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다시 시작 (3)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서울 서초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할은 서울의 7개 지역.
대검찰청 밑에 서울고등검찰청이 있고 그 밑에 서울중앙지검을 포함한 8개의 지검이 있다.
이렇게만 보면 다른 지역의 지검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중앙’이라는 글자가 붙은 이곳의 위상은 차원이 달랐다.
원래는 서울중앙지검을 제외한 서울의 동서남북 4개 지검은 서울중앙지검 산하의 지청이었다.
필요성에 의해 동서남북 지청이 지검으로 승격되고 서울지방검찰청은 ‘중앙’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그렇다고 중요성이 쇠퇴하느냐?
아니다.
애초부터 서울중앙지검은 윗선의 칼이었다.
관할지역에 종로, 강남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한 중요 사건이 터지면 보통 중앙지검의 업무가 되었다.
거기다 특수수사까지 중앙지검에서 맡으니 그야말로 검찰의 중심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큰 검찰청이며 검사 숫자만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저 멀리 지방 어딘가의 지청에는 지청장까지 합쳐서 검사가 5명밖에 안 된다는 얘기도 있던데.
중앙지검이 얼마나 큰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상급 기관인 고등검찰청보다 중앙지검의 힘이 더 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 중앙지검에 내가 왜 왔느냐.
놀랍게도 지현석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지현석 검사실…… 신분증 주세요. 방문증은 나갈 때 반납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지방국세청도 방문증이 있어야 입구를 통과할 수 있긴 한데 검찰청은 보안 수준이 차원이 다르다.
들어가자마자 검색대를 통과하더니 입구 옆에는 보안 요원이 지키고 서 있다.
미리 검사실에서 방문자와 입물 기록을 해 둬야 들어갈 수 있기도 하고.
서부지검은 그나마 건물이 작아서 별 생각 안 들었는데 여긴 1층에서부터 주눅이 들게 한다.
분위기가 이래서 그런가?
그래도 막상 5층으로 올라가니 다들 사람 사는 사무실이라서 안심이 되었다.
“어서 오세요.”
소매를 걷어 올리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허술해 보이는 모습이다.
안경알이 두꺼워지고 살이 좀 빠진 것을 빼면 변함이 없어서 반가웠다.
서부지검에서 중앙지검으로 오더니 더 힘들긴 한 것 같다.
그런데 대체 얼마 만에 만나는 거지?
“이야, 제가 중앙지검 온 지도 꽤 됐는데 이제야 제 사무실 오시네요.”
무슨 검사실이 옆 동네 친구 집도 아니고.
가벼운 말투에 나는 피식 웃었다.
검사실 안에 있는 응접실로 들어가자 지현석 검사는 손수 커피를 내밀었다.
그 손가락 끝에는 형광펜이 잔뜩 묻어 있었다.
어지간히 이 사람도 빡세게 사나 보다.
“쌓인 얘기가 하도 많아서 벼르고 있었는데 오늘도 그럴 짬이 안 날 것 같네요. 좀 자주 오세요. 세무서 계실 땐 종종 오시더니.”
“필요할 때만 왔었죠. 나름 이것도 공사 구분 아닙니까.”
“그래서 밥 한번 먹기가 그렇게 힘든 거군요.”
“제가 자주 오면 기사가 나지 않을까요? 국세청과 검찰의 유착, 뭐 이렇게.”
“나참, 검사 중에는 판사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많은데 무슨. 공사만 구분 잘하면 되는 거예요.”
“밖에서 보는 분은 공사 구분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르잖아요. 그리고 덕분에 오늘 이렇게 이용해먹을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검사는 잠시 멍해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설득력이 있네요. 이건 좀 납득이 간다.”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우리 둘이 밥 못 먹는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둘 다 바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나는 요즘 한숨 돌린다 치더라도, 중앙지검의 검사인 지현석이 여유가 날 리가 없지.
당장 사무실만 돌아봐도 무슨 종이가 너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파일철로도 감당이 안 될 수준이라 서류 꼭대기에 구멍을 뚫어서 끈으로 엮어 벽에 쌓아두었다.
우리도 종이 자료가 많긴 한데 여기가 더 하다. 틀림없다.
지현석이 자리에 앉고 나자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늦었지만 서울지검으로 오신 걸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원래 계획은 좀 더 느긋하게 가는 거였는데 신재현 씨가 너무 빨라서.”
“저야 쫓기듯 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삼성 때 국회의원을 건드려 버려서.”
“그러니까요. 어떻게 2년 차 때 국회의원을 건드리냐고요. 덕분에 국세청 쪽 라인에서는 급하게 신재현 씨 올린다고 난리고, 우리는 부랴부랴 발맞추느라 난리고. 어휴,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십니까?”
지현석이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그저 머쓱하게 웃었다.
우리 라인 꼭대기에 누군가가 있고, 그 아래에 국세청 라인과 검찰청 라인이 따로 굴러가는 건 안다.
나는 국세청 쪽의 칼이고 지현석은 검찰청 쪽의 칼.
여기까진 짐작하고 있었지만 두 라인이 함께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일이었다.
하긴, 지금 진행 중인 건도 그렇고 윗선에서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때가 되면 알려 주겠지.
“그래도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맞췄습니다. 횡령, 비리 혐의자들 넘겨주신 건이 전부 제 실적으로 올라갔거든요.”
“별말씀을요. 도와주셔서 감사한데요. 그건 당연히 검사님 실적입니다.”
그건 내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국세청의 권한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지현석이 도와주고 그는 그걸 실적으로 가져간 것이니.
오히려 내가 고맙지.
우리는 어찌 되었든 상부상조하는 관계다.
지현석은 뿌듯하게 웃더니 박수를 짝, 쳤다.
“일단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지 확인하겠습니다. 그래야 설명이 빠르죠.”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국세청에서 국회의원의 자녀를 조사한다고 흘립니다. 시선을 돌린 후 우리는 극비리에 검사님과 다른 데를 턴다는 거죠. 오늘 제가 대낮에 당당하게 검찰청으로 찾아온 것도 시선을 끌기 위해서고.”
지금 나는 시선을 꽤 많이 끌었다.
뭘 하든 바로 대기업 전략실에 소식이 들어가겠지.
그렇다면 오히려 그걸 이용하자는 게 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거물을 잡는 건 좋은데 내가 조금만 티를 내면 바로 소식이 들어갈 테니까, 미끼를 뿌리기로 한 것이다.
큰 것을 잡으려면 미끼도 그만큼 큰 걸 써야 하는 법이다.
국회의원 자녀 정도라면 그 누구도 감히 미끼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어딜 어떻게 잘라낼지는 저와 검사님 판단에 맡긴다고 했습니다.”
“간결하네요.”
“낭비할 시간이 없으니까요.”
“그렇죠.”
지현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내가 움직여도 국회의원 자녀라는 미끼 덕분에 눈속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게 과연 언제까지 통할까?
미끼 쪽 조사를 최대한 늦추고 질질 끌어보겠지만, 그 안에 우리도 원래 목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럼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지현석은 응접실 구석에 있던 서랍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그 안에서도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구석진 곳에서 허름한 파일 더미를 가져왔다.
“대체 언제부터 조사하셨길래 이렇게 오래됐어요?”
“일부러 10년 된 파일 표지만 갖다가 끼워 놨죠. 누가 봐도 대충 넣어놓은 것처럼 보이게.”
지현석은 시시덕거리며 테이블에 파일을 늘어놓았다.
“저번에 유진환에 대해 조사해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수상하다고.”
유진환을 만난 이후, 나는 다른 것을 조사하면서도 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어디 인터넷이나 기사에라도 뜨나 살펴봤는데 그는 딱히 이름을 드날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겉핥기로 파고들기에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다음은 지현석에게 부탁해 두었다.
절대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히 말이다.
“사실 유진환 자체를 뜯어봤을 때는 별다른 게 없었습니다. 범죄 이력은커녕 무단횡단이나 무단주차로 인한 딱지 발급조차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주 깨끗해요.”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
저런 부류는 나름 머리를 굴린다.
겉으로 드러난 실마리를 따라간다고 유진환 본인에게 다다를 수는 없을 것이다.
“깊게 파면 뭐가 나올지는 몰라도 그러면 상대가 알게 될 것 같아서 일단은 보류해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의외의 곳에서 단서를 발견했어요.”
지현석은 신이 나서 설명했다.
“몇 달 전에 서울청에서 조사 대상자에게 정보를 흘렸다가 저희 쪽으로 넘어온 사람 있잖습니까. 조사 2국장 김상민이요.”
당연히 기억한다.
어처구니없던 사람이다.
어떻게 지방국세청 조사국장이라는 사람이 조사 정보를 팔아넘길 수가 있는지.
내가 직접 국장실로 쳐들어가서 끄집어 내오기도 했다.
자신의 추락이 믿기지 않았는지 포토라인에서 자기 무덤을 판 사람이기도 하고.
“그 사람 입을 열던가요? 뒤에 뭐 대단한 사람 있는 것처럼 해서 쉽게 불지는 않을 것 같던데요.”
누구와 거래했는지는 몰라도 뭐가 있는 것처럼 위세를 부리긴 했다.
그래서 내심 걱정했다.
뒤에 있는 게 적당한 놈이면 상관없는데 정말 거물이라면, 쉽사리 입을 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어르고 달래고 겁도 줘 봤죠. 꽤 오래 걸리긴 했는데 두 명의 이름을 말하더군요. 자기는 유진환이라는 놈의 꼬임에 넘어갔는데 그놈이 하동문을 소개해 줬다. 하동문과 함께 밥도 먹었다.”
“잠깐, 잠깐만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지현석의 눈동자도 덩달아 커졌고 나는 서둘러 목소리를 낮췄다.
“대선주자 하동문 얘기 맞죠? 지금 우리 목표 중 하나인?”
“네. 그리고 실제로 목표 잡기 전까지 이름은 절대 말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여기서든 국세청에서든. 지금부터는 언제 어디서든 녹음기가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집에서도 팀원들과 함께 있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말이죠?”
“네. 실제로 녹음기 돌아가서 망하는 일 많이 봤습니다.”
검사니까 이런 것은 믿어도 될 것이다.
앞으로 나는 매사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보다 방금 굉장한 얘기를 들었는데.
“그러니까 유진환이 그놈이 부리는 사람이다 이거죠?”
“네. 저도 그 후에 이런저런 루트로 파봤는데 유진환이라는 사람이 오른팔이라고 하더군요.”
지현석은 그동안 조사한 것을 나직한 어조로 설명했다.
국회의원은 특정직 공무원으로 보좌관이나 비서 등을 두는데 유진환은 그런 식으로 고용된 사람은 아니라는 것.
예전부터 함께 해왔지만 절대 겉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다는 것.
정치권이나 재계에서는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유진환이 공개석상에서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것 등.
“역시 그랬군…….”
“네?”
“아, 아닙니다. 수상하다 싶었거든요.”
“저도 파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가만히 입술을 문질렀다.
유진환, 그놈의 주위를 맴돌던 그 시커먼 숫자의 향연을 생각하면 큰물에서 놀던 놈이라는 생각은 했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말했듯 뒤에 권력자가 있을 거라는 짐작도 했다.
그게 바로 하동문이었구나.
어쩐지 아귀가 맞춰지는 느낌이다.
다음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하동문을 업고 있다면 세상을 뜻하는 대로 만드네 뭐네 하면서 나댈 만하지.
“우리가 지금 유진환 잡을 수 있을까요?”
내 질문에 지현석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오른팔입니다. 하나씩 차분히 잘라내야 겨우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그렇겠죠.”
당장 손발 자르는 데만도 이렇게 판을 까느니 마느니 하는 와중이다.
의욕만 넘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지.
“솔직히 유진환도 파면 나올 거예요. 하지만 후폭풍이 크니까 쉽게 못 건드리는 거잖아요.”
내가 꽤 초조해 보였나 보다.
지현석의 말이 맞다.
라인?
당연히 우리가 보기엔 우리 라인이 세 보이지.
그러나 내년에 대통령이 될 사람과 그의 오른팔이 가진 힘 앞에서도 우리 라인이 힘자랑을 할 수 있을까.
나와 지현석이 어찌어찌 증거를 찾고 기소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게 끝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증거가 사라지고 판사가 적당히 시간을 끌다 무죄를 때리고.
솔직히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나도 대한민국의 법과 체계를 믿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법이니까.
우리는 어디까지나 조심해야 한다.
“후, 맞습니다. 검사님, 눈앞의 것부터 차근차근 처리하죠.”
나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그 의욕으로 해치웁시다. 일단 이건 제가 그쪽 놈들을 파다 나온 건데 이중 어딜 쳐야 할지 솔직히 모릅니다. 섣불리 쳤다가 상대가 눈치채면 곤란하니 미리 자료만 갖고 할 수 있는 최대한 검토해야 합니다.”
지현석이 테이블 위와 서랍장 쪽을 가리켰다.
그가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내일도 여기로 오셔야 될 것 같네요. 어차피 초반이라 저들도 국회의원 자녀 조사하는 줄 알 겁니다.”
지현석의 말에 나는 파일을 펼쳐 들었다.
[511,9--,01-]
그리고 지직거리며 떠오르는 숫자를 보고는 쾌재를 불렀다.
좋아.
이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