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정직한 공무원으로 산다는 것 (1)
어느 조직이든 다 그렇다.
고이면 썩는다.
사기업이면 이상한 낌새가 보이는 놈은 자르거나 부서를 이동시켜 버리면 해결된다.
문제는 공무원일 때의 일이다.
쉽게 잘리지 않는 공무원의 특성상 고이기가 무척 쉽다.
그것을 막기 위한 노력은 부단히 있었고 2000년대를 넘어서며 많이 해결되었다.
폐쇄된 사회인 공무원 집단이어도 결국 세대교체는 생긴다.
청마다 존재하는 청장 직속의 감사관이 이상 현상을 체크했고, 시험을 거쳐 새로 들어온 젊은이들은 조직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나갔다.
공무원 시험과 면접, 그리고 연수원까지 거친 젊은 피는 공무원 사회 곳곳에서 각종 폐단을 씻어냈다.
1년마다 근무지를 바꾸고, 또 몇 달 단위로 근무지 내에서도 부서를 바꾸는 등의 조치도 있었다.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부서가 바뀌기도 했다.
그럼에도 고이는 곳은 고였다.
어떤 대비책을 마련하든 뇌물, 그리고 유착은 완전히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돈으로 조사를 무마하던 시절을 살던 사람들이 아직 현직에 있는 이상 그것은 더 했다.
그 시대를 겪어 보지 못한 젊은 피는 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몰렸고, 청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세무서는 비교적 청의 감시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1년마다 있는 발령도 소용없었다.
이 지역에서 세무조사를 나가서 얼마를 받고, 또 다음 지역에서 얼마를 받으면 될 뿐이니까.
어느 한 기업과 유착하지 않을 뿐, 주면 주는 대로 받는 것이다.
또한 외부인이 보기 드문 지역의 경우 지역 내에 회사끼리 네트워크가 존재했다.
-어이, 김 사장! 혹시 표정훈인가 조사관이라고 알아요? 작년에 그쪽 동네 있었다는데.
-가는 누군지 모르겠고 잠깐만 있어 보소. 세무인명록 좀 뒤져 볼라니까.
-지금 통지서 날라온 거 보니까 법인세과 2팀인가 그렇던데.
-어어, 법인세과…… 아, 표 뭐시기는 모르겠고 그 2팀에 최기홍이라고 있네. 내 아는 행님이 읍내에서 사업 하나 하시는데 말이 잘 통하는 공무원이라고 카드만. 행님한테 함 물어볼 테니까 전화 끊고 기다려 보소. 행님 이름 팔아도 되나 물어보게.
-그래 주면 고맙지! 나중에 그 형님분이랑 공무원 모시고 넷이서 같이 한잔하자고. 세상 사는 얘기도 좀 하고.
-그거 좋지요. 후딱 전화해 볼게요.
이런 식으로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인 경우도 허다했다.
그리고 지금 어느 한 지역 세무서에서 벌어지는 일도 그와 비슷했다.
“팀장님, 부산청 요청으로 조사했던 법인 중에 한 군데 결과가 좀 이상한데요.”
“응? 뭐가 이상해?”
볕드는 책상에 앉아 느긋하게 신문을 읽던 팀장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대답했다.
지금 팀장 앞에 서 있는 직원은 조사 2팀의 직원이다.
세무 공무원이 된 지는 약 4년.
올해 초 서울에서 내려와 조사2팀에 배속되었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간다면 승진이지만, 반대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내려온다면 좌천이다.
그래서 팀장은 이 팀원을 무시하다시피 했다.
팀원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팀장이 뭐라 말하기 전에 속사포처럼 빠르게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제가 올렸을 때는 분명히 과세금액이 10억이었는데요. 5년 치 전체 다 했을 때 법인카드로만 4억, 원장에서 무증빙 5억, 실제 근무 없는 인건비에서 1억이요.”
“그래서?”
팀장의 말투가 점점 고까워졌다.
그럼에도 직원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결재 올라간 건 고지서 3억이에요. 팀장님이 수정하신 겁니까?”
“거 참…….”
팀장은 신문을 넘기며 불편한 티를 팍팍 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지금 세무서에서 큰소리로 할 얘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도 직원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
“팀장님!”
“아이 씨! 나더러 어쩌라고!”
목소리가 커지자 순간 사무실에서 일하던 다른 직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뭐 구경났어? 일이나 해!”
직원들이 허겁지겁 고개를 돌렸다.
둘의 싸움에 휘말리기 싫은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세금 10억이 4억으로 줄어듭니까? 1~2억 차이 나는 거면 제가 잘못 계산했거나 너무 깐깐하게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이건 반도 안 되게 줄었잖습니까!”
“여보세요, 박원형 조사관님. 지금 박원형 씨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인가요? 본인이 말했듯이 너무 깐깐하게 해서 내가 수정을 해 준 건데.”
평소 반말을 하던 팀장이 조사관님이라고 경칭을 하는 것부터가 이미 화가 많이 나 있다는 뜻이었다.
더 얘기하지 말고 꺼지라는 뜻도 된다.
“박원형 조사관님은 지역사회 말려 죽일 생각이에요? 우리가 뭐 돈놀이 하나요? 무조건 세금 많이 걷으면 실적 올라서 서울 갈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악착같이 과세하나?”
그냥 욕하는 것도 아니고 약점을 찌르는 말이었다.
박원형은 순간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박원형 조사관님은 나한테 감사해야 해. 내가 수습해 준 거라고.”
“……그러다 감사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서울 같으면 바로 소환 감입니다.”
박원형의 말투가 거칠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젠 돌려 말하는 성의도 보이지 않자 팀장이 손에 든 신문을 탁 내려놓았다.
마침 거기에는 물가 얘기와 함께 부산청에 내려온 신재현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듣자 듣자 하니까 아주 못하는 말이 없네. 걔들이 얼마나 바쁜데 이런 쬐끄만 거나 들여다보고 있겠어? 그래서 박원형 조사관님이 나 찌르시게? 어디 한번 찔러 봐! 그런 식으로 하니까 서울에서 여기까지 떨려 나지. 여기는 서울이 아니에요. 여기 사는 분들은 전부 지역 발전에 힘쓰는 지역민이라고. 우리가 어느 정도 봐 드려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 말이야.”
팀장이 호통을 치는 동안 박원형의 눈에는 책상의 신문만이 들어왔다.
자신과 저 기사에 적힌 공무원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자신도 열심히 했는데.
불의는 참지 않았고 과세할 것은 봐주지 않았다.
그러다 딱 한 번.
성역을 건드렸다.
여당 국회의원의 아들이었다.
야당에 하동문이 있다면 여당에는 이 사람이 있다고 할 정도로 당의 큰 어른 취급을 받는 사람이었다.
망나니 같은 아들놈은 박원형의 자료 제공 요청에 큰소리를 쳤다.
-네가 뭐 신재현인 줄 알아? 어디서 나한테 세금을 내라 마라야?
박원형도 같이 큰소리를 쳐 줬다.
-세상이 어느 땐데 큰 소립니까? 선생님, 그냥 깔끔하게 내고 끝내세요.
-응, 네 인생이나 끝내.
그리고 정말로 인생이 끝났다.
다음 발령 때 중간 과정 없이 바로 지역 세무서로 내려온 것이다.
경기? 수도권?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순식간에 날려 온 것이다.
오자마자 만난 팀장은 그의 얼굴을 보더니 혀를 찼다.
-쯧쯧. 꼴통에 물든 꼴통이 하나 왔구만. 그 버릇 못 고치면 평생 못 올라가.
박원형은 통탄했다.
신재현의 등장으로 국세청, 그리고 세무서의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었다.
박원형이 직접 겪어봤으니 안다.
그러나 아직도 건드리지 못하는 곳은 있었다.
“……그러니까 박원형 조사관님도 알아서 잘 처신하세요. 올해 인사고과도 말아먹으면 다음엔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
팀장의 말은 협박이었고 반쯤은 사실이었다.
작정하고 고과를 망치면 방법이 없다.
박원형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우리 좀 잘합시다. 알겠어요, 박원형 조사관님?”
다시 박원형의 눈에 단호한 표정의 신재현이 들어왔다.
흑백사진이었지만 결연한 의지가 잘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그래, 조금씩 바뀌어야 해. 수도권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이런 팀장은 과거의 잔재야. 바꿔야 해.’
박원형은 각오를 다지고서 인사도 없이 물러났다.
불이익을 받아도 상관없다.
내부고발자라며 욕을 먹어도 좋다.
자신에게만 떳떳하면 되는 것 아닌가.
‘아마 나는 평생 서울 땅을 밟지 못하겠지.’
순간 두려움이 치솟았지만 정의감으로 그것을 꾹꾹 억눌렀다.
지금 두려움을 인정하면 나중에 이 선택을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재현이 수많은 공무원에게 선례를 보여줬듯 자신도 보여 주고 싶었다.
신재현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걸.
일개 말단 공무원도 자신의 위치에서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박원형은 이미 결재가 올라간 보고서를 다시 고쳤다.
자신의 이름을 꾹꾹 눌러 입력하고 과세 근거를 적어 넣었다.
총 과세금액은 자신의 소신 대로 처음 계산했던 10억을 적었다.
이제 팀장과 팀장의 결재를 거쳐야 하지만 또 제출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보내야 할까.
결재 없이 문건을 어디로 보내든 절차 위반이다.
박원형은 한참을 고민했다.
“조사관님.”
그때 누군가가 박원형의 어깨를 툭 쳤다.
깜짝 놀란 박원형이 서둘러 화면을 가렸다.
“괜찮아요. 저 가면 이거 펴 보세요. 제 동기거든요.”
7급 주사보 직함을 가진 여직원 하나가 반으로 접은 명함을 몰래 던져주었다.
팀장의 수상쩍은 눈초리가 향하기 전에 여직원은 서둘러 박원형의 자리에서 떠나갔다.
“대체 무슨…….”
박원형은 반으로 접힌 명함을 펴는 순간, 누가 볼세라 얼른 명함을 집어넣었다.
‘이건 되겠는데.’
***
렌터카를 하나 빌려 이동하던 신재현은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시급. 메일 확인 바랍니다.]
“잠시만요. 노트북 쓸 수 있습니까?”
“네.”
황민우가 작업 중이던 노트북을 건네자 신재현은 자신의 nts 메일 계정을 열었다.
그리고 대번에 표정이 심각해졌다.
“죄송한데 먼저 가야 할 곳이 생겼습니다.”
“어딘데?”
“왔던 길에 있던 세무서에요.”
신재현은 조용히 노트북을 내밀었다.
그것을 건네받은 장세훈이 세심하게 보고서를 보더니 턱을 문질렀다.
옆에서 강혜원은 다급히 정리한 명단을 뒤졌다.
“그렇네요. 아직 검토 전인 건에 3억짜리 소규모가 있었어요.”
강혜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금 어떤 심정인지는 신재현도 잘 알았다.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 아직도 어두운 부분이 있었다는 씁쓸함과 조금 더 빨리 발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그리고 혹시라도 놓쳤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불안함이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한계는 있다.
닿는 대로 처리할 뿐.
“혜원 씨. 지금은 그냥 생각 없이 움직입시다. 알겠죠?”
“네, 팀장님!”
강혜원은 금세 멀쩡해졌다.
황민우는 얼른 차를 돌려 20분 전에 지나쳐 왔던 세무서를 향해 액셀을 밟았다.
운전 중이라 뒤에서 팀원들이 읊는 브리핑을 들을 뿐이었지만 파악은 빨랐다.
황민우의 노력에 렌터카는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골의 정겨움이 나이테처럼 깃든 낡은 건물에 넓은 주차장을 가진 평범한 지역 세무서였다.
낯선 외부인의 차가 주차장에 들어서자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몇몇 직원의 시선이 쏠렸다.
어디서 뭐가 왔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는 반면, 어떤 직원은 술 안줏거리 하나 주울까 싶어 유심히 외부인을 관찰했다.
한가하고 심심한 와중에 구경거리가 생기는 건 환영이니까.
그러나 그의 흥미로운 얼굴도 잠시뿐이었다.
차 문이 열리고 정장 차림의 남녀가 우르르 내리자마자 남자는 혼비백산하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내던졌다.
“어어? 팀장님, 왜 그러세요?”
함께 담배를 피우던 법인세과 직원이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저 낯설지만은 않은 외부인 무리가 세무서로 들어오기 전에 팀장은 얼른 로비로 뛰어 들어갔다.
“으악, 시벌!”
1층 민원실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화들짝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아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뒤에 남은 직원은 팀장이 아무렇게나 던지고 간 담배를 비벼 끈 뒤 손에 주워들었다.
그리고 막 세무서 로비로 들어가던 청년과 눈을 마주치곤 입을 떡 벌렸다.
덕분에 직원이 피우던 담배마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시, 신재현이네.”
그제야 팀장이 왜 놀랐는지 이해가 되는 한편, 의아한 마음도 들었다.
신재현을 보고 놀라는 건 이해하지만 저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가?
‘탈세자라면 몰라도 같은 공무원이 왜…… 응? 찔리는 게 있나?’
직원은 얼른 담배를 주워다 휴대용 재떨이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느긋한 걸음걸이로 세무서 건물로 향했다.
고소와 세무조사는 공통점이 있다.
나만 아니면 구경하기에 아주 재밌다는 점이다.
‘팀장님 오늘 임자 만나시겠네.’
평소 팀장의 행실을 보아 왔던 법인세과 직원은 어디로 먼저 갈까 하다가 자신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방향을 틀었다.
지역 세무서는 아주 좁다.
소문이 퍼지기에는 딱이었다.
직원의 발걸음이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