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17화 (217/500)

217화. 국감 스타 (2)

-다가온 국정감사, 올해의 스타는 누구?

-국회가 신청한 참고인에는 유명인이 수두룩.

-이슈 만들기에만 혈안이 된 국감, 이대로 괜찮은가.

국정감사 날짜가 잡히자 신문의 정치면에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연례행사이자 기획 감사라는 특별함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정감사는 국회의 아주 큰 특권이었다.

더군다나 총선을 앞두고 있는 때에는 주목도가 더했다.

“제3야당이 신재현을 참고인에 올렸다고 합니다.”

“제3야당이 바보짓을 하네요. 우리가 몰라서 안 부른 게 아닌데.”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어디 지지율을 빨아먹어 보겠다는 뜻이죠.”

“그 멍청이들은 자기들이 왜 제3야당에 머무르는지 이유를 몰라. 남들은 다 아는데.”

“국세청에게 국회의 무서움을 보여주되 국민을 자극해서는 안 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목적은 목줄을 매는 거죠.”

제1야당은 제3야당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면서도 국세청을 두드리기 위해 준비에 나섰다.

-올해 조사 건수랑 과세금액, 업종, 업체 별로 나눠서 주세요. 1차 산업, 2차 산업, 3차 산업 다 구분해서 주시고요.

“예? 아, 예…… 어디로 보내 드리면 될까요?”

-종이로 인쇄해서 의원실로 보내주세요.

“조, 종이요? 그거 다 뽑으면 엄청난데요.”

-종이로 보내 주세요. 엑셀로도 돌려서 주시고.

이런 전화는 애교에 불과했다.

“아이고, 진짜 곡소리 나오네. 지금 이놈의 국감 때문에 우리 업무 마비된 거 국회의원들이 알까요?”

“알면서 시키는 거예요.”

“대체 왜 그런대요? 이거 갖다 줘도 어차피 제대로 보지도 않잖아요.”

직원들이 갖다 준 자료만 벌써 A4용지 박스로 10개에 달했다.

그러고서도 자료를 요청하는 의원실의 전화는 끊이질 않았다.

이렇게 갖다 준 자료를 보면 그나마 다행이다.

수고한 보람은 있는 셈이니.

그러나 국감 자료를 준비해 본 공무원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었다.

쓸데없이 야근까지 해 가며 뽑아다 준 이 자료들은 대부분 그 누구도 들춰보는 일 없이 그대로 파기될 것이다.

그때 사무실 구석의 한 직원이 전화를 끊더니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뭔데요! 또 뭐예요!”

“그…… 재산제세 증가율과 세액을 작년과 비교해서 알고 싶다고 하는데요.”

“아아악! 아아아아악! 왜 또 우리 과야! 궁금하면 지들이 직접 와서 뽑든가!”

직원의 절규가 이어졌다.

“다른 과도 사정은 비슷해요. 지방청도 난리고.”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평소엔 국세청이 어찌어찌 대들어본다 해도 지금은 안 된다.

국정감사 땐 의원실이 왕이었다.

국회의원이 아닌 보좌관에게조차 공무원이 설설 기어야 했다.

“다음 선거 때 두고 보자.”

“누구 찍으시게요.”

“자료 요청 안 한 당이요.”

“그런 당 없는데요.”

“아악!”

한 직원이 절규했지만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이 기간에 공무원 한두 명쯤 몸살로 쓰러지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그래도 올해는 좀 심하네요.”

“뻔하죠, 뭐. 길들이기예요.”

“역시 그런가요? 청문회 때 조용히 넘어간다 했다…….”

이런 대화는 국세청뿐 아니라 각 지방청에서도 이어졌다.

신재현이 있는 부산청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비교적 자료 준비에서 자유로운 조사과는 서울청과 본청 직원들까지 한데 모여 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신 팀장, 이게 우리 쪽에서 조사한 자료거든요. 신 팀장이 한 거랑 맞춰보고 빈 곳은 우리가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잠시만요, 이거랑 이거는 빼셔도 됩니다. 거긴 시간 낭비예요.”

“응? 어떻게 알…… 아닙니다. 어련히 알아서 조사했겠어요. 그럼 이거 두 개 빼고 저희가 맡아도 됩니까?”

“넵. 그럼요.”

부산청에서 내준 사무실에는 족히 서른 명은 되는 조사관들이 틀어박혀 바쁜 시간을 보냈다.

출근해서 고개 들면 점심시간, 또 일하다 창밖을 보면 해가 지는 일상이었다.

그런 그에게 서울청장이 된 민치호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때? 할 만해?

“매일매일 바쁩니다. 그래도 9월 안에는 끝날 것 같네요.”

-엄청 빠른데. 타겟도 정하지 않은 대규모 조사라 한참 걸릴 줄 알았거든.

“본청에서도 도와주고 계시니까요. 부산청, 대구청도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십니다.”

민치호는 신재현의 대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본청에서도 도와준다는 표현을 썼다.

이 대규모 조사에서 신재현이 중심이 되어 지휘권을 잡았다는 것을 뜻했다.

-어딜 가든 밀려나질 않으니 내가 마음이 놓여.

“과찬이십니다.”

민치호의 뿌듯함이 전화 너머로도 밀려오는 목소리였다.

“그래도 안부 때문에 전화 주신 건 아니시죠?”

민치호라면 신재현에게 방해가 될까 봐 일부러라도 전화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민치호가 전화했다면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마무리는 맡기고 신 팀장 먼저 올라오는 게 좋겠어. 국세청 국정감사에 신 팀장이 참고인으로 올라왔거든.

“……제가 말입니까?”

-뻔한 얘기야. 누구는 신 팀장을 이용해서 뜨고 싶어 하고 누구는 신 팀장을 잡아먹으려고 벼르고 있겠지.

신재현은 어처구니없어서 웃었다.

가만히 일하는 사람까지 불러내서 국회에 세우고, 그걸 이용해 먹는 놈들이라니.

-의사만 물어보는 거야. 귀찮으면 안 나가도 돼.

“이게 나가기 싫다고 안 나가도 되는 거였습니까?”

-내가 알아서 처리해 주겠다는 뜻이야.

서울청장이라 해도 의원들이 벼르고 벼르는 국정감사에서 불출석한 직원을 감싸려면 꽤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병이나 경조사 등 피치 못할 사정도 아닌데.

온종일 의원들에게 시달릴 각오까지 한 것에는 고마움을 느꼈다.

“굳이 피할 이유는 없습니다. 뭐라고 개소리하나 보죠. 터뜨릴 것도 하나 있구요.”

-큰 건이면 미리 말해 줘. 그래야 수습하지.

“여당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 점쳐지는 의원 있잖습니까. 그 아들의 탈세를 건드렸다가 지방으로 날려간 조사관이 하나 있습니다. 언제 그 아들놈도 날려 주려구요.”

-으하하하핫! 신 팀장은 일복이 아주 터지는군. 일하라고 보내 놨더니 일을 또 물어왔어.

민치호는 귀가 아프도록 껄껄 웃더니 이내 심각하게 말했다.

-그런 건 터뜨리는 타이밍이 중요해. 국정감사 때는 우리가 불리하니 나중을 기약하자고. 잘못하면 국세청이 국감을 피하기 위해 의원을 협박한다는 말도 들을 수 있어.

“알겠습니다. 청장님께서 좋은 때가 되면 알려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일찌감치 올라올 거지? 내가 부산청하고 본청에 따로 말해두지.

“아닙니다. 굳이 서울청 올라가서 준비할 필요는 없어서요. 여기서 최대한 마무리하고 올라가겠습니다.”

지금 조사가 비교적 빨리 진행되는 것은 신재현이 눈으로 보고 비교해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정문을 보고 눈에 보이는 탈세액과 현저하게 차이 나면 바로 재검토 쪽으로 돌린다.

지금 신재현이 빠지면 속도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고, 남은 사람들이 그만큼 고생할 것이 분명했다.

-남의 청에서 너무 고생하는 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마음 같아서는 강제로 불러들이고 싶지만 그랬다간 신 팀장의 마음이 불편하겠지. 좋아. 편할 때 올라와.

“감사합니다.”

민치호와의 전화를 끊은 신재현은 두 눈을 잠시 눌렀다.

피곤함이 차올랐지만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제가 다음 주 중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조금 더 속도를 내겠습니다.”

“여기서 더 속도를 낼 수 있어요? 이게 최선이 아니었다고요?”

미친놈 보듯 하는 과장 옆에서 황민우가 다음 보고서를 건넸다.

“진짜 미치겠네.”

과장이 투덜거렸다.

***

국정감사 당일.

각 위원회에서는 배정된 국감장으로 향했다.

그들이 국감장에 들어서자마자 미리 와서 대기하던 국장급 행정부 인사가 의원들을 향해 먼저 악수를 청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평소라면 국회를 소 닭 보듯 하던 행정부였지만 국감 때만은 달랐다.

국회 쪽에는 발도 딛지 않던 국장급, 차관급 인사가 직접 자료를 갖고 의원실로 찾아오기도 했다.

행정부를 채찍질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였다.

법제사법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국회운영위원회 등 의원들은 전문분야에 따라 소속된 위원회가 있었다.

평소라면 청와대의 감사를 맡는 국회운영위원회나 사법계의 감사를 맡은 법제사법위원회가 인기 만점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국세청을 담당하는 기획재정위원회 역시 기자석이 만석이 되었다.

“어째 오늘은 법사위보다 이쪽에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네요. 벽 쪽에 기자들 꽉 찬 것 봐요.”

“당연하죠. 오늘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두근거리는데. 잘 하면 특종이고 못 해도 기삿감 두세 개는 나올 겁니다.”

기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장비를 점검하며 시시덕거렸다.

이윽고 의원들과 참고인이 국감장으로 하나둘 걸어 들어왔다.

앞문에는 국회의원이, 뒷문에는 참고인이.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든 국회의원이 카메라를 의식하며 입장했지만 정작 플래시 세례를 받은 것은 뒷문 쪽이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일제히 참고인들을 찍고 있는 걸 본 의원들이 자리에 앉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국감 스타가 되기 위해 화제의 인물을 불러왔건만 정작 자신들은 들러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어쩐지 오늘의 국감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느꼈다.

참고인이 각자 선서와 함께 자리에 앉자 가장 먼저 제3야당의 의원이 발언권을 얻었다.

그는 연신 입술에 마른 침을 바르며 긴장한 티를 냈다.

‘저 능구렁이들은 카메라 뺏겼다고 아쉬워하는 모양인데 본 게임은 지금부터지. 오늘 첫 질문! 2022년의 국감 스타는 바로 나다!’

제3야당 의원은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참고인을 지정했다.

“신재현 팀장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옆에 국세청장과 서울청장이 직접 나와 있었음에도 의원은 처음부터 신재현을 지적했다.

두 청장의 얼굴이 금세 흐려졌지만 다른 의원들과 기자들은 이것이 당연하다는 듯 질문을 기다렸다.

애초에 신재현의 인기 덕 좀 보자고 불러온 것이었으니 그에게 질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지진 건으로 정부에서 신 팀장을 특별히 지정하여 피해 지역으로 파견했습니다. 정부에서 어떤 의도가 있음을 알고 파견 간 겁니까?”

정부도 엮고 신재현 때리기도 해 보고.

의원의 계산은 그랬다.

여기서 신재현의 말실수 하나만 나와 주면 정부와 엮어서 같이 때릴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러나 신재현의 대답은 아주 간결했다.

“전 국세청 밖, 제 업무 밖의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직접 파견 나간 장본인이 뭔가 입장이 있을 것 아닙니까?”

“공무원에겐 입장이 필요 없습니다.”

신재현은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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