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국감 스타 (1)
부산청에 그들이 왔다.
본청 조사과의 인원은 당당한 걸음걸이로 부산청에 입성했다.
그들이 1층 로비에서 방문객 명단을 작성하는 동안 역시나 구경하러 나온 직원들이 1층에 늘어섰다.
신재현이 왔을 때와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었다.
“쟤네도 뭔가 보여 주려나?”
“그러게요. 저번에 재밌었는데 본청 사람들은 어떻게 나오시려나.”
이미 신재현의 선례도 있었겠다, 직원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저번에는 귀찮다며 내려오지 않았던 직원들도 이번에는 구경하러 내려왔기 때문에 1층이 북적북적해 보일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린 상태였다.
본청 조사관들은 명부를 작성하고 뒤를 돌자마자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너무 많은 인원들이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환영하러 나온 인파는 아닌 것 같고,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구경거리가 되는 기분이었기에 조사과장은 불쾌함을 드러냈다.
“으잉? 그냥 가려나 본데요?”
모여든 직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청 조사관들이 인파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실망한 직원들이 삼삼오오 흩어지고 본청 조사관들은 곧바로 부산청 조사과로 향했다.
전쟁이라도 벌일 듯한 기세등등한 모양새였다.
“저랑 통화한 과장님 계십니까? 오라고 하셔서 이렇게 왔습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부터 해 주시죠.”
부산청 조사과장이 뚱한 얼굴로 일어섰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따지듯 쳐들어오니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게다가 인사도 없다.
누군가는 다짜고짜 쳐들어오긴 했어도 예의 바르게 협력을 구했는데.
이미 선례가 있다 보니 내심 둘을 비교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손님들을 맞는 부산청 조사과 사무실에 찬바람이 쌩쌩 감돌았다.
“말로는 안 믿으시니 직접 보셔야겠네. 이쪽으로 오시죠.”
부산청의 과장은 매우 친절하게 손님을 사무실 한쪽으로 안내했다.
다가갈수록 무언가 쉴 새 없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자그맣게 목소리를 낮추긴 했지만 가까이 있으면 신경 쓰일 정도로 부산스러웠다.
일부러 사무실 구석에 배치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쉿. 잠시만요.”
파티션으로 가려진 곳까지 다가가자 본청 과장은 자리에 멈춰 섰다.
아직 자신들이 온 것을 모른다.
진짜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들을 기회는 지금 뿐이었다.
부산청 과장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알아서 해 보라는 뜻이다.
본청의 직원들은 잠시 숨죽이고 이들의 대화를 들었다.
“……2차 명단 어딨죠? 조사 결과랑 전체적으로 검토 한 번 하겠습니다.”
“여기 빨간 집게가 2차예요.”
“현재 각지 세무서 진척은 어떻습니까?”
“대부분은 아직 4차 조사 중이고 5차 명단까지 간 곳은 두 곳 뿐입니다.”
“통계청에서 긴급 물가 조사 결과는 왔습니까?”
“결과지는 아직 안 나왔는데 전체적으로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6차까지는 안 가도 되겠군요. 일단 5차 명단에서 멈추고 전체적으로 검토해 보죠…… 그 전에 제가 체크한 업체들 결정문 봐 주세요.”
전체적으로 한 명이 지시를 내리면 나머지 직원들이 그에 따라 움직이는 형태였다.
그렇다고 무언가 특별한 것도 없었다.
본청 과장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파티션 너머로 다가갔다.
커다란 테이블 하나를 중심으로 앉아 있는 다섯 명의 사람과 그 위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서류들이 보였다.
“……?”
작업을 멈춘 다섯이 의아한 얼굴로 과장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인지 묻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과장은 대답하기 전에 먼저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와 상석에 앉은 청년이 손에 든 서류를 훑어보았다.
체계적이다.
그리고 이 청년에게 모든 일이 집중되어 있었다.
단순히 이 청년이 중점이 되어 업무를 지휘한다는 뜻이 아니다.
방금 들은 얘기, 그리고 이 체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신재현은 명단과 보고서를 비교한 뒤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으면 명단에 표시를 했다.
그 표시된 것을 나머지 네 명이 재검토하는 과정에 들어갔다.
언뜻 보면 청년의 지휘 하에 한 팀이 어우러진 합중주 같았지만 과장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나머지 넷은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인재지만 이 청년은 다르다.
직접 보니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청년은 언뜻 훑어보기만 하는 것만으로 보고서의 이상을 잡아내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가? 라고 물으면 자신도 가능하다고 대답할 수 있다.
경력 12년의 자신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무 공무원이 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젊은이가 해낼 법한 스킬은 아니었다.
“미치겠군.”
젊은 팀의 콧대를 눌러 주러 왔는데 자신의 콧대가 눌리게 생겼다.
그럼에도 자괴감이나 불쾌함이 들지 않는 건 왜일까.
질투심이 없다는 것은 솔직히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이 청년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과연 이 시건방진 놈이 자신의 경력쯤 되었을 때는 얼마나 괴물이 되어 있을까.
그리고 그 미래의 국세청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오는 내내 마음을 달구었던 투기가 단숨에 사그라졌다.
그 빈자리에는 이 청년에 대한 궁금증이 자리 잡았다.
왜 민치호 국장이 옛날부터 이놈을 이렇게 감싸고돌았는지 알 것 같았다.
키우는 보람이 있을 것 같다.
“하! 이건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서류를 빤히 바라보던 과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채 머리를 쓸어 넘기다가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이었다.
적대감도, 질투심도.
약간의 의아함이 느껴지긴 했다.
애초에 이들은 자신을 적으로 보지 않았다.
적으로 본 것은 자신들이었지.
과장은 한숨을 푹 내쉰 후 자신의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얘네가 먼저 베이스 잡았으니까 우린 이 옆에 잡읍시다. 과장님! 이쪽에 테이블 하나 더 놔둬도 됩니까?”
부산청 과장은 ‘싸우러 온 거 아니었냐, 벌써 해결됐냐’하는 시비를 거는 대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인원이 많은데 거기 자리 잡긴 무리죠. 소회의실 하나 있으니까 거기 쓰세요. 그게 낫겠네.”
“알겠습니다.”
본청 과장은 허락이 떨어진 후에야 앉아 있는 청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해 봅시다. 본청 조사과장 소민국입니다.”
청년은 가만히 그 손을 쳐다보았다.
싸우러 온다는 소문이 있던 과장이 조용히 손을 내민 것이다.
과장의 입장 상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먼저 화해를 청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까지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은 모두 잊고 한 식구로서 일하자는 뜻이기도 했다.
청년은 더없이 환하게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환영합니다. 마침 잘 오셨네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청년은 진심으로 일손의 합류를 반겼다.
***
전국이 지진과 물가 얘기로 떠들썩한 동안, 국회는 그들만의 준비로 한창이었다.
안 그래도 곧 국정감사다.
국회의 가장 큰 이벤트이자 국민에게 어필할 기회이기도 했다.
초선 의원이 말 한마디 잘 해서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시장 후보까지 나가는 일도 있었다.
국감 스타라는 말이 생길 정도니 의원들이 국감을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더군다나 올해는 이슈가 많았다.
당장 지진 건 하나만 해도 사후처리, 보상 체계, 원인 파악 등 물어뜯을 거리는 수도 없었다.
잘만 하면 지지율을 한방에 끌어올릴 수도, 끌어내릴 수도 있는 자리이니 여야 할 것 없이 이번 국정감사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다들 이번 지진을 이용해 보려고 준비하고 있을 텐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제3야당 대표는 당의 중진 의원만 참여한 회의 자리에서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당은 정권 교체를 바라지 않으니 피의 실드를 칠 것이고 제1야당은 그를 공략하기 위해 온갖 무기를 다 쓸 것이다.
제2야당은 둘의 싸움에서 무언가 얻어가기 위해 기웃거릴 것이고.
제3야당은 그들 사이에 낄 건덕지도 없는 그야말로 쩌리였다.
이런 야당일수록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정공법으로는 눈에 띌 수 없다.
그렇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에 띄기 위해 발악한다!
그 방법 또한 다양했다.
일단 무조건 소리 지르고 보기, 특이한 소품 가지고 나오기, 특이한 인물 소환하기…….
어찌 되었든 눈에 띄기만 하면 장땡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관심을 끌기만 하면 그다음엔 여론전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인기투표 오디션장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쟁의 장.
그것이 국정감사였다.
“우리는 신재현을 부릅시다.”
“……예?”
“대표님?”
당 간부들은 기겁을 했다.
특이한 참고인을 부른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눈에 확 띄는 효과도 있지만 잘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유명한 요리인 박종원을 불렀다가 역으로 당한 사례다.
시청률도 치솟았고 당의 이름도 알린 건 좋은데 박종원을 불렀을 때부터 여론이 별로 좋지 않았다.
화제성을 노린다는 것이 너무 티가 났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질문을 던지는 족족 박종원이 되받아치는 바람에 국감에 참여한 의원들은 전부 전국구로 개망신을 당했다.
오죽하면 국감이 끝난 후, 박종원을 부른 의원이 다른 의원들에게 욕을 먹을 정도였다.
“저번에 제2야당이 신재현 불렀다가 망신당한 거 못 보셨습니까? 그놈은 우리가 갖고 놀 수 있는 놈이 아닙니다, 대표님.”
당 간부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 의원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신재현이 지방에서 날뛰는 거 봤죠? 부르기만 하면 채널 고정이라니까요.”
“국회의원 중에 신재현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당과 제1야당에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불렀을 때의 이득보다 손해가 더 클 수 있어요.”
“그럼 더 좋은 방법 있습니까? 우리 제3야당이 1이라는 숫자를 달기 위해서, 더 나아가 다음 정권을 우리 손에 쥐기 위해서는 도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손해가 있다 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 당 상황이 그렇게 열악하지는 않습니다, 대표님.”
“아뇨, 열악합니다. 지지율 여론조사 봤어요? 당장 내년에 총선인데 이러다간 원내교섭단체 구성도 실패하게 될 겁니다. 배수진이에요, 배수진! 시선을 끌어야 합니다! 지금 국감장에 작두 갖다 놓고 그 위에서 맨발로 춤이라도 춰야 할 판이에요!”
대표는 침을 튀겨 가며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부르는 것만으로도 비난이 거셀 겁니다. 적어도 다른 야당과 합의를 해 보심이…….”
한 의원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한마디로 비난을 분산하자는 뜻이었다.
“그럼 화제성도 그만큼 분산되겠죠.”
대표의 의지는 강경했다.
어째야 하나 의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회의실의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당의 최고의원이었다.
당 대표는 그를 보자마자 쌍수를 들며 맞이했다.
“어떻습니까, 가신 일은 잘되셨습니까?”
아침부터 외교사절단 역할을 맡으며 다른 당을 돌고 온 참이었다.
최고의원은 단숨에 물 한 컵을 들이켜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제1야당이 심상치 않습니다. 하동문 의원 있죠? 거기서 국세청 치려고 준비 중이랍니다.”
“국세청을요? 지금 이 시점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제1야당은 분명 지진 관련해서 행정부를 물어뜯을 준비를 하느라 한참일 텐데.
“국세청 길들이기입니까? 청장 바뀐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그럴 거였으면 청문회에서 기선제압을 했겠지요. 청문회는 조용히 넘어갔잖습니까.”
“그럼 뭐죠?”
“뒤쪽 사정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1야당은 국세청장을 소환하겠다고 이미 결정했습니다. 제2야당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아무래도 국세청이 적을 많이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 국세청에서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깔짝깔짝 건드리긴 했다.
아직 역린을 건드린 것까지는 아니지만, 앞으로 국세청이 더욱 날뛸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기죽이기는 필요한 시점이다.
“잘됐네요. 다른 당에 묻어갑시다. 신재현, 참고인으로 올리세요.”
잘하면 국감 스타고 못 해도 묻어가기가 가능하다.
제3야당은 이번 국감장이 거대 야당으로 도약할 기회가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