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하는 것이
“이제 와서 뭐 어쩌라고. 감정팔이라도 해 보게?”
신우현이 납골당 간판 아래에 침을 뱉었다.
“아버지 사진 보면 내가 울면서 참회할 줄 알았어? 전혀 아니거든.”
“알아. 그럴 놈이었으면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도 전화를 끊어버리진 않았겠지.”
신재현은 성큼성큼 신우현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 올렸다.
신우현의 지친 얼굴이 움찔했다.
“뭐야, 한 대 치게? 공무원이 그래도 되나?”
신재현은 말없이 신우현의 멱살을 잡았다.
비싼 정장과 넥타이가 손가락 모양대로 구겨졌다.
신재현이 우악스럽게 납골당 입구로 신우현을 끌고 갔다.
“하, 진짜 어이없는 놈이네.”
반항을 시도했지만 아침부터 질질 끌려 다닌 터라 꽉 쥔 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파트처럼 빼곡하게 늘어선 유리장 안에 흰색의 유골함이 가득 차 있었다.
신재현은 그중 통로에 가까운 곳에 멈춰 섰다.
“아래에서 세 번째, 아버지다.”
신우현은 흘끔 유리장을 내려다보았다.
납골당은 안쪽으로 갈수록, 가운데층일수록 비싸다.
그러니 지금 아버지의 유골함이 모셔져 있는 이 위치는 이 중에서도 싼 곳이었다.
“이거 봐. 역시 내가 맞다니까. 죽어서도 돈으로 사람의 위치가 갈리잖아.”
신우현은 피식 웃었다.
정신이 멍한 지금도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살아서도 돈으로 사람의 신분이 결정되는데, 죽어서도 겨우 돈 몇 푼이 없어서 남들 발에 차이는 낮은 자리에 들어가 있다.
“너 그렇게 떠나고 나서도 아버지는 널 탓하지 않았어. 가난을 물려준 게 죄라고 생각하셨지. 그래도 부모니까 자식 앞길은 축복해주고 싶어 했거든. 결혼식장에 몰래 가서 맨 뒤에서 얼굴만 보고 나올 생각이었어.”
“꼴에 아버지라고 결혼식장에도 왔었냐? 얼굴 비추지 말라니까.”
신우현이 내뱉는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재현은 담담하게 지난날들을 반추했다.
이미 신우현의 말로 상처를 입기엔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다.
신재현의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동화라도 들려주는 듯한 어조였다.
“비싼 건 못 입더라도 최소한 예의만 갖추자. 혹시라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너한테 피해가 가니까. 그래서 겨우 정장 한 벌 맞추려고 그렇게 일을 하셨다.”
“그래서 누구한테 들켰어?”
“못 갔어, 결혼식장.”
“왜? 돈이 없어서?”
신우현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렸다.
결혼 전후로 뭔가 전화가 많이 왔던 것 같은데, 일부러 받지 않았다.
결혼식에 찾아오는 것도 싫었고 이제 완전히 자신은 상류층이 되리라 맹세했으니까.
나중에 한참 지나서야 신재현에게서 아버지의 장례가 끝났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그 역시 받자마자 지워 버렸다.
신우현은 아버지 기일이 언제인지조차 몰랐다.
“결혼식 2주 전에 돌아가셨거든. 졸음운전이었어. 한 달 내내 하루 4시간 자면서 용달차 몰았거든.”
“…….”
순간 신우현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내용도 내용이었거니와 그것을 풀어내는 신재현의 옆모습이 어쩐지 무서워졌기 때문이었다.
옛날 신우현이 집을 나올 때 불같이 화를 내며 주먹질을 날렸던 때처럼, 그렇게 따지고 들 줄 알았다.
이렇게 차갑고 잔잔하게 화낼 줄 아는 놈이었나?
신우현은 처음 보는 동생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얼음 바닥 밑에 용암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얼음이 점점 녹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지는 공포를 부른다.
그러나 신재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도 덩달아 병이 악화되고. 그래도 부모님은 널 원망하지 않았어. 네가 뭔 짓을 하든 부모님은 널 받아들였을 거다. 다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지. 먼저 가셨으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여기서 무릎 꿇고 빌라고?”
“지금은 닥치고 들어. 네 생각이나 행동 따윈 아무 상관 없어. 뉘우치지 않을 놈이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신재현은 아버지의 죽음을 말로 털어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으니까.
지금 이 순간만 해도 눈앞의 이놈을 찢어 죽이고 싶어지니까.
지금까지는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뚜껑을 덮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안에서 썩고 곪은 감정은 이윽고 때가 되자 넘쳐흘렀다.
신재현은 신우현의 무릎 뒤를 가볍게 찼다.
“악! 이 새끼가!”
부지불식간에 무릎을 꿇은 신우현이 일어서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신재현이 옆에 같이 꿇어앉더니 뒤통수를 눌러 신우현의 머리를 유리장에 들이댔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신재현은 그르렁거리듯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눈동자에 어느덧 물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지금 네 꼬라지를 봐. 너는 유일하면서도 무한한 사랑을 버려서 네 행복을 얻으려 했어. 그래서 너는 행복해졌어? 등가교환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너는 너만의 행복을 찾았나?”
“나는 성공했고 앞으로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었어. 너만 아니면! 네가 발목을 잡았잖아!”
신우현이 쉰 목소리로 악을 썼다.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의 삶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은 무너지게 된다.
신우현은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신재현은 쉽사리 멱살을 놔주지 않았다.
억지로 떼려 해도 불가능했다.
신재현은 손등에 핏줄이 서고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
“원래는 어머니 앞에 끌고 가려고 했는데 그랬다간 어머니가 놀라서 쓰러질 것 같더라고. 너 같은 놈은 그럴 가치도 없는데. 그렇지?”
“네가 뭔데 가치를 정해? 차라리 복수라고 말해! 사적인 감정이라고 말하라고!”
“누가 부인한 적 있나? 아까부터 말했잖아. 공무는 아까 끝났고 이건 내 사적인 일이라고.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뉘우치지 않을 거잖아.”
“내가? 뉘우치긴 뭘 뉘우쳐? 난 잘못한 게 없는데!”
“그래, 그래서 끌고 온 거야. 말과 위로로 널 설득할 시점은 지났어. 사과하지 마. 용서 안 할 거니까.”
누르고 숨겨 온 감정은 한 번 넘치자 제어가 되지 않았다.
그간 얼음처럼 유지하고 있던 평정은 들끓는 감정이 솟구치자 순식간에 녹아 흘렀다.
소리 없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방울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신재현은 진심으로 물었다.
“지산은 네 행복의 보금자리가 되었나? 아내는 진심으로 사랑해? 장인과 처형은? 그들은 널 받아줬어?”
일어나려는 신우현과 뒤통수를 붙잡은 신재현 사이에 힘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신우현은 힘으로 신재현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신우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개새끼야, 다 알면서 묻지 마! 가족? 네 눈깔엔 그게 가족으로 보이냐?”
신우현 역시 감정이 북받친 상태였다.
서민의 피를 쫙 빼라, 그것은 곧 신우현에게도 모욕이었다.
같은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눴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자리에 앉았다는 느낌은 든 적이 없었다.
신우현 역시 감정을 쏟아냈다.
“사랑은 애초에 없었어!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으니까! 위로 올라갈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가장 쉬운 수단으로 사랑을 택했을 뿐이야. 집?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또 다른 직장의 시작일 뿐이지. 나도 노력을 했다고!”
“일은 어때? 원하던 대로 능력을 인정받고 삶의 가치를 찾았나?”
“그들에게 나는 언제까지나 굴러온 돌이고 손님일 뿐이야.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그래! 난 그렇게 굴욕적으로 살면서도 원하던 상류층이 되지 못했어. 그게 어때서?”
신우현 역시 감춰왔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복도가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재벌가는 다 사랑 없는 결혼을 해. 결혼도 거래의 일종이라고. 그걸 이용해서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어. 지금은 이사지만 머잖아 사장이 될 거고, 내가 야금야금 먹어치울 생각이었다고! 이제 시작인데!”
“좀 솔직해져서 좋네.”
신재현은 진심으로 기쁜 듯이 웃었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소였다.
동생의 부정적인 감정에 환희가 섞여 스멀스멀 신우현의 피부를 타고 돌았다.
소름이 돋았다.
지금 이 순간에 왜 웃는단 말인가.
자신의 불행 고백에 기뻐서?
아니, 무언가 있다.
신우현은 온 힘을 다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꿇어앉았던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비틀었다.
아무리 손에 힘을 주고 있어도 손목이 비틀리면 풀리기 마련이다.
신재현의 힘이 느슨해진 사이 신우현은 겨우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신재현은 저린 손목을 몇 번 돌리더니 섬뜩하게 웃었다.
분명 입가는 웃고 있는데 눈꼬리는 조금도 올라가지 않았다.
대화할수록 점점 자기가 알던 동생이 아닌 것 같아서 신우현은 뒷걸음질 쳤다.
빈 깡통이 요란한 법, 애써 마음을 다잡고 삿대질과 함께 소리쳤다.
“네가 발목을 잡은 거야, 새끼야!”
신재현은 그 말에 더욱 함지박만 하게 웃었다.
“잘됐네. 올라가기 전에 끌어내려서. 나는 네가 평생 후회하길 바랐거든. 이도 저도 아닌 채로, 가족을 버렸지만 그걸 대가로 얻은 건 아무런 가치도 없길 바랐어. 네 인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지길 바랐거든. 내 손이 닿지 못하는 저 위로 가기 전에 잡아채서 정말 다행이다.”
“미친놈…….”
신우현은 질린 듯 중얼거렸다.
자신 때문에 저렇게 변한 것인가, 자신이 저런 괴물을 만들어낸 것인가.
손끝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신우현은 동요를 들키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눈앞에 있는 건 그저 동생이다.
자신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따르던 동생.
국세청의 이단아, 저승사자, 눈 없는 칼날, 세무조사의 사신.
저놈의 행적을 본 수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불길한 별명을 붙여줬지만 그뿐.
신우현에게는 한낱 동생이어야 한다!
“나 신우현이야. 이대로 안 끝나. 지서연은 날 못 버리거든. 사랑을 팔아서라도 난 다시 올라갈 거야. 지서연만 있으면 나도 재벌가에 속한 몸이니까 조용해지면 언제든 복귀할 수 있어!”
“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신재현은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허리까지 접어가며 웃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떨궈가면서.
“지금은 네가 이겼지만 어디 나중에 보자고. 그땐 내가 네 발목을 잡고 끌어내릴 테니까.”
“가능할지 모르겠네. 난 절대 네가 올라오지 못하게 할 건데.”
신재현이 터벅터벅 다가왔다.
또 멱살을 잡으려나 싶어 경계했지만 신재현은 어깨를 두드릴 뿐이었다.
“가족에게 버림받는다는 거. 의외로 자괴감 느껴지고 비참하더라.”
“뭔 소리야!”
신재현은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신우현을 스쳐 지나갔다.
의외로 싱거운 퇴장에 신우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더 있을 것 같았는데 이 정도면 그냥 말싸움과 경고 아닌가.
설마 또 녹음기인가!
신우현이 뒤늦게 신재현을 붙잡으려고 했을 때였다.
신재현이 복도 모퉁이에 서더니 그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말을 걸었다.
“이제는 당신의 선택입니다.”
단 한마디를 남긴 신재현은 미련 없다는 듯 납골당을 나갔다.
‘뭐지? 누구지? 기자인가? 검사?’
신우현의 뇌가 터질 듯 돌아갔다.
도저히 확인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누구야! 나와!”
신우현의 외침에 주저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구두 소리였다.
-또각,
“당신이 왜 여깄어……?”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자, 지서연은 입술을 꾹 깨물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챙 모자로 가려진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