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연예계의 뒷모습 (2)
“다민 씨, 오늘도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싹싹하게 모든 스탭을 향해 인사를 마친 다민은 밝은 얼굴로 세트장을 빠져 나갔다.
“갑자기 빈자리에 대타로 들어온 거라 다민 씨가 잘할지 걱정이었는데 기우였네요.”
“금방 적응한 것 같네요. 성격도 밝고 활달해서 분위기도 더 좋아진 것 같고.”
오퀴즈의 PD와 진행자 오재석은 다민의 뒷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무명이었다가 뜨면 조금 거만한 구석이 보이게 마련인데, 다민에게서는 그런 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도 다민은 세트장 출구에서 만난 스탭에게 또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참이었다.
“공민화 씨 소식은 들었습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 탈세, 음주운전, 도박, 셋 중 하나만 걸리면 바로 끝장이죠.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고 들었습니다.”
“에휴, 왜 그런 짓을 해서…….”
“공민화 씨가 그런 사람이었던 거죠. 어쩌겠습니까. 본인이 자초한 일인데.”
“자숙한다고는 하는데 과연 이 업계에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일단 저는 안 쓸 생각이거든요.”
PD는 단호한 말투에 오재석은 쓰게 웃었다.
지금 오퀴즈를 담당하는 PD는 연예인의 인성에 다분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신입 시절 거만한 연예인에게 당한 것이 많아 그렇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민 씨는 참 바르고 착해서 좋아요. 공민화 씨가 얘기하는 것만 들어서 좀 멀리했었는데.”
“다민이가 좀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고깝게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PD님이야 직접 보셨으니 오해가 풀리셨겠지만요.”
“저는 저런 사람이야말로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오재석 씨가 잘 이끌어 주세요.”
“걱정 마세요. 저도 다민이 응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소속사인데…….”
“어디였죠?”
“세븐스타입니다.”
오재석의 대답에 PD의 얼굴이 굳었다.
“하필 그 세븐스타라고요?”
“네. 무명 때 멋모르고 계약했겠죠.”
“거기 소문이 좀 안 좋던데…….”
PD는 안타까운 얼굴로 다시 출구를 바라보았다.
이미 다민은 사라지고 난 후였다.
“다민 씨가 고등학생 때 데뷔했으니까 계약 조건이 많이 안 좋았을 때죠?”
“겉으로는 티를 안 내서 잘 모르지만 그리 좋진 않을 겁니다. 어리고 무명인 사람들 등쳐먹는 놈들이 흔하니까요.”
보기 드물게 오재석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왔지만 PD는 만류하지 않았다.
“세븐스타의 사장이 그중 한 명이고요.”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신재현 팀장님하고 개인적으로 연락 하십니까?”
PD의 질문에 오재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세븐스타 관련해서 제보하시려고요?”
“아뇨. 그렇게까지는 아닙니다. 거기 소속된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청탁 아닙니까. 저는 그냥 다른 뜻 없이 여쭤본 거예요.”
“PD님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걸로 알겠습니다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연락처를 교환하긴 했는데 섣불리 먼저 연락 드리기가 그래서요. 특별한 날에 안부 문자 정도만 합니다. 오히려 다민이가 신재현 팀장님과 친하죠.”
“네? 다민 씨가요?”
이번엔 PD의 눈이 동그래졌다.
“모범납세자 표창 받은 걸 계기로 내년부터 국세청 홍보대사 활동하기로 했답니다.”
“그럼 개인적인 연락은 하려나…… 세븐스타에서 헛수작 부리면 신재현 팀장님에게 상담이라도 받으면 제가 좀 안심하겠는데요.”
그제야 오재석은 왜 PD가 신재현의 이름을 꺼냈는지 이해했다.
연예계에서 호구 소리까지 듣는 다민의 성격에 부당한 취급을 당해도 혼자만 끌어안을까봐 걱정인 것이다.
“다민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함부로 뭘 부탁하기가 어렵겠죠. 잘못하면 청탁인데요.”
PD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계약 끝나고 나오면 좋겠네요. 오재석 씨가 이쪽 업계 대선배 아닙니까. 많이 챙겨 주세요.”
PD의 부탁 아닌 부탁에 오재석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모범 납세자 표창을 받을 정도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인데요.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오재석 역시 무명 시절이 길었기에 다민 같은 사람을 보면 절로 마음이 쓰였다.
PD와 오재석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민은 신나게 복도를 걸었다.
발걸음은 경쾌했고 입에서는 절로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요즘 들어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신재현을 만난 후로 그랬다.
자신의 팬들이 느끼는 기분도 이런 걸까.
그저 일하고 돈 벌고, 그렇게 쳇바퀴 도는 것처럼 느껴졌던 인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데뷔해서인지 즐거운 학창시절은 없었다.
일반인 친구도 몇 없었다.
카메라 앞에서 웃고 노래하는 것은 좋았지만 일이 되면 힘들다.
어떻게든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나날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달랐다.
‘아, 가는 길에 뉴스 봐야지!’
다민의 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타다닥.
다민의 달리다시피 하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놀란 매니저가 운전석에서 뛰쳐나왔다.
“누나! 무슨 일 있어요? 누가 쫓아와요? 사생이에요?”
“응? 아냐. 얼른 집에 가고 싶어서.”
“아…… 난 또 뭐라고. 놀랐잖아요.”
다민은 매니저를 재촉했다.
차가 방송국을 나서자 다민은 바로 태블릿 PC를 들었다.
평소 같으면 이동시간 짬짬이 잤을 테지만 요즘은 계속 이랬다.
“오! 못 보던 사진이다! 우와, 뒤풀이 식당 주인 아저씨가 찍은 사진인가 봐!”
무슨 뒤풀이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다민은 SNS를 꼼꼼하게 검색하며 신재현의 사진을 저장했다.
누가 봐도 연예인이라 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누나, 밖에서는 너무 그러지 마요. 이상하게 생각한단 말이에요.”
“이미 늦었어. 저번에 표창받을 때 사진 뜬 거 못 봤어?”
“그때는 기자들이 그냥 동경인가보다, 하고 넘어갔으니 다행이죠. 또 그런 거 찍히면 안 된단 말이에요. 사장님한테 혼나요.”
기획사 방침 상 연애 및 그와 비스무리한 것은 무조건 금지다.
남자와 눈빛을 교환하는 사진 하나만 가지고도 아이돌의 생명은 끝장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나이가 몇인데. 그룹 해체한 지도 오래 됐고. 그리고 요즘엔 연예인이 연애한다고 욕하고 그런 시대 아니야.”
“누나가 뭘 모르시네. 저번에 모 그룹에서 열애설 터져서 음반활동 바로 접은 거 못 보셨어요?”
“걔네는 20살이잖아.”
“26살도 사정은 비슷하답니다. 무엇보다 계약 위반이라 진짜 큰일 날 수 있어요.”
계약서 얘기가 나오자 다민은 입을 다물었다.
단순한 내부 지침이 아니라 계약서에 명시된 구절인 만큼 다민도 더는 우길 수 없었다.
대신 입을 삐죽였다.
“신재현 좋은데…….”
“저도 좋아해요. 신재현. 남자가 봐도 멋있잖아요. 요즘 대한민국에서 신재현 싫어하는 사람은 탈세범밖에 없을걸요?”
“그치? 그러니까…….”
“그러니까 딱 그 정도 선만 지키시라고요. 아무도 의심 안 하게.”
“힝.”
“다 큰 어른이 힝, 같은 거 하지 말고요.”
다민은 입을 삐죽였다.
이 역시 다 큰 어른이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백미러로 보이는 다민의 부루퉁한 얼굴이 귀여워서 매니저는 웃고 말았다.
다 큰 어른이라고 해도 이런 습관들은 몸에 밴 것이었다.
무대나 인터뷰 등에서 콘셉트에 맞게 꾸며낸 모습들이 이제는 버릇이 된 것이다.
결국 다민을 이기지 못한 매니저는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네네. 신재현 앞에서 그런 행동만 하지 마세요. 기레기가 보고 이상한 기사 쓰면 답이 없어요.”
“어? 그러고 보니 신재현은 내 귀여운 모습을 못 봤겠구나! 고마워! 다음에 만나면 해봐야지!”
“누나, 제발…… 사장님한테 혼나요.”
“알았어, 알았어.”
다민은 아쉬움과 함께 태블릿 PC를 열었다.
검색하는 키워드는 의외로 다양했다.
신재현, 세무서, 국세청의 저승사자, 탈세, 조세포탈, 서울지방국세청 등등.
다민을 잘 아는 사람이 검색창을 본다면 기겁할 것이다.
세법은커녕 공부에 관심도 없던 다민이었다.
그랬던 다민이 지금은 조세포탈과 탈세, 그리고 절세까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전부 신재현에 대해 조사하다 알게 된 것이다.
‘엄마가 알면 그 정성으로 수능 공부를 하라고 혼내겠지.’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남에게 사랑을 받는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빠지는 날이 오다니.
다민은 배시시 웃으면서 못 보던 사진을 저장했다.
아니, 이미 갤러리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일 수도 있지만 일단 저장을 눌렀다.
누가 봐도 아이돌이 아닌 ‘팬’의 모습이었다.
이미지 검색으로 사진을 쓸어 담다시피 한 다민은 이번엔 습관처럼 기사를 검색했다.
[여론조사] 국감 이후 여야 성적표는?
다민은 의아한 얼굴로 눈썹을 찌푸렸다.
분류된 탭을 보아하니 정치다.
국감에 신재현이 나갔으니 기사 내에 쓰여 있는 이름에 검색이 된 모양이다.
그러나 안 누르고 지나가자니 찝찝해서 다민은 결국 누르고 말았다.
-특별한 사건 없이는 가장 큰 지지율 변동을 보이는 때가 바로 국정감사이다. 이번 국정감사 역시 고양이, 개, 유명 펭귄 뉴튜버, 세무 공무원 등 다양한 직종(종족)의 참고인이 출석했다. 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겉만 화려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서 과연 성공적인 국감이었는가’를 봐야 한다. 이런저런 평가는 둘째 치고 과연 국민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한국 여론조사기관 갤러리 리서치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정감사에서 스타를 꿈꾼 국회의원들은 쓰디쓴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앞부분은 전형적인 정치 기사였다.
정치인의 사정 따위야 다민의 관심이 아니다.
다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대충 밑으로 내렸다.
신재현에 대한 언급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조사한 결과,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여당의 대선 주자인 차주혁이 25.4%로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제1야당의 대선 주자 하동문이 22.5%로 뒤를 이은 것 까지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차트에 의외의 이름이 있었다. 대선 여론조사 7위에 신재현의 이름이 등극한 것이다. 지지율은 무려 5.1%를 획득했다.
“끼아아아!”
기사를 읽던 다민이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운전하던 매니저가 놀랄 정도였다.
“뭐야! 뭐예요, 누나! 벌레 있어요?”
“그간 총선의 기타 칸에서 신재현의 이름이 은근슬쩍 등장한 적은 있다. 그러나 신재현이 무려 5%에 달하는 지지율로 당당하게 여론조사 차트에 등극한 것은 우리나라 국민이 얼마나 그에게 기대를 걸고 사랑을 보내고 있는지 가늠케 한다!”
다민이 기사를 읽자 매니저가 안심한 눈치를 했다.
“아, 기사였구나. 어? 근데 누나, 신재현 대선 못 나가지 않아요?”
“못 나가는 게 아니라 안 나가는 거지! 국회 가서도 그랬잖아. 자기는 정치 그런 거 관심 없고 국세청 일만 하겠다고.”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대통령은 40살 넘어야 나갈 수 있어요. 법에 그렇게 정해져 있대요.”
“아, 그런 것도 법으로 정해져 있구나. 그럼 왜 5%나 나왔을까?”
“글쎄요. 누나처럼 대통령 나이 제한 있는 걸 몰랐거나, 나이 제한 상관없이 뽑을 사람이 신재현밖에 없거나?”
“그럼 결국 신재현이 인기가 많다는 거네?”
“뭐, 결론은 그렇겠죠.”
다민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자신의 기사가 아닌데도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처럼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매니저가 남몰래 한숨을 쉬고, 다민이 열심히 기사를 읽는 사이 차는 다민의 집에 도착했다.
“아, 사진 많이 건졌어. 오늘도 좋은 하루였다!”
다민이 만족한 얼굴로 매니저를 돌려보냈을 때였다.
“다민 씨, 다민 씨!”
주차장 저 멀리에 세워져 있던 승용차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다민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기둥 바로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같은 소속사의 선배였다.
“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다민이 쪼르르 달려가 인사했지만 정작 선배는 잔뜩 불안정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기다렸어요, 다민 씨.”
“전화 주시지 그러셨어요. 아니면 회사 사무실에서 봐도 되는데.”
“아니, 회사는 안 돼요. 오늘도 일부러 조용히 온 건데.”
안절부절 못하며 손톱을 물어뜯던 선배가 울상을 지었다.
“내가 탈세했대요.”
“네에?”
다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