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48화 (248/500)

248화. 착수 (1)

시간을 돌려, 신재현이 검찰에 드나들며 지현석과 돈세탁 루트와 페이퍼 컴퍼니를 치려고 준비하고 있을 무렵.

신재현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던 것처럼 유진환 역시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목표로 하는 것을 향해서 체스를 두듯 한 수 한 수 움직였다.

다만 둘은 같으면서도 달랐다.

신재현은 스스로가 말이 되어 움직였으며 유진환은 타인을 소모했다.

타인이라 함은 단순히 남을 소모품 취급한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유진환이 소모하는 것은 그야말로 타인의 목숨 그 자체였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겁니까.”

유진환 건너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애원하듯 울먹였다.

남자의 이름은 방우명.

현직 국회의원의 회사를 굴리는 바지사장이었다.

방우명의 이름으로 세운 회사에 국회의원이 여러 방법으로 정보와 일감을 몰아주면 방우명은 그가 시키는 대로 회사를 굴렸다.

그러니 방우명은 이런 취급이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예?”

“사장님은 아직 사태 파악을 못 하셨나 보군요.”

유진환은 상대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손에서 펜을 굴리며 말했다.

“사장님이 국회의원의 동생을 등에 업고 더러운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신 건 의원님이 알고 동생분이 알며 제가 압니다. 그리고 곧 세상도 알게 되겠죠. 사람들은 사장님을 손가락질하고 사장님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잃게 될 겁니다. 돈, 명예, 그리고 가족.”

남자는 답답하다는 듯 침까지 튀겨가며 소리쳤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제가 무슨 권력을 이용해서 폭리라도 취한 것처럼 얘기하시는데, 저는 해달라는 대로 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고 일을 시키기에 했습니다. 사업체를 제 이름으로 해 뒀을 뿐이지 실상은 그 사람 거 아닙니까!”

“내민 손을 잡은 건 사장님이잖습니까. 그 이득을 얻은 것도 사장님이고요. 국회의원에게서 얻은 정보로 사욕을 취하셨으니 의원님께서는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

유진환의 말에 남자는 눈을 치켜떴다.

말투가 영 이상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바지사장일 뿐 명령을 듣고 돈 관리를 하는 금고지기에 불과했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의도해서 불법을 저지르고 국회의원을 꼬셔서 그를 이용한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설마…….’

방우명의 등골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살고 싶어 하는 본능이 방우명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도 더러운 짓에 손을 대면서 주위에서 나자빠지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위에서 필요 없다고 버림받고 위험하면 잘라내고.

지금 그에게 닥친 상황 역시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한마디 한마디조차 절대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된다.

“제, 제가 혹시 뭔가를 실수했습니까?”

“…….”

유진환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면서 쳐다보지도 않던 유진환이었다.

“저는 지금껏 제 것이 아닌 것에 손도 대지 않았고 언감생심 그런 마음을 품지도 않았으며 충성을 다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고요. 제가 뭔가를 잘못한 것이 있다면 벌을 주십시오. 떨궈내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제가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건 또 예상외네요. 두 눈 부릅뜨고 죽여라 살려라 덤빌 줄 알았는데.”

보통 팽 당할 것이라 느낀 개는 이빨을 드러낸다.

살기 위해 물어뜯으려 한다.

상대가 누군지 알면서도, 혼자 죽기 싫어서 상대에게 생채기라도 내려 한다.

그러나 방우명은 생각보다 머리 회전이 빨랐다.

‘이렇게 머리가 비상하고 알아서 기는 놈은 찾기 힘든데. 보통은 딴생각을 차기 마련이지.’

유진환도 인정했다.

평소라면 경고로 그치고 거두었을 것이다.

‘당신, 운이 없군.’

안타깝게도 유진환은 방우명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번 일에는 그가 적임이다.

이미 결정한 일이었다.

“상황파악도 빠르시고 머리도 잘 굴러가시고 자기 분수도 잘 아시고. 저는 그런 사람을 아주 좋아합니다.”

유진환의 말은 누가 봐도 아랫사람을 품평하는 말투였다.

그럼에도 방우명은 기뻐했다.

좋은 평가를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평소라면 방우명 사장님을 높게 평가하고 중히 썼을 겁니다. 평소라면요.”

“……예?”

이쯤에서 앞으로 열심히 해보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방우명은 불길함을 느꼈다.

식은땀이 관자놀이에 흘렀다.

“지금 꼭 두어야 하는 수가 있거든요. 방우명 사장님이 제격이고, 반드시 방우명 사장님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실장님, 부디 재고를…….”

“저는 사람은 무릇 각자 해당하는 위치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저는 체스를 두고 있어요. 저 멀리 있는 어떤 놈과 차근차근 한 수씩 두고 있죠. 그는 저와 비슷한 유형이라서 말이에요. 그가 초기에 폰을 전개하는 동안 저는 좀 과감한 수를 둬 보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게임은 수읽기도 중요하지만 상대 진영을 흔드는 게 좋잖아요?”

뚱딴지같은 소리였다.

방우명은 지금 유진환이 자기만 아는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경청했다.

“방우명 사장님이 능력 있고 똑똑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 회사 처음 설계한 게 저긴 하지만 이만큼 꾸려온 건 사장님이니까. 그래서 솔직히 아까운데 어쩔 수 없어요.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사장님은 영광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다른 놈들은 살은커녕 털끝 정도밖에 안 되는 놈들이니까. 제가 이렇게 말하는 건 흔치 않습니다.”

칭찬이지만 반갑지 않았다.

인정할 거면 살려 두고 써먹으면 될 것 아닌가.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아니, 의원님께서도 알고 계십니까? 저는 엄밀히 따지면 의원님의 사람입니다!”

“물론이죠. 사장님을 제게 내준 게 의원님이시니까.”

“말도 안 됩니다! 제 충성은 누구보다 의원님이 잘 알고 계십니다. 대체 왜!”

유진환은 그를 흘끗 보더니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의원님이 시킨 땅만 매입했어야죠. 개발 예정인 고속도로 바로 앞의 땅을 사장님의 아들 명의로 매입하셨더군요. 그것 때문에 덜미 잡히기 직전입니다.”

“예? 겨우 그것 때문에요?”

“겨우 그것 때문이 아니죠. 의원님은 나름의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의원님의 따님께서도 고속도로 근처 건물과 땅을 야금야금 매입하고 있었죠. 요즘 한창 국세청에서 국회의원 자녀의 탈세를 조사하고 있는 건 아시죠? 따님 역시 조사 대상에 오르셔서 대책을 세우는데 거기서 딱 사장님의 이름이 나오는 겁니다. 얼마나 놀라셨겠습니까? 거기서 연결 고리가 생기면 의원님의 소중한 루트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는 건데요.”

“국세청은 절대 모를 겁니다. 땅 주인을 하나하나 조사할 리가 없잖습니까. 실장님께서 너무 조심스러우신 겁니다!”

“사장님이 저보다 더 국세청을, 그 저승사자를 잘 압니까? 저라면 능히 연결 고리를 찾아냅니다. 더불어 의원님이 개발 예정인 고속도로 부지에 대한 정보를 이용했다는 것까지 찾아낼 수 있어요. 국세청의 괴물은 저와 비슷한 종족입니다. 아주 자그마한 선 하나로 출발해서 끝까지 올라갈 수 있죠. 그리고 사장님, 마음대로 회삿돈을 꺼내 쓰거나 유용한 적도 있으시더군요. 그 회사는 사장님의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절대 사장님의 돈이 아닙니다.”

“제가 조금 실수한 건 인정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저더러 다 뒤집어쓰라는 건 너무하십니다. 저는 많은 걸 알고 있어요. 절 그렇게 쉽게 잘라낼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유진환은 마지막 단계까지 왔음을 직감했다.

납득하지 못하고 덤벼드는 단계.

“유학 간 따님은 잘 계십니까?”

“그건 왜…….”

방우명이 국회의원의 돈임을 알면서도 슬쩍 빼돌린 이유.

그건 바로 미국에 유학 보낸 딸 때문이었다.

생활비에 학비,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아들의 교육비까지 대려면 등골이 휘청했다.

국회의원의 뒷주머니인 회사를 관리하는 대가로 꽤 많은 월급을 받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회삿돈에 손대고 의원이 던져준 정보를 슬그머니 이용해 이득을 보려 한 것이다.

어차피 콩고물에 불과한 걸 알고 있으니까.

“따님이 미국에서 그만 질 나쁜 친구와 어울리더군요. 약에도 손댔나 봅니다.”

“설마 당신 내 딸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가족을 건드리는데 가만있을 사람은 없다.

방우명이 경칭마저 잊은 채 소리치자 유진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손댈 것도 없이 이미 약쟁이던데요. 사장님의 약점을 찾다 보니 아주 좋은 게 걸리지 뭡니까.”

이제 유진환은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사장님이 하기 싫다면 안 하면 됩니다. 따님은 학교도 퇴학당하고 어느 뒷골목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할 겁니다. 안타깝게도 퇴학당한 충격에 실의에 빠져 마약을 과하게 먹는 거죠. 신문에는 어느 한국인 유학생의 일탈로 두세 줄 짤막하게 소개될 것이고, 우연히 그 기사를 본 사람은 너도나도 그 유학생에게 혀를 찰 겁니다. 부모의 등골이나 빼먹더니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고요.”

“이, 이 새끼가!”

“진정하시고 다른 경우도 들으셔야지요.”

방우명이 테이블을 뛰어넘을 듯 발을 올렸다가 멈칫했다.

유진환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펜으로 방우명을 가리켰다.

“하지만 만약 사장님이 희생하신다면 즉시 현금으로 10억을 드리겠습니다. 유학까지는 무리더라도 두 자녀분, 무사히 대학교는 마칠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사장님이 따로 챙겨둔 돈도 회수하지 않겠습니다. 그거면 아내분도 굶지는 않을 겁니다.”

두 개의 길을 보여주고 한쪽은 절벽을, 다른 한쪽은 살길을 보여 준다.

다만 그것은 방우명을 뺀 가족들이 살 길이었다.

둘 중 어느 쪽을 택하든 방우명에겐 지옥이 기다린다.

“개새끼…….”

“감사합니다. 그래서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까?”

부들거리며 주먹을 들었던 방우명이 이내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유진환은 옆에 있던 종이를 펜 끝으로 밀었다.

방우명이 뒤집어 보니 깔끔하게 타이핑된 유서였다.

“여기에 자필로 사인하시고 자살하십시오.”

“주, 죽으라고요?”

“아니면 따님이 죽습니다. 이 경우엔 사장님 손으로 따님을 죽인 거나 다름없겠군요.”

요리는 끝났다.

유진환은 방우명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것을 음미하듯 관찰했다.

저렇게 고민한다 해도 결국 답은 나와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람을 말처럼 움직이는 쾌감에 유진환이 애써 웃음을 참았다.

긴 고민 후 방우명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집어 들었다.

“주변을 정리할 시간은 드리겠습니다. 다만 국세청의 조사가 끝나기 전에 해결하셔야 합니다.”

방우명은 들은 체 만 체하며 사무실 문을 쾅 닫고 나갔다.

그로부터 며칠 후.

-어제 기승평 의원의 출석으로 화제가 되었던 서울지방국세청 앞에 나와 있습니다.

유진환은 하루 종일 서울청을 비추는 생방송을 틀어놓고 있었다.

곧 저 앞에서 무슨 파란이 일어날지를 생각하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부우웅.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핸드폰이 요란하게 떨며 기다리던 문자를 토해냈다.

[방우명. 완료.]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유진환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하도 반복해서 외우다시피 한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뚜르르.

무미건조한 통화대기음마저 아름다운 선율처럼 들렸다.

상대는 어떻게 나올까.

처음 겪는 일에 얼마나 당혹스러워할까.

그리고 언제쯤 자신 앞에 굴복할까.

-예, 여보세요.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유진환은 그간 수없이 연습했던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신재현 조사관님. 일전에 뵌 적 있던 유진환입니다. 오늘 사람 한 명이 죽었습니다. 조사관님과도 연관이 있지요. 곧 기사가 뜰 텐데 그 전에 조사관님과 뵙고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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