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저 아시죠? (3)
“잘 아시네요. 그럼 제가 왜 왔는지도 아시죠?”
한걸음, 신재현이 또다시 사무실 안으로 내디뎠다.
직원들이 숨을 들이마시며 허겁지겁 일어서서 벽 가장자리로 섰다.
그러나 신재현은 직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정면에 서 있는 사장의 얼굴을 본 뒤 더더욱 신재현의 미소가 진해졌다.
분명 웃는 얼굴이었는데도 사장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뭐야, 나는 당신 같은 사람 몰라!”
“모르시는데 왜 그런 표정이십니까, 선생님.”
여느 공무원이 그러하듯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그 호칭에는 일말의 존경심도 담겨 있지 않았다.
사장은 말과 뜻이 전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기껏해야 아들뻘 되는 청년이 사무실을 가로질러 걸어오는데 왜 남들이 저승사자 운운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까짓 공무원, 그까짓 세금.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을 패 버리고 싶었다.
“왜, 왜 여기죠? 저는 탈세한 게 없습니다만.”
“선생님, 말씀은 필요 없습니다. 제가 털면 다 나와요. 안 나올 것 같죠? 진짜로 다 나옵니다.”
입가는 웃고 있지만 눈매는 그렇지 않았다.
넓지도 않은 사무실이었지만 신재현이 다가오는 동안 사장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회전했다.
학력고사를 볼 때?
새 낚싯대를 샀다가 부인에게 들켰을 때?
창고에 쌓인 재고의 유통기한이 한 달도 남지 않은 것을 알았을 때?
아니, 그때보다도 몇 배는 더 빠른 속도로 사장의 뇌가 굴러갔다.
살면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뭘 하든 저놈은 먼지 한 톨까지 털어낼 것 같았다.
별문제 없다는 듯 제집 안방마냥 걸어 들어오는 모양새부터가 자신감이 철철 넘쳐났고, 무엇보다 저놈은 신재현이었다.
대기업이 바보라서 저놈에게 당했겠는가.
자신이 잘나신 대기업 전략실 놈들 이상으로 잘 해낼 수 있겠는가.
“하, 씨…….”
절로 욕이 나왔다.
오지 말라고, 저리 썩 꺼지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요 며칠간 있었던 일이 스치듯 떠올랐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는데.
돈방석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벌었는데.
조금만 더 벌면 될 것 같은데!
그러나 그것 모두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파도에 떠밀린 모래성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왜 하필 나한테 오냐고!”
다른 공무원이 들어왔다면 그나마 잡아뗄 생각이라도 해 봤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 TV에서 보던 얼굴이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순간,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방법이 없었다.
저놈은.
그 대기업에도 쳐들어갔던 놈이다.
청와대가 무섭지도 않은지 현직 장관의 집을 쳐들어가 그 장관의 모가지를 날려버렸으며.
경력이 겨우 1년이었을 때 비록 초선이긴 했지만 현직 국회의원도 날려버렸다.
오랫동안 장사하며 여러 인간군상을 봐 온 사장은 잘 알았다.
저놈은 도사견이다.
물어뜯기 시작하면 절대 놔주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과 억울함에 감정이 북받쳤다.
“왜! 왜 하필 나냐고! 하고 많은 놈 중에 왜 나야! 나도 돈 좀 벌어보자고, 씨발!!!”
사장의 비명 같은 절규에 신재현은 잠시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정직하게 버시면 절 만날 일이 없었겠죠?”
놀러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상큼한 미소와 함께 신재현이 대답했다.
너무도 당연한 걸 묻냐는 말투여서 사장의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탁.
사장의 책상 바로 앞까지 다가온 신재현은 잠시 멈춰 섰다.
“선생님께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경고를 날렸을 때, 제가 부산에 왔다는 얘기가 인터넷에 나돌았을 때. 선생님, 세상에는 정직하게 돈 버는 분이 많아요. 이렇게 안 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다 털리게 생겼다는 두려움에 사장이 점점 패닉에 휩싸였다.
“내가 뭘 어쨌는데! 시장 원리도 몰라? 싸게 살아서 비싸게 판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을 원하는 사람에게 팔겠다는데 정부가 무슨 상관이야!”
“그 말씀도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죠. 근데 한도는 있는 거예요. 독과점금지법이라든가 소비자보호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모두 돈은 벌되 남의 눈에서 피눈물 흘리게 하지는 말자는 게 그렇게도 어렵습니까?”
“당장 내가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남의 눈에 눈물이 나든 피눈물이 나든 대체 뭔 상관인데?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게 더 병신 아니야? 그렇게 억울하면 자기들도 올려 받으면 되잖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횡설수설하며 그저 감정을 토해내기만 했다.
신재현은 그런 그를 가만히 보더니 책상 위에 종이를 탁 내려놓았다.
“남들더러 똑같이 하라고 추천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 놈이 있으면 제가 또 찾아갈 테니까요.”
그 종이를 보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말실수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사장은 뒤늦게 말을 더듬어 가며 부인하려 애썼다.
“어…… 방금 내가 좀 흥분해서 말했는데 귀담아듣지는 말고…….”
“귀담아듣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
웬일로 그 저승사자가 쉽게 대답하자 사장은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나 신재현은 사장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께서 납세자로서 해명하실 기회는 나중에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사실만 갖고 보도록 하죠.”
“예?”
“그럼 시작합시다!”
신재현이 사무실 문을 향해 소리치자 황민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오며 외쳤다.
“국세기본법에 의거하여 사전 통지를 생략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세무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납세자 분의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부산청에서 지원 나온 세무 공무원들도 뒤따라 우르르 들어왔다.
신재현은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금고 먼저 열어주십시오. 거기 계시는 분들은 이 업체 직원이시죠? 저희 쪽 조사관이랑 같이 외부 창고 안내 부탁드립니다. 조사관님들은 현금 꼭 찾아 주세요. 분명히 다량의 현금이 들어왔을 텐데 통장에 입금된 게 없었으니 여기 어딘가 숨겨져 있을 겁니다. 최소 10억이에요.”
신재현은 사실상 손님이나 다름없는데도 부산청 사람들은 그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자자, 선생님. 이 회사 다니십니까? 저희랑 같이 나가시죠.”
공무원들에게 이끌려 나가던 직원들이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으나 사장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방금 신재현이 하는 말에 혼이 쏙 나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금고와 창고는 당연히 열어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놓고 현금을 언급할 줄은 몰랐다.
물건을 팔면서 카드나 영수증을 써 주지 않으면 국세청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국세청도 현금의 존재는 모르거나, 알더라도 일부만 얘기할 줄 알았다.
근데 지금 얘기하는 걸 보면 아예 나오기 전부터 거래 규모를 파악하고 나온 것이 분명했다.
사장이 떨리는 눈동자로 신재현을 보았다.
왜 대기업씩이나 되는 공룡들이 신재현의 행보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조그만 중간업체 하나를 조사하면서 전력을 다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미 다 아는 투로 말하는데 거물을 상대할 때는 어떻겠는가.
“하, 왠지 운수가 좋더라니.”
“사장님? 가만히 계시면 안 되죠. 어서 금고 열어주세요. 그리고 물건 어디서 파셔 어디에 파셨는지도 알려주셔야 합니다. 특히 현금으로 사간 사람들요.”
의자에 주저앉으려는 사장을 신재현이 재촉했다.
그리고 그 재촉에 멍하니 서 있던 사장이 떨리는 손으로 힘없이 금고를 열었다.
5만 원짜리 돈다발과 손수 작성한 출납부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
-신재현 팀, 이번에는 영남이다.
-대구에 번쩍, 부산에 번쩍. 신재현 목격담 잇따라.
이번 파견은 경고의 의미였던 만큼 신재현의 행보는 금방 기사화되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신재현은 빨랐다.
처음엔 몇몇 군데에 직접 나타나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명단을 추려서 각 세무서에도 돌렸다.
덕분에 SNS만 들여다보고 안심하던 사람들도 갑작스러운 세무서의 방문을 받았다.
‘으악! 그놈 오늘은 울산에 떴다며!’
‘예예. 저희는 안동 세무서에서 나왔습니다.’
영남 지방만 손댄 것도 아니었다.
유통이라는 것이 어느 한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매상에서 중간상으로, 중간상에서 도매상으로, 도매상에서 생산자로.
이어지는 라인을 모조리 추적해 리스트를 만들어 각 지역의 관할 세무서에 넘겼다.
조사의 손길은 남부 지역 전체로 퍼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알아서 사리는 사람이 생겨났다.
인터넷이 뜨거워지는 것은 덤이었다.
-와! 우리 가게에 신재현 왔다!
└어디임?
└어디면 어쩌게ㅋㅋㅋ 신재현한테 급습당할까 봐? 너 혹시…….
└미친놈아 가까운 데면 가서 사진 찍을라고 그러지. 너야말로 왜 가게에 신재현 옴? 세무조사 받음?
└ㄴㄴ 물가 조사하고 갔음.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요? 유통업자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세무조사 하는 건가요? 이렇게 조사하는 거 불법 아니에요?
└나름 기준 있는 것 같던데? 뉴스 안 봄? 마진 비율 비교해보고 존나 심각한 놈들만 찾아간다던데.
└신재현 스토커 나학진 기사 읽어 봐라. 기준 존나 자세하게 나와 있음.
└공개해도 상관없나 보네ㅋㅋㅋㅋ 하긴 원래 당당한 놈이 제일 먼저 공개하는 법임. 그런 의미에서 신재현이 진짜 우리나라에서 제일 당당한 놈이다.
└뭘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해주냐? 위에 댓글단 놈 딱 봐도 바가지로 뒤통수 후려치던 놈임. 쫄아서 튀었잖아.
└괜히 신재현 개새끼 만들라고 하잖아. 꼴받게.
└지금 내 얘기임? 아닌데? 나 악덕 업자 아닌데? 신재현이 유통업계 죽이는 거 맞는데? 걔 개새끼거든?
└어이, 진정하라구. 너무 강한 말은 쓰지 마. 약해 보이니까. 큭큭큭.
└지나가던 도매상인데 한마디만 한다. 씨발놈들아! 너네 웃돈 주고 다 쓸어가면 우리는 뭐 갖고 장사하냐! 너네 같은 놈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욕먹는지 아냐? 지금 다 같이 죽게 생겼으니까 적당히 좀 해!!!
└워워; 아저씨 진정하세요. 그러다 고소 들어와요. 그냥 메모장 켜세요.
└야. 근데 확실히 효과 있긴 하다. 나 방금 동네 가게에서 계란 한판 7천 원에 샀음.
└아직 비싼데?
└특왕란임
└특왕란이면 킹정이지.
인터넷은 시끄러웠지만 그만큼 파급력은 엄청났다.
신재현이 어느 한 지역만 때리는 게 아니라 남부 지방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정부가 딱 원하던 상황이었다.
-이 정도면 이름값은 충분히 해 줬다. 더 하면 유통업 자체가 위축될 것 같으니 며칠만 더 하다 올라와라.
VIP의 뜻은 국세청장, 그리고 서울청장 민치호를 통해 신재현에게 전달되었다.
“청장님 문자네요. 어느 정도 목표는 달성한 것 같습니다.”
“벌써요? 아직 열흘밖에 안 됐는데.”
애초에 9월 한 달은 쏟아야 될 거라고 생각했던 영남행이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안정세를 찾아가자 부산청 직원들이 시원섭섭해 했다.
“빨리 안정되면 좋죠. 저희도 이렇게 빨리 돌아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특히나 붙임성 좋은 강혜원은 부산청 직원과 꽤나 친해진 상태였다.
커피를 나눠 마시던 강혜원은 함께 자료를 정리하던 부산청 직원을 위로했다.
“아, 그거야 당연하죠! 저도 이 근처에서 월세 살고 있으니 당연히 물가 안정되면 좋긴 한데…….”
“혹시 서울이나 경기 쪽으로 발령 나시면 연락 주세요. 같이 밥 먹어요.”
“아, 그래도 됩니까?”
“그럼요.”
강혜원은 연락처를 교환할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장세훈은 질린다는 얼굴로 안길진에게 물었다.
“강혜원 지금 전화번호 몇 개째 저장하는 거지?”
“어…… 제가 본 것만 5개는 넘는데요?”
“쟤는 진짜 전국구 인싸구나. 쟤는 세무인명록이 필요가 없겠다. 그냥 연락처 열어보면 되는 거 아냐?”
강혜원의 인싸력에 장세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뭔가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 신재현을 발견했다.
“뭐야, 뭐가 걸려?”
신재현 곁으로 다가가자 각 관할서에서 올라온 보고서가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신재현과 대구청, 부산청의 직원만으로는 모든 후보지를 돌기 어렵다.
그러니 지휘만 여기서 잡고 규모가 작은 곳들은 관할서에 맡긴 것이다.
“관할서에서 좀 많이 봐줬어요. 지역 유착인가? 이런 곳이 아직 남아 있었네요.”
장세훈이 어깨너머로 보고서를 봤으나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신재현이 한숨을 내쉬는 걸 보면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장세훈은 파티션 건너편의 강혜원을 불렀다.
“우리 조사 나가야 된대!”
장세훈의 손짓 한 번에 나머지 세 명의 팀원이 모였다.
“아직 돌아갈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나가야겠어요.”
신재현은 조용히 보고서와 자료를 출력했다.
슬슬 9월 중순에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