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19화 (219/500)

219화. 국감 스타 (4)

그 시각 부산청 조사과 사무실.

한쪽 벽면에 달린 TV에서 익숙한 얼굴이 흘러나왔다.

신재현의 국감 장면을 틀어 둔 것이다.

“신 팀장이 TV 자주 나가서 그런가? 긴장을 하나도 안 하네요.”

본청의 과장 소민국은 손에 든 서류와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는 신재현이 맡던 건을 인수인계 받아 그의 위치에서 팀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냥 뭐 하나에 꽂히면 그거 말고는 눈에 안 보여서 그렇습니다.”

장세훈이 서류를 탁탁 치며 맞받았다.

신재현이 있던 자리를 그대로 소민국 과장이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는 현재 서울청 팀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신재현이 빠지자 남은 팀원은 그 즉시 군말 없이 소민국 과장을 지휘권자로 받아들였다.

신재현이 뭐라 말하고 갔는지는 몰라도 조금의 잡음도 나지 않았다.

이 팀을 이겨보겠답시고 씩씩거리며 달려온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깔끔한 인수인계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신재현이 있을 때만큼 착착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신재현을 중심으로 맞물려 들어가던 톱니바퀴가 무언가 어그러진 기분이었다.

남은 팀원들이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그러나 과장부터가 삐걱거림을 느끼는데 함께 손발을 맞추는 이들이 그것을 모를 리는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최선을 다해 소민국 과장을 보필했다.

“재조사가 필요한 건은 파란색 색인표 달아뒀습니다.”

“저희 본청 조사과에 바로 넘기세요. 완료된 건은요?”

“조사 완전히 끝난 건은 황민우 조사관에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끝자리에서 안길진과 함께 무언가를 분류하던 황민우가 고개를 들었다.

“완료된 건은 제게 전부 모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검토한 후 노란색 색인표 달아서 이쪽 벽에 쌓아 놓습니다.”

황민우가 한쪽 벽면 가득 쌓인 상자와 그 안에 든 서류를 가리켰다.

겨우 5명의 팀이었는데도 두 번 세 번 검토할 여력이 난다는 것에 과장은 감탄했다.

적어도 한 명 한 명이 각각 단순한 팀원 이상의 몫을 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정리는 얼마나 강박적으로 해놨는지 말하면 족족 1분 내로 찾아온다.

왜 이렇게 비정상적인 팀으로 발전했는지는 뻔했다.

적은 인원수로 모든 과정을 다 처리해야 하니 그런 것이다.

시간 낭비하는 일이 없어야 하니 정리는 완벽할 수밖에 없고 각각 맡은 바가 뚜렷하다.

신재현만 따지자면 괴물이 맞다.

그러나 이들 또한 탐나는 인재였다.

그만큼 신재현이 그동안 얼마나 이들을 굴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응? 우리 팀장님 또 사고 쳤나? 국회의원들 표정 왜 저래요?”

강혜원의 말에 황민우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막 지르는 거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름 생각이 있으실 거예요.”

소민국 과장은 둘의 대화에 실시간 댓글을 켰다.

황민우의 말과는 달리 댓글창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여야 없다는 말은 진짜 맘에 든다.

-너만 믿는다!

-사실 저게 맞는 거임

-모두까기 나가신다!

-딱 못 박아서 얘기했네. 신재현을 적대하는 놈은 탈세범뿐임!

속보로 뜬 기사 몇 가지와 댓글창을 둘러본 과장은 그제야 무슨 흐름인지 이해했다.

“이분법적 논리를 매우 유용하게 써먹었네요.”

과장은 감탄하며 혀를 내둘렀다.

앞뒤 질문과 문맥을 보아하니 여야 모두 정치적 노림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여당은 신재현의 인기에 편승해 보려 했고, 야당은 어떻게든 신재현을 깎아내리며 국세청을 견제하려 했다.

잘게 엉킨 실타래나 다름없는 국면을 칼로 끊어내듯이 잘라냈다.

자신의 적은 탈세범이다.

즉, 탈세범이 아니면 자신을 적대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얼핏 논리가 비약하면 ‘나를 적대하는 놈은 탈세범이다’라고 나갈 수도 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논리였지만 이미지 장사인 국회에서는 먹힐 수도 있었다.

게다가 신재현은 단순히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양옆에 앉아 있는 청장의 표정이 평온했다.

무언가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뜻이다.

“계획이 다 있었군요.”

과장은 입맛을 다시며 TV로 시선을 돌렸다.

여야 할 것 없이 의원들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수군대고 있었다.

그 후 이어진 질문은 신재현이 아닌 두 청장에게 화살이 향했다.

세무조사에 위법성이 없었는가 하는, 비교적 정상적인 질문이었다.

“의원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하네요.”

국정감사장의 탐탁지 않은 분위기가 화면 너머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황민우가 슬쩍 얼굴에 걱정을 띄웠다가 금세 지워냈다.

워낙에 사고 치는 일이 많아 옆에서 보좌한다는 명목으로 붙어 다닌 지 벌써 2년이다.

요즘 들어 신재현이 바빠지면서 이리저리 혼자 다니는 일이 늘고 있었다.

‘저 성질만 좀 죽이시면 좋을 텐데…….’

자신만의 선을 그어두고 그걸 넘는 놈은 상대가 누구든 물어뜯는 성격은 장점이면서도 단점이었다.

자신이 붙어 다니면서 말리긴 하겠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특히나 오늘은 국정감사라 또 국회의원 앞에서 막말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청장님도 붙어계시고. 저 정도면 많이 발전했지.’

황민우는 화면을 힐끔거리며 바쁘게 손을 놀렸다.

이제는 서울청의 특수조사팀조차 좁게 느껴질 만큼 신재현의 이름값이 높아지고 있었다.

황민우는 시원섭섭함과 동시에 뿌듯함을 느꼈다.

어디까지 올라갈지 보고 싶다고 했던 마음은 지금도 여전했다.

‘더 올라가셔야죠.’

황민우는 조용히 응원했다.

***

국정감사도 점심시간은 챙긴다.

신재현은 오전 내내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며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양옆의 청장은 목이 타는지 연신 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반 세 의원의 질의 외에는 모든 질문이 청장에게 쏠린 것이다.

“의원님들이 너무 질문을 안 하시는데요.”

신재현이 청장의 반 발짝 뒤에서 따라가며 혼잣말을 했다.

셋은 나란히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신재현이야 처음이었지만 두 청장은 와본 적이 있는지 능숙하게 길을 잡았다.

“아니, 그 정도면 괜찮아. 너무 들이박아도 안 좋아.”

새로 국세청장 자리에 앉은 오낙현은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평소에도 모험보다는 본인의 안위를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특히나 소극적이었다.

신임 국세청장이 되자마자 국정감사라는 빅 이벤트에 끌려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지산을 친지 얼마 안 된 데다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의원들의 견제를 받기는 싫은 것이다.

당장 국정감사 첫 질의부터가 국세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것이었으니까.

그로서는 신재현이 이 정도로만 그쳐준 것이 다행스러웠다.

“글쎄요, 할 말을 다 한 건 아니라서…… 뜻이 잘 전달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볼까, 아니면 역효과일까 고민 중이었습니다.”

신재현이 고심하며 답하자 오낙현이 기겁하며 뒤를 돌았다.

그 표정을 본 민치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신재현을 달랬다.

“의원님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알겠지만 국세청장님 말씀도 맞아. 오늘 잘해줬어. 여론이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 아까 의원님들 조심스러운 태도 봤지?”

민치호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신재현의 출석이 결정된 이후 오낙현은 걱정스러워했다.

국회의원을 조사하겠다고 들이밀까 봐서였다.

게다가 일전에 국회에 가서 반쯤 선전포고까지 하고 오지 않았는가.

오낙현 청장은 국회와 척을 지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

그것을 민치호가 설득했다.

-오히려 신재현 팀장의 청렴함을 무기로 우리가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지금 국회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엇입니까? 바로 국민의 시선입니다. 당장 내년에 총선이 있어요. 지금 국감에서 지지율 조금이라도 올려보겠답시고 신재현까지 부른 것 아닙니까? 그러니 그 국민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 봅시다.

그리고 신재현이 거들었다.

-국회의원, 하물며 대통령도 임기가 있습니다. 임기가 끝날 때엔 가장 많이 국민의 눈치를 보게 되죠. 저번에 제가 국회에 갔을 때와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쁜 놈들을 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번 기회에 못을 박아두는 겁니다.

오낙현 청장은 고심 끝에 허락했다.

그가 생각해도 지금 국세청을 도와줄 사람은 권력자가 아닌 여론이었던 것이다.

잘만 되면 국회는 국세청 길들이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계획은 통했다.

실시간으로 보좌관에게서 여론을 전해 들은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재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국세청을 견제하려고 부른 것인데 오히려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뉴튜브의 실시간 조회수가 10만을 넘어가고 댓글이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자 의원들은 섣불리 질의하지 못했다.

일단 고함부터 지르고 보자는 심리는 뉴튜브 조회수를 보고받자마자 사라졌다.

어떻게든 안 좋은 방향으로 엮어보려는 시도 또한 베스트 댓글을 보자마자 쏙 들어갔다.

민치호는 잠깐 걸음을 늦춰 신재현에게 보폭을 맞췄다.

신재현은 아직도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조금 더 나가도 될지, 아니면 청장의 말대로 이 정도면 충분할지 계산을 해보고 있는 것이리라.

너무 젊은 나이에 정치질을 가르치는 것 같아 내심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끌어들인 것에 후회하지는 않았다.

정치질도 배워둬야 할 정도로 앞으로 갈 길이 험했으니까.

지금이야 오낙현과 자신이 어떻게든 보호하겠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우산은 두꺼울수록 좋았다.

민치호는 고민 중인 신재현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한 발만 잘못 내디뎌도 낭떠러지인 곳에서는 생각이 깊을수록 좋지. 하지만 오늘은 신 팀장이 아닌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날이야.”

신재현이 고개를 들었다.

피곤함이 서린 눈동자였지만 총기는 여전했다.

정치질을 가르치긴 했지만, 민치호는 아직 신재현이 세법 아닌 일에 깊게 마음 쓰길 원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아서 야근하는 사람이다.

“오늘은 충분히 잘해줬어. 이 분위기라면 오후에도 별다른 일은 없을 거야.”

민치호의 말에도 신재현은 짧게 다시 계산을 굴렸다.

“그럼 오후 상황을 봐 가면서 대응하겠습니다. 저도 더 자극하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작정 들이받지만은 않을 생각인가보다.

민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들이받을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한다는 건 좋은 현상이다.

서른도 안 된 젊은이라면 더더욱.

경력이 짧은 직원들은 흔히 속내를 숨기지 못해 얼굴에 표정을 다 드러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재현은 배우는 것도 빨랐고 생각도 깊었다.

“그래도 가만히 당할 생각은 없습니다. 의원님들이 공격해온다면 받아쳐야죠.”

“그건 당연하지.”

민치호는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셋은 구내식당에 들어가자마자 발걸음을 멈췄다.

“……원래 국감 날은 이렇습니까?”

국정감사를 처음 겪어보는 신재현이 물었지만 어리둥절하기는 두 청장도 마찬가지였다.

“어, 음…….”

“요즘엔 국감에서 눈에 띄려고 애쓴다는 게 진짜였나 봅니다. 대체 저게 뭐지?”

“저, 저거 유명 뉴튜버 아닌가요? 저 인형 안에 누가 들어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그…….”

식당을 돌아다니던 펭귄 모양의 인형탈 하나가 입구의 신재현을 발견하고는 또박또박 다가왔다.

그는 신재현을 요리조리 쳐다보더니 짧고 뚱뚱한 날개를 내밀었다.

“반가워요!”

“네? 네에…… 반갑습니다.”

펭귄 모양의 인형탈을 뒤집어쓴 남자는 신재현을 꼭 끌어안았다.

인형탈이 워낙에 커서 한 아름에 안기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는 신재현을 끌어안은 채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피차 고생 많으시네요. 힘내세요.”

연기 톤이 빠진, 씁쓸함이 감도는 목소리에 신재현은 저도 모르게 인형 탈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이 사람 역시 국감 스타 좀 되어보려는 국회의원에게 불려 나온 유명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생하십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응원은 제가 해야죠.”

인형탈의 남자는 짧은 날개를 들어 보인 뒤 시원하게 자리를 떠났다.

두 청장은 멍하니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국감 진짜 갈 데까지 갔나 봅니다.”

“그러게…….”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국감이 시작되어도 신재현이 우려했던 의원들의 공격은 없었다.

오전보다 훨씬 차분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합리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억지 트집은 없었고 신재현에게 직무를 넘어서는 질문 역시 던지지 않았다.

점심시간 사이에 방침을 정한 모양이었다.

다분히 여론을 의식한 의원들의 눈치싸움 속에 국정감사는 끝이 났다.

신재현, 그리고 두 청장이 의도한 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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