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여야 모두까기 (2)
국회의원은 겸업을 할 수 없다.
회사를 경영할 수도 없고, 몇 가지 예외 말고는 어떤 직업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순수하게 의원 직함만 갖고 있는 의원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정치에는 돈이 들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4년마다 한 번씩 선거를 한다.
단순히 후보로 등록하는 데만 기탁금 1,500만 원이 필요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보 책자, 현수막, 유세차량, 선거 운동원 등 선거 캠프를 차리는 것은 돈이 든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나름 ‘정치’를 한다는 사람은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이 들었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조금만 눈을 돌리면 돈을 벌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다.
싸 들고 오는 ‘용돈’은 불안하니까 안 받는다고 치자.
까짓 거 눈 딱 감고 국회의원 업무 하면서 얻은 정보 한두 개만 이용하자, 이런 유혹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겸직 금지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 두면 되니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5선쯤 되고,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당의 중진 의원이 되면 이젠 나름의 돈 나올 구멍 한 두 개쯤은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곧 힘이니 여러 방법으로 검은 돈을 조달하고 굴렸다.
물론 모든 의원이 이런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의원들은 다들 시궁창에 발을 담가 본 사람들이었다.
검은돈의 향기에 취해 양심을 팔아 버린 인간들 말이다.
“대체 저놈들 목적이 뭐랍니까? 뭐 접촉해 온 거 없어요?”
밀실에 앉은 여당 의원들은 저마다 침음성을 흘리며 독한 술로 타는 목을 달랬다.
“대체 갑자기 왜 그 지랄들이랍니까? 뭐가 맘에 안 들어서? 우리는 같은 편 아니었습니까?”
여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당을 말한다.
웬만하면 현 정권과 뜻을 같이하고 정부의 정책을 지지했다.
현 정부가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곧 여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국세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무조건 편을 들었고, 신재현이 국회에서 버릇없이 굴었어도 이해했다.
굳이 말하자면 ‘쟤가 날뛸수록 우리 여당의 이익이다’라는 생각이 강했다.
더군다나 제1야당부터 제3야당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의원들이 나자빠지는데 이 정도면 남는 장사였다.
여당 국회의원들의 자녀가 탈세 혐의로 불려가긴 했지만 참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차피 다 공평하게 불려가는 거였으니까.
이 기회에 신재현에게 조사받았다는 것을 면죄부로 삼아 깨끗한 이미지로 탈바꿈하자는 당론도 있었다.
혼자 조사받으면 이슈가 되지만, 다른 사람들 틈에 껴서 조사를 받으면 어느 정도 불법의 이미지가 희석된다.
-선거도 코앞이니 자극하지 말자.
-신재현이 날뛰어 봐야 정부의 공무원이다. 여당에서 그 인기나 빨아먹으면 그만이다.
이랬던 당론이 단 며칠 만에 바뀌었다.
“저거 진짜 미친놈 아닙니까? 왜 같은 편을 때려요? 성역 없는 조사다, 여야 가리지 않는다, 이런 거 다 기자들 앞에서 일부러 하는 말 아니었어요?”
“제가 듣기로 야당 쪽 루트도 꽤 많이 잘려나갔다고 들었습니다. 그쪽 베어내다가 실수로 우리 쪽도 잘라낸 것 아닐까요? 지하 경제다 보니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도 어렵잖아요.”
“아니,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많이 털렸어요. 지금 항구까지 급습당한 거 알죠?”
항구에는 손실 처리된 컨테이너들이 꽤 있었다.
하루에 오가는 컨테이너가 엄청나다 보니 수출입을 하다 보면 바다에 빠지고 가치가 훼손되는 컨테이너가 많다.
그걸 손망실 처리하고 돈세탁이나 비자금 조성에 이용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조사하기가 쉽느냐, 그건 또 아니다.
하루 수출입 양이 얼마인데 그걸 다 뒤지며, 장부와 일일이 비교하겠는가.
실무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진짜 이상하단 말이에요. 딱 짚어서 나온 것처럼 정확하게 루트만 털었다니까요?”
“이건 알고 나온 거 아닐까요?”
“어허, 어디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럼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겁니까!”
“아니, 그렇게까지 말한 건 아닙니다. 다만 상황이 수상하지 않습니까.”
“야당 쪽은 얼마나 잘려 나갔답니까?”
야당에서 여당으로 전향해 온 의원에게 시선이 쏠렸다.
야당 쪽에 인맥이 있다 보니 알음알음 야당의 정보를 빼 오던 4선의 의원이었다.
“집 나간 외인한테 그런 정보를 말해주겠습니까.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하동문이 대노했다고 합니다. 유진환 쪽 라인도 크게 흔들렸다던가.”
“유진환이면 하동문의 지낭 아닙니까! 뒤쪽 루트는 그놈이 꽉 잡고 야당 쪽 놈들한테 매달 기름칠하던 놈들인데! 유진환이 흔들릴 정도라고요?”
“제1야당이 그 정도면 손발이 잘렸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 실수가 맞나?”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의원 하나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렸잖습니까. 신재현 그놈은 우리 편이 아니라고. 그놈 끌어들이려다 피 본 놈이 어디 한둘입니까? 그놈은 한 점 더러움 없이 깨끗하고 고고한 놈이에요! 한쪽은 치고 한쪽은 봐준다? 허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의원님, 술이 과하신 것 같습니다.”
“과하긴 뭘요! 그놈은 우릴 노린 게 맞아요. 여야 가리지 않고 입에 칼 들고 날뛰는 거라고! 그놈한테 당하고 있으면서도 다들 모르겠습니까? 저건 진짜 미친놈이야! 가만히 놔두면 우리 턱밑에까지 칼을 들이댈 놈이라고요!”
술 취한 의원의 하소연은 곧 절규가 되었다.
그는 불과 3년 전 세운 페이퍼 컴퍼니를 적발당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울불이 가득찬 의원의 한탄에 밀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예전에 국회 견학 왔을 때, 국정감사에 출석했을 때. 그 말은 빈말이 아니었나 봅니다. 카메라 앞이라 젠체하는 줄 알았는데.”
50년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국회의원 앞에서 굴복하지 않은 자는 없었다.
사람은 자신이 겪어 본 것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국회의원들은 더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남의 집이 불타는 걸 구경하고 왔더니 우리 집이 불타는 꼴이었다.
“저렇게 앞뒤 분간 못 하고 날뛰면 윗선에서 알아서 막아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국정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고 국민 여론이 있어서 섣불리 명령을 내리면 역효과가 날 수 있어서 지켜보겠다고 하십니다. 어차피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겠다, 말년 편하게 보내고 싶다 이거겠죠.”
“집권 말기 편하게 보내고 싶으면 우리 여당을 보살펴야지! 혹시 세간의 소문대로 신재현 뒤에 대통령님이 있는 것 아닙니까?”
순식간에 의원들의 눈길이 싸늘해졌다.
“그건 너무 과한 추측이십니다. 그 가능성을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유가 없잖아요. 국정 지지율 오른다고 해서 연임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여야 둘 다 적으로 만들면 대통령이라고 후일이 편안하겠습니까? 바로 탄핵 들어갈 텐데.”
“역시 대통령님이 신재현을 부추긴다는 건 억측 같습니다. 성정이 우유부단하니 여론 눈치를 보는 거겠지요.”
“에잉, 말 잘 들을 줄 알고 대선 주자로 내보냈더니 그 성격이 오히려 독이 됩니다.”
의원들은 각자 생각에 잠겼다.
이제는 밀실에 모인 결과를 내야 할 때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결정합시다. 신재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장단점이 있겠죠. 이대로 놔두면 지지율은 올라갈 겁니다. 하지만 잃는 게 너무 많아요.”
“그놈의 지지율은 무슨! 우리 당 지지율이 아니라 그놈하고 국정 지지도만 올라가는데요! 그놈은 도를 넘었습니다! 이를 드러낸 개는 삶아 먹어야지요!”
“하지만 여론이 그의 편입니다. 우리가 개입한 게 알려지면 역풍이 불 겁니다.”
“곧 정기발령 아닙니까? 그때 지방으로 보내라고 합시다. 눈에서 멀리 치워 버려야 속이 편하겠습니다. 입으로만 짖던 것과는 다릅니다. 실제로 우리 팔을 물었어요. 그놈 때문에 날아간 돈이 얼마인지나 아십니까!”
“야당 쪽에서도 신재현을 날리려고 애를 쓸 겁니다. 거기에 조금 도움을 주는 선이라면 역풍은 크지 않을 거예요. 그놈이 날뛰고 있으니 어떻게든 엮어 넣을 재료는 있을 겁니다. 징계위원회 열라고 합시다.”
돈을 날린 사람이 많아서인지 의견은 하나같이 신재현을 쳐내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당론은 결정되었다.
그들은 이제 신재현이 끝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차기 대권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층 목소리를 낮춘 의원들의 눈에서 탐욕이 가득 흘렀다.
“차주혁 의원님도 이번에 꽤 잃으셨다면서요? 걱정입니다.”
“큰일이죠. 차주혁 의원님의 입지가 좁아지면 우리 당의 큰 손실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야당 쪽도 꽤 힘을 잃을 것 같다는 거죠.”
“우리 당의 명확한 대권 주자셨는데 이렇게 되면 당 차원의 경선이 필수겠군요. 그래야 차 의원님도 명분을 갖고 여당 지지자의 통합을 이뤄낼 것 아닙니까.”
남은 의원들은 차주혁과 당의 미래를 걱정하는 듯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여당이라고 다 차주혁을 밀어주는 것은 아니다.
차주혁이 굳건하게 다져놓은 철옹성 같은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한 이상, 대통령 한번 해보고 싶은 군소 후보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대통령이란 그만큼 가치 있는 자리였으니까.
“크흠. 일단 총선부터 준비하시죠.”
의원들의 말과 행동에서 숨길 수 없는 탐욕이 구질구질하게 흘러넘쳤다.
하동문 대 차주혁의 구도로 꽉 짜여 있던 정치판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난장판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 인정하듯 그 한가운데에는 한 명의 청년이 있었다.
***
-우리나라의 지하 경제는 이렇게도 어둡고 넓었나? 그 돈은 모두 흘러 어디로 가는가. 특집 보도기획 2부, 검은돈의 주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찍힌 문구가 유진환의 눈에 아른거렸다.
흔히 말과 글로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들 한다.
유진환은 이제껏 그 말을 보면 코웃음을 쳤지만, 지금은 그게 어떤 뜻인지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정말 글에 열기가 있어서 눈에 화상이라도 입은 듯 눈가에 글귀가 잔상처럼 남아 아른거렸다.
지금껏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은 수습조차 불가능했다.
“유 실장. 아니 유진환.”
앉지도 못한 채, 하동문 앞에 벌서듯 부동자세로 서 있던 유진환이 잔뜩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선생님.”
“너에게 실망할 날이 올 거란 생각은 안 해봤는데.”
순간 수치심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이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든데, 저 말 한마디만으로도 유진환의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겨 땅바닥에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너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나?”
“……예기치 못한 사태였습니다. 현재 상황은 최대한 수습하겠습니다. 언론사에 연락해서 추측성 보도는 자제하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순간 유진환의 눈앞에 불이 번쩍했다.
하동문의 손에 있던 찻잔이 유진환의 머리에 직격했다.
많이 던져 본 솜씨였다.
항상 점잖은 노신사의 모습을 보인 하동문이었기에 유진환은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었다.
하동문의 오른팔로서 처음 당해보는 취급이었다.
“움직인 놈이 주목을 받게 되는 예민한 시기야. 언론 놈들이 지금이야 입을 다물겠지만 속으로 뭐라 생각하겠어. 역시 그게 이 하동문이 것이 맞구나! 하동문이의 약점을 잡았구나, 하겠지! 그 약점은 네가 만들었고!”
“죄송합니다.”
“네가 신재현 그놈을 끌어들이겠다고 했을 때도 가만히 놔두었다. 네가 컨트롤 할 수 있다고 했으니 믿었어.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놈한테 당했지. 그놈보다 한 수 아래라는 걸 증명한 꼴이 아닌가.”
유진환은 이를 으득 갈았다.
흥미와 포섭의 대상이었던 신재현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의 트라우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수습은 내가 한다. 네가 그토록 원했던 신재현은 내가 직접 나서서 누를 거다. 너는 중앙 일에 신경 끄고 당분간 지방 쪽 최소한의 라인만 관리해.”
“제게 손을 떼라는 말씀이십니까? 단 한 번의 실수로…….”
“그 한 번의 실수가 우리를 위험에 빠뜨렸어.”
“대선이 1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도 제가 가장 적임이라는 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동문이 눈살을 찌푸렸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저 말이 맞지만 지금은 그래서 더더욱 싫었다.
유진환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거만해진 것 아닌가.
“내려가 있어.”
“선생님!”
“네가 그래서 그놈한테 진 거야! 내 오른팔이라는 놈이 이 무슨 추태냐! 찍소리도 못할 놈이 어디서 큰소리야! 꼴도 보기 싫으니 내려가 있으란 말이다!”
하동문이 이번에는 찻잔 받침을 집어 들었다.
유진환은 큰 충격을 받은 듯 우두커니 서 있다가 멍한 얼굴로 천천히 돌아섰다.
버리지 못하긴 하겠지만 이제 하동문 곁에 유진환이 설 자리는 없다.
그가 그동안 실컷 쓰고 버려왔던 부하A의 위치가 되는 것이다.
‘하동문이 청와대에 입성하면 내가 킹메이커가 되는 것이었는데.’
노력해서 복귀한다 해도 하동문이 이전처럼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 줄지도 의문이다.
유진환은 터덜터덜 하동문의 사무실을 떠났다.
여당과 야당, 그리고 언론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존재감을 무겁게 아로새긴 10월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