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제가 잘 보거든요 (1)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손님은 눈물을 글썽이더니 다짜고짜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생각나는 사람이 팀장님밖에 없었어요. 일에 관련된 얘기에요.”
다민의 목소리에서 절실함이 묻어 나왔다.
신재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도저히 돌려보낼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밖에서 누가 보면 곤란하시죠? 일단 들어오세요. 아니다, 남의 집 들어가면 더 곤란한가?”
신재현은 다민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흠칫하며 손을 뗐다.
정말 처음 있는 사태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손도 못 대고 우왕좌왕하고 있자 다민이 먼저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신재현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몸을 움직였다.
“자, 잠시만요.”
신재현이 다민보다 앞서 나가며 안내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했지만, 속으로는 온갖 혼돈이 휘몰아쳤다.
이래도 되나?
정말로 되나?
그동안 집에 여자인 친구조차 초대한 적이 없었다.
여자친구는 아예 있었던 적이 없으니 여자 사람 친구 말이다.
그런데 연예인을 집에 들여도 되나?
아이돌 그룹 출신이고 현재는 예능과 연기까지 진출한 사람인데.
남의 집에, 남자 집에 이렇게 들어와도 되는 거야?
대체 무슨 깡이지?
온갖 생각이 휘몰아쳐서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화단에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한 후에야 신재현은 오른팔과 오른발을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신재현은 2층으로 향하는 낡은 외부 계단을 오르며 심호흡을 했다.
‘수정이랑 다민이랑 다른 점이 뭐지?’
둘은 똑같은 여자다.
심지어 다민은 일 때문에 왔다.
그렇다면 긴장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래. 갑자기 집에 찾아와 눈물을 글썽여서 놀란 것뿐이야.’
신재현은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 집에 강혜원이나 권현아가 놀러 온다고 해서 긴장할 필요가 없잖아. 아, 직장 동료가 집에 오면 긴장하겠지. 예를 잘못 들었구나.’
-짤랑.
신재현은 무의식적으로 꺼낸 열쇠가 부딪치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어느새 문 앞이었다.
신재현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내 뒤에 있는 사람은 업무상 관계자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이랑 다를 게 없어!’
-달칵.
신재현의 결심과 함께 열쇠가 돌았다.
그리고 곧바로 어머니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각오했던 바였다.
“재현이 왔니? 저녁에 미역국 끓여놔…… 에구머니나!”
웬 처자가 현관에 따라 들어오니 어머니가 기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신재현은 서둘러 어머니를 진정시켰다.
정확히는 변명에 가까웠다.
“아니, 요 앞에서 만났는데. 일 때문에 오신 거야. 일이야, 일!”
“일인데 집으로 오셨어? 사무실에서 만나는 게 아니고?”
“어, 그렇네.”
신재현이 아차 했다.
당황해서 그대로 데려오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어머니 말이 옳았다.
그래도 급히 찾아온 사람을 어떻게 내친단 말인가.
신재현이 머쓱하며 뒤를 돌다가 흠칫했다.
다민이 꿈꾸는 듯한 얼굴로 슬며시 집을 살피고 있었다.
‘우와, 내가 집까지 들어왔어.’
좋아할 상황이 아닌데도 다민은 순간 정신이 팔려 눈물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
열 평 남짓한 평범한 집이었지만 아늑함이 배어든 공간이었다.
아이돌의 집에 들어온 팬의 심정이 이럴까.
다민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눈은 저절로 집을 훑었다.
그 모습에 신재현은 어쩐지 온몸에 잔뜩 들어갔던 긴장이 팍 식은 느낌이었다.
‘괜히 나 혼자만 당황했네.’
신재현은 금세 원래의 사무적인 태도로 돌아왔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만나는 장소만 다를 뿐 평범한 제보자다.
당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신재현의 평온한 응대에 바닥에 앉는 다민을 보며 어머니가 웃음을 지었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야. 진짜 아니라니까? 잠깐만 안방 가 있어 봐. 일 얘기만 할 거야.”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지 왜.”
“엄마…….”
“으이구, 알았어. 그래도 손님인데 차는 내 드려야 할 것 아니니. 가서 얘기하고 있어.”
어머니가 주방으로 가 물을 끓이는 동안 둘은 작은 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민 앞에 앉았다.
다민은 여전히 집안을 이모저모 뜯어 보고 있었다.
그 눈길에 신재현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좋은 옷만 입고 좋은 집에 살던 연예인이 이런 누추한 집에 오니 신기한 거라고 추측한 것이다.
“실망하셨죠?”
“응?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저도 데뷔하기 전에는 반지하에서 살았어요. 크기는 여기랑 비슷했고요.”
“아, 그래요?”
신재현은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하긴, 처음부터 잘난 사람은 없으니까.
신재현은 다민에 대한 생각을 수정했다.
다민 역시 힘든 환경에서도 노력해서 자수성가 한 사람이구나, 하고.
신재현은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니만큼 자수성가 한 사람을 좋아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정말 죄송해요. 저도 막상 들어오고 나니 후회가 들긴 했는데. 아까는 정말 생각나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어요.”
다민은 떨리는 어조로 더듬더듬 설명을 시작했다.
선배가 찾아온 것, 사장에게 불려간 것, 협박을 받은 것, 증거랍시고 이상한 것을 내밀었다 등이었다.
다민의 말은 길었고 중간 중간 감정이 북받쳐 울컥하는 것이 보였다.
도중에 어머니가 가져온 녹차로 목을 축이며 다민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 합리적이고 조리 있는 설명은 아니었지만, 다민이 모든 말을 끝마칠 때까지 신재현은 단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듣기만 했다.
어느덧 밖이 어두워지고 가로등에 노란 불빛이 들어왔을 때, 다민의 설명이 끝났다.
거실에 침묵이 흘렀다.
다 털어내고 나자 진정이 됐는지 다민이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고서 이제야 판단력이 돌아왔는지 안절부절못했다.
거실에 침묵이 흐르자 급기야 다민은 신재현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되는데.’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진다.
흔히 밑바닥을 보인다고 표현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자제력과 판단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다민 정도면 양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민이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도 알겠고, 그 상황에서 자신을 떠올린 정황 역시 이해했다.
서울청 회의에서 세븐스타 소속 연예인에 대한 탈세 제보가 들어온 것과 연계해 보면 앞뒤 정황도 대충 짐작이 갔다.
‘탈세 없는 탈세범 제보가 왜 나왔는지 알겠네.’
오히려 전모를 알게 되니 속이 시원했다.
“상황은 이해했습니다. 제가 뭘 해야 할지도 알겠군요.”
“믿어 주시는 거예요?”
“믿고 말고 할 것 없이 저는 객관적인 자료만 가지고 판단합니다. 자세히 검토해 봐야 하겠지만 민도연 씨가 누명을 썼다는 건 알겠습니다.”
“믿어 주시는 거군요…….”
꾹꾹 참아 가며 잘 설명하던 다민이었다.
그런데 신재현이 말을 끝내자마자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신재현은 다시 당황했다.
‘뭐지? 내가 말실수를 했나? 무조건 믿는다고 했어야 하나?’
하지만 공적인 이야기고 제보를 들은 거니까 공적으로 얘기한 것이다.
신재현이 당황하며 휴지를 찾고 있자 안방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후다닥 뛰쳐나왔다.
-짜악!
“으이구, 이 한심한 아들내미야.”
“어, 엄마?”
어머니는 어디서 꺼냈는지 손수건을 쥐여 주며 다민의 등을 토닥였다.
“많이 힘들었죠? 이제 괜찮아요. 마음고생 많았어요. 우리 아들내미가 일밖에 모르는데 그만큼 실력은 자신 있어 하더라고요. 억울한 일 없게 잘해 줄 거예요. 내가 잘 말해 둘게요.”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다민의 어깨를 감싸며 달랬다.
다민이 훌쩍이며 기다렸다는 듯 울기 시작했고 신재현은 그저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슬쩍 눈치를 주자 신재현은 엉겁결에 대답했다.
“마, 맞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죠.”
다민이 왜 우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신재현 역시 부당한 처사로 회사에서 잘려 본 사람이다.
회사의 이상을 눈치챘다는 이유로.
사람이 억울하면 얼마나 미쳐 버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분께 전해 주세요. 잘못한 게 없다면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네!”
다민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재현의 확언 하나만으로도 이미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민 씨도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요?”
다민이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연습생들이 민도연 씨의 횡령을 증언할 거라고 하셨잖아요. 제가 그 연습생분들을 만나고 싶네요.”
“회사랑 연습실 가면 만날 수 있어요. 사옥 지하에 연습실 있거든요.”
“아뇨, 사장님 모르게 따로요.”
전해 들은 것으로 봐서는 사장이 직원과 연습생들을 협박한 것이 확실했다.
세 명이 입을 모아 말하면 호랑이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민도연 씨가 평소 돈을 요구했다’하는 증언을 하기 시작하면 깜빡 속아 넘어갈 수도 있다.
실제 재판에서도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신재현은 진지하게 작은 상을 짚었다.
“다민 씨만 도와줄 수 있는 일입니다.”
다민이 순간 헙, 하고 숨을 들이쉬더니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세무조사 공문이 세븐스타 사무실에 도착했다.
공문에는 ‘세븐스타 엔터테인먼트 전반’이라고 적혀 있었다.
겁을 먹은 사장은 즉시 공문에 쓰여 있는 담당자에게 전화했고 담당자는 사장을 안심시켰다.
‘원래 들어가는 문구예요. 저희는 절차상 조사 대상에 쓰여 있는 것만 조사할 수 있는데 막상 가면 또 어디를 손댈지 모르잖아요. 저희가 천리안이 있는 게 아니니까. 특히 제보자님께서 아시다시피 제보 들어온 건이라 저희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조사해야 할지 몰라요. 실제로 국세기본법 세무조사 조항을 보면, 조사 대상자 본인을 조사하다 필요하면 거래처에도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고 되어 있거든요. 그런 식이라고 보시면 돼요.’
제보자라고 밝히자 담당자의 설명은 자세하고 친절했다.
사장은 만족하며 전화를 끊었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왜 민도연에 대해 조사하면서 세븐스타를 전수조사하는지.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사무실로 쳐들어와 현장조사 하겠다고 하는지.
조사 담당자가 세무서가 아닌 서울청 소속인 것까지.
소속 배우 민도연을 향한 조사라기엔 회사에 대한 대응이 과했다.
그러나 사장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국세청 홈페이지를 통해 신고했으니 서울청에 할당이 됐겠거니, 생각했을 뿐이다.
공문 맨 아래에 적힌 무슨 무슨 팀은 더더욱 관심에 없었다.
법이 어쩌고 하는 어려운 용어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밑에 작게 새겨진 담당 부서 이름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담당자 이름에 신재현이 쓰여 있지 않은 것만 확인하고 안심했다.
그가 아는 세무 공무원이라고 해 봤자 신재현 하나밖에 없었다.
[배우 민도연, 탈세 혐의로 세무조사 받나]
[민도연, 횡령과 탈세 혐의로 조사 중]
이어서 연예 면에 톱으로 뜬 뉴스를 본 사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는 기자에게 부탁했던 대로 민도연의 이미지를 깎아 먹을 작업도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이제 회사에서 세무조사가 진행되었다는 말을 은근슬쩍 흘리면 된다.
아예 SNS에 올릴 생각으로 조사하는 장면도 사진으로 찍을 생각이었다.
회사 이름으로 ‘팬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문까지 올리면 금상첨화다.
‘민도연은 끝이야. 감히 좀 떴다고 벗어나려 한 대가다. 무명 시절보다 더 비참하게 만들어 주지.’
배우에게 이미지가 생명인 만큼 사장의 행동은 민도연의 숨통을 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장님, 국세청에서 오셨습니다.”
미리 알려 주었기 때문인지 세무조사를 시작한다는 말에도 직원들의 동요는 없었다.
침착한 분위기 속에서 사장은 국세청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실을 나갔다.
잘 좀 부탁한다는 말로 인사를 시작하려던 사장은 순간 양팔을 벌린 채로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국세청 직원이든 세무서 직원이든 자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아는 얼굴이 절대 있을 수 없다.
딱 한 명만 빼고는.
“사장님이시군요. 오늘 세븐스타 엔터테인먼트의 세무조사를 진행할 팀장 신재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무적인 말투에 사장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뭔가가 잘못됐다.
사장은 나무토막처럼 잘 움직이지 않는 팔을 들어 올려 눈을 비볐다.
“왜, 직접…….”
가까스로 입을 열었지만 제대로 물어볼 수가 없었다.
말끝을 흐리자 신재현이 찰떡 같이 알아듣고 대꾸했다.
“제가 잘 보거든요. 아시죠?”
신재현이 웃으며 눈을 찡긋하자 사장은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