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42화 (242/500)

242화. 미끼는 크게 (2)

서울지방국세청의 정문 앞이 오랜만에 북적거렸다.

“네, 저는 지금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지방국세청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에는 아침 일찍부터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내로라하는 정치인의 자녀들이 하나둘 청사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기자는 국세청의 현관 유리문을 배경으로 멘트를 담고 있었고.

“약 4년 전, 우회 증여와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 조사를 받았던 모 국회의원의 장남 김 모 씨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 모 씨의 출석 영상 함께 보시겠습니다.”

어떤 기자는 멘트 후에 카메라맨의 OK 사인을 보고 목을 가다듬었으며.

“어어, 저거 왠지 맞는 것 같은데. 한번 찍어 보실래요?”

어떤 기자는 매와 같은 눈썰미로 1층 로비를 주시하고 있다가 누군가가 1층에 있는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나오자 카메라맨을 불러 줌인했다.

짙은 선팅 때문에 밖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기괴한 자세로 회전문을 통해 안을 주시하던 기자였다.

개찰구를 빠져나온 여성이 1층 접수처에서 카드를 돌려주는 걸 본 기자는 서둘러 일어서서 멘트를 했다.

공무원이라면 카드를 반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접수처에서 신분증과 방문증을 교환하는 것은 방문자뿐.

그리고 방문자가 신분증을 받고 돌아서는 순간, 노련한 기자는 바로 그 정체를 알아챘다.

“아, 방금 조사를 마친 한 모 씨가 청사를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선글라스를 눌러쓰고 스카프를 두른 채 얼굴을 푹 숙인 모습인데요, 현직 국회의원의 딸로, 저희 취재진의 조사 결과로는 강남의 빌딩으로 임대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다른 기자들도 눈치는 빨랐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기자들은 경력 많은 국세청 전담 기자였다.

오가는 공무원들의 눈에도 익을 정도로 자주 보는 얼굴들이었으며, 특히 서울청에는 무슨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1층 앞을 점령하는 기자들이었으니.

좁아터진 서울청 앞이었지만 기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서울청의 정문에서 나와 큰길로 향하는 길만 남겨두고 기자들이 주르륵 빈 곳이 없도록 메꿨다.

억지로 기자들을 뚫느니 거기로 가도록 유도한 것이다.

“한 모 씨는 부동산 임대법인의 대표 이사인데요, 약 4년 전 편법 증여 논란으로 한 번 검증대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문제없다는 성명을 낸 적이 있는데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아, 한 모 씨가 서울청의 정문을 열고 나오고 있습니다.”

“한 말씀만 해 주세요!”

“이번 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들은 일부러 얼굴을 가린 여성에게 달려들어 자극적인 질문을 해 댔다.

서울청이나 신재현을 비난하는 어조가 나오기만 한다면 그것을 트집 잡아 물고 늘어질 수 있었다.

신재현을 위해서 하는 유도는 아니다.

그들이 특종을 얻기 위해서였다.

기자를 상대하는 데 단련된 국회의원보다는 어리숙한 자녀들을 공략하는 게 훨씬 쉽다.

게다가 말실수 한 번이면 두고두고 우려먹을 수 있었다.

정작 대상인 국회의원이나 자녀들이 진짜로 나쁜 마음을 먹었는지는 그들의 알 바가 아니었다.

총선 직전에는 뭐든 뉴스가 되니까.

“신재현 팀장에게 직접 조사를 받았습니까?”

“어떤 부분에서 탈세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번에도 편법 증여에 대해 문제를 삼은 겁니까? 서울청에 대해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기자들은 조사를 받고 나온 여성의 속을 박박 긁었다.

보통 이러면 꾹 참고 억울하다거나 성실히 조사에 임했다는 말로 퉁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여성의 대답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성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자리에 멈춰 서더니 선글라스를 벗고 스카프를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제 무지와 잘못된 행동으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서 친인척으로. 친인척에게서 저에게로 계좌이체 하는 방식으로 우회 증여를 받았습니다.”

기자들은 질문하는 것도 잊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건 자진 납세 수준이 아니다.

보통은 범죄 사실이 있더라도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나중에 사실로 밝혀진다고 해도 모른다고 일관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탈세를 인정했을 뿐 아니라 아예 어떻게 했는지 수법까지 줄줄줄 설명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버지가 4촌 친척에게 차용증을 쓰고 계좌이체 했으며 4촌 친척은 5촌 친척에게 해당 금액을 나누어 계좌이체 했습니다. 저는 5촌 친척에게 차용증을 쓰고 그 금액을 빌렸습니다만 실제로는 갚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증여가 맞습니다.”

몇몇 카메라맨이 사진을 찍는 것마저 잊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늦게 플래시를 터뜨렸다.

여성은 담담한 어조로 카메라와 눈을 맞췄다.

국회의원 자녀로서 세금을 탈루한 한 여성이 국민에게 죄를 고백하고 있었다.

마치 고해성사를 엿듣는 신도가 된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건대 저는 이 행동이 문제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금을 내기는 싫었습니다. 나라에서 나에게 해 준 게 뭐가 있는데 아버지의 돈을 받으면서 40%, 50%에 달하는 세금을 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국민인 이상, 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못마땅해도 세금은 내야 옳다고 했지만, 저는 눈 뻔히 뜨고 생돈을 뜯기는 것 같아서 싫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기자들 중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은 이 여성의 고해성사에 숨겨진 뜻을 눈치챘다.

-행동이 문제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우회 증여가 탈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몰랐다고 잡아떼다가 나중에 욕먹느니 깔끔하게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세금을 내기는 싫었다. 왜 세금을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기 싫은 것은 사실이다. 이 세상에 세금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법에 정해져 있으니 내는 것이다. 사업자뿐 아니라 유리 지갑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세금 떼어 간다고 나라 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신 역시 별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국민인 이상, 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못마땅해도.

└핵심은 이것이었다. 은근슬쩍 사과 사이에 집어넣어 흘려듣기 십상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오늘 사과의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기자들은 알아차렸다. 낼 마음은 있었으나 정부의 꼬라지가 맘에 들지 않아 내지 않았다, 실망감을 안겨준 정부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며 은근슬쩍 정부에 탓을 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평소에 불만을 갖고 있던 국민에게 동질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제가 우회 증여를 받은 것은 20대 때의 일입니다. 어린 나이에 법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고 아버지를 설득해 ‘현명하게’ 살자고 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지요. 아버지에게도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게 회초리를 들지 않고 제 억지를 받아주신 것이 결국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인 아버지에게는 실수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철없는 20대 딸이 우겼다면 변명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막상 국세청에서 조사 통지서를 받고, 평생 올 일 없다고 생각했던 서울청에 발을 들이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행동은 그저 탈세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뼈저리게 반성하고 모든 잘못을 인정하여 국세청의 조사관님들께 솔직하게 설명드렸습니다. 세금이 얼마가 나오든 저는 군소리 않고 낼 것입니다. 갖고 있는 빌딩을 팔아서라도 내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입니다.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얼마가 나오든 불복하지 않겠다는 말로 사과가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빌딩을 팔아서라도 내겠다는 말은 평소 상속세와 증여세를 부담스러워하는 중산층과 그들의 2세를 겨냥한 말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여론은 무작정 이 여성을 욕하기보다는 둘로 나뉘어서 싸울 것이다.

-그래 봤자 탈세한 건 맞지 않느냐, 혓바닥이 길다.

vs

-인정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솔직히 세금 엿 같다. 부모가 힘들게 번 돈을 자식이 가져갔을 뿐인데 왜 50%나 세금을 물리냐, 상증세는 현금 없어서 집 팔아서 세금을 내야 한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것이다.

기자들은 인터넷 댓글창과 온갖 커뮤니티가 어떻게 불탈지 눈에 훤히 보였다.

그리고 혀를 내둘렀다.

이 상황에서 보자면 최선의 방법이다.

탈세가 잘못은 맞지만 탈세했다고 징역 가는 것도 아니다.

결국 가산세까지 합쳐서 다 내고 나면 전과고 뭐고 생기지도 않는 깨끗한 국민이 된다.

“와…….”

어느 기자의 감탄사를 뒤로 하고, 여성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서울청을 빠져나갔다.

쫓아가서 뭘 더 캐물을 여지도 없는 깔끔한 입장 표명이었다.

생방송 중인 방송국의 경우 기자가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태에 어버버 말을 더듬고 있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기자들의 표정에 여실히 드러났다.

그 후로도 아침 일찍 출석한 몇 몇 대상자들이 조사를 마치고 나왔다.

그들은 절대 지나치는 법 없이 다소곳하고 진중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먼저 대국민 사과를 읊었던 한 모 씨처럼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고 고개를 숙였다.

마치 미리 대본이라도 써서 연습한 것처럼 흔들림 없는 모습이었다.

이쯤 되면 뭔가 있다.

기자들은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구석진 곳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손에는 담배를 든 채였다.

“이거 분위기 이상한데요.”

“그러게요. 쟤네 다 국회의원 아들딸인데 사과하는 거 봤어요? 와, 절대 안 그러던 애들인데.”

“세상이 망하려고 그러나. 오늘 혹시 해가 어디서 떴어요?”

기자들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야 그렇다.

살다 살다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이나 해 봤겠는가.

공무원이 출석하라고 불러도 무시하기 일쑤에 특집 기사를 내보내도 바로 압력이 들어온다.

요즘에야 온갖 커뮤니티가 있으니 한번 공론화되면 알아서 사리긴 한다.

공론화 안 된 놈들이 더 많아서 문제지.

“오늘 세 번째로 사과한 놈 있죠? 그 새끼가 저한테 물 뿌린 놈이에요.”

“아, 취재하러 갔더니 손에 든 페트병 던졌다는 걔예요?”

“네. 근데 사과하는 거 보고 어이가 없어 가지고…… 쟤네 저거 다 진심 아니잖아요.”

“그래도 여론은 꽤 손을 들어줄걸요. 지금까지 이렇게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한 선례가 없었잖아요.”

기자들은 싱숭생숭한 얼굴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담배 연기가 어지럽게 흩어졌다.

“후, 그래도 좋게 생각하자면 정화작용이죠. 예전 같으면 상상이나 했겠어요? 이유야 어찌 되었든 저놈들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과한다는 거 자체가 엄청난 대사건이라고요.”

“그렇게 생각하자면 그렇죠. 고개 숙이는 척하고 기자들 째려보는 놈들인데.”

“신재현 이름값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겠죠.”

“아…….”

기자들이 부정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례 없는 사건인 만큼 그 원인 또한 명백했다.

꼿꼿하던 고개를 숙이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시점에서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인물은 인물이네요.”

“약간 그거 생각나요. 별다른 행동 없이도 불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알아서 자진 납세 하잖아요? 존재 자체가 억지력이 된 느낌인데요.”

“아, 너무 오버 하신다.”

한 기자가 담뱃재를 털며 웃었지만 다른 기자들이 정색했다.

“아니 지금 정치판을 보면 저 말이 맞아요. 지금 신재현 위치에 다른 사람 넣어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잖아요. 대통령이 ‘저놈은 탈세했다’라고 난리 치면 이렇게 이실직고하겠어요? 당장 표적 수사다, 프레임이다, 탄핵해라 난리 나지.”

기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세한 얘기 좀 듣고 싶은데, 안에서 대체 뭘 하는지 궁금해 미치겠네요. 나학진 기자님 오늘 안 오셨나?”

“아침에 일찍 와서 출석하는 애들 찍고 금방 가셨습니다. 이따 또 오겠죠.”

나학진을 찾으며 두리번거리던 기자 하나가 저 멀리 다가오는 자동차 하나를 가리켰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외제차였다.

서른쯤 되어 보이는 청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잔뜩 모인 기자를 보더니 짜증을 내며 차 문을 쾅 닫았다.

심지어 불법주차였다.

“와, 정신 못 차린 놈이 왔네. 저거저거 누구 아들내미예요? 아시는 분 계세요?”

“어디서 봤는데. 아, 누구지?”

기자들이 서둘러 청년의 사진을 찍은 뒤 단체방에 올리기 시작했다.

인맥을 총동원할 시간이었다.

“에이, 시발! 무슨 사람을 오라 가라야!”

나름 작게 말한답시고 목소리를 낮춰 욕설을 내뱉는 청년이 서울청의 유리문 안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 기자들이 일제히 생각했다.

“아, 진짜로 들어가고 싶다.”

“서울청에서 티켓 안 파나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돈 주고 옳다구나 하고 들어갈 것 같은데요.”

“나올 때 얼굴 정말 궁금하다. 팝콘 사 올까요?”

아직도 저런 청년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안에서 얼마나 깨지고 나올지도 궁금했다.

당장 드론이라도 띄워보고 싶을 정도로.

“이런 건 직관해야 되는데.”

기자들이 기대감과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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