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해볼 테면 해보라죠.
한참 국세청이 공석과 인사이동 등 조율을 하며 내부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였다.
8월 21일.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났다.
-쿠르릉!
“우야노! 저거 무너져뿌는 거 아이가!”
“고마하고 나오소! 마, 깔린다!”
“이게 머선 일이고!”
-쿠웅!
영남지방에서 진도 5.2의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예민한 사람은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할 정도의 강한 지진이었다.
대한민국은 지진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이번 지진은 그야말로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수많은 부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고 집과 생계 수단을 잃은 사람도 수두룩했다.
도로가 무너지고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집들도 가까이 가서 보면 금이 가 있는 듯 처참했다.
대체 몇 년이 걸려야 복구가 될 지 참담한 실정이었다.
영남지방에서 일어난 지진은 수많은 이재민과 재산 피해를 일으켰다.
정부는 급하게 구조대와 상황 파악을 위한 전문가를 파견했다.
전국에서 기부와 봉사의 손길이 이어졌고 훈훈한 미담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여기까지라면 국세청과 하등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임시 대피소에 자리를 잡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생긴 후에 일어났다.
물가가 폭등한 것이다.
가장 수요가 많은 생필품의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고 다른 물품도 따라서 가격이 올랐다.
지진 피해 지역에서 계란 값이 두 배로 뛰고 라면은 동났다.
수도가 끊기고 타 지역에서 펌프차로 물을 실어 날랐으나 이재민이 생활용수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생수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좁은 대한민국에서 한 지역의 물가가 오르니 자연적으로 타 지역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물가 폭등은 지진 피해를 입은 영남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몇 차례 여진이 이어지자 두려움에 가득 찬 타 지역 사람들은 사재기에 나섰다.
사람이 공포에 잠기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지진 안전국이 아니라는 공포와, 그동안 얼마나 방심하고 살았는지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전국을 공포와 혼란이 휩쓸었다.
전국의 물가가 요동치는 와중에 일부는 이런 상황을 반기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에겐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지. 나에겐 지금 이게 기회다!’
‘잘하면 억 단위로 벌겠는데. 이게 바로 장사지!’
‘아, 장사하자 먹고 살자!’
남의 고통을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재기한 물품을 비싸게 팔고 유통업자는 중간의 마진을 두 배로 띄웠다.
정부는 당장 사고를 수습하고 이재민을 다독이는 데 급급했다.
유통업자와 도소매상의 만행을 보고도 발을 동동 굴리던 지자체가 잠시 눈을 뗀 사이.
불과 일주일 만에 일부 지역에서는 생필품의 물가가 2.5배까지 상승했다.
다급히 지역 공무원의 보고를 받은 행정부에서는 긴급 회의가 벌어졌다.
“물가를 당장 원래대로 돌려야 합니다.”
“현재 이재민 지원 물품은 어디까지 여유 있습니까?”
“……정상 물가를 기준으로 마련된 계획이었습니다. 지금 물가로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애초에 정부가 제때 물품을 공급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가지가 문제인 거라면 공무원들을 비상 투입해서 마트나 슈퍼에 돌아다니게 하죠. 정상 물가보다 2배 이상의 가격으로 파는 걸 발견하면 벌금이나 영업정지 시키는 건 어떻습니까?”
한 장관의 의견에 대통령이 격노한 듯 소리 질렀다.
내내 조용조용하고 흐르는 물 같던 대통령이 처음으로 내지르는 포효였다.
“공무원 숫자가 남아돕니까! 행정력 총동원해도 이재민 보살피기 벅찹니다. 어떻게 사람이 일일이 마트를 돕니까!”
“그럼 일단 폭리를 취하지 말고 이를 어기면 벌금을 매긴다는 공문을 보내시죠. 지금 이건 잠시간의 현상일 뿐입니다. 예전에 조류독감 때문에 양계장 산란계가 다 죽어 계란 품귀현상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계란 한 판에 15,000원까지 갔지만 시간이 지나니 정상가격으로 내려왔죠. 이번에도 시간이 지나고 국민들이 안정을 찾으면…….”
“그게 지금 농축부 장관이 할 소리입니까! 이런 현상이 지속될수록 경제 파탄 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정상 물가로 돌려야 해요!”
대통령의 일갈에 국무회의는 날 선 분위기가 되었다.
“벌금? 영업정지? 당장 눈앞에 돈이 어른거리는데 겨우 그런 거로 제지가 될 것 같습니까? 까짓 거 벌금 내면 그만 아닙니까. 더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더한 조치라 하시면…….”
“징벌적 세무조사.”
회의실이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일 정도의 발언이었다.
“대, 대통령님. 아무리 그래도 그 업자들 또한 국민입니다. 반향이 클 겁니다. 지지율에 영향이 있을 수도 있어요.”
“어차피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가만히 있다가 경제 파탄 내느니 욕 좀 먹으면 뭐 어때요.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국민은 물가 폭등으로 부당 이익을 취하는 업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얻은 이익은 모두 선량한 대다수 일반 국민들의 피와 눈물입니다! 지금 누굴 두둔하는 겁니까!”
어설프게 업자 편을 들었던 장관 하나는 서슬 퍼런 대통령의 일갈에 바로 깨갱했다.
그렇게 9월 1일이 되었다.
신임 국세청장 오낙현이 보무도 당당하게 청와대에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고 임명장을 받았을 때, 대통령은 국세청장에게 특별 지시를 내렸다.
“부임하자마자 바로 일거리를 줘서 미안합니다.”
“기다리던 바입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상황이 급해요. 신재현 팀장이 국세청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죠? 그걸 좀 써먹어 볼까 합니다.”
신임 국세청장 오낙현은 미미하게 당황했다.
대통령이 신재현의 무서움을 모르고 그저 소문만 듣고 써먹으려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남지방의 재난을 이용해서 부당 이익을 취하는 업자들이 있습니다. 생산지에서는 몇 백 원 수준의 생필품이 유통, 도소매를 거치면 소비자가의 두 세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팔려나가고 있어요. 이들을 본보기로 조사해주세요.”
역시 신재현이 어떤 놈인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서울청에서 부하로 굴려보며 느낀 것은 ‘정말 써먹기 어려운 칼이다’라는 것이었다.
날은 매우 잘 든다.
판단력도 탁월하다.
그러나 자신의 입에 들어오겠다 싶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버린다.
대형견을 산책시키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가는 견주를 본 적이 있는가?
신재현이 딱 그 짝이었다.
그렇다고 이것을 사실대로 얘기했다간 국세청장으로서 아랫사람을 다루지 못하느냐는 소리만 들을 것이다.
그래서 오낙현은 에둘러 표현했다.
“징벌적 세무조사 말씀이십니까? 신재현 팀장이 적임이긴 합니다만 이런 경우엔 상상하신 그 이상으로 날뛸 겁니다. 얼마나 목을 칠지 저도 가늠이 안 됩니다. 당장 저번 달에만 해도 판을 깔아 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셨지요?”
지산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딸과 막내 사위까지 한 번에 날아간 사건.
둘째 딸이야 중부청장이 기세등등하게 폭주하는 바람에 그런 것이라 쳐도, 막내 사위를 날려 버린 건 전국 공무원을 기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폭주한 중부청장과 평소처럼 날뛰는 신재현이 동급이라는 말도 된다.
그러나 오낙현의 걱정스러운 표정에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원하는 겁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가 뭔지 보여 주세요.”
“……완전히 풀어놓으라고요? 대통령님, 기사로 접한 것과 다릅니다. 생각하신 것보다 더 많은 업자가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오 청장님의 걱정은 감사합니다만 저도 잘 압니다. 제가 보고를 받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까?”
대통령의 서늘한 눈빛에 오낙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순간 오낙현 머릿속에 아차,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보통 행정기관과는 다르게 대통령은 온갖 루트로 보고를 받는다.
그중에는 기관장의 정상적인 보고도 있겠지만, 음지의 보고도 있을 것이다.
“제지는 필요 없습니다. 마음껏 날뛰라고 전해주세요. 전국의 시선이 모이도록, 하고 싶은 만큼 날뛰어도 된다고 해주세요. 물론 기관장인 오 청장의 협력이 필요한 일입니다만.”
대통령의 지시에 토를 달 기관장은 없다.
‘평화만 누려 온 대통령이라 이런 비상 상황에서는 어리숙할 줄 알았는데, 꽤 결단도 있군.’
국세청은 더없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
재난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업자를 쳐내라.
엄명을 받은 오낙현은 즉시 팀을 짜냈다.
이제는 자신의 휘하가 된 본청의 조사국을 동원하고, 서울청의 청장이 된 민치호에게 연락을 넣었다.
특수조사 2팀을 보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 소식은 국세청 본청에도 순식간에 퍼졌다.
조사국의 직원들이 기분 나빠한 것은 덤이다.
“아니, 청장님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우리를 못 믿으신다는 건가?”
“서울청에서 계셨으니 그간 손발을 맞춰온 서울청 사람이 그리운 건 이해해요. 그래도 실력으로 따지면 우리 본청도 지방청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굳이 신재현을 이번 일에 포함시켰어야 했나 의문이 드네요.”
조사국 직원들은 연신 툴툴거렸다.
신재현이 요즘 큰 건들을 도맡아 하며 잘나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국 세무 공무원 중 가장 특출 나다는 증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신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상황이라는 것이 있고 주위에 폐를 끼치기 싫어서 참는 것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니까 얕보이는 것 아닙니까? 우리도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걸리면 털 수 있는데. 저번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지산 털었잖아요. 그런데 왜 신재현이라는 이름에만 열광하는 겁니까?”
지산 그룹에 대한 전수 조사는 국세청, 서울청, 중부청의 합작이었다.
그 중 중심이 된 청은 당연 본청이다.
지방청은 본청을거든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로서는 보도되는 기사나 국세청 홍보실의 처사가 매우 불만스러웠다.
신재현을 너무 특별대우 한다.
징벌적 세무조사에 신재현이 합류한다는 소문이 들리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불만을 터뜨리는 이유였다.
“눈에 잘 띄니까 뜬 겁니다. 뉴튜브 하는 SNS 담당 공무원이 국민에게 친숙하니까 유명해지고 그러잖아요. 신재현도 비슷한 겁니다.”
“국민은 눈에 많이 들어오는 사람을 일 잘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우리는 뒤에서 묵묵히 일하면 됩니다.”
“그야 묵묵히 하긴 할 건데, 그래도 억울하잖아요. 기껏해야 경력 2년 반에 윗분들이 잘 봐줘서 팀장 단 걸 미디어에서 띄워주니까 다들 신재현을 국세청 대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직원들은 시간만 나면 삼삼오오 모여서 신재현을 물어뜯었다.
아예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함께 일하는 건 기정사실인 것 같으니 자신들이 실력으로 찍어 눌러 주겠다는 뜻이었다.
본청의 흉흉한 분위기는 금방 전임 조사국장이었던 민치호에게 전해졌다.
민치호는 재밌어하며 신재현에게 본청의 얘기를 전해줬는데 막상 신재현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뭐, 항상 있는 일이네요. 저는 매번 운이나 낙하산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며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까짓 거 해볼 테면 해보라죠.”
“크하하핫!”
민치호는 현 부하와 전 부하의 대결을 기대하며 즐겁게 웃었다.
아예 대통령이 깔아주는 판이었다.
신재현의 기세는 더없이 등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