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추억의 고등학교 (1)
용산구에 학교는 많고 많지만 한강 고등학교는 꽤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안에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으니 타고 들어가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채성현의 차는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정확히는 한 정류장 정도 떨어진 공용 주차장이었다.
“학교 안까지 안 들어가?”
“응? 아, 너 혹시 졸업하고 나서 학교 한 번도 안 와봤냐?”
“그렇지. 딱히 올 이유가 없잖아.”
채상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밌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또 저 표정이다.
아까도 가보면 알 거라면서 저런 얼굴을 했었다.
“하긴 우리 때는 축제라고 해 봤자 그냥 피시방 가는 날이었으니까.”
그랬다.
여학생들은 나름 축제를 좋아했던 것 같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동아리에 든 학생들은 몰라도 그 외의 남학생들에게 있어 축제란 곧 일찍 집에 가는 날이었다.
오전에 개회식을 하고 나면 대부분은 동네잔치가 되고 학생들은 만화방이나 피시방으로 빠졌다.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엔 돈이 아까워서 못 간다.
학비나 급식비 낼 돈도 없어서 지원 받고 다녔으니까.
그렇지만 고등학생에겐 밥값과 간식비를 아껴서라도 친구들과 놀아야 하는 날이 있는 것이다.
평소 점심시간에 학교 식당에서 배식 알바를 하고 받은 돈은 이런 날 쓰라고 있던 것이다.
-탁.
우리는 자동차에서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학창시절엔 항상 이 앞을 통과해서 버스를 타러 갔었지 주차장으로 들어온 적은 없었다.
변한 위치만큼 바라보는 시선도 변했다.
기분이 묘했다.
“뭐해? 가자.”
“그래.”
채성현은 여러 번 와본 것처럼 익숙하게 주차장을 벗어났다.
이 앞으로는 나도 아는 길이다.
9년이 지났는데도 길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큰길로 돌아가면 멀어지니 이 골목으로 들어가서 옆으로 꺾는다든가, 놀이터를 가로지르면 빠르다든가.
중간에 커다란 건물 하나가 놓여 있어 그 건물의 후문으로 들어갔다가 정문으로 나오면 2분 정도가 절약된다든가.
“어? 건물 새로 지었네?”
“아, 여기? 한 5년 전에 지었어.”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있어 2분은 굉장히 큰 시간이었다.
그것으로 지각을 면할 수도 있으니까.
건물을 가로지르는 학생이 하루에도 수백 명이라서 경비 아저씨가 불같이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건물이 못 보던 커다란 오피스텔로 바뀌어 있었다.
후문도 사라진 지 오래다.
“돌아가야겠네.”
건물을 빙 돌아 큰길로 나왔다.
별로 멀지도 않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목숨 걸고 건물을 가로질러 다녔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다.
경비 아저씨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서 있던 것도 이제는 이해가 갔다.
“여기 목욕탕 없어졌네. 어? 만두 가게가 아직도 있어?”
“저기 라면 가게는 간판만 바꿨다? 장사가 잘됐는지 옆에 옷가게 나가니까 뚫어서 매장 넓혔더라.”
“와, 저기 치즈라면 맛있었는데.”
학교 다닐 때 이후로 이 길을 걷는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도 어디에 뭐가 있었는지 전부 기억이 났다.
시간은 흘렀지만 여기만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바뀐 간판 몇 개만이 세월의 흐름을 짐작게 했다.
학교 정문으로 다가가자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와- 하고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 음악 소리.
활짝 열린 정문으로 학생과 동네 주민들이 오가고 있었다.
내가 알던 학교가 맞는데 분위기가 달랐다.
“어? 축제를 이렇게 크게 한다고?”
나는 정문 앞에 서서 눈을 비볐다.
내 기억 속 축제가 아니었다.
당장 정문 바로 앞에 보이는 운동장에는 먹을 것들이 즐비했고 한쪽에는 웬 관현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뿌우우!
심지어 학생의 수준이 아니다.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감탄했다.
“왜 꼭 내가 졸업하고 나면 좋아지냐?”
“그 얘기는 선후배 안 가리고 꼭 하더라.”
채성현이 정문 바로 옆에 있는 책상으로 가더니 돈을 내고 뭔가를 바꿔왔다.
“이 식권 하나가 천 원이야.”
“체계적으로 바뀌었네.”
우리 때는 노점이라고 해 봤자 잔치국수와 떡볶이가 끝이었다.
그나마 요리 동아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딱 두 가지밖에 없었기에 이런 식권도 필요가 없었다.
그냥 현금으로 주고받으면 되니까.
지금은 대충 세 봐도 10개 정도 되어 보인다.
“좀 귀찮긴 하지? 그냥 돈 주고받으면 쟤들도 편하고 우리도 편한데.”
“아니야. 이게 맞는 거야. 일반 사업자처럼 사장 혼자 다 먹는 게 아니고 학생들이 힘을 합쳐서 하는 거잖아? 그러면 현금이 왔다 갔다 하면 안 돼. 어른들도 회삿돈 횡령하는 판국에 자제심 약한 애들이면 괜히 사고 나기 쉽지. 괜히 팔던 애들이 의심받을 수도 있고.”
“그런가?”
“덧붙여서 학교에서 매출 파악하기도 쉬워. 우리가 식권 주고 사 먹으면 애들은 학생회나 교무실 가서 현금으로 바꿔야 할 것 아냐. 이건 그냥 종이쪼가리일 뿐이니까. 그러면 학교에서는 회수한 식권으로 각 노점의 매출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나는 채성현에게서 식권을 받아들여 살폈다.
애들 축제에 쓰이는 소모품치고는 꽤 정교하다.
도장도 찍혀 있고.
“이런 식으로 결제 수단을 하나 끼워 넣으면 좋아. 실제로 정부에서 카드나 현금영수증을 보급하려고 엄청 노력했거든. 사업자들 정규 영수증 아니면 경비처리 안 해 주고, 근로자들은 카드 쓰면 소득세 공제 해 주잖아. 현금을 줄일수록 세원 노출이 잘 돼. 국세청의 목적 중 하나가 넓은 세원 얕은 과세야.”
나는 축제를 기획했을 사람들에게 감탄을 보냈다.
“이야, 대단해. 우리 학교라고 무시했더니 엄청 생각한 티가 나잖아. 축제 성공적으로 치르려고 얼마나 고민 많이 했을까.”
“……학교 축제보다 네가 더 놀랍다. 너 그거 직업병이지?”
“뭐가? 아, 국세청?”
나는 머쓱해졌다.
팀원들끼리 있으면 식당을 가든 카페를 가든 자연스럽게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이 자리 자주 바뀌네요. 개업하고 몇 달 안 됐는데. 자리가 안 좋나?’
‘2년 안 지나고 폐업하면 부가세 많이 나올 텐데.’
‘음식점 같은 데는 주방 시설물 고정자산도 많아서 재고납부세액도 엄청나잖아요.’
‘보통 폐업할 때 세금 낸다는 생각은 못 하나 봐요. 저 세무서에 있을 때 납세자 한 분이 덜컥 폐업신청서 내시고 그냥 지나갔다가 세금 체납돼서 따지러 오셨었거든요.’
‘세무대리인이 경고 안 해줬나?’
‘경영 악화라서 세무대리인 안 찾아가고 직접 폐업하셨다고…….’
이런 대화는 비일비재하다.
“직업병까지야. 그냥 보면 생각 딱 나잖아.”
“하긴 그러니까 국세청의 미래라는 말을 듣는 거겠지. 직접 보니까 이해가 간다.”
“대체 그거 어디서 나온 말이야? 저승사자라는 말은 들어봤는데 웬 미래?”
“익명 사이트에서. 다른 말도 있는데 알려줄까? 공명정대한 납세자의 희망, 미래의 국세청장, 얘 나오면 투표한다, 시대가 낳은 괴물, 국세청의 이단아 등등.”
“아악! 그만해, 미친놈아!”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대체 어떤 사이트에서 저런 낯간지러운 말을 한단 말인가?
나는 소리를 질러 필사적으로 채성현의 입을 막았다.
“아, 알았어. 얘기 안 할 테니까 식권 바꿔 와. 식권 가지라고 하려고 했는데 너 이런 것도 받으면 안 되는 거잖아.”
“그렇지. 큰일 날 소리를. 기다려봐.”
옛날 김영란 법 이전에는 세무서에 과자나 음료수가 차고 넘쳤다고 한다.
세무대리인이 세무서에 올 일만 생기면 무조건 손에 뭔가를 들고 왔다던가.
하도 많아서 유통기한 지나서 버리고 그랬다는데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지금도 500원, 천 원 하는 과자 정도는 상대 기분을 생각해서 받는 사람도 있긴 하다.
나는 되도록이면 받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
“만 원 바꿔 주세요.”
“넵!”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여학생이 손가락에 침을 묻히더니 숙련된 손놀림으로 식권을 셌다.
와, 돈 좀 세 본 사람에게서 나오는 포스다.
“여기, 으잉?”
학생은 내 손에 턱 하니 식권 열 장을 올려주다가 눈이 마주치고는 기괴한 소리를 냈다.
눈이 둥그렇게 커지더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으악! 으아악!”
“예, 예?”
나는 식권을 쥔 채로 굳고 말았다.
학생은 방방 뛰더니 옆에 앉아 있던 학생의 어깨를 퍽퍽 쳤다.
“신재현, 신재현!”
“미친아! 그만 때…… 어?”
두 학생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날 응시했다.
뭔가 말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근데 나 놀러 온 거라 할 말이 없는데.
집 근처 잠수교에서 멍 때리다가 지나가던 친구 놈한테 잡혀 온 건데.
아, 맞다.
나 오늘 세수도 안 했다.
한강 좀 돌다가 들어갈 생각이었지, 한강 고등학교에 올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어, 안녕하세요. 저도 이 학교 나와서요.”
내가 생각해도 얼빠진 대답이다.
말해놓고 나서도 한숨과 함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두 학생에겐 그게 아니었나 보다.
“진짜요? 선배님이에요?”
“미친! 대박이야!”
요즘 아이다운 활기가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요즘 우리 반에 졸업하면 공무원 한다는 애들이 많거든요.”
“공무원을요?”
“졸업해도 취직하기 힘들잖아요. 이과 최종 테크트리는 치킨집이고 문과는 공무원이라면서요. 어차피 공무원 할 거면 시간 허비하지 말고 공무원 하는 게 낫죠.”
“와…… 엄청나게 현실적인 얘기네요.”
고등학생이 저런 말을 할 정도로 우리나라 취업이 암울한가?
공무원 한다고 하면 기뻐할 게 아니라 말려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두 학생은 진지했다.
“그래서 말인데 공무원 월급 어때요? 먹고살 만 해요? 국세청은 많이 받아요?”
“에이, 국세청인데 300은 받죠?”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까 진로 고민할 때는 세상 더없이 영악해 보였는데 지금은 그저 웃음만 나왔다.
“월급 적어요.”
“으음, 그러면 250만 원?”
“더 적어요.”
“여기서 더 적다고요……?”
두 학생은 나라 잃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더 적으면 공무원 대체 왜 하지?”
“그러게? TV 보니까 진상도 겁나 많던데.”
“사람들이 공무원 왜 하지?”
아차.
후배들의 꿈을 꺾고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도 너무한 것 같다.
아까 보니까 굉장히 진지해 보였는데.
“철밥통이고 연금이 나와서요.”
“역시 그거 때문인가요? 하긴 노후는 중요하죠.”
새삼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이는 학생들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나도 저 때는 저렇게 순진하고 귀여웠을까?
……단언컨대 아니다.
“너는 무슨 식권을 그려서 사 오냐?”
-빡!
뒤통수에 얼얼한 느낌이 들어 돌아보니 채성현이었다.
단번에 욕이 튀어나왔다.
“미친놈아! 후배님들이랑 얘기하는데 뭐 하는 거야!”
“아까처럼 직업병 발동했을까 봐 말리러 온 거다. 후배님을 위해서, 네 이미지를 위해서.”
“나한테 이미지가 어딨어. 내가 무슨 연예인이냐?”
“얘기하는 거 보니까 완전 연예인인데.”
알아보길래 잠시 얘기한 것뿐인데 취급이 너무하다.
그럼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학교생활을 보내시는 모교 후배님들을 무시하란 말인가?
몇 년 후면 납세자가 되기도 하는 분들인데?
“야, 이…….”
“어, 됐고. 빨리 인사하고 와. 한 바퀴 돌고 선생님 보러 가야 해.”
“아, 맞다.”
나는 서둘러 식권을 파는 두 학생에게 인사했다.
“고마워요. 힘내서 열심히 공부하고 돈 많이 벌어서 세금 많이 내세요!”
세금 고민 할 정도면 많이 번다는 뜻이지.
내 나름의 잘되라는 인사였는데 채상현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나는 채상현에게 헤드락이 걸린 채 질질 끌려갔다.
두 학생이 멀어지는 나를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세금 잘 낼게요!”
“그럼요. 선배님한테 안 걸리려면 열심히 내야죠.”
어, 그게 아닌데.
아닙니다, 후배님들! 덕담입니다!
채성현 팔에 짓눌려 으어어, 신음 소리만 나왔다.
그 사이 채성현은 나를 매단 채 노점으로 다가갔다.
닭꼬치 냄새가 기가 막히게 풍겨왔다.
“야, 잠깐. 이건 먹어야겠다.”
돈을 벌고 가장 좋은 점은 뭘 먹을 때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특히 추가근무수당을 풀로 땡긴 나는 박봉인 공무원 치고는 월급이 꽤 되는 편에 속했다.
즉, 예전처럼 9백 원짜리 컵라면과 천 원짜리 컵라면을 두고 고민하던 내가 아니란 말이다!
이건 먹고 말겠다!
그런 의지로 팔을 떼어내고 똑바로 서자 채성현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왜? 뭔데?”
인파 사이로 내 또래의 한 남자가 엄청난 기세로 달려왔다.
이러다 부딪힐 것 같아 옆으로 비켜서자 낯선 남자는 나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응? 나?”
남자는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내게 달려왔다.
그다음은 거친 포옹이었다.
“저, 선생님?”
남자를 떼어내려 하자 그는 더더욱 꽈악 나를 끌어안았다.
당황해서 옆을 보니 채성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남자의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런 반응이면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인가?
내 의아한 표정을 눈치챘는지 채성현이 웃으며 말했다.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배남희.”
배남희? 익숙한 이름인데.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문득 교실 바닥에 웅크려 묵묵히 발길질을 감내하던 작은 체구의 학생 하나를 떠올렸다.
“아! 배남희!”
고3 때 왕따를 당했던 그 친구가 이제는 건장한 청년이 되어서 나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