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저 아시죠? (2)
부산에 온 후, 신재현은 그야말로 곳곳을 돌아다녔다.
신재현이 부산청에 들어와 자리를 잡자마자 지역을 돌아보고 오겠다고 나서자 부산청 직원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긴 했다.
정확히는 이런 식이었다.
“팀장님. 미쳤어요? 지역에 사업자가 몇 갠데요.”
“사람이 돌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 시간에 전산 들여다보는 게 낫지 않겠어요?”
“거기 특조팀 직원분들! 그쪽 팀장님 좀 말려 봐요!”
한쪽에서 뭔가를 열심히 정리하던 네 명의 팀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다시 시선을 종이로 향했다.
그냥 또 시작이네, 하는 태평한 모습이었다.
그에 답답해진 것은 오히려 부산청 직원이었다.
“아니, 진짜로 직접 다 못 돈다니까요?”
“차라리 명단을 줘! 우리가 나눠서 돌 테니까!”
열화와 같은 성원에 신재현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지금은 제가 직접 보는 게 낫습니다. 며칠만 시간을 주세요. 얼른 정리해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사람이라도 많이 데려가요. 그래야 뭘 조사할 것 아냐.”
“사람도 많이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한 명만 있으면 돼요. 남은 분들은 계속 백데이터 정리 부탁드릴게요.”
“으잉? 한 명?”
부산청 직원들이 어떻게든 돕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반면, 함께 손발을 맞춰 본 팀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가볍게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마음껏 돌아다니다 오세요. 그 안에 끝내 놓을게요.”
황민우만 데리고 쌩 나가 버리는 신재현의 뒷모습을 보며 부산청 직원들이 물었다.
“저저, 팀장님 진짜 저래 놔둬도 됩니까? 걱정도 안 돼요?”
“원래 저렇게 둘이서 슝 다니는 분입니다. 저러다 건더기 하나 물어서 오실 거예요. 저희는 그걸 대비해서 밑 작업 해두면 됩니다.”
“허이고, 내가 아는 방식이 아닌데. 저게 일이 진행이 되나?”
부산청 직원들이 갸웃하며 흩어졌다.
뉴스에 탈 정도로 이름을 떨친 놈들이니 내버려 두면 되겠거니, 한 것이다.
그리고 신재현과 황민우는 렌터카를 빌려 몇 군데의 슈퍼와 마트를 돌았다.
보통 국세청에 등록되어 있는 세무 신고서는 빨라 봐야 몇 달 전의 것들이다.
소득세나 법인세의 경우 1년 치를 몰아 다음 연도에 신고하게 되어있고, 부가세 역시 분기별로 다음 달 25일까지 신고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지금 들어와 있는 신고서를 들춰 봤자 소용이 없다.
그래서 신재현은 가장 먼저 세금계산서와 카드 내역을 요청했다.
현금영수증은 발급한 다음 날 바로 국세청으로 들어오니 상관없지만, 카드는 다르다.
각 카드사에서 국세청으로 내역을 넘겨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매출, 매입 비율을 계산했다.
다음으로는 전년도 대비, 전월 대비 가격 상승폭이 심한 업체를 우선적으로 골라냈다.
그렇게 일단 가장 심한 곳 몇 군데를 골라낸 후 신재현은 직접 가 보기를 원했다.
소비자 가격이 폭등했다고 해서 모두 악덕 업자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원래라면 자료를 갖고 씨름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신재현이라면 다르다.
몇 군데 골라서 ‘보기만 하면’ 감을 명확해진다.
그렇게 신재현이 찾아간 첫 번째 슈퍼에서 바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고! 뉴스에서 나온 걸 봤는데! 진짜 왔구만!”
주택 단지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사장은 신재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손뼉을 치며 환영했다.
정말 본인이 찔리는 것이 없을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신재현은 스윽 그 얼굴을 보고는 웃으며 손을 잡았다.
“안 놀라시네요. 보통 제가 나가면 놀라거든요.”
“나야 뭐 꼬박꼬박 세금 냈는데! 세금 안 낸 놈들이나 무서워하는 거지.”
“뉴스 보셨으면 제가 왜 왔는지 아시죠?”
“그 뭐냐, 물가? 아이고, 말도 마쇼. 이런 적은 처음이야, 처음.”
“소비자가는 지금 몇 배예요?”
신재현이 본격적으로 묻기 시작하자 황민우가 잽싸게 펜을 들었다.
날려쓰는 글씨로 그는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수첩에 기록해 넣었다.
야채, 공산품, 쌀값 등등 여러 품목으로 나누어 적기도 했다.
“물값이 제일 많이 올랐지. 섬다수 6통짜리가 15,000원에 나가거든.”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읊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건 떼 올 때는 얼만데요?”
“섬다수 12,000원, 다른 것도 일이천 원 남겨 먹어. 많으면 삼천 원? 손님들이 욕하면서 사 가는데 나도 어쩔 수가 없거든. 정말 최소한만 남긴 거야.”
사장이 억울해하며 가슴을 탕탕 쳤다.
“지금 물건을 구하려면 다 웃돈을 줘야 돼. 거래하던 데가 물건이 없다고 해서 다른 데 알아봤더니 거긴 아예 물건 받고 싶으면 사장한테 따로 사례금을 줘야 된다고 그러더라고. 지금 손님하고 우리 같은 소매상만 죽어나는 거야.”
사장의 어깨가 축 처졌다.
“물건 들어올 때 명세서 받으시죠? 거래명세서 볼 수 있습니까?”
“고럼!”
사장은 바로 카운터 밑에서 주섬주섬 명세서 다발을 꺼냈다.
가장 최근의 것이 가장 위로 오도록 역순으로 정리해 고무줄로 묶어 놓은 것이었다.
신재현은 그걸 받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더니 눈을 비볐다.
무언가 불쾌한 것을 봤다는 듯 미간 사이가 좁혀져 있었다.
“팀장님. 뭐 있습니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던 황민우가 조심스럽게 묻자 신재현은 얼굴을 폈다.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나와 보길 잘했네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알겠습니다. 우리 팀에 전달해 주세요. 소매상은 가격 상승폭, 매입 매출 비율 두 가지를 보되, 그 두 수치가 정상이면 매입처를 중점적으로 파 달라고 해 주세요. 그리고 거래명세서 꼭 보내 달라고 하시구요. 일단 소매상부터 봅시다. 중간상은 따로 명단 작성하지 말고 소매상에서부터 거래 과정을 역추적합시다.”
“네.”
황민우는 날아가는 글씨로 지시 사항을 다 받아 적더니 슈퍼 밖으로 나갔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하던 슈퍼 사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도와줄까요?”
“이미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아니, 막상 갔는데 자기들은 아니라고 그러면 어떡해. 허탕 치면 내가 미안하지. 잠깐 있어 봐요.”
사장은 검지를 세워 입을 막는 시늉을 한 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 임 사장님. 나 송일훈이에요. 내가 당장 물건이 좀 필요한데.”
그렇게 운을 뗀 송일훈은 한참을 통화했다.
“임 사장님. 우리 오랫동안 거래 해왔지 않습니까. 손님들한테 저 오만 욕 다 먹습니다. 좀 깎아 줄 수 없습니까?”
또 한참 통화 후 송일훈 사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부러 들으라는 것처럼 큰 한숨이었다.
“임 사장님, 물건 있는 건 확실하죠? 제가 임 사장님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요즘 어딜 전화하든 다 없다고 죽는 소리를 하는데 우리 임 사장님은 저한테 이렇게 챙겨 주니까…… 그럼요, 그럼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자는 거죠.”
무언가 말씨름을 하는지 사장의 얼굴이 초마다 바뀌었다.
“아니 가격이 점점 올라가는데 혹시 물건 없으면서 미리 대금 받아 놓고 그 돈으로 물건 구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네네, 알아요. 저도 임 사장님 믿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믿게 해달라는 겁니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싸우는 것 같다.
사장은 정말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연신 오케이를 외쳤다.
“오케이! 알았습니다. 임 사장님, 오늘 물건 보러 갈게요. 오케이! 이따 봐요!”
사장이 전화를 뚝 끊고는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이 나쁜 놈의 새끼! 나랑 거래한 세월이 몇 년인데 이따구로 장사를 하면 안 되는 거야! 벗겨 먹을 놈을 벗겨 먹어야지! 얼마 남겨 먹는지 내가 대충 아는데. 아주 사람을 호구로 봤어.”
사장은 씩씩거리더니 굴러다니던 영수증 뒤편에 주소를 휘갈겨서 내밀었다.
어찌나 급하게 썼는지 알아보기 힘든 글씨였으나 굉장히 뿌듯하고 의기양양한 미소와 함께였다.
“저렇게 자신하는 거 보니 여기 맞을 겁니다. 가 봐요.”
그 주소를 가만히 쳐다보던 신재현은 영수증을 받아들고는 몇 가지를 당부했다.
“이거 주신 거 나중에 들키면 사장님이 중간상한테서 물건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약속한 시간에 실제로 가셔서 평소처럼 행동하세요. 물건은 사셔도 되고 안 사셔도 됩니다. 저희는 사장님과 다른 시간에 가겠습니다.”
“그렇게까지 걱정을 해 주고 그래. 내가 절대 그놈이 의심 안 하게 적당히 사 올게.”
말은 그렇게 해도 사장은 기분 좋은 듯 코 밑을 쓱 훔쳤다.
“협조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에겐 큰 힘이 될 겁니다. 물가는 금방 잡아낼 테니 힘드시더라도 조금만 더 힘내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슈퍼를 나서는 신재현을 향해 사장이 손을 흔들었다.
“고마워! 또 저런 놈 찾으면 내가 후딱 그 뭐냐, 정부가 말한 거. 가격 폭리 신고센터로 전화할 테니까 그쪽도 힘내고! 아주 혼쭐을 내 줘!”
“네! 감사합니다! 번창하세요!”
슈퍼 사장의 응원 속에 신재현은 바쁘게 골목을 떠났다.
***
그리고 다음 날.
유통업자 임 사장은 오늘도 사장실에 앉아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었다.
당장 어제만 해도 오래된 거래처 송 사장이 저녁 늦게 찾아와 물건을 보고 갔다.
가격을 듣고 화는 좀 난 것 같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지 그 자리에서 물건을 떼 가며 대금까지 계좌이체 해 줬다.
발주량은 평소보다 적었지만 물건을 떼 간 지 얼마 안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생산 쪽을 좀 뚫어 놔야 할 것 같은데. 요즘에 기저귀랑 분윳값도 요동치는 것 같아. 이걸 좀 전매해 볼까?”
어른은 인스턴트 식품이나 간편식으로 때운다 쳐도 아기들은 무리다.
특히나 자신들은 굶어도 아기는 좋은 걸 먹이겠다는 부모는 많았다.
임 사장은 촉이 번뜩하는 것을 느꼈다.
“아, 일찌감치 뚫어놓을걸. 웃돈 꽤나 얹어줘야겠네.”
사장은 툴툴거리며 금고에 있는 현금을 계산했다.
아직은 순항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저, 사장님. 뉴스 보셨어요?”
오늘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직원들이 조심스럽게 사장을 불렀다.
“뭔데! 오늘도 할 일 많구만. 한가하게 테레비나 보고 앉았어?”
“아뇨. 진짜로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직원은 한 손에 젓가락을 든 채로 TV의 볼륨을 켰다.
두 패널이 한참 토론 중이었다.
-화제의 팀이죠. 신재현 팀이 투입되었다는 것을 아주 흥미롭게 봐야 합니다. 지금 들리는 소문으로는 영남 지방에서 신재현이 목격되었다는 말이 있어요.
-국세청이 원래 기업들한테는 저승사자라고 불리지만 ‘국세청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은 공무원 딱 한 명을 가리킵니다. 세무사업계, 재계 등을 포함해서 이쪽 업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인물이에요. 이름만 들어도 긴장하는 기업가가 많아요. 그런 사람을 정부가 투입하겠다고 말했다는 건 아주 상징성이 큽니다. 아주 강렬한 경고의 메시지, 어떻게 보면 선전포고나 다름없단 말입니다.
-다만 경력 문제인지 나이 문제인지 지금까지는 서울청 팀장 위치에 있어서 서울 말고 다른 지역의 기업은 다들 반쯤 마음을 놓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정부 발표가 나오자마자 영남 지방에서 목격되었다는 건 아주 제대로 날뛰어 보겠다는 뜻입니다.
임 사장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이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세상에 나만 장사하나? 저런 놈 하나하나 신경 쓰면 돈을 못 벌어! 쓸데없이 TV나 보고 있지 말고 얼른 먹고 나가서 일하자고, 일!”
직원들이 주눅 든 얼굴로 TV를 껐다.
잠시 사무실 내에는 면발을 후룩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저 신재현이라는 놈도 그래. 요즘 젊은 놈은 말이야, 유도리가 없어. 업계 관행, 뭐 그런 것까지 다 잡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쯧.”
임 사장은 불쾌한 기색으로 혀를 찼다.
직원들이 불편한 마음으로 서둘러 컵라면과 김밥을 해치우고 문을 연 순간이었다.
“으어억!”
“으악, 씨발!”
“다, 당신 왜 여깄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경악은 곧 거름망 없는 욕설이 되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좁은 문에서 뒷걸음질 치던 직원 셋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뭐야! 왜 난리들이야!”
임 사장은 계산기를 두드리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가 막 사무실 문턱을 넘어오는 청년을 보고는 도로 의자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임기덕 사장님. 저 아시죠?”
“저, 저승사자다!”
임 사장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