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06화 (206/500)

206화. 새로운 서울청장

신재현이 인터뷰에서 열을 내고 있을 무렵, 중부청장실은 전에 없이 시끄러웠다.

“청장님! 이건, 이건 아닙니다! 제게 이러실 수는 없는 겁니다!”

“청장님, 조금만 참으면 해결될 거라고 하셨잖습니까!”

청장실로 우르르 몰려와 따져대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청장의 손과 발 격인 부하직원들이었다.

개중에는 국장 같은 고위공무원도 있었고, 과장이나 팀장 같은 낮은 직급도 있었다.

평소라면 청장에게 입도 뻥끗 못 할 이들이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소리쳤다.

“저번 양도세 건은 청장님 말씀대로 처리한 것뿐입니다. 제가 잘못한 것으로 하고 감사도 제가 받으란 말씀이잖습니까.”

“상속 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장님이 특별히 지시하신 건이었어요. 신경 쓰라고 하셔서 신경 썼습니다. 그걸 이제 와서 제가 다 뒤집어쓰라고요?”

언론은 청장의 손이 닿은 건을 하나하나 파헤쳤고, 청장은 부하직원들의 실수로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동안 수습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청장이 주로 썼던 방법이었다.

“저 사고 하나만 더 터지면 바로 지방 내려가야 합니다. 이렇게 버리실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러나 이들이 몰려와 반항하는 이유는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세금 봐주기 했다고 문제 되는 게 이미 수십 건이었다.

부하들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건이 수십 건이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언론은 이걸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은 중부청장의 권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끽소리 못했던 것이지만, 이렇게 위태롭다면 얘기가 다르다.

“약속하지. 내가 청장이 되면 너희들 모두 국세청으로 불러올릴 거야. 어차피 국세청 가면 나도 손발이 필요해. 너희가 그 자리의 주인이 될 거라고.”

항상 이렇게 달래 왔으나 오늘은 달랐다.

“그 말씀을 믿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수습하라고 하시면 수습도 했고요. 그런데 이젠 저희도 불안합니다. 뭔가 확신을 주세요. 저희가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요.”

“다들 알고 있잖나! 다음 국세청장은 나라고! 큰일을 앞두고 외풍을 겪는 것뿐이야.”

“저는 이제 그것도 의심스럽습니다. 청장님으로 정해진 것 맞습니까?”

부하직원들의 눈초리에 의심이 섞였다.

청장은 눈썹을 찌푸렸다.

“현재 국세청장님께서 구체적으로 언질을 주신 겁니까? 몇 월에 이 자리를 넘겨주겠다, 하고?”

그런 언급이 있었을 리 만무했다.

분위기가 그랬고, 모든 사람들이 중부청장을 다음 국세청장으로 생각했으며, 민치호와 신재현마저 중부청장에게 중요한 정보를 줬으니까.

당연히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내가 아니면 누군데! 나 말고 누가 국세청장 자리에 앉는다는 거야!”

“그걸 저희가 여쭙는 겁니다. 저희는 경력과 인생을 걸었습니다. 확실한 무언가를 보여주십시오.”

이제는 말로만 달랠 수 없는 지경이다.

중부청장 손경진은 이마를 짚었다.

“내가 국세청장이 되면 모든 게 해결될 문제 아닌가.”

“저희도 믿고 싶습니다.”

확답을 달라, 국세청장이 될 거라는 증거를 달라.

이 모든 피해를 입고, 직원들의 희생을 치르고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확신을 달라.

불타는 듯한 직원들의 눈빛에 중부청장은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슬슬 청문회나 인수인계 준비도 해야 할 참이다.

언제쯤 자리를 비워주실 건지 중부청장 역시 궁금했다.

-청장님, 후임 발표는 언제 하실 예정입니까?

조급함이 물씬 묻어나는 문자였지만 일단 보냈다.

현재 벼랑까지 몰린 중부청장으로서는 이 이상 예의를 차릴 정신도 없었다.

답장은 바로 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30분 전에 발표했습니다. 기사 확인해보세요.

당사자인 자신에게 말도 없이 발표했다는 말에 의아함이 앞섰다.

그리고 서둘러 뉴스 기사를 연 순간 중부청장은 눈을 의심했다.

-신임 국세청장에 오낙현 서울청장 내정.

“아니, 이게 무슨…….”

오랫동안 모셔온 부하직원들도 처음 보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경악에 의심, 그리고 당혹이 한데 뒤섞여 악귀 같은 얼굴을 만들었다.

부하직원들은 앞다퉈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중부청장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청장님! 저희를 속이신 겁니까!”

“청장님을 위해 사고 난 것들 뒷수습도 다 해드렸습니다! 제 인생은 뭐가 됩니까!”

“아무 확증도 없으면서 불도저처럼 밀어붙이셨던 겁니까?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부하직원들의 아우성에 중부청장이 소리를 질렀다.

“오보야. 오보라고! 내가 알아볼 테니까 다 꺼져, 새끼들아!”

직원들이 쉽사리 물러가지 않자 청장은 욕설과 함께 폭력까지 행사했다.

평소의 냉철하고 계산적인 청장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본성이 드러난 것이다.

“저희도 이렇게 끝나진 않을 겁니다!”

청장실을 쫓겨나다시피 한 직원들이 소리 질렀다.

중부청은 그렇게 깨어지고 있었다.

***

녹화한 촬영분이 방송된 것은 내가 인터뷰하고 온 지 일주일 만이었다.

내가 인터뷰 한 걸 알아도 모르는 척 해줬던 팀원들이지만 이번엔 역시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팀원들의 놀림에 휩싸여야 했다.

“오우~ 인터뷰에서도 강의를 하는 남자~”

“아는 거 나오면 설명하는 기질은 팀장님도 있었군요. 편집하느라 고생했을 것 같던데.”

“마지막엔 좀 웃겼습니다. 완전 정답 떠먹여 줬던데.”

“그래도 긴장은 없더라. 하도 TV 탈 일이 많아서 그런가?”

나를 놀리는 데 맛 들인 팀원들이다.

괜히 아는 척했다간 한참을 시끄러울 것 같아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업무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공민화 씨에 대한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탈세 규모도 10억 이내고 복잡한 탈세도 아니고 해서 관할서로 토스했어요.”

놀리던 와중에도 강혜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 우리가 조사해도 된다.

하지만 우리 팀은 항상 바쁘고 일손도 부족하다 보니 굳이 우리가 안 해도 되는 건은 관할 세무서 조사과로 보내도 된다고 말해 두었다.

그랬더니 공민화 건은 토스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잘하셨습니다. 그럼 지금 진행 중인 건 확인할게요.”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손으로 일하면서 입으로만 말씀하세요, 장세훈 주사보님.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처럼 자세 잡지 마시고. 무섭습니다.”

내 면박에도 장세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체를 기울인 것이 아예 놀리겠다는 의지가 만연해 보인다.

“다민 씨랑 분위기 괜찮던데 어땠어? 전화번호 교환 정도는 했지?”

“어?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 겁니까?”

내가 어리둥절하며 묻자 강혜원이 눈을 반짝거리며 끼어들었다.

“표창식 때 다민 씨 표정이 어땠는 줄 알아요? 와, 팀장님한테서 시선을 못 떼던데. 제가 여자로서 단언하는데, 다민 씨가 팀장님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니까요!”

오호라, 표창식 이후 왠지 팀원들이 날 쳐다볼 때 야릇한 미소를 보낸다 했더니 범인이 강혜원이었구나!

“그런 일 없습니다. 저는 공무원, 그분은 모범 납세자. 끝.”

“아, 뭐 저렇게 일밖에 모르냐. 팀장님이 다민 씨랑 친해지면 좋잖아요. 저도 잘생긴 연예인들 소개도 좀 받고. 예를 들어 이름에 빈 자가 들어가는 그런 분들이요.”

“강혜원, 너는 좀 꿈 깨라. 둘이 잘 된다고 왜 네가 연예인을 소개받냐?”

“주사보님, 꿈은 원래 꾸라고 있는 거거든요?”

“응. 강혜원, 네 말이 맞다. 이루라고 있는 게 아니라 꾸라고 있는 거지.”

“아, 진짜!”

강혜원이 씩씩대며 장세훈의 팔뚝을 퍽퍽 때렸다.

장세훈이 억 소리를 내며 책상 위에 엎어졌다.

“잠깐, 너 손 매워. 아프다니까! 황민우, 안길진! 살려줘!”

“주사보님 자업자득입니다. 혜원 씨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잖아요.”

황민우와 안길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청 안에서도 업무량이라면 손에 꼽히는 팀이지만 분위기 하나는 끝내주게 좋다.

그것이 다행이면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물론 우리가 웃고 떠드는 원인의 대부분은 나를 놀리는 것, 장세훈의 헛소리, 그걸 받아주는 강혜원에서 비롯된다.

즉, 저 둘이 분위기 메이커다.

아마 어느 팀에 가든 둘이 붙여 놓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와 연예인 다민보다 저 둘이 더 연애 관계에 가깝지 않나?

“악! 주사보님! 결재인 잘못 찍었잖아요! 팔꿈치 치지 말라니까요!”

“어휴, 종이 한 장도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야. 강혜원 너 그렇게 낭비하면 돼, 안 돼?”

“미치겠네.”

정정하겠다.

저 둘은 그냥 남매 같다.

딱 오빠와 여동생을 보는 느낌이었다.

다시 투덕거리기 시작하는 둘은 뒤로 하고 황민우가 들고 다가왔다.

“팀장님, 특별 인사이동 발표 났습니다.”

정기이동 기간이 아니라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석을 메꿔야 한다.

아마 본청에서 머리 깨나 썩였을 것이다.

“서울청장님이 본청으로 가시면 공석이 되잖아요. 누가 오려나? 차장님이 반년간 대행하시려나?”

귀가 밝은 강혜원이 잽싸게 다가왔다.

옆에는 장세훈도 함께다.

“지방청장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있나요? 차장님이 대리해도 되긴 하지만…… 어?”

나는 인사 이동표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서울청장 : 민치호

이번 판을 벌인 장본인, 중부청장을 약화시키고 성공적으로 서울청장을 무혈입성시킨 나의 상사 민치호가 서울청장으로 오는 것이다.

“민 국장님이 드디어 청장으로 오시네요!”

“오낙현 청장님이 임기 마치고 나면 민 국장님이 그다음 국세청장 자리에 앉을 거라는 소문이 진짜인가 보네요.”

“이야, 민치호 국장님이 아예 우리 청으로 오시는 거면 지금보다 더 날뛸 수도 있겠는데요?”

나는 잠시 민치호의 지휘를 받는 특수조사팀을 상상했다.

확실히 이선균과 우리 팀이 있는 이곳에 민치호가 오면 어디까지 가능할지 가늠이 안 된다.

국세청 본청만큼의 힘은 아니더라도 오낙현 청장 밑에서 있던 것과 다를 것은 확실했다.

오낙현 서울청장은 나를 믿고 밀어주긴 했지만 위험한 다리를 싫어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조용히 끝내고 싶어 했고.

민치호는 정반대다.

우리 힘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해서 내 손에 쥐여주고 다 죽여 버리라며 등을 떠밀 사람이었다.

“재밌겠네요.”

특수조사팀은 청장 직속이다.

이제 곧 올 민치호의 명령을 직접 받는다는 뜻이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시에 나는 판단을 내렸다.

“다들 급한 일은 없죠? 당분간은 칼퇴하고 푹 쉬세요. 앞으로 바빠질 것 같으니까.”

“넵.”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무사히 청문회가 끝났다.

중부청장은 지방으로 좌천되었고 그의 손과 발이었던 직원들은 중부청장의 잘잘못을 감사과에 이실직고하고 살아남았다.

8월은 국세청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정신없는 달이었다.

8월 하순의 어느 날, 영남지방에서 진도 5를 넘는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때문에 9월 1일 이뤄진 국세청장 취임식은 여느 때보다 규모를 축소하여 진행되었다.

현직, 아니 이제는 전직이 된 국세청장 정상훈은 국회로 간다는 소문이 돌았고, 민치호 국장은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서울청에 입성했다.

민치호 국장은 서울청장 취임식 연설이 끝나자마자 청장실이 아니라 우리 사무실에 들렸다.

그리고 민치호 청장으로서의 첫 번째 임무를 전달했다.

“미안한데, 영남지방 좀 조사해야겠다.”

“……영남이요?”

“오낙현 국세청장님의 지명이다. 꼭 특조 2팀에 맡겨달라고 하시더라. 많이 신뢰하시는 것 같던데, 여기서 너무 열심히 한 것 아냐?”

이제는 서울청장이 된 민치호가 미안함을 섞어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뭔가 큰 걸 치겠구나 했는데 이건 굉장히 의외다.

서울청 소속인 우리가 왜 영남까지 건드리나 싶긴 하지만 국세청장과 민치호까지 나서서 지시하는 거라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영남 조사가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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