다.
최소한 아는 인맥을 총동원하여 줄을 대고, 연일 비상대책회의를 열어야 옳았다.
신재현 혼자 징계를 먹는다고 끝날 일도 아니었다.
이번 일에 가담한 청장급 인사들도 곱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재현 팀은 매우 조용했다.
마치 속세와 분리된 별세계를 보는 기분이었다.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직원들이 오히려 황당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렇게 당사자 빼고 모두 초조해하는 시간이 흐르고 징계위원회 바로 전날, 신재현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서울청 직원들은 이것이 노림수라고 생각했다.
마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태이니 징계위원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리면 여론이 들끓을 것이다.
그러면 징계위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부담을 느끼겠지.
신재현의 목을 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여론의 반향을 보면 쉽사리 손대지 못할 것이다.
서울청의 세무공무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편 서울청장의 노림수에 감탄했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 선 신재현은 기계적인 어조로 담담하게 보고하듯 그간의 성과를 읊기만 했다.
“저희 서울지방국세청의 특수조사 2팀은 두 가지 조사를 동시에 진행하였습니다. 첫째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세무조사를 받지 않으신 분들을 위주로 진행한 전수조사입니다.”
말이야 ‘단 한 번도 세무조사를 받지 않으신 분들’이라고 칭했지만 그것이 누구를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공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국회의원 자녀를 타겟팅 했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번 조사는 어느 정도 위험성을 감수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총 23개의 법인과 28명의 개인을 조사했으며 다음 주 내로 고지서가 발부될 예정입니다. 조사는 저희 팀만 참여한 것은 아니고, 서울청 성실납세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또한 출석 요청에 적극적으로 따라주시고 저희 조사에 성실하게 임해주신 납세자분들 덕분에 한층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겪어본 세무조사 중에서 가장 질서 있고 모범적인 납세자분들이었습니다. 법인, 개인 합쳐서 51업체나 되는 분들을 이렇게 단기간에 조사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성실납세국의 지원이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납세자분들의 시민의식이 매우 높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신재현은 카메라 앞에 90도 각도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손에 대본을 든 것도 아니었지만 신재현의 기자회견은 물 흐르듯 흘렀다.
보통 국세청 청장이 인터뷰를 해도 저렇게 긴장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신재현이 하도 카메라를 많이 접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신재현은 인사를 마치고 다시 담담한 어조로 성과 보고를 이어갔다.
“두 번째로 저는 서울중앙지검의 지현석 검사실과 협력하여 지하 경제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조사 대상의 특수성 때문에 미리 알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과정에서 총 26군데의 돈세탁 루트와 페이퍼 컴퍼니 등을 찾아내었습니다. 이 업체들은 탈세 부분만 저희 서울청에서 담당하고 나머지 혐의 및 자세한 조사는 서울지검에서 담당할 것입니다.”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성적이다.
지하 경제가 넓고 깊은 건 사실이지만 이건 정말 작정하고 캤다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느껴질 것이었다.
무미건조한 보고 형식의 어투가 오히려 그것이 신뢰감을 형성했다.
대대적으로 성과를 선전할 만한 일이었지만 반대로 굳이 서울청에서 자랑하지 않아도 누구나 그 성과를 인정할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면에 기자들은 의문을 품었다.
징계위원회가 열린다던데, 그것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뿐 아니라 요즘 공공연하게 느껴지는 압력에 대한 암시도 없었다.
기자회견을 자처한 이유가 여론전을 위해서가 아니었단 말인가.
정말 순수하게 경과 브리핑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국 참지 못한 기자 하나가 물었다.
“징계위원회가 소집된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이것은 거의 기자가 자리를 깔아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보면 신재현을 안타깝게 여기는 기자의 사심이 담긴 질문이기도 했다.
지금이 기회이니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대놓고 마이크를 넘긴 것이다.
그러나 신재현은 마이크를 받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아닌 사적인 발언이라 생각한 기자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저는 최선을 다했고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것은 언뜻 만사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설마 신재현은 공무원 생활에서 마음을 접은 게 아닐까?’
‘생각보다 더 큰 압력이 들어온 게 분명하다!’
‘대한민국이 인재를 놓치는구나!’
기자들의 탄식과 당혹을 뒤로 하고 신재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서울청 안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다음 날, 징계위원회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