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너에겐 친구가 없다
채성현.
그는 소위 말하는 인싸였다.
학창 시절엔 한 반의 모두와 친구가 되겠다는 포부를 품고 살았다.
덕분에 다른 반 학생들도 채성현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였다.
공부야 조금 뒤떨어졌지만, 선생님들도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누구와 이야기해도 두루두루 통하며 친절한 학생.
그것이 채성현에 대한 평가였다.
그러나 사실 채성현에게는 절친이라고 부를 만한 특별한 관계는 없었다.
그때의 채성현은 딱히 친구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이 대화하고 장난치고 놀면 친구.
그는 금방 원하던 대로 수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그러나 누구나와 친하다는 것은 반대로 깊은 관계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평범한 가정, 평범한 생활.
딱히 남들에게 책잡힐 것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공격하지 않았지만, 남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은 적도 없었다.
만약 고민이 생긴다고 해도 속마음까지 터놓고 상담할 생각은 없었다.
‘굳이 내가 먼저 내 약점을 알려줄 필요는 없지.’
고등학생 채성현의 생각은 이랬다.
그런 그가 반에서 유일하게 신경 쓰던 학생이 하나 있었다.
신재현.
성적은 평범한데 이상하게 범생이 무리와 함께 다니는 놈.
왜 범생이 집단에 껴서 다니는지는 나중에 가정형편에 대한 얘기를 듣고서야 알았다.
어차피 대학교에 가지 못할 테니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이었다.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3등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고3이 된 후에야 본격적으로 공부에 손을 놓았다고.
공부를 포기했는데도 채성현보다 등수가 높은 걸 보면 머리는 꽤 좋은 듯했다.
어쨌든 채성현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의 가정형편도 성적도 채성현에겐 그냥 학생 1의 배경 A일 뿐이었다.
그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반의 모든 학생과 친해지겠다는 포부대로 신재현에게 인사했을 때.
“채성현이야.”
신재현은 대꾸 없이 그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관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속내를 꿰뚫어 보는 것 같기도 한 차갑고 깊은 눈동자였다.
보통은 인사를 청하면 자기소개가 뒤따라온다.
그 후엔 공통 관심사로 가볍게 물꼬를 트고 상대가 경계를 푼다 싶으면 개인적인 것을 물어본다.
지금껏 채성현은 그렇게 ‘친구’를 늘려 왔고 대부분은 그가 말을 거는 것 자체를 반가워했다.
그러니 이런 반응은 생각도 못 한 것이었다.
채성현은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평소처럼 학교생활이나 TV 프로그램 등 공통분모가 될 법한 주제를 꺼냈고 신재현은 가만히 그 잡담을 들었다.
채성현의 말이 다 끝난 후 신재현은 딱 한마디를 했다.
“정말로 나랑 친구 먹고 싶은 거 맞아?”
채성현은 순간 대답을 찾지 못했다.
다른 학생과의 대화라면 당연히 그렇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재현 앞에서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별것 아니었는데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채성현은 그 후로도 신재현과 쉽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말을 붙이기 어려운 대상이라고 봐야 했다.
그런데 또 희한한 것이, 신재현은 다른 친구들과는 곧잘 웃으며 대화했다.
누군가와 사이가 나쁘거나 척을 진 것도 아니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고등학생인데 두루두루 인망이 좋다.
그야말로 채성현이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관계가 거기에 있었다.
‘나랑 저 새끼 차이가 대체 뭐지? 저 새끼는 대체 뭐 하는 새끼지.’
이런 일이 있었지만 둘은 꽤 무난하게 고3 상반기를 보냈다.
겹치는 요소도 없는데 굳이 부딪힐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채성현이 일방적으로 신재현을 신경 쓰긴 했지만 그뿐.
무난한 학교생활이었다.
그리고 고3 1학기 여름방학이 다가오던 때 평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왕따.
채성현 본인이 왕따를 당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학생이 모이는 곳이 바로 고등학교다.
반에서 겉도는 학생이 어느 반이든 하나쯤은 있었다.
학기 초부터 삐걱대던 학생들의 관계가 겉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초반엔 무시였지만 조금씩 폭력의 수위는 높아져 갔다.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물건을 숨기고.
피해자 학생은 채성현과도 안면을 튼 사이였다.
반 구성원 모두와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냈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채성현은 왕따가 된 학생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진짜로 친한 건 아니었으니 무슨 꼴을 당하든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채성현이 속한 그룹은 반에서도 유난히도 지독하게 피해 학생을 괴롭혔다.
-퍽! 퍼억!
“야, 엄살떨지 말고 일어나. 안 일어나?”
채성현은 소위 친구라는 것들이 ‘전 친구’를 때리는 것을 별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때리는 놈도 맞는 놈도.
채성현에게는 친구 1, 2, 3, 4였다.
‘적당히 좀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아마 그 반의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가담하진 않지만 막지도 않는다.
맞는 놈은 친구 자체가 없었고, 친구도 아닌데 나서 줄 사람은 없었다.
딱 한 명의 미친놈을 빼고는.
“야, 채성현. 너 쟤랑 친구 아니야?”
채성현이 학기 초 신재현에게 인사했을 때 이후의 첫 대화였다.
채성현은 반가워할 틈도 없이 의문을 던졌다.
“왜 안 말리냐고 묻는 거야?”
“어.”
“글쎄. 굳이 말릴 이유가 있나? 때리는 애들도 내 친구라서.”
“아, 그래?”
신재현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채성현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제일 병신이구나.”
“……뭐?”
신재현은 한참 피해자를 밟고 있던 셋에게 다가갔다.
“뭐야, 신재현. 네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흔히 폭력에서 가장 먼저 고개를 돌리는 것이 범생이 집단이다.
그 무리 중 하나인 신재현이 말리러 나온 것은 의외였다.
피해자의 손을 밟던 한 학생은 신재현을 비웃었다.
“너 얘랑 친해?”
“쟤 이름도 몰라.”
“근데 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재현은 손가락을 들어 셋을 가리켰다.
“어떤 놈을 고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뭐야, 씨발?”
신재현은 멜로디까지 붙여가며 신중하게 셋 중 하나를 골랐다.
가해 학생들이 당황해하며 손가락을 치웠지만, 신재현은 꿋꿋하게 한 명을 골라냈다.
“딩동댕, 척척박사님. 아, 너구나.”
“야, 너 돌았냐?”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 줄게.”
“가난하다고 공부도 안 하는 새끼가 뭔 착한 척이야. 가서 짜져 있어.”
“우리나라는 일단 공부가 최고거든. 직업에 귀천이 나뉘는 이유도 그렇지. 엄마들이 생산직 가리키면서 ‘저렇게 되기 싫으면 공부 열심히 해.’라고 하는 건 흔한 얘기잖아.”
“와, 미치겠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들이 욕을 하든 집안을 들먹이든 신재현은 전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욕이라는 건 상대의 멘탈에 흠집을 내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내뱉는 것이다.
막상 신재현이 아무런 타격도 없어 보이자 가해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욕이 통하지 않는 이상 남은 것은 폭력뿐이었다.
왕따라면 몰라도 여기서 신재현을 패도 될까, 하는 고민이 그들 얼굴에 엿보였다.
“그래서 내가 저번 중간고사 때 일부러 시험을 좀 잘 봤어. 언제 너네 한 번 조지려고. 공부 못하는 놈들끼리 싸우면 양아치 개싸움이지만 공부 잘하는 놈이 공부 못하는 놈이랑 싸우면 그건 정의 구현이거든.”
“뭐, 뭐?”
“겨우 너희 같은 쓰레기 좀 조지자고 귀찮게 공부를 했다 이 말이야. 어차피 대학교도 안 가는데.”
신재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의자를 집어 던졌다.
가해 학생 셋 중, 아까 골라둔 한 명을 향해서였다.
-와장창!
“으악!”
의자를 피하려다 넘어진 가해 학생이 채 일어서기도 전에 신재현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남은 두 명이 달려들어도 소용없었다.
신재현은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딱 한 놈만 건드렸다.
“야이씨, 이 미친 새끼 좀 말려봐!”
“선생님 불러와! 선생님!”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신재현은 멱살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얘가 맞을 땐 선생님 부르라는 말 안 하더니 저 새끼가 처맞으니까 선생님 불러 오냐?”
막 교실을 뛰쳐나가려던 학생 하나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신재현은 피해 학생을 가리켰다.
“얘가 지금까지 맞은 게 한 50대쯤 돼. 그리고 내가 저놈한테 딱 5대 때렸어. 너네는 50대를 참고 지켜봤는데 5대는 못 참겠다 이거냐?”
교실 안이 조용했다.
신재현은 난리통에 얻어맞은 입가를 스윽 닦더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했다.
“얘 다음엔 누가 될 거라고 생각했냐? 나만 아니면 된다 이거야? 너희들 다 병신이다.”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는 같은 반 학생들을 뒤로하고 신재현은 채성현을 콕 짚어서 말했다.
“그중에서 네가 제일 병신이야. 알아? 이 셋은 그냥 개새끼지만 너는 더 개새끼라고.”
채성현으로서는 처음 듣는 비난이었다.
이 반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신재현에게 얻어맞은 가해 학생이 아니라 채성현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학생주임과 담임이 달려와 상황을 수습했다.
두 선생님은 신재현에게는 양호실로 가라는 말만 남기고 가해 학생 셋을 교무실로 데려갔다.
놀랍게도 신재현이 예상한 그대로였다.
“아, 선생님! 맞은 건 전데 왜 제가 혼나야 되는데요!”
“방황하던 애가 마음 잡고 전교 15등을 했어. 그런 애가 뭐가 아쉬워서 널 때렸겠냐? 너희 같은 양아치가 면학 분위기 흐리고, 사고나 치고 다니니까 그렇지!”
“아, 걔 어차피 대학교 안 간다고 했단 말이에요!”
“이젠 남의 가정환경까지 들먹이냐? 공부만 잘하면 성적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도 있어! 너나 걱정해, 너나! 전교 235등이 어딜 15등을 걱정해?”
결국 신재현은 아무런 피해도 없이 가해 학생 셋의 봉사 7일로 사건은 끝났다.
방과 후, 채성현은 신재현을 붙잡았다.
“너 다 계산한 거야?”
“뭘.”
“너는 혼나지 않을 거라는 거.”
“지금 겨우 그것 때문에 붙잡은 거냐?”
신재현의 목소리에 한심하다는 기색이 섞였다.
“그래. 그 셋 가정도 평범하니까. 부모가 국회의원이나 재벌 아닌 이상은 그 상황에선 무조건 내가 이겨.”
“그럼 하나 더. 너는 왜 나한테 화가 난 거야?”
“하…….”
신재현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시하고 가려는 듯 발을 떼었다가 이내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더니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모두 친구라며? 너는 친구가 친구 때리는데 별생각이 없냐? 너한테 진짜 친구란 게 있긴 하냐?”
“알고 지내면 다 친구 아니야?”
“아니, 너는 그냥 인기 많고 싶어 하는 관종 놈이야.”
채성현은 비난을 퍼붓고 돌아가는 신재현의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자신의 얄팍한 관계를 모조리 정리했다.
일진 놀이나 하던 가해 학생 그룹에서는 완전히 떨어져 나왔고 여기저기 조금씩 찔러보며 어울리던 것도 그만뒀다.
그 후 채성현은 신재현에게 가서 직접적으로 물었다.
“야, 고민이 있다.”
“뭔데.”
“친구는 어떻게 만드는 거냐.”
“아오,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하지…….”
“난 진지한데.”
진저리를 치면서도 신재현은 딱히 채성현을 내치지 않았다.
서로 투덕거리며 지내다 보니 친구가 되었다.
졸업 후 하나는 취직 전선에 뛰어들고 하나는 대학교로 진학했지만, 그러고도 둘의 연락은 끊기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이 각자 사회에서 다른 위치를 갖게 되면 멀어지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둘은 서로에 대한 열등감도 부러움도 없었다.
신재현은 그런 걸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었고, 채성현은 신재현을 자신의 최고의 친구라고 생각했다.
둘 중 한쪽이 계속 얻어먹게 되면 친구 사이가 깨지기 십상인데, 공시생 시절 채성현이 밥을 여러 번 사도 둘 사이는 여전했다.
몇 년 만에 만나도 반가울 정도로.
모교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채상현은 조수석을 흘끔 바라보며 물었다.
“너 혹시 나 말고 다른 애들 연락하냐?”
“응? 안 해. 가장 최근에 연락한 게 너야.”
“최근? 3년 전이 최근이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그럼 너 오늘 가면 놀라겠다. 그거 아냐? 우리 고3 때…… 어 아니다. 이건 직접 봐야 해.”
“그냥 미리 말해 줘. 궁금하잖아.”
“아냐, 너 놀라는 걸 봐야겠어.”
“놀라운 거라고 말했는데 내가 놀랄까?”
“말 많네. 일단 가면 안다니까?”
어느새 저 멀리 둘의 모교, 한강 고등학교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