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18화 (218/500)

218화. 국감 스타 (3)

“정 과장님, 오전 회의 취소됐어요. 영업부 보고서 올라오는 대로 오후에 한대요.”

“정말요? 이게 웬일이야.”

평범한 직장인 정호연은 쾌재를 불렀다.

며칠 전부터 기다려오던 날이다.

오늘만은 한가하길 기원했는데 다행이었다.

정 과장은 서둘러 작업표시줄에 숨겨둔 뉴튜브를 켰다.

[LIVE] 2022년 국정감사 기획재정위원회

조회수 : 9,177

어느새 조회수가 1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원래라면 국정감사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주는 일은 좀처럼 없다.

기껏해야 몇 년 전 모 재벌 회장이 국정감사에 직접 출두했을 때 정도?

그때는 실시간 접속자 수가 2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였다.

당시 신문과 방송은 국정감사로 도배가 됐으며, 그때 나온 명장면은 소위 짤방이 되어 두고두고 인터넷 익명게시판에 오르내렸다.

‘내 예감엔 오늘도 만만치 않게 재밌을 것 같단 말이지.’

실제로 정 과장이 보고 있는 실황 중계는 국회 방송에서 제공하는 영상이 아니었다.

무려 공중파가 직접 뉴튜브에 스트리밍 생중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법제사법위원회도 이만한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엄청난 주목도였다.

공중파 3사에 케이블TV의 생중계까지 합치면 동시 조회수는 5만 명에 육박할 것이다.

아직 국정감사 첫날, 그것도 입장만 찍고 있는데도 그랬다.

이 모든 것은 단 한 명의 인물 때문이었다.

일명 국세청의 저승사자, 지나가는 곳마다 태풍을 일으킨다고 하는 화제의 공무원.

서울청 소속인데도 지방까지 내려가 다 엎어버리고 왔다는 기사가 끊이질 않는 28살의 젊은이.

바로 신재현이다.

‘처음엔 조작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에 맞지 않는 능력과 성과 때문에 올해 초까지만 해도 ‘국세청이 스타 배출을 위해 조작한 것이다’라는 음모론이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물론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말도 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저런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가긴 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익명 커뮤니티 ‘불라인드’에서는 믿기 힘든 이야기가 돌았으니까.

[신재현한테 세무조사 받아 본 썰 품ㅋㅋㅋㅋㅋ]

-이름 대면 다 아는 회사 다니는데 신재현 나오기 전에는 약간 얕보는 분위기였거든? 세무조사 사실 대한민국 기업이라면 한 번쯤 겪고 넘어가는 거니까 나름 준비도 했단 말임. 근데 막상 나오니까 최악의 경우 이 ㅈㄹ한 거 다 파기함ㅋㅋㅋㅋ 우리 회사 나름 특이 업종이라 전문 지식 없으면 장부 보기도 힘든데, 그냥 지가 알아서 다 봄. 진짜 희한한 게 꼼수 이런 거 안 통함.

└우리 회사도 최근에 조사도 최근에 조사받았는데 ㄹㅇ 포스 엄청남. 평소에 세무조사 그까이꺼ㅋㅋ 하던 사장 놈이었는데, 신재현 딱 사무실 문 박차고 들어오자마자 바로 설설 김. 그냥 몇 마디 묻기만 했는데 사장 놈 바로 깨갱하고 술술 붐.

└우린 좃소라서 진짜 개판인데 언제 한번 걸렸으면 좋겠다. 가족 같은 회사^^ 3명이 할 일을 1명 자르고 2명이 하는데 또 1명 자르고 싶어서 나한테 밀어주는 중^^

└탈세고발ㄱㄱ

└미쳤습니까 휴먼? 내부고발 했다가 인생 하직해요

└신재현은 했는데

└저승사자 놈하고 휴먼하고 비교하지 마라. 빡치니까.

불라인드를 포함한 익명 커뮤니티의 말을 전부 믿는다면 신재현은 그야말로 국세청의 화신이며 이상적이고 완벽한 직원이었다.

겨우 28살인데!

그러나 지금 와서는 그런 소문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느껴졌다.

어찌 되었든 성역을 넘나들며 칼을 휘두르는 놈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귀중했다.

신문에서 거침없는 행보를 볼 때면 ‘저러다 훅 가는데 제발 좀 사려라’ 싶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 보면 처세술이 있거나 무언가 방도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일반 국민인 그로서는 응원해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평소 안 보던 국정감사까지 틀어놓은 것이다.

‘의원 놈들한테 매운맛 좀 보여 줘라!’

물론 사적인 감정도 조금 섞이긴 했다.

‘이제 겨우 입장 끝났네. 시작하려면 멀었구만.’

정 과장은 실시간 댓글을 켜고 엑셀 창으로 영상을 가렸다.

-여기가 국회의원vs신재현 콜로세움 열리는 곳인가요?

-환영합니다. 입장권은 왼쪽 줄이고 배팅은 오른쪽 건물입니다.

-아조씨! 배당률 어떻게 되나요?

-9:1로 신재현 이긴다에 몰리고 있습니다.

-팝콘 팔아요!

평일인데도 생방송에는 사람이 몰렸다.

실시간 댓글은 순식간에 올라가서 제대로 읽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아직 선서하네. 라면 끓여 와야겠다.

-컴퓨터에 라면 엎을 예정

-어어, 질문한다. 국정감사 원래 이렇게 빠름?

-국감 처음 보냐?

정 과장은 얼른 이어폰을 한쪽만 귀에 꽂았다.

제3야당 의원이 마이크를 잡더니 잔뜩 꿈에 부푼 얼굴로 고개를 드는 것이 보였다.

‘쯧. 인기에 편승해 보려는 기회주의적인 놈이네.’

편견 가득한 감상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옳았다.

의원의 질문이 던져지고 신재현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마이크를 톡톡 두드리자 실시간 댓글창 역시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인터넷인데도 다들 숨죽이며 지켜본다는 긴장감이 모니터 너머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정 과장은 귀를 쫑긋 세웠다.

[전 국세청 밖, 제 업무 밖의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신재현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실시간 댓글이 폭주하듯 올라갔다.

-ㅋㅋㅋㅋㅋㅋㅋ의원쉑 머쓱하죠?

-대체 무슨 대답을 바라고 물어본 거냐?

-바쁜 사람 쓸데없이 불러서 질문하는 클라스

의원이 실제로 댓글을 봤을 리는 없지만 이렇게 대놓고 무시당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얼굴로 재차 물었다.

그래도 역시 신재현의 대답은 비슷했다.

[……그래도 직접 파견 나간 장본인이 뭔가 입장이 있을 것 아닙니까?]

[공무원에겐 입장이 필요 없습니다.]

푸흡, 하고 정 과장은 절로 웃음을 터뜨렸다.

정 과장만 그런 것이 아닌지 국감장에서도 풉, 하는 소리가 소음에 섞여 들려왔다.

명백히 웃음을 참지 못하는 소리였다.

신재현의 차가운 태도에 질문을 던진 제3야당의 의원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어…… 제가, 제가 드린 질문은 그런 것이 아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하며 횡설수설했다.

-쟤 말렸다.

-질의한 의원 이름 뭐임?

-모름

-알아도 금방 까먹을 테니 의미 없음

-시간 간다! 빨리 질문해라!

제3야당 의원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파견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의미는 있었겠지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알 바는 아닙니다.]

[……예? 왜 그렇게 대답합니까?]

신재현의 태도에 화가 난 모양이다.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신재현이 좀 뚱해 보이긴 한다. 기분 나쁜 일 있었나?

-바빠 죽겠는데 윗대가리가 쳐 부르면 저렇게 된다. 너도 회사 다녀봐라.

-ㄹㅇㅋㅋ만 치라고ㅋㅋㅋ

신재현은 가만히 의원을 쳐다보더니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카메라가 재빠르게 옆을 잡자 참고인석에 앉아 있던 서울청장이 고개를 살짝 젓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신재현의 태도가 달라졌다.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더니 양손을 테이블 위로 올려 마이크 받침대를 감싸 쥐고 진중한 표정이 되었다.

[첫째는 공무원으로서 행정부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없으며, 둘째로 만약 있었다고 해도 제가 따질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공무원입니다. 정치적 견해는 없으며 또한 정치적 판단은 하지 않습니다.]

진지한 대답이었지만 뜻은 명확했다.

또한 정치에 관련된 질문을 하면 나올 답도 뻔했다.

정치적 답변을 유도해 보려던 제3야당 의원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뻥긋거렸다.

-공무원이면 저게 맞지.

-어떻게든 끌어내려고 하는 것 같다.

-질문 너무 노골적인데? 내년에 제3야당 안 뽑는다

-저런 질문 할 거면 왜 부름?

실시간 댓글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정 과장 역시 거기에 한 마디를 보탰다.

-지지율 올리려다 말아먹게 생겼네ㅋㅋ

결국 제3야당의 의원은 어물쩍거리다 질의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이어진 질의는 여당이었다.

그들 역시 신재현을 지목했다.

-인기 많네.

-왜 다 신재현만 부름? 옆에 청장 둘이나 있는데?

-꿔다 놓은 보릿자루네.

여당 의원은 대놓고 국세청과 신재현을 칭찬했다.

질의의 형식조차 아니었다.

주어진 시간 내내 정부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다.

[……그래서 저는 국세청의 판단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 여당은 항상 국세청을 응원하겠습니다.]

10분 가까운 노골적인 칭찬 일색에 정 과장은 듣다 말고 눈썹을 찌푸렸다.

제3야당도 그랬지만 여당도 너무 대놓고 신재현을 이용해먹으려고 했다.

국정감사 시간이야 아직 한참 많이 남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질문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이야. 진짜 노골적이다.

-이건 솔직히 보기 싫어지는데

정 과장도 동감이었다.

칭찬도 도가 있는 법이다.

이건 칭찬이 아니라 아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신재현 팀장님께 수고했다는 말씀과 함께 확답을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대통령님과 함께 정의가 바로 선 나라를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실시간 댓글이 폭발했다.

-아니 이건 좀 아니지

-신재현 인기도 빨아먹기다!

-여당은 신재현과 함께합니다~

-위에 좀 닥쳐라

-이런 말 하면 신재현 이미지도 같이 깎아 먹는 거 아님? 신재현은 성역 없이 때려서 인기 있는 거자너

-ㄹㅇ 마치 같은 편인 것처럼 구네

여당 의원은 질의시간을 꽉 채워 알차게 사용했다는 뿌듯함에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신재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신재현의 표정은 빠르게 변화했다.

처음엔 관심 없다는 듯 의원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점점 어이없다는 얼굴로 변해갔다.

그리고 의원이 확답이라는 말을 꺼낼 때는 무언가 잔뜩 화가 난 듯 마이크의 받침대를 콱 잡았다.

옆에서는 서울청장이 무언가 심상찮은 기색을 느꼈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ㅋㅋㅋㅋㅋ서울청장 속 타는 것 같은데?

-서울청장의 필사적인 표정_jpg

-신재현 노빠꾸인 건 알고 있었는데 청장급도 파악하고 있었나 봄ㅋㅋㅋ

신재현은 이를 악물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누구 편도 아닙니다. 누구와 함께하지도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옆에서 말리니 참겠다는 속마음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였다.

실시간 댓글은 웃음으로 넘쳐났지만 여당 의원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아까 제3야당 의원이 했던 것처럼 당황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질의시간이 끝나 이미 마이크는 꺼진 후였다.

다음은 제1야당 의원의 차례였다.

4선의 중진인 그는 앞선 두 사람보다는 한층 절제되고 엄격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저는 신재현 팀장님이 그간 조사한 대상에 대해 통계를 내봤습니다. 약 2년 9개월 동안 꽤 많은 조사를 진행하셨던데요, 대부분이 기업체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저번엔 지산 그룹을 대상으로 하기도 했고요. 야당 의원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이건 혹시 국회 길들이기 아닙니까?]

-오, 드디어 제대로 된 질문이 나왔다.

-멍청아 저게 제대로냐?

-신재현이 과하게 때려 패긴 했잖아. 글고 왜 야당 의원만 팸? 여당 의원 팬 적 있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제1야당 지지자들이 댓글창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1야당 의원의 공세 역시 거세졌다.

[권력기관 중 하나인 국세청이 의원을 공격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두 청장을 놔두고 신재현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정 과장은 이어폰으로 의원의 발언을 들으며 불안함을 느꼈다.

정치라고는 회사 정치밖에 보고 들은 적이 없지만, 저것이 어떤 종류의 함정이라는 것은 알았다.

어떻게 대답하든 신재현에게 불리하게 흘러갈 것이란 것도.

정 과장은 자신의 말이 전달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댓글을 달았다.

-저건 청장이 막아야지. 왜 자꾸 신재현한테만 질문 하냐. 신재현은 그냥 팀장인데 무슨 국세청 대표인 것처럼 공격받네

-나도 보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몰랐는데 왜 신재현이 잘못한 것처럼 그러냐?

-어? 그렇네? 청장 뭐함?

정 과장은 애타는 마음이었지만 의외로 두 청장은 차분했다.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는 듯했다.

카메라맨도 심상찮은 기색을 느꼈는지 두 청장을 클로즈업했다.

그리고 그 옆에 배경처럼 찍힌 신재현이 청장과 눈빛을 나누더니 상체를 숙였다.

이글거리는 분노가 카메라 너머로 느껴졌다.

[의원님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저는 여당 편도 야당 편도 아닙니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이걸 보고 계시는 모든 분들의 편이죠.]

신재현은 국감장 한가운데에 놓인 카메라를 응시했다.

정 과장은 순간 눈이 마주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무언가 호소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탈세가 있으면 가차 없이 다 털 겁니다. 아까 절 띄워주신 의원님도. 국회의사당에 계신 모든 의원님, 청와대에 있는 정부 인사. 이름이 뭐고 직위가 뭐고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데없습니다. 저에겐 이 세상 모든 인간은 딱 둘 중 하나에요. 의원님!]

[뭐, 뭡니까?]

신재현이 갑작스레 목소리를 높여 부르자 질문한 의원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신재현은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의원을 노려보았다.

[제 적은 오직 국민의 혈세를 빼먹는 탈세자뿐입니다.]

제1야당 의원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다!’

정 과장은 급히 댓글창으로 눈을 돌렸다.

-이래야 신재현이지!

-너만 믿는다!

여론이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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