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08화 (208/500)

208화. 안 주면 쳐들어간다 (1)

징벌적 세무조사.

한마디로 본보기를 보인다는 뜻이다.

물론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으면 형법, 민법에 따르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를 기다리다간 한세월 지나는 것도 사실이고 행정부가 원하는 적절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사법부에 ‘이 사람은 괘씸하니까 형벌 많이 때려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사법부는 독립적 기관이니까.

그렇다고 벌금은 지금 당장 ‘멈추세요’라는 의미로는 좀 약하다.

보통 하면 안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하는 경우,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벌금을 때린다고 해도 잠깐이었다.

‘까짓거 벌금 좀 내고 장사하면 되지!’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괘씸한 놈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하는가.

그 사람이 얻은 부당 이익, 그 이상으로 손해를 보면 된다.

이번 경우에는 정부에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바가지 씌우는 상인이 그 행동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

남의 재난을 이용해 폭리를 취한 업자라면 당연히 선을 넘었을 것이다.

세무조사하기엔 최적의 환경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번에는 정부가 작정하고 특정 층을 타겟으로 잡는 것이나 다름없다.

평소라면 절대 쓰여서는 안 되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세무조사, 즉 국세청 그 자체를 칼로 휘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통령이 국세청에 엄명을 내렸다는 것은 그만큼 화가 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원하는 것은 악덕 업자에 대한 철퇴고, 세무조사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는 이 소문이 빨리 퍼지길 원했다.

때문에 대통령이 징벌적 세무조사를 명령했다는 사실은 금세 기사화되었다.

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그동안 많이 해 처먹었지? 세무조사 들어간다고 예고했다? 너희 적당히 좀 해라.

그러나 친절하게 정부에서 경고를 날려도 무시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하루라도 빨리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는 여러 방안을 내놓았고, 국세청 또한 자료 조사에 박차를 가했다.

경상북도는 대구국세청이 관할하고 경상남도는 부산국세청이 관할한다.

두 청은 지역의 세무서들과 긴밀한 협조를 하며 폭리를 취한 업자들을 가려냈다.

시민에게서 받은 제보로 악덕 업자 명단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1차적으로 만들어진 조사 대상자를 본청으로 올리자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이 자료, 서울청 쪽에도 보냈습니까?

“이제 보내려고 하는데요.”

-서울청에는 보내지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본청 쪽에서 업무분장을 도맡아 하려는가 보다, 하는 생각에 부산청 직원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어진 말이 이상했다.

-혹시라도 서울청 쪽에서 연락 오면 함부로 자료 주지 마세요.

“예? 그게 뭔 소립니까?”

-그냥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저희 쪽으로 전화하라고 하세요.

본청 조사국에서는 간단하게 지시하고는 끊었다.

부산청 직원이 전화를 끊고 황당하다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허, 전 서울청장님이 지금 본청 가신 거 아냐?”(@체크)

“맞는데요.”

“근데 왜 조사국 아들이 난리냐?”

“왜요? 텃세 부려요?”

“우리한테 꼬장 부리는 건 아닌데 서울청하고 분위기가 심상찮다.”

“원래 공무원이라는 게 서울청 갔다가 본청 갔다가 와리가리 치는 거라 소속감은 별로 없잖아요. 근데 서울청이랑 본청 애들이 날 세우는 건 좀 그렇네.”

“충성 경쟁하나? 이번 청장님이 9월 1일부로 임기 시작이니까 원래 있던 애들이 새 주인한테 자기들 능력을 어필하는 건가?”

“우리한테만 수작 안 부렸으면 좋겠네요. 지금 여긴 지역 전체가 비상 체제인데. 저 윗동네는 권력 다툼이나 한다 이거죠?”

“아이구! 지랄 깝싸네! 여긴 바빠 죽겠는데! 부산까지 내려와서 투덕대는 건 아니겠지!”

부산청의 직원들이 툴툴거렸다.

저 먼 지역에서 싸움의 기색이 스멀스멀 풍겨오고 있었다.

싸우든 말든 저들 사정이다.

가뜩이나 바쁜데 그 싸움의 소용돌이가 부산청까지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

본청 조사국 사무실에서는 업무분장이 한참이었다.

조사국장 민치호가 서울청장으로 가게 되면서 국장 자리에는 공석이 생겼다.

조사국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다른 곳에서 걸맞는 사람을 찾아다 조사국장 자리에 앉혀놓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문제는 선임이 민치호였다는 데 있다.

내년 정기발령 전까지 겨우 네 달.

조사국을 맡는다고 해도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기엔 너무 짧았고, 그 네 달간 민치호와 내내 비교될 것이 뻔했다.

그럴 바엔 다음 정기발령 때 국장 자리를 노리는 것이 낫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빈자리를 낼름 먹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결국 아무도 조사국장 자리를 가져가지 못했다.

업무는 조사국 소속의 과장들이 나눠서 맡기로 했다.

조사국 직원들이 서울청의 신재현을 견제한 배경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신재현을 꺾는 놈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상황을 이용하려는 과장들이 직원들의 경쟁심리를 부추겼다.

직원들 또한 신재현을 이겨보겠다고 벼르고 있는 참이었다.

신재현이 알았다면 쓸데없는 데 힘 뺀다고 코웃음을 쳤을 일이지만 어찌 되었든 이들은 진지했다.

그래서 서울청에서 스스로를 특수조사 2팀의 직원이라고 밝힌 여성의 전화가 왔을 때 조사국 직원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저희는 드릴 게 없는데요.”

-……예? 업무분장은 해야죠. 사전 회의 없이 하다 보면 서로 조사가 겹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일을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한다고요?

“지금 전화 주신 분은 직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본청 조사국의 직원은 대놓고 직급부터 물었다.

특수조사 2팀의 구성은 이미 알려진 지 오래다.

팀장부터가 7급이라 이례적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그러니 알면서도 묻는 것이다.

깔아뭉개기 위해서.

-8급 서기 강혜원인데요?

그러나 강혜원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내가 8급인데 네가 뭐 보태줬냐는 투였다.

너무도 당당한 태도에 본청 직원이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목청을 높였다.

“이번 일엔 업무분장이 필요 없을 겁니다. 그쪽 인원은 5명밖에 안 되잖아요. 사람 숫자부터가 부족한데요.”

-저희는 항상 그렇게 해왔는데요?

“지금까지는 어딜 어떻게 조사할지 다 준비된 상태였을 것 아닙니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죠.”

-상황이 어떻든 그건 저희가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르면 더욱 강하게 반발하는 강혜원이었다.

본청 직원 역시 굽힐 생각은 없었기에 둘의 대화는 점점 날이 섰다.

“특수조사 2팀이 뭘 할 수 있습니까? 기사 나오게 사진 좀 찍고 가시면 되잖습니까.”

얼굴마담, 딱 본청 직원의 생각이 드러난 말투였다.

-그래서 지금 우리한테 자료도 안 넘기고 업무분장도 안 하시겠다는 거네요?

“그렇게까지 말한 적 없습니다. 저희 쪽에서 알아서 하고 있으니 특조 2팀에서는 꿀만 빨다 가시라 이거죠.”

-그런 투가 아니었는데요? 부산청하고 대구청에는 저희 쪽에 자료 넘기지 말라고 했다면서요!

“원래 독보적인 위치에서 지휘권 가진 특수팀 아니십니까. 정 조사에 끼고 싶으시면 저희 쪽으로 합류하시죠. 과장님께 지휘 받으시면 됩니다.”

한마디로 니들끼리 알아서 해보던가, 내려와서 기어라.

그런 뜻이었다.

강혜원은 누군가에게서 지시를 받는 듯 잠시 목소리가 멀어졌다가 곧 아까처럼 침착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럼 저희는 협조는 얻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본청으로 안 오시겠다면 곧 그런 뜻이 되겠죠.”

-저희가 독자적으로 움직일 거고 본청 터치는 안 받겠습니다. 동의하시죠?

순간 본청 직원의 머릿속에 ‘어? 끝까지 안굽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래, 어디 한 번 해봐라.’ 하는 비웃음도 스쳤다.

“네네. 그렇게 하세요. 알아서 하시고 저희한테도 뭘 얻어갈 생각은 하지 마시고.”

-아, 네. 그러시죠.

강혜원의 무미건조한 대답과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

이젠 정말 질 수 없다.

선전포고까지 끝난 상황이다.

본청 조사국은 업무에 박차를 가했다.

인원을 조정하고 팀을 나누고 업무분장을 마쳤다.

이제 남은 건 소비자를 우롱하는 악덕 업체에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부산청과 대구청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빠른 속도로 명단이 만들어졌다.

각각 수백, 수천 번은 더 해본 작업이 조사국 사무실에서 반복되었다.

매출과 매입 자료를 대조하고 통장을 뜯어 보고 수입을 조사했다.

신재현 정도는 조사과 선에서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겠다는 각오와 함께였다.

거기다 대통령의 특별 지시 아닌가.

조사국을 내팽개치고 서울청장으로 간 민치호에게 자신들이 더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직원도 있었다.

저마다의 이유로 의욕에 가득 찬 직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부당 이익을 찾아내고 있을 때 특수 조사 2팀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 하면.

-서울을 출발해 대구로 가는 KTX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타는 곳 안쪽으로 한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영남 지방으로 가기 위해 KTX에 타고 있었다.

***

뭐든 일을 시작하려면 자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업무의 첫 시작은 자료 요청이었다.

우리의 관할도 아닌 데다 지역의 사정은 그 지역의 지방청과 세무서가 가장 잘 안다.

그런데 의외로 자료를 받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처음 거절을 당하고 나자 너나 할 것 없이 팀원들은 전화기를 들었다.

대구청, 부산청, 세무서.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본청 핑계를 댔다.

본청에 이미 제출했으니 우리에겐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답을 듣자마자 전투력이 충만한 장세훈이 본청에 전화를 걸었지만, 대기음이 한 번 울리자마자 강혜원에게 빼앗겼다.

장세훈 성격이라면 욕설을 퍼붓고도 남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혜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통화를 하면 할수록 강혜원의 표정에 분노가 서렸다.

나는 강혜원에게 손짓해 그냥 적당히 전화를 끊으라고 말했다.

본청 직원들이 내게 자료를 공유하지 않을 거란 예상은 했다.

그러나 대구청과 부산청에까지 입단속을 시켜놨을 줄이야.

그렇다고 손발 다 묶인 채로 멍청하게 앉아서 시간만 보낼 우리가 아니다.

자료 협조를 안 한다면?

직접 발로 뛰면 된다.

자료가 저 멀리 부산에 있다면?

직접 가면 된다.

나는 그 길로 팀원들에게 출장을 준비하라고 얘기한 후 청장실로 향했다.

장기 출장이 될 것 같은데 예산을 어디까지 써도 되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청장실에 앉은 민치호는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허허 웃더니 아예 카드 하나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이게 뭡니까?”

“응. 특수조사팀에 할당된 예산.”

“그걸 다 절 주십니까?”

“그동안 아껴썼더라. 적당히 쓰고 갖고 와. 1팀도 거기서 나눠 써야 하니까.”

아무리 8달 동안 두 팀이 썼다고 해도 이 안에는 많은 금액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걸 전부 다 준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져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 민치호는 대놓고 내 등을 떠밀었다.

“할 일 많을 텐데. 일단 가서 생각해.”

“……네. 아껴 쓰겠습니다.”

그 길로 다급히 각자 짐을 챙기고 우리는 KTX에 올라탔다.

지진으로 철도가 끊긴 곳도 있어서 부산까지 곧바로 갈 수는 없었기에 일단 대구청부터 들리기로 했다.

조사국에서 비웃었던 대로 우리가 겨우 5명밖에 안 되는 소수의 팀이라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사람 수가 적으면 움직이기가 편하니까.

그렇게 우리 팀은 예고 없이 대구청에 들이닥쳤다.

“저, 저게 머고! 점마들이 여기 왜 왔노!”

휘둥그레진 눈동자 수십 쌍이 우리를 맞았다.

경악 섞인 성대한 환영 인사에 웃음으로 화답한 나는 바로 청장실로 향했다.

“마! 니 일케 막 쳐들어오고 그런 놈인 건 알고 있었는데 글타꼬 참말로 쳐들어와삤나!”

“예, 청장님!”

“허이고야.”

기겁하는 청장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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