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14화 (214/500)

214화. 정직한 공무원으로 산다는 것 (2)

-타다다다닥!

세무서의 조용한 복도를 한 남자가 허겁지겁 달렸다.

지나가는 길에 있던 모든 사무실에서 시선이 모였다.

지금까지 세무서에서 저렇게 달리는 사람은 없었거니와 그 대상이 혈기 넘치는 젊은 직원이 아닌 팀장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팀장은 그냥 달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크아! 씨이!”

팀장의 입에서는 연신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욕설도 아니었으며 감탄사도 아니었다.

그저 다급함이라는 감정이 소리가 되어 터져 나오는 것뿐이었다.

팀장은 조사과 사무실에 들어오더니 문을 탁 닫았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정신없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조사과의 1팀과 2팀의 시선이 모두 쏠렸다.

“안 팀장, 무슨 일이에요?”

나른한 오후를 하품과 함께 버티던 과장도 화들짝 놀라 물었다.

“큰, 큰일났…….”

“뭔데요? 민원실에서 할아버지가 쓰러졌어요? 아니면 보이스피싱 당하고 우리 서 와서 난리쳐요?”

조그만 시골 세무서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해 봤자 이런 것이 대부분이었다.

팀장이나 되는 사람이 이렇게 혼비백산한 것은 처음이었다.

과장은 지역 세무서 여러 곳을 돌아본 경험을 총동원해서 무슨 일인지 추측했다.

“세금 많다고 할머니가 똥바가지 갖다 뿌렸어요? 아, 예전에 어느 서에서는 체납세액 물건으로 내겠다면서 벌통 갖고 와서 세무서 전체에 벌 수천 마리가 들어찬 적 있었는데.”

전형적인 말 많은 아저씨였다.

과장은 스스로 말해놓고도 웃긴지 실실 웃었다.

팀장은 복장이 터질 일이었다.

상사에게 뭐라 말은 못 하고 대신 10명 남짓한 조사과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야! 잘 들어! 걸릴 만한 거 빨리 말해 봐. 누가 뭘 받았다든가, 세금 봐줬다든가, 어디 누구랑 술을 마셨다든가…….”

팀장의 말이 이어질수록 직원들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든 것이 팀장에게 해당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저희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요. 그리고 있다고 해도 지금 와서 뭘 어떻게 수습할 수가 없잖아요.”

직원의 말이 맞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결재가 넘어간 건도 수두룩했고 자신이 사업가와 술 먹는 걸 아는 사람도 많았다.

지역은 소문이 빨리 퍼지니까.

“안 팀장,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시, 신재현이 왔어요.”

“응? 가는 곳마다 모가지를 날린다는 그 신재현이요? 우리 서엔 왜 왔을까?”

신재현을 보자마자 겁에 질려 도망 온 팀장과는 달리 과장은 놀라는 일 없이 생각에 잠겼다.

“신재현 팀장이 부산청이랑 대구청 왔다 갔다 한다고 기사에서 봤는데. 우리 요즘 부산청에서 세무조사 요청 들어온 거 있지 않았어요?”

과장의 질문에 그제야 팀장은 자신이 너무 겁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사결과 직접 보러 왔나? 에이, 보고서 올라갈 텐데 뭐 하러 이렇게 먼 곳까지 오나. 할 일도 많을 텐데.”

팀장은 아차 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면 저렇다.

자신을 조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업무 때문에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팀장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떠올리고는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직원들에게 호통 쳤다.

“뭘 봐! 일이나 하러 가!”

자신이 불렀다는 건 까맣게 잊은 모양새였다.

직원들이 후다닥 책상으로 돌아가자 과장과 또 한 명의 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평소에도 원래 소리를 잘 치는 사람이긴 하지만 괜히 직원들에게 화풀이하는 모습이 못마땅한 것이다.

“안 팀장님, 오늘 왜 그러십니까?”

1팀장이 못 참겠다는 듯 다가왔지만 2팀장 안배종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어차피 과장과 1팀장 모두 평생 지역 세무서나 떠도는 순박한 양반들이다.

자신이 지역 유지들과 술이나 먹으러 다닌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들이었고.

안 팀장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감사관도 아니고 일개 조사 팀장이 뭘 하러 왔겠어. 조사 보고나 들으러…….’

그러나 팀장은 곧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찔리는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은 서둘러 꼴도 보기 싫은 팀원을 불렀다.

“어이, 박원형! 너 조심해!”

“예?”

박원형이 잔뜩 얼굴을 구긴 채 모니터 위로 고개를 들었다.

뭐라 더 경고를 날리려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톡톡 손톱으로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1층에서부터 직원들에게 조사과 위치를 물어물어 도착한 신재현이 유리문 너머로 빙긋 웃으며 서 있었다.

“허이씨! 깜짝이야!”

제 발 저린 팀장이 움찔하며 물러서자 1팀장이 얼른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와,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오셨네!”

1팀장은 반가워하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한차례 악수를 나눈 신재현은 매서운 눈으로 사무실 안을 훑었다.

직원들은 다들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도로 벌떡 일어나 있었다.

신재현은 그중 안쪽에 위치한 한 직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직원이 자신에게 메일을 보낸 장본인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다들 반가움과 의아함이 혼재된 가운데 유일하게 한 사람만 잔뜩 신나는 얼굴로 눈을 빛내고 있었으니까.

“와, 신재현 팀장. 내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를 겁니다. 연예인 만난 기분이네요.”

“같은 세무 공무원입니다. 같은 업무 하는 조사관이구요. 편하게 대해주세요.”

“그럼요. 어디, 무슨 일로 오셨으려나. 역시 부산청에서 맡긴 일 때문입니까?”

과장이 호들갑을 떨며 묻자 신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근 부산청에서 들어온 긴급 조사 건은 전부 제가 부탁한 겁니다. 여기에는 총 3건을 부탁드렸죠.”

“음, 그건 담당한 조사관이 잘 설명할 겁니다. 누구 담당이었죠?”

과장은 결재 도장만 찍을 뿐 그닥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누가 담당했는지도 모른 채 두리번거리자 박원형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왔다.

그 모습에 2팀장이 뒤에서 몰래 눈을 부라렸다.

이 건으로 싸운 적도 있는 만큼 이상한 소리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박원형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본 신재현이 그의 입을 막듯 서둘러 말을 꺼냈다.

“오기 전에 좀 훑어봤습니다. 박원형 조사관님. 한 건이 좀 이상하던데요. 정확히는 너무 적은 금액을 과세하셨습니다. 혹시 이 업체와 모종의 관계가 있습니까?”

“아니요!”

“그러면 재조사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신재현은 마치 부산청에서 이상함을 알아내서 나온 것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박원형은 의아함을 느꼈지만 곧 그의 생각을 이해했다.

어떻게 보면 박원형이 한 짓은 내부고발이다.

상사의 부정을 남에게 고발한 것이다.

신재현이야 팀장을 조지고 가면 그만이지만, 이 세무서에 남아 계속 일해야 하는 박원형은 사정이 다르다.

지역 세무서가 과연 배신자를 받아들일 것인가.

그렇다고 신재현이 박원형을 데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박원형은 단 몇 마디로도 신재현의 배려를 느꼈다.

그래서 조용히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흔들었다.

신재현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가만히 지켜보았다.

박원형은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신재현이 처음으로 부정을 까발린 게 세무서 소득세과 과장과 계장이랬나.’

그때도 신재현의 심정은 이랬을까?

박원형은 두근거림과 떨림을 느꼈다.

단순히 미래에 대한 두려움만 있는 건 아니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반대로, 자신이 옳은 일을 행하고 있다는 충만감이 느껴졌다.

세상엔 나쁜 놈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신재현처럼 대단한 놈이 아닌 자신이 바로 이 순간 바꿔 보이겠다고.

“제가 신재현 팀장님께 보낸 것은 저희 팀장님이 손대기 전의 보고서입니다. 원래 부산청에 가야 했을 보고서를 팀장님께서 멋대로 고치셨습니다.”

“야! 이, 이 미친놈이!”

안배종 팀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순간 신재현과 함께 온 특조 2팀이 안 팀장의 주위에 포위하듯 자리를 잡았다.

“뭐, 뭡니까?”

압박감을 느낀 안 팀장이 위협하듯 목소리를 높였지만 신재현의 팀에서 그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속하세요.”

신재현은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박원형의 말을 기다렸다.

용기를 얻은 박원형은 책상에서 종이 뭉치를 가져오며 성토했다.

“저는 분명 다른 업체와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서 법인세 10억 원을 계산했습니다. 원장을 뜯어봤을 때 적격 증빙 없는 건만 해도 법인세 5억이 나옵니다. 그런데 청으로 올라간 결정문에는 법인세가 무려 3억이에요. 증빙조차 없는 가짜 금액을 정당하다고 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박원형 조사관님은 여기 계신 팀장님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시는 게 맞습니까?”

“예. 팀장님이 손을 댔습니다. 제가 항의했고 팀장님이 묵살했습니다. 여기 있는 조사과 모두가 들었습니다.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그저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죠!”

흥분한 박원형은 단순히 팀장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침묵하던 동료 직원에게까지 화살을 돌렸다.

신재현이 다급히 그를 말렸다.

“공무원이라고 모두 인생 내걸고 정의를 외칠 순 없습니다. 동료 직원을 탓하지는 마세요. 이 안에서 나쁜 것은 오로지 안 팀장님 한 분 뿐입니다.”

“하지만…….”

“박원형 조사관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저에게 알려주신 것 또한 공무원으로서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분들께 왜 그렇게 하지 못 했냐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한 발짝을 뗀다는 건 어려우니까요.”

신재현은 달래듯 말하다 사무실에 있는 모든 직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이 비록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더라도 마음에 양심과 정의를 품고 계셨으며 앞으로 이런 폐단을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해 주실 거라고요.”

사무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과장에서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흥분이 가라앉은 박원형이 착잡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안 팀장님만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 계속 공무원을 하시면 안 되는 분입니다.”

“야아악! 네가 뭔데 나를 해라 마라야! 거기, 신재현 팀장. 당신 나랑 같은 팀장이야. 경력으로 따지면 내가 더 높고! 당신은 서울에서만 일해서 잘 모르나 본데, 지역에서는 서로 돕고 그래야 되는 거야!”

“개소리 하지 마세요! 김영란 법이 생긴 지 언젠데 부르는 족족 술 얻어먹고 세금을 7억이나 깎아 줍니까!”

박원형이 처절하게 소리쳤다.

그동안 부당한 취급받은 서러움을 쏟아내는 절규였다.

신재현은 그를 물러서게 한 후 뒤를 돌았다.

안 팀장은 신재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언제 소리 질렀냐는 듯 금세 조용해졌다.

“커흠, 아니 내 말은 좀 참작을 해달라는 거지.”

“박원형 조사관님이 많이 흥분하셨어요. 그래도 제가 그중에서 동의하는 건 하나 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공무원을 계속하면 안 된다는 거요.”

“뭐, 뭐요?”

“그동안 얼마나 해 드셨을지 상상도 하기 힘드네요. 그러니 이건 자업자득입니다.”

“아, 거 사람 진짜…….”

신재현은 항의하는 안 팀장이 보는 앞에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재현입니다. 미리 청장님께 언질 들으셨죠? 조사가 필요한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네, 제 판단에는 그렇습니다. 확실히 그쪽 사무실의 영역입니다.”

신재현은 안배종의 소속과 이름, 그리고 직급을 자세히 읊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안 팀장이 어리벙벙한 얼굴로 물었다.

“지, 지금 전화 뭡니까?”

“공무원의 비위(非違) 행위 조사에 아주 이골이 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설마…….”

“감사관실이요.”

신재현의 대답은 간결했다.

안 팀장은 아까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을 때처럼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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