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밖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2)
공민화의 생각은 간단했다.
인터뷰하는 겸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며 말실수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닥 어려운 일도 아니다.
현직 공무원은 해도 되는 말, 안 되는 말이 명확하니까.
굳이 정치나 사상 얘기가 아니어도 된다.
신재현 본인부터가 그런 주제는 피하려 들겠지.
뜨거운 이슈에 관한 의견만 말하게 하면 끝이다.
“아, 사업자요? 그럼 더 간단한 일인데, 사업자는 사업자등록증이 있잖습니까. 거기에 무슨 업종인지가 쓰여 있잖아요. 음식점, 임대업, 교육 서비스업 등등 적혀 있는데 그 사업을 하는 데 들어가는 경비만 인정이 돼요.”
“연예인은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사람도 있는데요.”
“아, 그런 분들은 프리랜서죠. 글 쓰는 분들, 그림 그리는 분들, 디자이너, 사진가, 번역가 같은 분들이 계세요.”
“차이가 뭔가요?”
“사업자는 사무실을 차려서 다양한 거래처와 거래하고 매출을 올리지만, 프리랜서는 다른 회사에서 일감을 따오는 계약관계예요. 굳이 말하자면 프리랜서는 근로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근로자는 회사에 소속되어서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하지만 프리랜서는 소속까지는 아닙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소화할 수 있는 만큼 일감을 받아다 하는 거죠.”
공민화는 차분히 이야기를 들으며 기회를 기다렸다.
신재현은 어떻게든 풀어서 설명하려고 열심이었다.
“법인하고 개인이 또 다르고 프리랜서가 조금씩 다른데 원리는 똑같습니다. 사업과 관련된 지출, 그리고 영수증이요.”
어떻게 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신재현이 잠시 고민하는 순간 공민화가 훅 치고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까 제가 뉴스에서 사업자 중에 종교인도 해당된다는 기사를 본 것 같아요. 종교인은 세금을 잘 내고 있나요?”
위험한 수위다.
순간 오재석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뒤로 빼서 공민화에게 눈치를 보냈다.
‘민화야, 이렇게 부담스러운 질문을 하면 어떡해! 대본에도 없었잖아!’
그러나 공민화는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신재현은 잠시 공민화를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내는 분도 있고 안 내는 분도 있어요. 내는 분께는 감사할 따름이죠.”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신재현은 부드럽게 넘겼다.
피디와 오재석이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 공민화가 또 치고 들어왔다.
“원래 안 내도 되는 건가요? 누군 내고 누군 안 낸다는 건 공평한데. 소득 있는데 세금 안 내면 팀장님도 화나시겠어요.”
이번엔 한술 더 뜬 질문이었다.
신재현이 뭐라 대답하기 전에 오재석이 서둘러 수습했다.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편집하고 가겠습니다.”
오재석과 피디가 눈길을 교환했다.
향후 편집하겠다는 뜻이다.
신재현이 세금 내지 않는 사람에게 하는 일갈 한 번이면 시청률도 치솟을 것이다.
그리고 짤로 만들어져 두고두고 커뮤니티에 오르내릴 것이다.
그걸 알고 일부러 신재현의 대답을 막은 것이다.
비방송인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라고 할 수 있었다.
“아까 하던 얘기 이어서 하시면 됩니다. 사업자 경비 얘기였어요.”
오재석의 설명에 신재현은 잠시 촬영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쉬워하는 공민화의 얼굴을 본 순간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순간 피디가 ‘잘못 봤나?’ 싶을 정도로 흉악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경비라는 게 별거 아닙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밥 먹을 수도 있고, 거래처에 밥을 사 줄 수도 있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돈도 많죠? 사무실 유지비에 원재료, 소모품비, 문구비, 용역비 등등. 사업하다 들어간 돈이면 다 해당됩니다. 다만 영수증이 있어야 해요. 3만 원까지는 간이영수증이 가능한데, 그 이상이면 무조건 카드, 현금영수증, 아니면 세금계산서를 받으셔야 합니다.”
“사업하면서 사용한 금액은 다 영수증을 받아야 한다는 거군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오재석과 신재현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설명으로 분량을 뽑았다는 생각이 들자 오재석은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굉장히 다양한 납세자 분들을 만나볼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정말 다양하죠. 지금은 청에 있다 보니 주로 딱딱한 분위기에서 조사만 하는데, 예전에 세무서에 있을 땐 많은 분들을 뵀어요.”
“구체적으로는요?”
“민원 처리하는 동안 귀엽지 않냐면서 손자, 손녀 사진 보여주시는 할머님도 계셨구요, 어떤 아주머니는 키우는 고양이랑 따님이 찍은 사진도 보여주셨어요.”
“키야. 그건 귀엽지. 자랑할 만하네요.”
“그쵸? 와, 거짓말 안 하고 정말 귀엽더라구요.”
“저는 바로 진상 민원인 얘기부터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훈훈한 얘기가 나왔네요.”
“진상도 있긴 하죠.”
“역시…….”
“없을 수가 없어요. 다들 사람 사는 동네니까 세무서도 마찬가지죠.”
또 둘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혹시나 또 난감한 질문이 들어올까 봐서인지 이제는 오재석도 공민화에게 질문을 넘기지 않았다.
“아, 기억나는 민원인이 계신데요. 탈세하신 방법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면서 이게 왜 문제냐고 하시더라구요. 불법인 걸 불법이라고 하는데 이게 안 통해요.”
“아…….”
오재석의 탄식이 흘렀다.
“정상적으로 계산한 세금이랑 민원인이 집에서 계산해 오신 거랑 너무 차이가 나는 거예요. 원래 세무서에 자료 빠뜨리고 오는 분 있어서 그럴 수 있다 했는데, 이분이 작년엔 이렇게 했다면서 구체적으로 제게 탈세를 지시하는 거예요.”
“……예? 팀장님한테 탈세 방법을 알려 주면서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고요?”
오재석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저도 처음에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놀랍게도 진짜입니다. 주민번호 셋 주면서 직원으로 넣어 달라고 하고, 1년 치 카드 명세서 주면서 자기가 줄 쳐 온 금액 다 넣어 달라고 하더라구요. 사무실이 아니라 집에서 쓴 공과금이랑 시장 본 것, 아내 건강검진비까지 넣어달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길래 제가 할 말이 없어서 웃었어요.”
“아무리 봐도 제가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게 탈세인 걸 몰라서 그런 것 아닐까요?”
“저도 그래서 설명을 드렸어요. ‘선생님, 이건 써선 안 되는 방법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불법이고 탈세예요.’ 그랬더니 작년에 그렇게 해서 세금 신고했다, 아무 문제 없었다 그러시더라구요.”
“아, 납세자분이 오히려 당당하게요?”
“네. 제가 혹시 세금을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헷갈릴 정도였어요. 너무 당당하게 말씀을 하셔가지고.”
둘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피디는 이상함을 느꼈다.
공민화의 표정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공민화의 민감한 질문 이후, 오재석이 진행을 도맡아 하더라도 공민화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었는데.
이제는 감탄사나 맞장구도 없이 눈알만 데록데록 굴리고 있었다.
제대로 미소도 짓지 못하고 입가만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신재현의 말이 이어질수록 더욱 심해졌다.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방법은 다 절세가 아니고 탈세예요. 절대 쓰시면 안 되는 방법입니다. 아는 사람 주민등록번호만 갖고 와서 가짜로 직원 등록하는 것도, 사업과 관련 없는 아이들 학원비나 의료비 넣으시는 것도 안 돼요. 식당에서 간이영수증 다발로 가져와서 금액 가짜로 적어 넣으시는 것도 안 됩니다. 그거 다 위조예요.”
신재현이 진지하게 말하자 공민화가 희미하게 딸꾹질을 했다.
명백히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갈 곳 잃은 눈동자가 정처 없이 허공을 맴돌았다.
그 사이 인터뷰는 마지막을 향해 달렸다.
예상 촬영 시간을 훨씬 초과한 때였다.
“문제 드리겠습니다. 알고 있는 사실이 혀끝에서 맴돌기만 할 뿐 정확한 정보가 기억나지 않아 말로 잘 표현되지 않는 현상을 무엇이라 할까요?”
“어…… 지금 제가 겪고 있는데요.”
“네. 그 현상을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전문 용어도 있나요?”
“네. 있는 말이에요.”
“……그게 뭐더라?”
“아닙니다.”
“아, 그거 있잖아.”
“그것도 아닙니다.”
이런 식의 개그를 좋아하는 오재석이 몸을 비틀며 웃어젖혔다.
유일하게 이 자리에서 웃지 못하는 건 공민화뿐이었다.
“자, 슬슬 뭐라 답할지 결정되셨나요?”
“혀끝에 맴도네요.”
“비슷합니다! 그거 한자로!”
“한자요? 한자? 아, 설단 현상!”
결국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떠먹여 주다시피 한 정답이었다.
상금이 확정되자 회식하겠다며 함박웃음을 짓던 신재현이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이거 기타소득으로 제세공과금 별도죠?”
“네. 이거 거의 직업병 아니에요? 말 나온 김에 상금 100만 원이면 세금이 얼마?”
오재석이 장난스럽게 마이크를 내미는 시늉을 하자 신재현이 순간 눈동자를 굴렸다.
“22만 원이네요.”
오재석이 죽어라 웃어젖혔다.
“이야, 진짜 부럽네요. 연말정산 때도 도움 없이 자료도 척척 다 마련하시겠네.”
“그렇죠.”
오재석의 부러운 표정과 함께 마지막 한마디가 남았다.
시종일관 즐거운 얼굴이던 신재현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진지한 얼굴로 카메라를 마주 보았다.
서울청장이 원한 ‘이미지 전환’은 이 정도면 할 바를 다 했다.
이젠 신재현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때였다.
“저는 세무 공무원으로서, 성역 없이 조사할 겁니다.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 세상에서 탈세범을 없애겠다는 기세로 조사해 나가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지켜봐 주십시오.”
정치인, 그리고 권력자에게 밀리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다.
국회의원 또한 국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니.
지금 미쳐 날뛴다고 평하는 신재현을 가만히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것도 전부 여론이 신재현에게 호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여론이 등을 돌리는 순간 신재현은 방패 하나를 잃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오든 꿋꿋하게 제 일을 하겠습니다. 끝까지 지켜봐 주십시오.”
“와…….”
오재석을 필두로 촬영장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
촬영을 마친 공민화는 스태프들에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다민을 찾아다녔다.
다민은 또 게스트 대기실로 향하다가 공민화에게 팔뚝을 붙잡혔다.
“아얏! 왜 그러세요!”
“너지? 네가 국세청에 상 받으러 가서 내 얘기 다 까발렸지?”
“선배님,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어요. 전 어려운 거 잘 몰라요. 선배님이 평소에 세금 얘기 하신 것도 저는 잘 못 알아들었단 말이에요.”
“그럼 저 공무원이 어떻게 알고 저렇게 구체적으로 언급해? 내가 너 세금 좀 줄여주려고 노하우 공유해줬더니, 네가 이렇게 배신을 해?”
“악! 선배님!”
공민화는 다민의 팔뚝을 꼬집었다.
다민의 뾰족한 비명이 복도에 울리자 순간 누군가의 손이 불쑥 들어와 공민화의 손목을 잡아챘다.
“다민 씨는 아무 말도 안 한 게 맞습니다. 공민화 씨.”
“당신…….”
공민화는 멍하니 얼굴을 올려다보았다가 흠칫 놀라 손을 뿌리쳤다.
피디나 오재석과 인사하느라 늦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참 이상한 일이에요. 항상 잘못한 사람이 큰소리치더라구요. 공민화 씨가 탈세한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슨 탈세를 했다고 그래요! 그거 명예훼손이에요!”
“고소를 하든가 말든가 그건 내 알바가 아니구요. 구체적인 방법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매우 간단합니다. 그게 제일 쉬운 탈세법이거든요. 탈세도 멍청하면 금방 들켜요. 괜히 대기업에서 전문 법무팀, 세무팀을 굴리는 게 아니거든요.”
“지금 제가 멍청하다는 거예요?”
“매우 전형적이고 조사하면 다 나오는 탈세법입니다. 설마 해서 떠봤는데 공민화 씨는 제가 이미 알고 말한 거라고 지레짐작하셨나 봐요. 촬영장에서 표정이 말이 아니시던데.”
공민화는 화들짝 놀랐다.
신재현이 알 정도면 눈치 빠삭한 피디가 모를 리가 없다.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안이든 밖이든 최선을 다하는 게 세금으로 밥 먹고 사는 제 직분 아니겠습니까. 공민화 씨, 세무조사 준비를 미리 하셔야 할 겁니다.”
“세무조사라니, 저는 탈세한 적 없어요!”
“조사해보면 다 나올 겁니다. 얼마를 어떻게 악의적으로 탈세했는지.”
“나는, 나는…….”
입을 뻐끔거리는 공민화를 뒤로 하고 신재현이 걸음을 떼었다.
“얼마를 탈세했길래 그렇게 당당하게 다민 씨에게 소리쳤는지 저도 기대가 되네요.”
신재현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뒤늦게 쫓아온 피디와 오재석이 복도에 멍하니 서 있던 공민화를 발견했다.
“민화 씨, 무슨 일인데 그래? 신 팀장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인사라도 하고 가시지!”
“재석 씨는 먼저 가서 붙잡아 봐. 나는 잠깐 민화 씨 좀 볼게. 민화 씨, 왜 정신을 놓고 있어요? 아까 신재현 팀장님이 한 말은 대체 뭡니까? 탈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방송계에서 탈세, 음주운전, 그리고 도박은 금기어나 다름없었다.
탈세했다는 사실이 기사로 퍼지면 공민화는 끝이다.
“피디님, 저 버리지 마세요. 안 버리실 거죠?”
“아니, 민화 씨. 진정하고…… 아이고, 거참.”
무슨 인지 대강 짐작한 피디가 혀를 찼다.
탈세했구나.
그것도 반응을 봐서는 한두 푼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쯧쯧.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려서는…… 보조 진행자를 새로 구해야겠네.’
피디의 머릿속에 다음 보조 진행자 후보로 다민이 스쳤다.
그리고 한편으론 가는 곳마다 탈세범을 색출해내는 신재현에게 혀를 내둘렀다.
‘혹시 진짜 저승사자 아냐? 눈길만 줘도 탈세범이 자진 납세 하나?’
역시 예능 프로그램 하나만으로는 아깝다.
“민화 씨,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해요. 내가 좀 바빠서.”
“피디님?”
피디는 소맷자락을 붙잡는 공민화를 내버려 두고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한적해진 복도에 공민화만 덩그러니 남아 자신의 잘못을 곱씹었다.
이미 늦은 후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