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단 3일 만에 (1)
신재현이 세븐스타 사무실에 쳐들어와 민도연을 말린 첫째 날.
상황은 민도연이 두려워했던 대로 흘러갔다.
[속보] 민도연, 극단적 선택
└왜? 무슨 일 있음? 얘가 왜 죽어?
└민도연이 누군데. 듣보잡 죽었다고 난리냐.
└요즘 뜨는 애 있음. 탈세했단 얘기 나오더니 진짜였나 보네.
└죽으면 다냐?
[속보] 민도연, 소속사 옥상에서 투신 소동. 무사히 발견돼.
└떨어질 거면 떨어지지 소동은 뭐냐.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댓글 수준 뭐임?
└이런 놈들 때문에 연예인들이 힘들다고 하는 거임.
└탈세했으면 뒤져도 됨ㅅㄱ
아직까지는 민도연에 대한 욕이 많았다.
다민은 민도연을 집으로 데리고 가는 동안 기사를 확인했다.
비단 세븐스타와 민도연만 조사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서울지방국세청의 조사국에서 몇 방송인을 대상으로 조사의 손길을 뻗쳤다고 했다.
개중에는 확실히 탈세한 방송인이 많았다.
민도연의 사정 역시 그에 묻혀서 묶음으로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둘째 날.
연예계가 뒤숭숭했다.
예능국의 구석지에 위치한 오퀴즈 녹화장에까지 그 소식이 들려올 정도였다.
스탭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퍼졌다.
다민의 소속사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사 봤어요? 세븐스타 소속 배우 민도연이 탈세로 세무조사 받았다던데.
-신재현이 직접 담당했다면서요.
-요즘 자숙할 사람 참 많네요.
-다민 씨가 아닌 게 다행이지.
-다민 씨랑 민도연이랑 친하다던데.
-사람이 너무 착해도 걱정이야.
드라마국에서는 민도연이 현재 촬영 중이던 드라마에서 하차할 수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민도연은 공식적으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쥐죽은 듯 집 안에 틀어박혔고 다민이 간혹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둘은 변치 않는 주위 시선에 불편을 쏟아낼 만하건만 꿈쩍도 하지 않고 믿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한 명의 PD가 다민을 찾아 왔다.
예능국에서 주말 저녁 시간대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꽤 끗발 있는 PD였다.
그는 다민을 찾아와 협박하듯 말했다.
“네가 그제 그 자리에 있었다며?”
주말 예능 PD쯤 되면 다민 같은 젊고 어린 연예인 한둘쯤은 길가의 돌멩이처럼 보였다.
아니, 오히려 이런 연예인들이 예능에 한 번 나와 보겠답시고 PD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일도 흔했다.
PD의 콧대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 전부.”
“……네? 그걸 왜…….”
다짜고짜 설명하라고 하면 당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정 시청률 20%를 가진 콧대 높은 예능 PD, 정호명은 다민의 감정을 고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매달 다민의 소속사에서 천만 원씩 받아먹던 PD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신재현이 왔다 갔다니 무슨 소리야. 민도연을 조지러 간 건지, 세븐스타를 조지러 간 건지 말을 해 줘야 내가 대처를 할 거 아냐!’
다민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올려 보자 정호명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아, 내가 이래서 아이돌 출신을 싫어해. 빡대가리랑 말하면 나까지 멍청해지는 것 같거든.”
대놓고 무안을 주는 말이었다.
주위에 있던 스탭이 웅성거렸지만 누구도 함부로 나서지 못 했다.
“나 바쁘거든?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말해. 다른 선택지가 있었으면 그쪽으로 갔을 텐데, 그 당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너라고 다들 말하잖아.”
“그 자리라는 게 뭘 말씀하시는 거죠?”
“며칠 전에 민도연이 뛰어 내리네 마네 난리 친 날 있잖아. 신재현인가 뭐 공무원 놈이 헤집고 갔다며. 이렇게 말해 줘야 이해하냐?”
다민은 정색했다.
하얀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자 인상이 바뀌었다.
맹해 보이던 얼굴이 서릿발 같은 냉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표정 뭔데. 내가 반말하니까 기분 나빠?”
유명 PD인 정호명 입장에서 다민처럼 이제 막 날개를 펴려고 하는 아이돌 출신 가수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온갖 기획사가 그에게 달려와 술을 사고 돈을 쥐여 준다.
대부분은 그의 프로그램에 게스트라도 내보내 얼굴도장을 찍으려는 목적이었다.
그렇게 한 번이라도 나오려고 대기 중인 소위 아이돌이 한 트럭은 되었다.
“야. 기분 나빠?”
정호명은 다민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정호명 PD님! 뭐 하는 겁니까!”
녹화장 안쪽에서 오퀴즈의 PD와 메인 진행자인 오재석이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
“아, 천 PD님. 오재석 씨도 계셨네요.”
오퀴즈를 책임지고 있는 PD와 오재석은 나오자마자 분위기를 파악했다.
“정 PD님, 오셨으면 들어오시지 않고요. 저희 다민 씨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천 PD도 예능국의 선배인 정호명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갔다.
시청률이 곧 권력인 곳이었다.
내부에서 PD가 쌍욕을 하건 스탭들에게 짜증을 내건 시청률만 나오면 봐주는 경향이 강했다.
때문에 여기서 정호명을 말릴 수 있는 것은 국민 MC라 칭송받는 오재석 뿐이었다.
“정 PD님. 어떤 말씀인가요? 제가 듣겠습니다.”
“아뇨, 다민 씨하고 둘이서 할 얘기가 있어서요.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대체 어떤 질문이시죠?”
“별것도 아닌데 대답을 안 하네요.”
이제 오재석의 시선은 다민에게 향했다.
적당히 상대해주고 돌려보내라는 눈빛이었지만 다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바보인 것도 맞고 맹한 것도 맞아요. 저를 욕하시는 건 참을 수 있어요. 근데 신재현을 욕하는 건 못 참아요.”
“얘가 뭐라는 거야?”
“제 앞에서 신재현 욕하는 꼴은 못 봐요.”
의식의 흐름을 넘나드는 대화에 정호명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거 미친년이네.”
“감사하네요.”
다민의 태도에 불안해진 것은 오퀴즈의 PD였다.
그는 서둘러 다가와서 다민에게 귓속말했다.
“다민 씨, 화나는 건 이해하는데 지금 여기서 싸워서 좋을 게 없어요. 그냥 듣고 싶은 말만 들려주고 쫓아냅시다.”
천 PD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투였다.
다민은 가만히 천 PD를 쳐다보다가 그에게 소곤거렸다.
“이 사람한테는 그렇게 공손하게 하지 않아도 돼요. 저렇게 큰소리 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한 짓이 있어서요.”
다민은 신재현이 슬쩍 지나가듯 알려준 말을 떠올렸다.
정호명, 자신의 프로그램에 내보내 주겠다는 핑계로 여러 기획사에서 돈을 뜯어낸 인간.
피와 눈물로 세워낸 노력을 짓밟는 방송계의 악질.
신재현이 치려고 조사 중인 인간이었으며 절대 숙이고 싶지 않은 종류의 인간이기도 했다.
“……예에?”
예능국에서 톱으로 꼽히는 PD의 몰락을 예고하는 말에 천 PD가 기겁을 했다.
마약이나 도박, 그도 아니면 범죄로 고발당하는 일이 아닌 이상 정호명이 그의 자리를 잃는 일은 없을 테니까.
성격은 더러워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실력만큼은 수준급인 것이다.
국장이 그의 성격을 용인할 정도로.
“다민 씨,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무서운 말을 하는 거예요? 물론 정 PD가 못돼먹은 건 맞지만…….”
천 PD는 혹시라도 정호명이 들을까 봐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정호명이 아니었다.
“둘이서 뭘 그렇게 속닥거리는 겁니까? 제 뒷담이라도 하십니까?”
“PD님…….”
“됐고, 다민 씨는 좀 빌려 가죠. 녹화 시작 전에 데려다 놓을 테니 걱정 마세요.”
정호명은 마음이 급했다.
그날 신재현이 무엇을 물어봤는지, 어쩌다 세븐스타가 세무조사를 받게 됐는지 물어봐야 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받은 뇌물이 들켰는지 안 들켰는지다.
신재현이 세븐스타를 들렀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그것이 신경 쓰여서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유독 신경이 예민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콕 짚어서 ‘신재현이 뇌물 얘기를 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냥 그날 있었던 일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하면 된다고.”
정호명은 다민의 손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정 PD님! 아이돌이에요!”
“당장 내가 급해요. 금방이면 된다니까!”
기겁한 오재석과 천 PD가 들러붙었지만 정호명은 완강했다.
“아이고, 정 PD님! 다민 씨가 뭘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일단 진정하시고 저희 사무실 가서 얘기 나누세요!”
오재석이 서둘러 정호명을 쫓아갔다.
정호명조차 국민 MC 오재석은 쉽사리 떼어낼 수 없었다.
정호명과 오재석이 실랑이를 하는 사이 어느덧 복도까지 다다랐다.
“제가 좀 급하다고요.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네! 누가 얘 잡아먹는답니까!”
마음이 급해진 정호명이 버럭 외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생각보다 심각해지는 사태에 스탭들이 발만 동동 굴렀다.
“정호명 씨!!!”
그 순간 서릿발 같은 외침이 복도를 가득 메웠다.
귀가 아플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이 난리통을 뚫고 소란을 단숨에 잠재울 정도로 강렬했다.
고개를 기울여 사람들 틈으로 복도를 건너다본 다민이 활짝 웃었다.
정호명에게 붙잡힌 팔의 반대쪽 손을 들어 머리 위로 크게 흔들었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남자를 반기는 것은 다민뿐이었다.
복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저편을 응시했다.
저 멀리에서 한 남자가 얇은 재킷을 펄럭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좁은 복도에 드리워진 형광등이 그의 머리 위에 후광처럼 내리꽂혔다.
마음의 문제일까.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남자의 주변에 깔린 빛은 시리고도 푸르게 보였다.
어쩌면 살기가 형상화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헙.”
신재현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고, 심지어 이야기까지 나눠 본 사이였다.
그러나 그때와는 천지 차이였다.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수줍게 웃던 그가 저렇게 흉험하게 변할 수 있다니.
수십 명의 사람이 복도에 몰려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조용했다.
홀로 다른 이들의 숨소리마저 짓눌러 버릴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이 복도를 걸어 다가왔다.
말쑥한 정장, 그 위에 걸친 얇은 트렌치코트가 그의 이미지를 더욱 날카롭게 했다.
공무원은 딱 봐도 공무원이라는 티가 난다는데 그가 그랬다.
“정호명 씨.”
신재현이 호명하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정호명의 손에서 힘이 빠지며 다민의 팔을 놓았다.
“한참 찾았는데 여기서 흉한 꼴을 보이고 계셨군요.”
“나, 나를 왜 찾습니까?”
“꽤 많이 받으셨더군요. 저희 국세청 선에서 끝나지 않을 만큼요.”
그 말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 역시 없다.
신재현이 직접 나와서 ‘국세청 선을 넘는다’고 발언했다면 작은 일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특히 방송국에서 일하는 이들은 신재현의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익히 알았다.
“맙소사…….”
오재석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가시죠. 저희 공문 확인하시고 세무조사 입회해주셔야 합니다. 검찰 수사도 기다리고 있으니 갈 길이 바쁩니다.”
신재현은 정호명의 팔을 움켜쥐고 밖으로 이끌었다.
아까 정호명이 다민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우악스러운 몸짓이었다.
어어, 하고 정호명이 비틀비틀 이끌려갔다.
“정 PD님 이거 좋게 끝나진 않겠죠?”
“검찰 수사? 난리 났네.”
스탭들의 수군거림에 정신을 차린 천 PD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녹화장을 나섰다.
“저 잠시 국장님한테 다녀올게요.”
예능국이 뒤집어질 대사건이다.
아무리 시청률이 최고라지만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국장마저 어쩔 수 없을 것인가.
어차피 긴급회의가 소집될 것이다.
천 PD는 신재현이 앞서 나간 복도를 서둘러 달렸다.
***
4일째 되던 날.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반전되기 시작했다.
국세청 관련 소식통으로는 최고로 뽑히는 나학진 기자의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단독] 이용당한 세무조사. 진짜 탈세범은 누구?
나학진답지 않게 자극적인 제목이었다.
-며칠 전, 한 배우가 탈세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정식적인 세무조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그 배우의 실명과 혐의가 공개되었다. 결국 그 배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뻔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해당 배우는 탈세에 대해 무고했다. 한 배우를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간 그 모든 기사는 한 연예기획사 사장이 꾸민 계획의 일환이었다.
기사는 중립적이지 않았다.
드물게도 내내 분노의 어조였으며 한 기획사 사장의 행위를 낱낱이 파헤쳤다.
장장 5,500자에 달하는 기사의 내용에는 사장이 어떻게 제보했는지, 과정과 결과는 어떠했는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나학진의 기사는 순식간에 인용되어 연예란을 가득 채웠다.
민도연을 욕했던 기자들은 이제 그 펜 끝으로 기획사 사장을 욕하고 있었다.
└야. 중립 기어 박으라고 했지.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민도연이 악플 고소해도 할 말없다ㄹㅇ 고소장 기다려라.
민도연은 다민과 함께 기사와 댓글을 하나하나 찬찬히 읽었다.
그리고 목 놓아 울며 끝없이 되뇌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