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성실납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8월의 어느 날, 서울지방국세청의 주차장에 밴 한 대가 들어섰다.
밖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커멓게 선팅을 한 차였다.
운전이 익숙한지 깔끔하고 부드럽게 주차를 마친 남자는 뒤로 돌아 일행을 깨웠다.
2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다민 누나, 다 왔어요. 일어나세요.”
“어으으, 벌써?”
한때는 아이돌 가수였지만 현재는 솔로로 독립해 배우로도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 연예인이었다.
“굳이 이런 것까지 해야 해? 나 상장 같은 거 필요 없는데.”
잠이 덜 깬 목소리로 투정하자 매니저가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항상 있는 일이었다.
“알잖아요. 연예인은 이미지가 생명이에요. 괜히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냥 기부하면 안 돼? 무슨 내가 모범 납세자야. 세금 같은 거 잘 몰라서 그냥 시키는 대로 낸 것뿐인데.”
“다민 누나, 세상엔 시키는 대로 내지 않는 사람이 많답니다. 누나 정도면 모범 납세자죠. 그럼, 그럼.”
매니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랬다.
다민은 세금 같은 어려운 것은 쥐뿔도 몰랐다.
그저 안 좋은 일로 미디어에 오르내리면 이미지가 깎일 수도 있다는 얘기에 쫄았을 뿐이다.
행실을 바르게, 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품행이나 학창시절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데뷔한 다민은 납세의 의무 어쩌구 하는 것에 겁을 먹었고 세무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다 낼 테니까 나중에 문제없게만 해 주세요.’
그랬더니 상상했던 것보다 두 배는 되는 금액의 세금 납부서가 나왔다.
남들에게 보여줬더니 비웃음을 당할 정도였다.
-무슨 세금을 그렇게 많이 내? 너 세무사 바꿔야겠다. 내가 한 명 소개해줄까? 절세를 기가 막히게 하는데.
-절세? 그게 뭐야?
-세금 줄이는 거! 그냥 아는 사람 이름하고 주민등록번호 좀 불러 주고 카드 내역 좀 보내 주고 하면 알아서 세금 반의반으로 줄여 줘.
-그거 혹시 불법 아냐?
-으이구, 이 순진한 사람아. 그런 거 하라고 세무사한테 돈 주는 거잖아. 세금 좀 줄여 달라고. 원래 다들 이렇게 하는 거야. 세금 그런 거 내서 뭐 해? 다 배부른 놈들이 꿀꺽하는데.
-뭐야, 불법이란 거네. 그럼 안 할래. 무섭단 말이야.
-방법을 알려줘도 못 써먹네. 그래, 너는 세금 마아않이 내고 살아라.
이 사실은 널리 퍼져서 다민은 동료 가수들 사이에서 순진한 바보로 통했다.
다민의 세무사는 덩달아 욕을 먹었고.
“상장 받아 가면 또 놀릴 텐데. 호구의 상징이라면서…….”
티 없이 하얗고 청순한 얼굴이 수심에 잠기자 매니저는 아예 뒤로 고개를 내밀고 위로했다.
“그런 사람들 말은 듣지 마세요. 누나가 돈도 잘 벌고 세금도 잘 내고 성실하니까 질투해서 그런 거예요. 그 사람들 나중에 다 세무조사 걸리면 울고불고 난리 치면서 후회할걸요? 누나처럼 할걸 그랬다면서.”
“근데 걔네 말이 맞잖아. 세금 내봤자 이상한 놈들이 다 처먹을 텐데 내가 굳이 낼 필요가 있을까?”
연예계 생활이 길면 온갖 추잡한 놈들을 다 보게 된다.
다민은 침울해졌다.
“내가 고등학교도 빠지고 그래서 공부는 못 했지만 그런 건 안다고. 모범 납세자 선정됐다고 해서 미리 공부도 했어. 뭐라더라? 조세저항의 원인은 세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
다민은 끙끙대다가 결국 문장을 완성해 냈다.
“맞다! 그 세금을 활용하는 정책에 있다고!”
“누나, 조세저항이 뭐예요?”
“세금 내기 싫어하는 현상을 말한다고 했어. 동료 가수들이 하는 거!”
“오! 누나 되게 똑똑하다!”
“그치? 에헤헤.”
칭찬은 다민을 춤추게 한다.
다민은 언제 침울했냐는 듯 금세 배시시 웃었다.
매니저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런 어려운 말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하나 확실한 건, 사람은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누나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았고, 그게 누나의 삶의 방식인 거잖아요.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잔소리한다고 누나 삶을 바꿀 거예요?”
“그건 아니지!”
“그럼 이제 당당하게 상 받으러 가요. 누나는 그럴 자격 있으니까.”
“오올, 너 방금 좀 멋진 말이었어.”
다민은 거울을 보고 화장과 옷을 점검한 후 밴에서 내렸다.
벽에 서울지방국세청이라는 철제 간판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그걸 본 다민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소리쳤다.
“아! 신재현! 그 사람 여기서 일하지 않아?”
“국세청의 저승사자요? 네, 여기서 일한대요.”
“그럼 오늘 혹시 볼 수 있을까? 안에 돌아다녀도 될까?”
“어…… 다음 스케줄이 좀 빠듯하긴 해요. 화보 찍으러 가야 되잖아요. 그리고 국세청 사람들이 허락을 해 줄까요? 기밀문서 같은 것도 막 있을 텐데. 사무실 출입 허락 그런 거 안 받았잖아요.”
“신재현 보고 싶은데.”
볼을 부풀리는 모습이 딱 아이돌을 기다리는 팬의 그것이었다.
평소 보기만 하던 것을 다민이 직접 하고 있자 매니저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쪽에서 누나를 보고 싶다고 목매야 정상 아니에요? 왜 누나가 보고 싶다고 그러고 있어요?”
“멋있잖아. 나는 요 몇 주간 무슨 드라마 보는 줄 알았어. 맨날 돈 자랑 하고 우리 무시하던 사람들이 픽픽 날아갔잖아.”
몇몇 재벌이 젊은 아이돌 가수들을 별장에 불러 논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개중에는 두둑한 후원금을 받고 돌아온 사람도 있는 반면, 못 볼 꼴 다 보고 몸과 마음에 상처 입은 채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재벌에 남녀 없듯이 불려가는 가수 또한 남녀가 없었다.
다민 역시 몇 번인가 가벼운 공연을 간 적이 있다.
다행히 갈 때마다 공연만 하고 돌아왔지만.
“나는 돈에 도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줄 알았어. 아니, 도전은 해도 성공하는 사람은 없을 줄 알았어. 드라마하고 현실은 다르잖아. 그런데 그 사람은 진짜 해냈다고! 나중에 국세청에 가면 또 누굴 칠지 몰라! 너무 대단하지 않니?”
다민은 빈약한 어휘력을 총동원해 자신이 느낀 감상을 표현했다.
그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나쁜 놈들을 꿋꿋하게 쳐부숴 냈다.
그녀의 눈에는 동경과 희망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매니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허겁지겁 입을 막았다.
“누나! 밖에서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돼요! 누가 찍기라도 하면 어째요!”
“헙! 아, 미안. 내가 생각 없이 말해서.”
다민과 매니저는 얼른 서울청 내부로 들어갔다.
이미 카메라는 미리 와서 세팅하고 있었고 공공기관 특유의 딱딱한 디자인으로 ‘모범납세자 표창식’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오늘도 꽤 재미없겠군, 하며 다민이 준비된 앞줄에 앉자 슬금슬금 다른 표창자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민의 얼굴에 대외용 미소가 피었다.
“자리를 빛내 주신 내빈 여러분, 그리고 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곧 표창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공무원이 나와 따분한 예고를 날렸다.
‘청장이 누구더라? 은근슬쩍 어깨에 손 안 올렸으면 좋겠네.’
고위공무원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았다.
상하관계가 뚜렷한 정부 기관은 직급이 모든 것이었기 때문에 상급자일수록 권한이 집중되니까.
자기의 힘이 최고인 줄 아는 우물 안 개구리가 많은 것이다.
“청장님 입장하십니다.”
강당의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하나같이 온몸에 공무원이라는 티를 내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영업용으로 은은한 미소를 짓던 다민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어엇!”
다민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가장 앞에 선 것은 청장으로 보이는 50대 남자였지만, 그 바로 뒤에 자리한 것은 의외로 20대의 청년이었다.
다민이 그토록 보고 싶다고 난리 쳤던 사람이기도 했다.
다민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대외용으로 은은하게 짓던 것과는 다른 진심이 담긴 미소였다.
“와! 진짜 신재현이다!”
함께 있던 다른 모범 납세자들도 벌떡 일어나서 신재현의 이름을 외쳤다.
누가 연예인이고 누가 일반인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다민은 자신에게 향하던 시선이 신재현에게로 쏠렸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도 일반인이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두근두근했으니까.
다민은 그가 바로 옆 통로를 지나갈 때 손을 뻗었다.
연예인이 지나갈 때 팬들이 흔히 하는 방식이다.
신재현은 통로에 불쑥 튀어나온 손바닥을 보고 당황하더니 그 손의 주인인 다민을 보았다.
눈이 마주친 다민이 싱긋 웃자 신재현이 주춤하며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 어색함마저 풋풋하고 좋았다.
“꺄아!”
다민은 소녀처럼 웃었다.
자신의 아이돌을 만난 기분이었다.
표창식을 진행할 주요 인물들이 들어와 연단으로 올라가고 내빈이 자리에 앉았다.
다민을 주의 깊게 보고 있던 매니저가 부리나케 문자를 넣었다.
[누나! 뒤에 카메라 있어요! 너무 티 내면 안 돼요!]
연예인은 소문 한 방에 치명상이다.
설령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공무원과 분위기만 조성한다 해도.
문자에서 매니저의 걱정이 절절하게 느껴졌지만, 다민은 조용히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드디어 만났다.
상대는 연예인까지는 아니지만 사적으로 접촉할 수 없는 사람이다.
물론 조사 대상이 되면 만날 수야 있겠지만 동경하는 사람을 그런 방식으로 접할 순 없지.
다민은 연단 위의 신재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뜨거운 눈빛을 보내서인지 신재현이 은근슬쩍 고개를 돌렸다.
행사가 시작되고 청장의 덕담이 이어졌지만 다민의 눈길은 신재현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신재현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렸다.
연설하는 청장의 뒷모습을 쳐다봤다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가 손에 들린 종이를 훑었다.
그러나 앞으로 시선을 돌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
청중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레이저와도 같은 열렬한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신재현의 관자놀이에 땀이 한 방울 흘렀다.
“이어서 증명서 수여가 있겠습니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왔다.
표창을 받을 사람들은 천천히 연단 위로 올라가서 일렬로 섰다.
약 서른 명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그중에서도 다민이 중앙에 서서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연예인인 다민 입장에서도 국세청 입장에서도 이미지를 올리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다민이 표창을 받기 위해 앞으로 한발 나섰을 때, 청장이 희미하게 웃더니 오히려 뒤로 물러섰다.
다민이 의아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순간, 카메라를 피해 연단 한쪽에 비켜서 있던 신재현이 쑤욱 앞으로 나왔다.
청장이 슬며시 웃으며 신재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민을 보며 신재현에게 뭐라 중얼거렸는데, 이상하게도 기분 나쁜 눈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재현이 기겁하며 시선을 피했는데 그것이 더 재밌어서 다민은 후후 웃었다.
이윽고 신재현이 예쁘게 포장된 증명서를 공손히 내밀었다.
뭐라 덕담을 하며 주어야 하는데 신재현은 그 말을 고민하는지 증명서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들고 다민을 마주 보았다.
연예인은 자신인데, 오히려 눈이 마주친 순간 찌릿하고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끼아, 하고 다시 소리 지를 뻔한 것을 가까스로 눌러 참았다.
신재현은 탈세범을 쫓을 때처럼 진지한 얼굴로 다민의 손에 증명서를 꼭 쥐여 주었다.
“아까 저희 청장님이 납세는 국민의 의무라고 강조하셨는데요.”
“네, 네!”
사실 청장의 훈화는 듣지도 않았지만 다민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세금을 내는 건 당연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금 안 내는 게 현명하다는 그런 풍조가 있잖아요. 탈세해도 문제없다, 그런 인식도 있고.”
순간 세금 다 낸다고 놀리던 동료 가수들이 생각나 다민의 얼굴에 우울함이 스쳤다.
신재현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 당연한 걸 당연하게 해내는 납세자분들이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매일을 살아가시면서 편법에 손대지 않고 묵묵하게 살아 가시는 분들이요.”
신재현은 다민과 그 뒤의 납세자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성실납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존경합니다.”
그동안 동료 가수들에게 호구라고 구박받은 서운함이 한 번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글썽거리는 눈으로 신재현을 바라보던 다민이 두 손을 불끈 쥐며 속으로 외쳤다.
‘꼬박꼬박 세금 내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