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원치 않는 선물 (4)
운영지원과 과장이 말한 곳은 어느 한정식 집이었다.
장소 선정을 보아하니 역시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기엔 딱 좋다.
과장의 이름을 대고 안내받아 들어간 곳에는 이미 두 명의 남자가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서울청에서 언뜻 지나가며 본 기억이 난다.
내게 전화를 건 운영지원과 과장이다.
그렇다면 남은 한 명이 문제인데.
나는 과장 앞에 앉은 50대 남자를 살폈다.
50대로 보이는 남자의 머리칼은 희끗희끗하게 새어 있었고, 호리호리했다.
키가 꽤 커 보이는 데다 말라서 그런지 꼿꼿하게 솟은 바늘 같았다.
내가 그렇듯 남자 역시 입구에 가만히 선 나를 관찰했다.
남자는 딱 봐도 높은 직급이겠다 싶은 여유로운 태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흥미로운 눈으로 보고 있다.
내가 방에 들어서고 나서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남자와 과장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이런 뾰족한 인상의 남자는 일찍이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손경진 중부청장님.”
날카롭던 남자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남자는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던 운영지원과 과장에게 무언으로 물었으나 과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 인사를 받은 손경진 중부청장은 건너편 자리에 턱짓했다.
“앉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던 과장이 벌떡 일어났다.
“그럼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나 보다.
과장은 미련 없이 밖으로 나갔고 나는 교체하듯 자리에 앉았다.
이미 상 위에는 밑반찬 수십 가지가 깔려 있었지만 내가 앉은 자리는 매우 깨끗했다.
과장은 술만 마시다 간 듯했다.
“본론은 잠깐 기다려.”
청장의 말에 잠시 가만히 앉아 있자 식당 직원이 주 메뉴를 내오기 시작했다.
김이 올라오는 푹 익은 갈비찜이다.
내 앞의 식기를 새것으로 갈아준 후 직원들이 나가자 손경진 청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배고프니까 일단 먹으면서 들어.”
먹으라는데 불편하다고 깨작거릴 내가 아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청장과 단둘, 그리고 앞에 비싼 한정식이 깔려 있는 것 빼고는 굉장히 평범한 상사와의 식사였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내 상사들의 적이라는 사실만 빼면.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흑미밥 위에 양념이 잘 배어든 갈비찜 덩어리 하나를 얹었다.
밥 한 숟갈에 고기, 그리고 갓김치까지 얹어 한입에 넣고 나자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조용히 식사가 이어지자 그야말로 시시콜콜한 사담이라도 하는 듯 청장이 말을 걸었다.
“놀라지 않는군. 예상했나?”
“정확히 청장님이실 거라 예상한 건 아닙니다.”
“그럼 누굴 생각했는데?”
나름 중요한 이야기였고, 서로를 시험하는 탐색전이었지만 둘 다 식사를 멈추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자존심 싸움이자 보여주기였다.
겨우 전초전에 불과한 대화에서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에게 선물을 보낸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죠.”
청장은 조기 살을 발라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선물이라 생각한 이유는 뭐지?”
“제가 원하는 정보, 알맞은 타이밍, 잘 손질된 자료까지. 너무 먹기 좋았습니다. 크기를 봤을 때 먹다 체하지도 않을 만큼 너무 적절했어요. 뭐 그것까지는 그냥 의심이었는데 여기 와서 청장님을 뵌 순간 확신이 됐습니다.”
“내 존재 자체로 확신이 된다는 말인가? 어째서.”
청장은 질문 끝의 어조를 내리는 버릇을 갖고 있었다.
“청장님이 지산을 적대하실 이유가 없으니까요.”
“너무 단언하는 것 같은데. 내가 지산을 치고 싶을 수도 있지.”
“국세청장 후계를 정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요? 청장님이 아무리 도전정신이 강한 사람이라 해도 가만히 있는 사자의 꼬리를 물어뜯을 리 없습니다. 아, 함정은 가능하겠군요. 제게 지산을 파도록 하고 그쪽으로 시선이 쏠리도록.”
“그럼 함정 같은가.”
“아니요. 지금 생각해도 선물이 맞습니다. 함정이라기엔 지나치게 친절해요. 그리고 저는 서울청에서 일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민치호 국장님의 사람입니다. 저를 함정에 빠뜨려서 얻을 것이 뭐가 있습니까? 민치호 국장님의 불신? 아, 이 집 겉절이 맛있네요.”
“이 집이 김치는 다 잘해. 동치미도 맛있어.”
청장의 추천대로 분홍색으로 물든 동치미 국물을 떠먹었다.
시원한 맛이 입안의 기름기를 씻어냈다.
내가 국물 맛에 감탄하자 청장은 만족한 듯 말을 이었다.
“신 팀장이 알다시피 국세청 판도는 아주 단순해졌어. 민치호 국장의 선택에 모든 게 달렸지. 전혀 바라지 않은 상황인데. 나는 내가 주도권을 쥐는 걸 좋아하거든.”
이야기 중에도 식사는 계속되었다.
밥상머리에서 하기에는 조금 무거운 대화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는 그를 알아보기에 좋은 기회였다.
서울청장 밑에서 일하며 그를 파악했지만 중부청장은 만날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민 국장의 뛰어남을 인정하고 그 규칙에서 움직일 수밖에.”
“위에서 어떤 견제가 오고 가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만, 제게 보낸 선물이 민 국장님의 환심을 사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목적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협상을 하든 협박을 하든 제안을 하러 왔으면 솔직하게 털어놓아라.
그런 뜻으로 던진 말이었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은 민 국장 이후로 처음인데. 그 상사에 그 부하인가.”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내 직속 상사도 아니고 적일지 아군일지 명확하게 밝힌 사람도 아닌데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청장의 말에 어물쩍 넘어가자 청장이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솔직하게 말하라고 너무 압박을 주는 것 아닌가. 이래 보여도 청장인데.”
“민치호 국장님과 있을 땐 항상 이런 식으로 말해서요. 불쾌하시다면 시정하겠습니다.”
“뭐, 됐어. 내 부하도 아닌데 나한테 맞춰서 뭐하겠나. 원하는 대로 말해주지. 신 팀장에게 보낸 선물이 맞네. 어떤가. 쓸 만했나?”
“예.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꽤 오래 절 지켜 봐왔다 싶을 정도로 제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곤란합니다.”
“내가 대가를 달라고 할까 봐?”
“보통 이런 경우 제안은 한 가지입니다. 나와 손을 잡아라. 하지만 저는 민 국장님과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어서요.”
“하, 아하하!”
청장이 소리 높여 웃었다.
잘 웃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웃으니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했다.
“고백하기도 전에 차는 놈은 처음이네. 그렇게 고백을 많이 받아봤나?”
“예. 저는 사람을 갈아타지 않는다고 티를 내고 다닌 것 같은데, 그런 제안이 꽤 많이 오네요.”
“그래, 올 만하지. 올 만해.”
청장이 끅끅대더니 혼자 술잔을 채워 연거푸 석 잔을 들이켰다.
내가 잔을 채워줄 틈도 없었다.
당황해서 젓가락을 든 채 망설이고 있자니 청장이 내 잔을 채웠다.
아니, 나도 술 달라는 뜻이 아니었는데.
어찌 되었든 받았으니 마시고 나자 청장이 툭 던지듯 말했다.
“오낙현 그놈과 나, 둘 중 하나가 차기 국세청장이 되고 나면 나머지 하나는 끝장날 거야. 둘의 세력이 비등한데 나 같으면 절대 오낙현을 가만 안 둬. 오낙현도 나랑 마찬가지일 테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두 분 중 한 분이 수장이 되고 나시면, 서로 도와 국세청을 이끌다 또 다음 청장 자리를 두고 경쟁하시면 되잖습니까.”
“그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겠지만 현실은 반대야. 우린 너무 오래 싸워왔어. 내 세력을 깎아내고 서로 피를 흘리고 너무 먼 길을 왔단 말이지. 싸움에 지고 승자의 손을 잡는 그런 전개는 정치판에서는 불가능해. 둘 중 하나가 이기면 이긴 놈은 진 놈을 쳐내려 할 거고, 진 놈은 이긴 놈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할 거다.”
어느 순간 싸움의 목적을 잊었다, 희생한 것이 너무 많아 돌이킬 수도 없다.
중부청장은 스스로 술잔을 채우며 그렇게 말했다.
“신 팀장에게 보낸 것은 내 증명이었어. 민치호는 신 팀장을 무척 아끼고 있어. 신 팀장이 둘 중 누군가를 선택하라고 진언한다면 그대로 따를 정도로 말이지.”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나를 아무리 중요하게 생각한다 해도 나는 정치에 문외한이며 이 둘을 모른다.
오랜 시간 두 청장을 지켜봐 온 민치호가 내 선택을 따른다고?
“믿지 못하는 표정이군. 그럼 그 얘긴 제쳐 두도록 하지. 굳이 납득시킬 필요는 없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그동안 봐 온 서울청장은 어떻던가? 상사로 모실 만했나?”
섣불리 대답할 필요는 없다.
내 입에서 나간 모든 단어는 훗날 날 공격할 비수가 되어 돌아올 테니까.
아무리 사석이라 해도 말실수는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순간 스치는 표정까지 어쩌진 못했다.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지? 신중하고 약았고 자기 보신에 치중하는 놈이거든.”
청장의 평가는 적나라했다.
물론 나도 오낙현 서울청장한테 실망한 점은 있다.
대표적인 예가 김상민 조사2국장의 일탈을 조용히 덮으려 했던 것이다.
일을 크게 만들지 않으려는 서울청장의 심정은 이해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상사는 아니었다.
그것을 생각하니 슬쩍 불만이 얼굴에 비쳤던 건데 중부청장이 재빠르게 잡아낸 것이다.
“지금 모시고 있는 분이니 딱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 태도는 마음에 드는군. 그럼 듣기만 해. 서울청장과 나, 둘 중에 나를 선택해. 나는 신 팀장을 도와줄 수 있어. 지산을 치고 싶으면 그렇게 하게 해 줄 거고 필요한 자료도 줄 거야.”
중부청장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신 팀장이 내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 민 국장을 배신할 필요가 없는 거지.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 국세청장 자리야.”
굉장히 좋은 조건이었다.
지산이라는 대기업을 치는데 돕겠다는 걸 보면 아예 작정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날 밀어주는 국세청장이라.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이 느껴졌다.
“서울청장이 지금 실적을 올리고야 있지만, 그건 다 신 팀장 덕분이지. 오낙현은 운이 좋았을 뿐이야. 신 팀장이 서울청에 갔을 뿐이고, 거기에 오낙현이 있었을 뿐이니까.”
그것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결정할 일도 아니거니와 중부청장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보이는 중부청장의 첫인상은 날카롭지만 저돌적이고 야망이 크다.
이것이 불호의 요소는 아니다.
오히려 내게는 이렇게 대놓고 말해주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어딘가 꺼림칙함이 느껴졌다.
“선택하기 어렵다면 내가 또 하나 증명을 해 주지.”
또 무언가 정보를 주려는 건가 싶어 귀를 쫑긋 세웠다.
“요즘 신문에서는 소소한 얘깃거리로 특수조사 1팀과 2팀을 라이벌 관계로 그리는 일이 많더군.”
이름부터가 똑같은 특수조사팀이고 선례 없이 서울청장의 권한으로 만들어진 TF팀이다.
언론에서 딱 좋아하는 구도라서 그런지 자주 언급되기도 했다.
혹시 우리 팀을 앞서나가게 해주겠다는 건가?
그러나 중부청장의 대답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권현아 팀장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어주지.”
“…….”
나는 올갱이 미역국을 뜨던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