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제가 잘 보거든요 (2)
사장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세무조사라는 게 다 그렇다.
털면 뭐라도 나온다.
그래서 요즘 언론에 탈세 얘기가 많으니 거기에 좀 편승해 보려고 했을 뿐인데.
RPG 게임을 켰더니 호기심에 들어간 던전에서 최종보스가 나온 기분이었다.
“어, 어어.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보자라면 신재현이 나왔을 때 오히려 반가워 해야 정상이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놀라며 굳어 있는 것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기 십상이었다.
사장은 잔뜩 굳은 얼굴 근육을 움직여 애써 미소를 만들었다.
‘나는 반갑다, 제보자로서 반갑다. 잘못한 게 없으니까 반갑다!’
스스로 최면을 걸다시피 했다.
그러나 죄지은 사람이 늘 그렇듯 사장의 반응은 부자연스러웠다.
사무실의 직원들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였다.
“사장님,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 나누실까요?”
여기엔 듣는 귀가 많지 않나.
제삼자 없이 마음껏 얘기할 기회를 주겠다.
신재현은 눈빛으로 그렇게 제안했다.
사장은 자신이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의아해졌다.
‘뭐야, 내가 가짜로 제보한 걸 모르나?’
사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신재현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이상하게도 신재현과 그 팀원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만 들어오고 셋은 사무실에 남았다.
문을 닫는 사장의 손길이 미세하게 떨렸다.
“앉으세요. 마실 거라도…….”
“됐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죠. 세븐스타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이자 이번 민도연 씨 탈세 혐의 제보자, 최한욱 씨 맞으시죠?”
신재현이 의자에 앉자 사장은 다른 한 명의 공무원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그러나 그는 가방을 든 채 문 옆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압도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장님?”
“네네. 저도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민도연 씨는 저희 회사의 간판 배우라 정말 끝까지 모르는 척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양심에 걸려서요.”
지난밤 내내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사장은 민도연의 부정을 성토했다.
“신재현 팀장님이 맡으신다니 안심입니다. 잘못된 점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시고 법대로 처리해 주십시오.”
“법대로, 라.”
신재현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가 다 알고 왔다는 식의 눈빛이라 사장이 몸을 떨었다.
‘아냐, 알 리가 없어. 난 그냥 제보만 한 건데. 공무원 놈들이 건드는 건 탈세잖아. 막상 민도연이 혐의가 없다고 해도 나는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야. 의심 가서 제보한 건데 뭐가 잘못이야!’
사장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자기합리화를 했으면 당당하게라도 나서야 하는데 사장의 태도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설명을 마치고 본인 스스로 뿌듯해서 얼굴이 폈다가도 신재현과 눈이 마주치면 또 금세 얼어붙었다.
표정 변화가 다양해서 지켜보기 재밌는 사람이었다.
신재현이 피식 웃으며 가만히 응시하자 반대로 사장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제대로 하지도 못할 거면서 왜 시작했나 몰라.’
꼭 겪어 봐야 아는 사람이 있다.
머릿속에 있는 계획을 현실에서 실험하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람의 인생을 조지려 하면 본인이 조져지는 수가 있다는 것을.
‘이런 경우엔 친절하게 설명을 드려야겠네. 지금 본인이 얼마나 곤란해졌는지.’
신재현은 햇빛이 스며드는 창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한 잔잔한 목소리였다.
“제 얘기는 본의 아니게 기사로 자주 다뤄져서 아마 아실 수도 있어요. 제가 공무원 1년 차 때 이상한 누명을 쓴 적이 있었거든요?”
사장은 책상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이 타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 검사가 저를 소환하더니 제가 사기업에 다니던 때 횡령한 게 아니냐고 묻더군요.”
“그, 그렇습니까.”
“검사는 제가 총무부에서 통장을 관리했다는 이유로 회사 법인 통장에서 이유 없이 나간 현금 출금액을 모조리 제 횡령이라고 단정했습니다.”
“…….”
사장이 횡령이라며 뒤집어씌우려던 증거 또한 저것이었다.
법인 통장에서 현금으로 이유 없이 나간 금액들.
사장이 사적으로 쓴 돈이었지만 어차피 통장만 봐서는 누가 뺐는지 모른다.
그래서 여러 직원에게 증언을 부탁해서 민도연이 빼 간 것처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검사는 힘이 막강해요. 증거랍시고 들이밀고 네가 했지? 라고 몰아붙이면 뒤집어쓰기 딱 좋거든요.”
“그렇……습니까.”
사장은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 대답했다.
아까부터 목 안쪽에 무언가가 걸리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지금 이렇게 앉아계신 걸 보면 횡령 혐의는 무사히 벗으신 것 같군요.”
신재현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사장님, 검사도 못 했는데 사장님은 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에?”
대놓고 모든 것을 안다는 듯한 질문에 사장이 흠칫했다.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사장은 신재현의 눈치를 보았다.
신재현은 겉으로 보기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사회생활로 몸에 밴 그린 듯한 미소였다.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에 사장은 눈에 띄게 손을 덜덜 떨었다.
아까부터 말하는 모양새가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역시나 그랬다.
사장과 따로 보자고 하더니 왜 하필 횡령에 대한 일화를 끄집어냈는지.
왜 사장에게 할 수 있을 거냐고 물었는지.
뻔하다.
알고 왔다는 뜻이다.
“제가 뭘 한다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추궁당할 경우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인정하거나 침묵하거나 부정하거나.
사장은 부정하는 것을 골랐다.
물론 신재현은 미동도 없었다.
셋 중 어느 선택지를 골랐더라도 신재현은 상관없었을 것이다.
“저, 저는 제보자입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민도연 탈세나 조사하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아하, 모르신다 이 말씀이군요. 그러면 기억을 떠올리게 도와드려 볼까요?”
여유로운 태도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저는 현 사건을 담당한 공무원으로서 제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원합니다. 따라서 제보자님께 여쭙겠습니다.”
신재현이 다리를 꼬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남의 사무실인데도 주인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바로 뒤에 서 있던 황민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이 역시 수십 번 해 본 것처럼 손발이 딱딱 맞았다.
“제 손에 들린 것이 바로 사장님께서 홈페이지에 제보하신 탈세 신고서입니다. 소속 배우의 요청으로 수시로 정산금 이외의 가욋돈을 법인 통장에서 인출하여 현금으로 건네주었다. 이 배우는 그 외에도 경비 명목으로 영수증을 주고 실비 정산을 요구했는데 그 영수증이 하나같이 정규 증빙이 아니었다. 또한 회사를 통하지 않고 몰래 행사를 나가 막대한 수입을 챙겼다. 본인이 쓰신 제보 내용 맞죠?”
“……왜 제가 추궁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제보 내용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추궁당하는 느낌을 받으신다면 사장님께서 뭔가 거리낌을 느끼신 것이 아닐까요?”
“저는 아는 대로 적었을 뿐입니다!”
사장은 쉽사리 인정하지 않았다.
신재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민도연이라는 배우가 억울하다는 것은 안다.
누명을 벗기는 건 쉽다.
그러나 신재현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원인을 없애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몇 번이고 일어날 테니까.
-저희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신재현 팀장님이 맡으셨다면 저희가 거짓말해도 소용없겠죠. 이미 알고 오신 거잖아요?
-저 신재현 팀장님이 누군지 알아요. TV에서 봤어요. 우리 사장님 조사하시려는 거예요?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영원히 이 업계에 발도 못 붙이게 해 준다고…….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신재현은 자신의 앞에서 울던 어린 연습생들을 떠올렸다.
미성년이 대부분이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종이가 구겨지며 와그작, 하는 소리가 났다.
“사장님께서는 공공기관을 우습게 아시는 모양입니다.”
“무슨!”
사장이 뭐라 소리치려 할 때였다.
두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강혜원은 방금 뽑아 프린터의 온기가 느껴지는 종이 뭉치를 황민우에게 내밀더니 곧바로 나갔다.
황민우는 그 서류를 보지도 않고 신재현에게 내밀었다.
일련의 과정이 미리 계획했던 것처럼 착착 이루어졌다.
“그, 그게 뭡니까?”
조용히 종이 넘어가는 소리만 들리자 사장이 불안함에 먼저 물었다.
신재현은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황민우에게 탈세 신고서를 내밀었다.
황민우는 으레 하는 일인 양 구겨진 종잇조각을 잘 펴더니 서류철에 집어넣었다.
열 받을 때마다 하도 구기다 보니 이젠 공문서 구기지 말란 충고도 안 한 지 오래였다.
“회사의 법인 통장 내역이네요. 사장님도 잘 아시죠? 사장님이 직접 통장 관리해 오셨으니까. 저랑 같이 보시겠습니까?”
신재현이 다가와 책상에 종이를 턱 하니 올려놓았다.
“아까 사장님이 근거로 제시한 것은 셋입니다. 통장에서 돈을 빼서 수시로 현금으로 주었다, 영수증을 조작했다. 계약 외의 행사를 뛰어 그 소득을 누락했다. 그중 첫 번째, 통장에서 돈을 빼서 주었다를 보죠.”
신재현이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담배를 끊었는데도 습관처럼 갖고 다니는 라이터, 동전 몇 개, 휴짓조각이 튀어나왔다.
황민우가 눈치 빠르게 달려와 형광펜을 쥐여 주었다.
신재현은 사장이 보는 눈앞에서 종이를 고정한 집게를 풀더니 눈에 띄는 출금액에 형광펜을 그어 나갔다.
-촥, 촤악!
손길에 망설임은 없었다.
평소 하던 것처럼 체크해야 할 것들에 표시하는 것뿐이었지만 사장 눈에는 자신의 잘못을 짚어 내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공무원들은 다들 이 작업을 싫어해요. 단순 작업이고 귀찮거든요. 근데 이게 하다 보면 재밌는 순간이 있어요. 황민우 조사관님, 우리 준비한 것 좀 주실래요?”
황민우가 이번엔 재산이 잔뜩 적힌 표를 꺼냈다.
신재현은 책상 구석에 놓인 계산기를 끌어당겨 형광펜으로 칠한 것을 더하기 시작했다.
사장으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였다.
수십 개의 숫자를 더하는 데도 순식간에 계산기 액정에 결과값이 나타났다.
“작년 12월에 개인적으로 3억짜리 차 한 대 일시불로 구입하셨죠? 자동차 등록증 보면 다 나오거든요. 사장님이 월급으로 한 달에 천만 원가량 가져가시죠? 카드값으로 월 700만 원 정도 쓰시고. 그럼 남은 돈은 300만 원이에요. 그걸 모아서 3억짜리 차를 살 수 있을까요?”
신재현은 계산기를 사장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284,500,000]
“작년 하반기 약 4달 간 통장에서 조금씩 쪼개서 나간 금액을 합쳐 보니 딱 2억 8천 언저리가 나오네요. 어디서 많이 보던 금액이죠?”
“어, 아니…….”
이렇게 순식간에 찾는다고?
사장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저도 모르게 뱉으려던 말을 꿀꺽 집어 삼켰다.
신재현은 사장의 개인 재산이 적힌 종이를 팔랑대고 있었다.
“횡령하는 경우 보이는 특징이 이렇습니다. 절대 월급으로 커버할 수 없는 수준의 씀씀이가 보여요. 그걸 법인 통장에서 찾아 맞추면 아귀가 딱 맞더라구요. 어때요, 퍼즐 맞추는 것 같아서 재밌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있다.
혹시라도 조사하다가 민도연에게 뒤집어씌운 것이 자신이라고 들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런데 이렇게 시작하자마자 사장 본인의 횡령이 들킬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 해봤다.
더군다나 아예 눈앞에서 대놓고 보여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막연하게 ‘조사’라고만 생각했던 것의 구체적인 과정을 보고 나니 사장은 자신이 안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의 청년에게 시간만 주면 그야말로 자신의 부정을 모조리 벗겨 버릴 것이다.
이제는 민도연이 문제가 아니었다.
민도연이야 털어서 먼지가 나오든, 무혐의로 넘어가든 알 바가 아니다.
당장 사장 자신이 끝장나게 생겼으니까.
“이제 겨우 하나 끝났어요. 남은 두 가지도 해결해야죠. 자, 증거가 있으면 보여주시죠.”
“이걸 이렇게 순식간에…….”
사장의 시선이 통장 사본으로 내려갔다가 도로 올라왔다.
여전히 웃고 있는 신재현과 눈이 마주친 후, 깨달았다.
이걸 신재현이 살펴보게 해서는 안 된다!
“말도 안 돼!”
그러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미 신재현은 조사한답시고 나와 버렸다.
무슨 말을 해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아악! 안 돼! 내가 대체 무슨 짓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딱이었다.
사장은 스스로의 멍청함에 몸부림치며 책상에 머리를 쿵쿵 찧었다.
“진정하세요, 선생님.”
황민우가 사장을 말렸다.
안에서 벌어진 소동에 직원들이 놀라서 달려왔다.
“내가 미쳤어! 내가 미쳤다고! 내가 내 무덤을 팠다고!!!”
이미 버스는 떠났다.
사장은 절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