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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247화 (247/500)

247화. 많이도 해 먹었네 (2)

-찌르르.

풀숲에 모여 선 한 무리의 남자들이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발밑에 파헤쳐진 흙 사이로 두꺼운 비닐이 밟혔다.

수사관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 무슨 표식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전에 어디서 제보를 받은 것도 아니다.

조건은 똑같았으며 이들은 모두 같은 풍경을 보고 있었다.

적어도 수사관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 대체 어떻게…….”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신내림이라도 받은 건 아닐까.

수사관들의 머리에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정말 신내림이나 예언이라는 것이 세상에 있을 리는 없으니 보통 이런 경우 답은 둘 중 하나다.

미리 제보를 받았거나.

저들과 한패여서 정보를 알고 있었거나.

수사관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평소 이런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본다면?

당장 취조실 직행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콕 짚어서 돈을 캐내다니, 미리 알고 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럴 때는 의심자 목록에서 제외하고 헛발질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가장 먼저 잡아다 조사한다.

정말 내통자면 사건 해결이고, 틀렸다 해도 결백을 증명할 수 있으니 손해는 아니다.

그러나 수사관들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일단 신재현이 내통자라는 것보다 국회의원이 전 재산을 기부했다는 것이 더 현실성 있을 것이다.

게다가 발견 정황이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웠다.

정말 내통자라면 여기서 돈을 까보이지는 않았을 텐데.

행동에 앞뒤 맥락이 없다.

수사관들은 도저히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일단 검사님께 보고 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가까스로 한 수사관이 정신을 차렸다.

현재로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보고하고 지시를 받자.

수사관들이 뒤로 물러서자 신재현이 도로 흙을 덮기 시작했다.

“어어, 덮으십니까?”

“어차피 어딨는지 위치는 압니다. 혹시라도 위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수사관들이 흠칫하며 호텔을 올려다보았다.

사무실이야 고층에 있지는 않을 테지만 혹시라도 지나가다 보았을 수도 있다.

‘하, 프로라는 놈들이 이런 걸 생각 못 하고.’

수사관들이 속으로 자책했다.

그러나 갑자기 예고도 없이 돈다발이 후두둑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위치는 표시해 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 멀리서 보면 어딘지 모를 것 같은데.”

“제가 확실하게 알아요. 괜히 표식 남겼다가 의심받을 수도 있어요. 제가 이따 파 드리겠습니다.”

“네에.”

수사관들이 어안이벙벙한 얼굴로 물러나 도로 차에 올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게 호텔로 쳐들어가고 있었는데.

일이 꼬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들의 대표를 맡은 지현석의 심복, 김민호 수사관이 핸드폰을 들었다.

“검사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친 사람이라도 나왔습니까? 아니면 증거가 하나도 없이 깨끗하던가요?

검사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란 이런 거겠지.

김민호 수사관은 현 상황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심호흡한 후 있는 그대로 말했다.

“돈다발이 나왔습니다. 풀밭에서.”

-……얼마입니까?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일부분만 파 보고 급히 덮었습니다. 비닐의 크기를 보았을 때 꽤 될 것 같습니다.”

-호텔은 조사했습니까?

“아직입니다. 지시받고 들어가겠습니다.”

-눈치채기 전에 조사 먼저 끝냅시다. 파묻혀 있는 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감시 인원 남겨두고 올라가세요. 속전속결입니다. 상황 정리 후에 다시 연락하세요. 저도 지금 이쪽 정리부터 하겠습니다.

동시에 다른 곳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보니 지현석은 신중함을 선택했다.

전화를 끊은 김민호 수사관은 말을 아꼈다.

손짓으로 한 명을 가리키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상황을 파악한 수사관들이 말없이 내렸다.

주차장에서 대기하는 한 명을 제외한 이들이 모두 호텔에 발을 디뎠다.

바로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주차장 풀밭에는 돈다발, 그리고 의심스러운 호텔.

수사관들의 발걸음에는 아까보다 한층 더 무거운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왔습니다.”

1층 로비에 들어가자마자 한 명은 데스크를 맡고 나머지는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찰이요?”

“사무실 안내해주세요. 대표님이나 호텔매니저, 아니면 다른 책임자. 있는 대로 모두 불러주시고요.”

“네, 네. 알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데스크 직원이 급히 책임자를 부르는 사이 수사관들이 2층으로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엇, 잠시만요!”

“아뇨. 계속 전화하세요. 영장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이에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아시죠?”

데스크 직원이 붙잡았지만 1층에 남은 수사관이 막았다.

데스크 직원이 눈치를 보며 전화를 걸고 수사관이 들러붙어 누가 오가냐는 둥, 책임자가 누구냐는 둥 캐내는 사이 신재현이 2층으로 올라섰다.

2층에는 사무실을 비롯해 호텔 업무에 쓰는 관리실들이 줄지어 있었다.

수사관들은 각 방에 귀를 대 보더니 어느 한 곳의 방문에 멈춰 서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는 분명히 화를 내고 있었다.

-뭐? 검찰? 하씨, 잠깐만 붙잡고 있어. 일단 끊어!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큰일 났습니다. 검찰에서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쳐들어왔어요.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 네? 여보세요? 여보세요!

사무실 앞에서 귀를 기울이던 수사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덜컥!

“안녕하세요.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왔습니다. 영장은 여기 있고, 방금 전화하신 분 누구죠?”

“네, 네?”

“핸드폰 주세요.”

“아니 이건 사적인…….”

“사적이니까 저희 주시라고요.”

“하씨…….”

호텔의 책임을 맡은 남자는 울상을 지으며 핸드폰을 넘겼다.

검찰이 뜬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남자는 입술을 핥으며 자신의 주인을 떠올렸다.

자신의 구명줄인 그가 과연 이들을 상대로 빼내 줄 수 있을까.

아니면 줄을 끊어내고 자신을 저들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줄까.

‘이 호텔이 소규모긴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크기야. 날 버리진 못하겠지.’

아까 얼떨결에 다급하게 한 통화에서 주인은 이렇게 말했었다.

-미친놈아! 검찰이 쳐들어왔는데 이 번호로 전화를 하면 어떻게 해! 당분간 연락하지 말고 순순히 협력하는 척해. 그러면 여기서 알아서 할 테니까.

그래, 어차피 들킨 이상 위에서 처리해주길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성함 말씀해주십시오. 여기 금고도 열어주시고요. 장부는 어디에 관리합니까? 다른 책임자들은 어디에 있죠?”

정신없이 질문이 몰아쳤다.

상대방의 혼을 빼놓는 수법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이 남자에게는 그런 방법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있었다.

-저벅.

사무실을 뒤집어엎느라 여기저기 흩어진 수사관들 사이로 한 남자가 문가에 나타났다.

20대 후반의 청년은 문 옆에 서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무실을 쭈욱 훑었다.

이윽고 사무실의 주인인 남자에게 시선이 닿자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엿 됐다! 저놈이 왜 여기에 있어!’

검찰에 신재현까지 합쳐서 나왔다면 이건 100% 알고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이 호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아까 들었던 희망적 감상이 신재현과 눈이 마주치자 자신감이 팍 식었다.

‘아냐! 아직 방법은 있어! 밖에 묻어놓은 저것만 안 들키면 돼!’

남자의 기분이 천국과 지옥을 오갈 때 신재현은 남자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잔챙이네요.”

남자로서는 울컥하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그분’의 수족으로서 꽤 많은 돈을 책임져왔다.

잔챙이란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사관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부를 가져와 신재현에게 건넸다.

“천천히 훑어보십쇼.”

수사관 한 명이 아예 신재현에게 전담으로 붙어 따라다니면서 그를 보조했다.

분명 천천히 보라고 했는데 신재현은 그럴 마음이 없는 듯했다.

장부를 들더니 읽는 둥 마는 둥 파락파락 종이를 넘겼다.

“이걸로는 저 금액이 안 되는데…….”

“예?”

옆에 붙어 있던 수사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역시 여기 말고도 다른 곳도 있는 게 분명합니다. 적어도 저 사람이 책임질 금액은 아니에요.”

남자의 등골이 쭈뼛 섰다.

역시 뭔가를 알고 나온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일단 정리하시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재현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남자를 훑고 지나갔다.

남자는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길에 몸서리쳤다.

***

사무관들의 움직임은 일사천리였다.

일단 눈에 보이면 싹 다 상자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올라탄 후 2차 회의가 열렸다.

초고속으로 털고 나오긴 했는데 이들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듯, 지금 온 정신이 주차장 옆 풀밭에 팔린 참이었다.

“우리 갔다 온 동안 수상한 거 없었죠?”

“네. 풀밭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계속 촬영 중이었고요.”

혼자 남아 있던 수사관은 철저했다.

이런 현장에는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두세 명이 남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파견된 인원이 적으니 불가능하다.

그러니 아예 영상으로 찍어둔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느냐인데, 신재현 조사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민호 수사관님, 일단 검사님을 연결해주세요. 지 검사님께 드릴 제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이 통화하시는 게…….”

“아뇨, 저는 어차피 국세청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고 함께 손발 맞추는 건 여러분들이시니까요.”

신재현의 말에 수사관들은 감동의 감탄사를 터뜨렸다.

미소를 머금은 김민호가 침착하게 지현석 검사와의 통화를 연결했다.

“검사님, 스피커폰입니다.”

-네. 그쪽은 끝났습니까?

“털긴 털었는데…… 솔직히 거기엔 집중을 못 했습니다. 당장 결정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 돈을 파낼 것이냐, 말 것이냐를 얘기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파내는 과정을 어떻게 이용할까 하는 것이다.

거기서 신재현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가 자신의 모습이 지현석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아차 하며 말했다.

“먼저 호텔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까 의심은 확신이 됐는데요.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도 돈세탁 루트 맞죠?”

“네. 저희 생각에도 돈세탁 루트 중 하나입니다.”

“제가 이해한 게 맞는지 볼게요. 돈세탁이라 함은 결국 출처 불분명한 돈에 출처를 부여하는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호텔의 경우엔 인테리어, 수리비, 소모품 등으로 돈 나갈 구멍 만들어 놓고 페이퍼 컴퍼니 하나 만들어서 거기다 발주 넣잖아요. 그렇게 돈 굴리면 돈에 출처가 붙게 되니까 깨끗해지고.”

“그 밖에도 여러 방법이 있죠. 투숙객 명단 허위로 작성해서 정말 매출이 있던 것처럼 하면 출처 없던 돈이 법인세까지 낸 깔끔한 호텔 매출이 되는 거고요.”

“네. 그래서 말인데 이 호텔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진 않단 말이에요.”

-그렇군요…… 하긴 한 군데를 키우는 것보단 여러 군데에 분산해서 루트를 여럿 파는 것이 그들의 방식입니다.

“우리 처음 나올 때 목표는 손발 자르기였잖습니까? 이왕 나온 것 좀 확실하게 흔들어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줄을 거세게 흔들면 그 끝에서 줄을 잡은 놈이 뭔가 반응이라도 오지 않을까요?”

-구체적인 방법은 어떻습니까?

“이 루트가 누구의 것이든 풀밭에 묻힌 돈은 현금입니다. 만들기 어렵다는 현금 비자금이요. 아예 뉴스에 대대적으로 터뜨려버립시다. 저놈들 눈이 뒤집히도록.”

잠시 고민하던 지현석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써서 저쪽으로 쏠리게 했던 시선인데, 이번엔 이쪽으로 쏠리겠군요.

“이미 우리가 루트를 쳐낸 시점에서 미끼의 역할은 다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쪽을 그저 미끼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국회의원 자녀의 탈세 혐의도 저에겐 매우 진지한 사건입니다. 검사님, 날뛰어보죠.”

질린 표정의 수사관들이 둘의 대화를 지켜보는 가운데 지현석이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명랑하고 시원한 웃음이었다.

-역시 그래야죠! 자, 그럼 이번엔 그 돈다발을 미끼로 써 봅시다. 바로 기자들 모집하고 굴삭기 보내겠습니다!

과연 안전한 줄 알았던 풀밭이 파헤쳐지고 세상 밖으로 돈이 드러났을 때, 배 아파할 인간이 어느 쪽일지.

신재현은 생일 선물 포장지를 뜯기 전의 아이처럼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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