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존재만으로도 미끼
-부스럭부스럭.
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분위기가 무겁다.
그냥 내 착각인가?
“그…….”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보았다.
그러자 돌아온 것은 강혜원의 찌릿한 눈빛이었다.
“네, 팀장님?”
말투도 부드럽고 부르면 꼬박꼬박 대꾸해준다.
낯도 웃는 얼굴이라서 평소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금 사무실에 흐르는 분위기는 뭐란 말인가.
피부에 찌릿찌릿 감겨드는 이 느낌, 탈세 현장에서 죽일 것 같은 눈으로 날 노려보던 그 느낌과 비슷하다.
설마 싶긴 하지만, 굳이 이 느낌에 정의를 내리자면 ‘살기’에 가깝지 않을까?
잠깐, 왜 살기지?
“말씀을 하세요. 쭈뼛거리지 마시고.”
“헙, 넵.”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입가는 웃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난 눈치가 별로다.
그래도 현장을 몇 번 뛰며 쌓인 경험이라는 게 있는데,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눈치가 내게 경고하고 있었다.
강혜원이 짜증 내고 있다고!
짜증이라기보다는 화난 것에 가까워 보이긴 하는데.
그래서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대체 왜지?
내가 뭘 잘못했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가질 않는다.
언제부터 화났는지 생각하면 감이 잡힐 것 같은데.
그렇게 따지자면 며칠 전 검찰청에 나가기 전부터다.
“팀장님? 할 말 있으면 빨리해주시겠어요? 저 이거 무겁거든요.”
“그, 일단 내려놓으세요.”
강혜원이 달그락거리는 박스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우리는 지금 아침 8시부터 나와서 귀하신 국회의원의 자녀분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저번처럼 자그마한 회의실을 하나 빌렸는데 거기서 써먹을 조사 대상자의 납세 자료였다.
강혜원을 멈춘 것은 좋은데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나는 이런 분위기가 싫다.
안 그래도 외부에서 압력을 많이 받는 팀이라 우리끼리는 끈끈하게 뭉쳤으면 했다.
아, 그렇다고 사생활까지 모두 오픈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중요한 조사를 앞두고 이런 찝찝한 마음으로 임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내가 일반 팀원이었다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나는 팀장이다.
팀원들의 상태를 사소한 것이라도 체크하고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원인이라도 알아 두든가.
“혹시 저한테 화나셨어요?”
분위기를 해소하고는 싶은데 나는 돌려 말할 줄 모른다.
그래서 직구로 물었다.
강혜원은 아까보다 더 짙은 미소를 그려냈다.
볼에 보조개가 파일 정도로.
“에이, 제가요? 팀장님한테? 그럴 리가요. 팀장님이 저희를 얼마나 끔찍이 생각하는지 잘 아는데 어떻게 그래요.”
“……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웃는 낯과 내용에 속으면 안 된다.
이건 절대 칭찬이 아니라는 생각이 훅 들었다.
여기서 말실수 한 번 하면 더 난리가 날 것이라는 것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나는 최대한 불쌍하고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인 후, 팀원들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남자 셋이 책상 옆에 가만히 서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셋은 서로 순번을 미루며 등을 떠밀더니 결국 장세훈이 다가왔다.
“에이, 그만해. 얘가, 아니 팀장이 무슨 뜻으로 그랬는지 알잖아.”
“아니까 그래요, 아니까! 그럴 때는 딱 우리 얼굴 보고! 나 믿고 따라와라! 같이 불구덩이 뛰어들어 줘라! 그렇게 말해야지!”
“아직 어리잖아. 얘가 얼마나 걱정이 많은지 몰라서 그래? 우리가 보호해 줘야지.”
“내 말이 그 말이라고요! 팀장님이 우릴 보호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보호해 줘야 되는 거잖아요!”
강혜원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따져 물었다.
나는 둘의 대화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없는 사이 팀원들끼리 뭔가 오간 것은 확실했다.
“얘는 어려도 산전수전 다 겪은 애야. 못 볼 꼴도 다 봤다고. 공무원 되기 전에는 내부의 비리에 의문을 품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뼈저리게 느꼈고, 상사의 불의에 팔 걷고 나서보기도 했고. 우리야 운 좋게 청장님이 보호해 주시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지 얘가 더 잘 알아. 어린 나이에 말이야. 경력을 단순히 숫자로 따지면 얘가 제일 짧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걸 본 놈이라고.”
장세훈이 저렇게 진지하게 날 감싸는 건 처음 본다.
내 마음속에서 장세훈에 대한 평가는 열 잘 받고 약간 바보형 같은 이미지였다.
나를 걱정한다고 해도 절대 내 앞에서 티 낼 사람도 아니었고.
“내가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 건 우리가 무작정 싸고돈다는 뜻이 아니었어. 머리는 신재현! 손발은 우리! 우리가 몸빵해서 팀장이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한다는 거였지! 얘는 뇌야. 우리가 잘려 나가더라도 얘만 살아 있으면 된다고.”
“그 말이 제 말이에요. 팀장님, 잘 들으세요. 저희가 처음 서울청 입성했을 때 엄청 감격했거든요. 한편으로는 이런 맹세도 했어요.”
강혜원이 느닷없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탈세범을 상대할 때나 보여 주던 강혜원의 강렬한 눈빛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팀장님은 반드시 지킨다. 우리 모두가 진창을 구르고 살이 뜯겨나가더라도 팀장님만은 위로 올려 보낸다. 누구 하나가 죽으면 죽는 거다. 남은 사람은 뒤돌아보지도 말고 팀장님을 받치자. 아, 마지막 거는 안길진 씨가 한 말이에요. 저 사람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 가지고 우리 막 트럭에 교통사고 당하는 거 아니냐고 설레발 떨었거든요.”
엄청난 얘기를 들었다.
나는 잘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물었다.
“대체 언제 이런 얘길 하신 거예요? 저 빼고 회식하신 거예요?”
“윗사람 빼고 회식하는 건 직원의 소양이지! 어려도 팀장님이잖아요!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아니, 나한테는 중요한데.
하도 어린 나이에 팀장을 단 거라 나름 신경 쓰고 있었단 말이다.
사기업에 있을 때 직원들에게 외면당하는 부장을 보고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는데.
“팀장님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얘기도 있는 거예요. 하여튼 술 마시면서 좀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지고 오글거리는 말이 막 튀어나왔어요. 쪽팔려서 그 후로 입 밖에는 꺼내지도 않았고! 아, 왜 이런 얘기를 꺼내 가지고.”
강혜원이 고개를 푹 숙이며 얼굴을 문질렀다.
장세훈이 놀리듯 강혜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니까 쟤는 너무 어린 나이에 이런저런 세상살이 더러운 걸 봐서 걱정이 많단 말이야. 팀원이니까 더더욱. 더군다나 이번 건은 해산이 예정되어 있잖아. 걱정할 만하지. 다 알면서 왜 팀장한테 화풀이야. 어른답게 행동해, 강혜원.”
강혜원은 장세훈을 찌릿 노려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팀장님. 아까 저 화났냐고 물어보셨죠? 네, 화난 거 맞아요.”
“네…… 제가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반성합니다.”
팀원을 하나로 모아도 부족할 판에 내가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면 내 잘못이 맞지.
술자리에서 했다는 말은 솔직히 고맙다.
언뜻 지나가는 말이긴 했지만 나는 지금 엄청난 충성 맹세를 들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를 위해 살고 나를 위해 죽겠다는 각오를 들은 것이다.
그러나 강혜원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팀장님한테 화난 건 그게 아니에요. 팀장님이 우리에게 한마디만 했으면 됐어요. 따라와라. 그게 듣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가 그만큼 팀장님께 걱정을 끼쳤나요?”
“아니, 아닙니다. 절 따라와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요. 그렇다고 제가 돈이나 명예로 보상해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살길을 마련하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강혜원은 눈시울을 붉히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에휴. 우리 팀장님, 우리 없으면 어떻게 하려나 몰라.”
없으면이라니?
나는 화들짝 놀라서 되물었다.
“어? 빠지기로 하신 분 계세요? 제가 전해 듣기로는 모두 함께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으이구. 해산하면 한동안 팀장님 혼자잖아요. 누가 몸빵하냐고.”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황민우가 웃으며 다가왔다.
“걱정 마세요. 제주도는 제가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아, 그래요? 황민우 씨라면 안심이지. 우리 중에서 가장 목숨 내놓고 팀장님 지킬 사람이니까.”
“어? 형이 저랑 같이 가요?”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강혜원이 테이블에 내려놓았던 박스를 내게 턱 안겼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우리 걱정하느라 머리 쓰지 마요. 그 머리, 나쁜 놈들 때려잡는 데나 쓰라고요. 알겠어요?”
“네? 네에…….”
다행이다.
아까보다는 희미한 미소였지만 저건 진짜 즐거워서 웃는 얼굴이었다.
따끔하게 느껴지던 살벌한 분위기도 사라졌고.
“해산한다고 하니까 강혜원이 많이 서운해서 그래.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정말 다시 모일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하니까.”
이건 나도 청장에게 물었던 것이었다.
나는 청장에게 확답을 받았지만, 이들에게는 내가 믿음을 줘야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 모일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그래요! 그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거라고!”
강혜원이 나를 가리키며 버럭 소리를 치더니 휙 돌아섰다.
“얼른 가요. 높으신 분들의 자녀분들이라서 미리 준비 안 해 놓고 기다리게 하면 무슨 민원을 넣을지 모른다고요.”
강혜원이 투덜거리며 사무실을 나갔다.
“정말 얼마나 존재감이 넘치면 그냥 조사하겠다고 말만 꺼내도 미끼가 되냐. 존재 자체가 미끼야, 아주.”
강혜원의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특수조사 2팀이 빌린 자그마한 회의실에는 시간대별로 한 명씩 사람들이 들어와 조사를 받고 있었다.
나이대는 대부분 20대에서 30대의 청년.
그러나 조사 분위기는 대체로 부드러웠다.
강한 반발을 예상한 2팀으로서는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그, 해외에 나간 비행기 퍼스트클래스를 경비로 빼셨던데요. 무슨 일로 나가셨죠? 혹시 사업과 연관이 있나요?”
“여행 갔습니다. 사업과는 무관합니다.”
“여기 주류업체에서 양주 10병을 공급받았다는 거래명세서가 있는데, 이건 어디에 사용하신 건가요? 접대비인가요?”
“1병은 거래처에 선물로 보낸 게 맞습니다. 나머지 9병은 제 개인적인 사용입니다. 사업적으로 사용한 1병의 경우 증명이 가능합니다.”
“사업무관경비는 세금 나오는데 알고 계시죠?”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깔끔하게 처리해 주시면 모두 내겠습니다.”
장부 하나하나를 짚으며 묻자 매우 순순하게 대답이 돌아왔다.
조사하는데 진을 뺄 줄 알았던 팀원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보통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하거나 자기 세무대리인과 대화하라고 하기 일쑤다.
이것도 사업상으로 쓴 금액인데 왜 참견하냐고 따지는 사람도 많아서 실랑이는 필수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순조로워서 조사가 길어지고 있었다.
“한 사람당 1시간 안팎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밖에 다음 분 와서 기다리고 계시죠?”
“응접실에서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커피 드렸어요. 어우, 다들 왜 이렇게 협조적이야? 혹시 우리한테 무슨 능력이라도 생겼나? 물어보면 다 사실만 말하는 능력.”
“장난하지 말고 빨리 다음 분 불러와. 오래 기다리셨단 말이야.”
“평소랑 이번 일이랑 다른 게 뭐가 있을까?”
“팀장님의 존재.”
“미친 존재감.”
직원들이 한마디씩 하며 다음 손님맞이를 준비하자 누군가가 복도에서 난동부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아아! 너희들 지금 나한테 그런 싸구려 커피나 먹으면서 기다리라는 거야? 지금 몇 분이나 됐는지 알기나 해?”
“선생님 차례는 아직 좀 더 기다리셔야…….”
“갖다 치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지, 어디서 변명이야! 야, 맞아 볼래?”
회의실 안에 남아 있던 직원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와, 말 끝나기가 무섭게 전형적인 높으신 분 아들놈 떴네요.”
“좀 쉽게 가나 했더니. 입이 문제다.”
그렇게 말하던 직원들이 일제히 어느 한 곳을 응시했다.
“역시 저런 놈은 담당이 따로 있는 법이지.”
“왜, 왜 나를 보세요?”
“팀장님 오랜만에 호통 좀 치고 오시라고요.”
복도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고개를 내젓던 신재현이 얇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런 분은 오랜만이라 정감이 가긴 하네요.”
신재현이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