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안 주면 쳐들어간다 (2)
대구청이 습격을 받았다!
심지어 자료도 털렸다!
이 놀라운 소식은 부산청에도 금방 퍼졌다.
“뭔 소리야? 대한민국에서 어떤 놈들이 국세청을 습격해? 혹시 검찰에서 세무조사 나왔어?”
“아뇨, 신재현이 대구청에 나타났대요.”
“뭐고, 자료 좀 안 줬다고 진짜 직접 왔나. 키야, 이놈 이거 맘에 드네. 상남자다. 난 그런 놈이 좋더라.”
화면을 들여다보던 중년 남자 하나가 무릎을 치며 웃었다.
그러나 대구청과 직접 통화했던 직원은 심각한 표정을 했다.
“막상 우리 청 오면 어떡하시게요.”
“주면 되지! 뭐가 문제고!”
“대구청에서 습격이라고 표현했잖아요.”
가만히 듣고 있던 여직원 하나가 끼어들었다.
“습격? 아니 왜 습격이에요? 그냥 자료 요청 아닌가?”
서울청이든 대구청이든 어차피 같은 세무 공무원이다.
일하는 곳이 다를 뿐, 소속은 같은데 대구청에서 굳이 습격이라고 표현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대구청과 직접 통화한 부산청 직원들은 표현을 정정하지 않았다.
“대구청 말로는 습격이 맞대요.”
“아, 그 정도예요?”
“방문증 받자마자 청장실로 쳐들어갔다는데요?”
그 말에 좋아한 것은 중년 남자 하나였다.
“크흐하! 청장실! 이야, 들으면 들을수록 맘에 드네. 대구청 금마들 식겁했겠구만. 재밌었겠는데.”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중년 남자와 달리 다른 직원들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간땡이가 부었네. 지금 서울에서 일한다고 우리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자료 달라고 하면 우리가 냅다 줄 줄 알았나?”
관할이 다른 기관끼리 경쟁하는 일은 종종 있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관할을 넘어 조사할 때는 실적에 눈먼 놈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가뜩이나 지산 전수조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먹잇감의 맛을 본 맹수들이 진정되기도 전에 또 붙을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새로 부임한 국세청장은 조사국의 텃세를 보고서도 조율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둘 중 하나를 뜻했다.
오낙현 역시 이들의 경쟁을 바라고 있거나,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거나.
어찌 되었든 싸움을 허락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걔네끼리 싸우는 걸 구경하는 건 몰라도 우리까지 피 튀는 건 싫은데요.”
“재밌을 것 같지 않나? 나도 지산 때 껴들고 싶었는데 너무 멀어서 그런가 안 끼주더라고.”
중년 남자가 의욕을 불태우자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리던 중년 여자가 면박을 줬다.
“하이고! 팀장님, 그런데 함부로 끼어들면 훅 가요! 중부청 개박살 난 거 못 봤습니까!”
“큼, 그건 그거고…….”
“그래서 얘네 언제쯤 올까요? 우리가 너무 쉽게 자료 주면 안 되는 거 아닐까요?”
“대구청은 줬잖아.”
“걔네는 갑작스러우니까 엉겁결에 줬나 보죠. 우리는 미리 얘길 들었잖아요.”
“대구청 분위기 어땠는지나 물어보자. 거 전화 받은 사람이 누고? 상진이가?”
“대구청에서 별다른 얘기 없었습니다. 그냥 겪어보면 안다는데요.”
“이걸 뭐라 해석해야 되노? 대구청 애들이 우릴 놀리나, 아니면 서울청 애들이 겁나 무서분 거가?”
팀장의 고민은 짧았다.
원래 길게 생각하는 걸 생각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바로 결론을 내리고 막내를 불렀다.
“우리가 명색이 부산청인데 대구청 애들처럼 가만히 넘겨줄 수는 없지. 일단 서울 애들 오면 나한테 델꼬와바라 싹수없어 뵈면 바로 쫓까내고 본때를 보여준다!”
“와! 팀장님!”
막내 직원의 박수에 팀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국세청의 저승사자고 뭐고 와 보라고 해! 우리 부산청을 얕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늦은 나이에 합격에 40대에 팀장을 단 중년 남자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쭉 내밀었다.
***
화제의 그 팀은 오후 5시쯤 되어서야 부산청에 모습을 나타냈다.
대구청에 들린 것이 오후 1시였으니 꽤 시간이 걸린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왔다, 왔다!”
1층의 접수처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은 미리 언질 받은 대로 바로 전화를 돌렸다.
신재현이 오면 당장 내게로 데려오라며 큰소리친 팀장 외에도 미리 알려달라고 요청한 직원은 많았다.
이런저런 소문이 떠도는 만큼 이들은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얼굴 잘 안 보이는데! 누가 신재현이야?”
“저기 방문 기록 작성하는 남자 말고 그 뒤에.”
서울청 소속의 일행 다섯 명이 방문증을 받는 동안 곳곳에서 소문을 듣고 직원들이 로비로 내려왔다.
“와, 진짜 어리네. 올해 몇 살이랬지?”
“스물여덟.”
“근데 서울청 팀장이라고? 와, 정신 나간 승진 속도네.”
“그래도 아직 7급이다. 경력이 만으로 3년이 안 돼서 6급 승진 시험을 못 본댄다. 어마어마하지 않냐?”
“괴물이네, 괴물. 세상에 경력 부족하다고 승진 시험 기다리는 놈이 어딨나?”
“너 기사 안 봤냐? 세무서에 있을 때부터 지역 유착한 과장 모가지를 날려 버렸댄다. 아주 이력이 화려해.”
“크! 들을수록 마음에 드는데. 나도 왕년에는 좀 들이박고 그랬거든. 딱 우리 과야.”
“표정 관리 좀 해라. 쟤 보고 웃어주면 안 된다. 싸우러 온 건지 숙이러 온 건지 아직 몰라.”
“싸우러 온 거면 그냥 한판 하고 화해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건 그렇지.”
직원들이 웅성거리던 와중에 다급히 내려온 중년의 팀장 하나가 헉헉 거리며 숨을 가다듬었다.
자기가 제일 먼저 얘기해 보겠다며 큰소리 치던 바로 그 팀장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도 답답해서 계단으로 뛰어 내려온 그는 뚜둑 소리를 내며 고개를 꺾더니 삐딱한 자세로 신재현 앞을 가로막았다.
“누굴 보러 왔습니까? 설마 여기서도 청장님 부를 겁니까?”
문장은 죄다 표준어였지만 억양은 달랐다.
영남 지방 특유의 위아래로 들쑥날쑥한 억양에 서울에서 온 직원들의 표정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것이 시비 거는 거라고 생각한 장세훈이 욱하며 뛰쳐 나왔다.
“협조 요청드렸는데 묵살한 건 부산청 아닙니까?”
“으잉? 와 화를 내는데? 니 미칬나?”
팀장이 되레 되물었다.
그로서는 평소처럼 물었을 뿐인 것이다.
이런 일이 익숙한지 재빨리 안길진과 황민우가 들러붙고 신재현이 앞으로 나섰다.
“뭐 주먹을 게 있다고 이까지 기어왔습니까?”
신재현은 말투보다 먼저 팀장, 그리고 뒤에 있는 직원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리고 그들이 적대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마쳤다.
“첫째로 저희는 여러분을 뵙고 협조 요청을 드리러 온 겁니다. 어차피 영남 지방의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이 지역의 부당 이득자를 가장 먼저 조사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당연히 저희가 직접 현장에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어, 그래요?”
생각했던 반응이 아닌지 팀장이 뜨뜻미지근하게 받아쳤다.
“둘째로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어차피 저희 팀이 모든 조사지를 돌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지 분들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말입니까?”
“가장 잘 아시는 분들은 그 지역의 세무서와 지방청 분들이시니까요.”
“그건 그런데…….”
“그런 생각으로 서울을 출발했습니다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다릅니다.”
지금 놀리나? 하는 표정의 팀장이 팔짱을 꼈다.
그러나 신재현을 막지는 않았다.
어디 한번 들어보자는 태도다.
“급하게 온다고 서울에서 KTX를 끊었는데 부산까지 바로 오는 편이 없더군요. 물어보니 철도가 끊겼다고 합니다. 대구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청 근처에 모텔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덕분에 알 수 있었습니다.”
신재현의 눈빛에 힘이 더해졌다.
“부산은 지진에 직접 타격을 받은 곳은 아니지만, 물가가 들쑥날쑥하고 있습니다. 슈퍼에서 물 몇 병 샀을 뿐인데 기겁할 금액이 나오더군요. 부산이 이런데 지진 피해지역은 어떻겠습니까.”
“거기는 지금 생지옥이지요.”
팀장이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피해지역의 고통을 덜어 드려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저희가 일을 마무리해야 해요. 그래서 출발은 충동적이었지만 지금은 제 결정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구청과 부산청, 그리고 지역 세무서에 모두 협조 요청을 드리겠습니다. 제게 지시를 받는다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이 사태를 끝낼 수 있도록 저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신재현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선 후 1층에 모인 부산청 직원들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함께 온 팀원도 마찬가지였다.
책임자인 신재현이 숙이자마자 팀원들의 허리도 자동으로 접혔다.
자신의 팀장을 얼마나 믿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어…….”
가장 앞에서 인사를 받는 꼴이 된 중년의 팀장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돌렸다.
“……대구청 놈들 우리한테 거짓말한 것 같은데? 직접 겪어보니까 그냥 좋은 놈이잖아.”
“대구청 놈들이 혼비백산해서 자료 줘놓고 우리 한번 놀려 먹을라고 한 거네!”
“대구청이 나빴구만!”
비난의 타겟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우야노. 내가 나쁜 놈이 대뿐네.”
팀장이 도움을 요청하는 표정으로 뒤로 돌았지만 다른 직원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에 바빴다.
“자료 안 준다고 진짜 쳐들어오는 놈은 처음 봤네.”
“행동력 하나는 끝내주지 않냐? 서울에서 부산까지 온 거잖아.”
“크,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언변까지 갖췄을까. 방금 그 말이 내 심금을 울렸다!”
“생각해보니까 저 말이 맞네. 떡하니 사무실에 앉아 가지고 자료만 내놔라, 하는 놈들보단 직접 현장에도 와보고! 부딪혀 보고! 그게 진짜지!”
신재현이 직접 부산까지 한달음에 달려 왔다는 사실이 이제 와서는 가산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여전히 신재현과 그의 팀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체격이 육중한 누군가가 중년의 팀장 옆에 섰다.
그의 얼굴을 본 중년의 팀장은 신재현의 어깨를 잡고 얼른 일으켰다.
“아, 빠딱 인나소! 빠딱!”
신재현이 고개를 들어보니 팀장은 이미 직원들 무리로 돌아가 있고 대신 그 앞에 부리부리한 눈매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아, 청장님. 안녕하십니까, 서울청…….”
“됐고!”
부산청의 총 책임자인 청장은 신재현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물었다.
“뭐부터 해주면 됩니까!”
“……일단 본청에 보내주신 자료 먼저 받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따로 조사할 곳들을 추릴 건데 현장 조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으흠!”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 부산청장은 몸을 홱 돌렸다.
그리고 1층에 모인 직원들에게 외쳤다.
“방금 들었지요! 멀리서 온 분들이지만 손님이 아닙니다! 다 같은 국세청 식구지요! 일단 사무실 내주고! 요청하는 건 바로 들어줍시다! 본청 조사국 놈들 코를 납작하게 해 줘야지!”
완전히 중립성을 잃은 발언이었지만 아무도 청장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직원들이 환호하며 대답했다.
“우리 청장님 멋있다!”
“우리가 또 시키면 겁나 잘하지!”
“뭐든 말만 해요!”
“부산청의 힘을 보여준다!”
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에 어색해하던 신재현은 망설임 없이 들고 있던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먼저 저희가 서울청에서 전산관리시스템 토대로 부당 이득으로 보이는 업체들 1차로 추려봤습니다. 대구청이랑 부산청 자료 갖고 2차로 추리기 전에, 이걸 기반으로 탈세 의혹 있는지 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무 자료도 못 받았을 텐데 용케 추렸네요.”
청장은 신재현에게서 종이를 받고는 그 옆의 누군가에게 넘겼다.
“잘 분배해봅시다, 국장님.”
“옙, 청장님.”
청장은 은근슬쩍 옆으로 다가오더니 신재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로 신재현 팀을 이끌었다.
덩치 차이가 나다 보니 신재현이 끌려가다시피 했다.
남겨진 직원들이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젊은 팀장 양반이 술은 좀 하려나? 청장님이 마음에 쏙 들어 하는 것 같은데.”
“일할 사람한테 과하게 먹이진 않겠죠.”
직원들은 다른 의미로 신재현과 그의 팀원을 걱정하며 사무실로 향했다.
본청에 보냈던 자료에 자신들이 추가로 작업한 자료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대구청에 전화나 때려봐야겠네.”
누군가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툴툴거렸다.
나중에 부산청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대구청의 직원은 전화에 대고 낄낄 웃었다.
-크하핫! 내가 뭐랬습니까. 그냥 겪어보면 안다고 했죠? 그쪽 분들 겁 좀 먹었습니까? 이야, 재밌었겠는데!
“아이씨! 나중에 대구 가면 콱 죽인다!”
결국 신재현에 대한 소문과 해프닝은 대구청의 장난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