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미끼는 크게 (1)
-신재현이 서울중앙지검에 들렀다고 합니다.
유진환은 문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요즘 그가 가장 신경 쓰는 인물이 바로 신재현이었다.
관심대상의 등급을 나누어 분류한다 치면 하동문과 신재현은 나란히 가장 윗줄에 위치했다.
하동문은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
신재현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데다 한 번 달려 나가면 그 위험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역시 신재현은 자신과 닮았다는 결론이 머릿속에 스쳤다.
만약 자신이라 해도 지금 이 시점에 움직일 것이다.
이유? 간단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과 권력이 가장 큰 힘이다.
자연히 재벌과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들이 힘을 갖게 된다.
그런 그들이 유일하게 국민과 여론의 눈치를 보는 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선거 전이다.
매일매일 여론조사 결과지를 받아 보며 여론전에 힘을 쓰는 시기.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국회의원들이 하루 종일 길바닥에 서서 웃는 낯으로 악수하는 시기.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새끼들이.’
유진환은 혀를 끌끌 찼다.
여론전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평소부터 공을 들여 쌓아오는 것이다.
마치 누가 24시간 지켜보는 것처럼, 기부나 봉사활동 같은 선행을 쌓고 막말은 삼간다.
하동문과 유진환은 내년 있을 대선을 대비해 아주 긴 시간을 공들여왔다.
이들 역시 앞으로 1년 간은 잔뜩 고개를 숙이고 국민의 눈치를 볼 것이고, 그때가 가장 큰 고비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공략하기 쉬운 시기이기도 하지.’
이것은 비단 하동문뿐 아니라 다른 모든 국회의원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신재현도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인 것이리라.
그 계산 과정이 훤하게 들여다보여서 오히려 기쁜 마음마저 들었다.
‘역시 싹수가 있는 놈이야. 공무원으로 썩히긴 너무 아까워.’
권력자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도 좋았고 계산적인 것도 좋았다.
지금의 유진환 역시 하동문의 심복이라 불리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권력자였기 때문에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자신을 품으려면 적어도 미래의 대통령 정도는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에게 알아서 충성을 바치는 ‘개’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뜻이다.
그러니 수많은 권력자의 개들보다 신재현이 자신과 가장 잘 어울렸다.
지금껏 유진환이 하동문을 위해 나름 설계를 했다.
그런 자신의 뒷세계적 지식과 신재현의 세법 지식을 합치면 지금보다 더 큰 판을 짜 볼 수 있었다.
‘어디, 어떤 방법을 짜 볼까.’
주위를 압박해 볼까, 아니면 협박?
하지만 그런 수는 하수다.
제일 좋은 것은 권력의 ‘맛’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남들을 지배하고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 재미를 알려 주면 시답잖은 공무원 생활 따위는 억지로 시켜도 못 하지.
유진환이 시시덕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눈에 어떤 기사가 들어왔다.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포착됐다. 개인과 법인의 신고 내용을 확인하고 이상을 체크하는 성실납세지원국에서 유명인의 자녀를 조사 중이라는 징후가 나타났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는 평소와 다른 움직임이며 또다시 대규모 세무조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내부의 소식통은 이들의 자세한 정보를 밝힐 수는 없지만 한차례 내부 검토를 거친 뒤 특수조사 2팀에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수조사 2팀?”
유진환은 반쯤 기대있던 허리를 세우며 육성으로 소리쳤다.
특수조사 2팀.
그 명칭에는 어떤 사람의 이름 석 자가 당연하게 따라온다.
바로 신재현.
“크……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유진환은 기쁨으로 몸을 떨었다.
상대가 자신의 기대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역시 잘못 본 게 아니라는 환희가 더해졌다.
“그렇다면, 이용해야지.”
대상이 유명인의 자녀라는 것까지 밝혀졌으면 그 후보를 좁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유진환의 머리가 순간 팽팽하게 돌아갔다.
유명인이라면 국민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다는 뜻이다.
국회의원, 연예인, 재벌, 고위 공무원, 청와대.
수많은 이름이 머리를 스쳤지만 유진환은 딱 하나의 직업을 골라냈다.
이 시점에 가장 공격하기 좋은 대상.
자식 교육을 잘못 했다는 이유로 업계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
유명인 본인이 아니라 자녀를 조사한다는 시점에서 답은 정해져 있었다.
‘역시 이번 타깃은 국회의원이군.’
그 순간 유진환의 머릿속에 새로운 설계가 떠올랐다.
현직 국회의원의 자녀 중에는 자신이 직접 설계를 짜 준 사람도 있었다.
그를 이용해 함정을 깔아 볼 생각이었다.
권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지, 그리고 자신들은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법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며, 신재현을 자극하기 딱 좋은 것이 있었다.
‘문제는 신재현이 이걸 무느냐 마느냐인데.’
하지만 유진환은 걱정하지 않았다.
신재현이라면 절대 불법적인 일을 놓칠 리가 없다.
그 안에 함정이 있든 뭐가 있든 덤벼들어서 다 깨부술 놈이었다.
유진환은 그의 능력을 믿었다.
그리고 그의 멘탈을 깨부수고 함께할 날을 고대하며 웃었다.
***
신재현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재계의 전략실만이 아니었다.
신재현이 유명인의 자녀를 조사한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정치인들은 몸을 사렸다.
평소라면 이를 수습할 여러 방법이 있었다.
기자나 신문사에 압박을 가한다든가 돈을 먹인다든가.
위험성은 좀 있지만 주변 사람들을 인질로 잡을 수도 있고 목숨으로 협박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후폭풍이 엄청나니 최후의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은 국회의원이라 해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국회의원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와중에 신재현에게 일침을 가한답시고 한 마디 했다간 지지율이 폭삭 주저앉고 말 것이다.
그만큼 신재현이 국민의 사랑의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공무원 가리지 않고 모가지를 날려대니 저놈은 ‘어느 당의 주구다!’라고 프레임을 씌우기도 어렵다.
성역 없는 수사라는 수식어를 표방한 사람이나 단체는 많았지만, 정말 제대로 성역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치인에게 있어 지금은 타이밍이 정말 안 좋았다.
그런 가운데 신재현은 정말 뻔질나게 검찰청을 들락거렸다.
기사가 뜨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걸 알면서도 더더욱 그랬다.
일부러 보여 주기라도 하려는 듯.
-저것은 시위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국민을 등에 업고 있잖습니까? 소문대로 정치인의 자녀를 건드리려고 하는 거라면 오히려 당당하게 나서면서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거죠. 덕분에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만약 검찰이 이랬다면 표적 수사네 뭐네 당연히 말이 나오거든요.
-말씀이 좀 자극적인 감이 있는데요, 전체적으로는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설명하기 전에 먼저 뭘 좀 읊어드리겠습니다. 5년 전에 여당 의원의 아들이 음주운전으로 걸렸는데 내사 종결된 적이 있고, 3년 전에는 야당 의원의 딸이 논문 조작으로 물의를 빚었지만 유야무야 넘어간 적이 있죠. 이 외에도 비슷한 사건은 많습니다. 강남의 한 클럽에서 이용자를 폭행했지만 합의했다는 이유로 내사 종결된 것도 있고, 해외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이 마약 투여 혐의로 조사를 받은 의원님도 있었죠. 우리나라는 아직도 건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신재현은 그런 성역에 흙발로 들이미는 존재예요. 국민의 기대가 쏠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죠. 그리고 신재현은 이를 매우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제 말이 그겁니다. 우리나라는 선거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구성하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국민의 뜻이 함께하는 한 그 누구도 신재현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뉴스에서는 잔뜩 기대한 패널들이 팝콘을 뜯으며 중계하듯 신재현의 행보를 분석했다.
그동안 한 짓이 있다 보니 신재현이 이번에도 시원하게 갈겨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찔리는 것이 있는 정치인들은 마음의 준비를 다졌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우리 당에서 국세청에 나갈 일이 생기면 조용히 출석하십시오. 지금 상황에서는 차라리 깔끔하게 잘못 인정하고 세금 내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당의 최고위원은 반쯤 포기한 어투로 당부했다.
국회의원치고 사생활에 한 점 흠결 없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없는 척 잘 막아냈을 뿐.
자식 농사 망친 사람은 더욱 많다.
부인하고 적당히 무마하느냐, 아예 깔끔하게 인정하느냐.
갈림길 앞에서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때아닌 홍역을 앓고 있었다.
***
“아빠가 잘하는 그거 있잖아. 그냥 적당히 돈 찔러 줘!”
여당의 3선 의원 기승평은 아들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새벽까지 이상한 놈들과 어디서 놀다 왔는지 온몸에 술 냄새와 이상한 연기 냄새를 묻혀 들어왔다.
다음 날 오후 늦게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거실로 내려오는 것을 겨우 끌어다 앉혀 놓은 참이었다.
혹시라도 그런 일 없겠지만 국세청에서 뭔가가 날아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에 아들놈이 대뜸 한다는 말이 이것이었다.
“국세청에서 어쩌든 말든 나랑은 아무 상관 없으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잖아.”
“이번엔 아예 검찰하고도 손을 잡았어. 벼르고 있다고, 이놈아!”
“검찰이고 나발이고 아빠는 국회의원 아니야? 그거 하나 수습 못 해?”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지만 기승평은 당장 쥐어박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어릴 적부터 오냐오냐 키웠더니 나이 서른이 다 되어 가도록 아들놈은 세상을 쉽게 보았다.
시작은 학생 때였을 것이다.
같은 반 친구를 때렸다는 말에 아들을 혼내기는커녕 피해자 부모에게 돈을 쥐여 주고 무마했다.
당시엔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만 드러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니까.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고, 기승평의 아들은 그것을 너무 일찍 깨달아 버렸다.
그 결과는 지금 그의 앞에 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아빠 노릇 한 적 없었으면서 통제하려고 하지 마. 그동안 했던 것처럼 돈이나 주고 막던가, 말던가.”
“야! 나 죽는 꼴 보려고 작정했냐! 당장 내년에 총선이야! 선거 때는 쥐 죽은 듯이 있으라고 했잖아!”
“누가 국회의원 하랬어? 인정 안 하면 된다며.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TV 보면 맨날 그러던데, 뭘!”
기승평은 답답함에 가슴을 쿵쿵 쳤다.
“잘 들어라, 멍청한 아들놈아. 지금 우리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다. 부인하거나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던가.”
“부인해.”
“그건 저기 경찰서 순경 나부랭이들한테나 통하는 거고. 이번에 칼을 뽑아든 게 누군지 알아? 신재현이야, 신재현! 걔 앞에서 잡아떼서 성공한 사례를 내가 본 적이 없어!”
“신재현이고 나발이고 내 알 바 아니라고!”
기승평은 숨이 턱 막혔다.
놀러 다니기를 좋아하는 아들놈은 정세에 관심이 없었다.
“이 대한민국에서 신재현을 모르는 사람이 손에 꼽는다는데 정작 우리 집에 그 빡대가리가 있었네, 아이고! 야, 그놈이 얼마나 괴물인 줄 알아? 당 방침이 오죽하면 얌전히 인정하자는 거겠냐고!”
기승평 역시 인정하자는 말을 쉽게 내뱉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승평은 그동안 신재현에게 깨져온 국회의원들보다는 조금 더 똑똑했다.
지금 아들놈의 잘못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면 이번 총선에는 공천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빠른 사과로 이미지 반등을 노려 다음 솔직함을 무기로 승부하면 그다음 총선에는 복귀할 수 있다.
어차피 이번에 기승평 혼자만 걸리는 게 아니라 국회의원 대부분이 자식 문제로 걸려들 것이라 예상하는 상황이었다.
한 명만 걸리면 문제지만 다 같이 걸리면 묻어가기가 쉽다.
그래서 당 차원에서 나온 협의점이 그것이었다.
-자식 농사 실패한 사람들은 알아서 인정하고 총선 포기하세요. 그래야 당이 살고, 당이 살아야 여러분도 다음 기회가 생기는 겁니다.
이쯤 되면 국회의원들의 사실상 항복이나 다름없었다.
적당히 숙여주면 적당히 치고 지나가겠지.
그런 심산이었다.
“신재현이 무서워서 참는 게 아냐! 더러워서 참는 거야! 총선만 지나면 이런 취급이 가당키나 한 줄 아냐!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난 그런 어려운 거 잘 모르고, 돈 좀 줘. 아빠도 알다시피 사업이…….”
“이, 이놈이!”
기승평이 결국 참지 못하고 아들놈의 등짝을 때리려고 할 때, 기승평의 아내가 우편물 하나를 들고 소란스럽게 뛰어 들어왔다.
“왔어, 왔어! 지금 애 잡을 때가 아니야. 당신이 말한 게 왔다고!”
호들갑 떠는 부인의 손에서 기승평이 우편물을 낚아챘다.
보내는 이에 서울지방국세청의 이름이 똑똑히 찍혀 있었다.
“혹시라도 운이 좋으면 안 오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신재현 그놈은 어김이 없군. 이 못난 아들놈아, 제발 이번에는 사고 치지 말고 가만히 출석해서 성실하게 조사만 받고 와. 그러면 사과고 뭐고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알았어?”
나이 서른 가까운 나이에 투정을 부리는 아들의 두 손을 꼭 잡으며 기승평은 신신당부했다.
“아, 출석하라고? 내가?”
어쩐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기승평은 제발 이 못난 아들놈이 신재현에게 덤비지만 않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