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81화 (181/500)

181화. 원치 않는 선물 (2)

우리 특수조사 2팀이 지산 바이오에 대해 파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을 때의 일이다.

“지산 바이오는 이름만 지산이고 사실상 독립된 회사네요. 지산 총수 일가의 지분은 없어요.”

“우리가 모르는 거지 아마 뒤에서는 이러저러하게 다 연결해 놨을 겁니다.”

“지산 그룹은 구조가 되게 복잡하네요. 이상하게 얽혀 있어서 쫓아가기도 어려워요.”

“그룹 전체 말고 지산 바이오라는 회사 자체에만 집중합시다.”

혼란스러워 하는 팀원들을 다독여 방향을 잡아 주자마자 팀원들이 소리쳤다.

“팀장님, 이 회사 이상한데요.”

“저도 이상한 거 찾았어요!”

“어, 저도…….”

사방에서 손을 들고 나를 찾아댔다.

파면 팔수록 감탄스러웠다.

과연 대기업의 스케일은 차원이 달랐다.

금액이 크다거나 수법이 교묘하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손대는 족족 뭐가 하나씩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퇴직금을 보자.

퇴직금과 관련된 것 중에 퇴직급여추계액이라는 것이 있다.

회사에 비상사태가 발생해서 당장 모든 임직원이 실직하게 된다고 가정하고 퇴직금을 얼마 줘야 하는지 계산한 것이다.

그 금액은 퇴직급여충당금이란 이름으로 부채에 계상한다.

‘이 회사는 근로자가 챙겨가야 할 퇴직금이 이만큼 있습니다, 투자하실 때 참고하세요.’라는 뜻이다.

순자산은 자산 빼기 부채이니 퇴직급여충당금은 자연히 순자산을 줄인다.

덩치를 부풀려 보이고 싶은 기업 입장에서는 없애 버리고 싶은 항목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산 바이오에서는 어떻게 했나 봤더니, 대부분의 직원들이 월급을 들쑥날쑥하게 받고 있었다.

상여나 수당 없이 단순 계산해서 월급이 250만 원이면 연봉은 3천만 원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상반기에는 월 300만 원씩 주고 하반기에는 월 200만 원씩 주는 방법을 취했다.

물론 이렇게 대놓고는 아니고 은근슬쩍 금액을 흩트려 놓긴 했다.

인센티브와 상여금을 건드려가면서.

문제는 이런 경우 퇴직금이 줄어든다.

퇴직금은 최근 3개월간 월급의 평균으로 계산하니까.

“와, 부채 줄여 보겠답시고 이런 수고도 하네.”

“이거 이런다고 부채 얼마나 줄일 수 있어요?”

“회사 자산총액 자체가 크지 않으니까 비율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한 거지, 뭐. 여기서 조금 줄이고 저기서 조금 줄이고.”

“이거 근데 꼼수긴 해도 불법은 아니잖아요. 우리가 어떻게 할 순 없죠?”

“그러게요. 상장회사라 회계감사 받을 테니 이런 짓거리는 없을 줄 알았는데.”

팀원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사소하게 이런 식의 꼼수가 많았다.

“잘 알고서 하는 짓이네요.”

“그렇다고 교묘하게 잘 가린 것도 아니에요. 적당히 안 걸릴 만큼만 수고를 들였어요.”

도덕성은 문제 될지 몰라도 대놓고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건 아니더라고요. 세액공제 터니까 탈세가 나오긴 나왔어요. 계정별 원장 제출해 달라고 하면 더 나올걸요.”

황민우가 내게 정리한 것을 내밀었다.

역시 털면 나오기 마련이었다.

“연구인력 개발비 세액공제랑 투자세액공제군요.”

연구가 주 사업인 회사이니만큼 당연히 연구와 투자에 관한 세액공제가 있었다.

세액공제 금액이 커서 조건이 복잡한데, 좀 애매한 것을 슬쩍 끼워 넣었나 보다.

“평범하네요.”

너무 평범해서 문제였다.

여느 회사와 비교해도 특출 난 것 없는 탈세다.

굳이 나에게 조사해 보라고 갖다 준 이유가 있을 텐데.

“뭔가 더 있을 텐데 안 보이네요.”

“좀 더 불법적인 거라면 돈세탁, 비자금 조성, 주가 조작…….”

“돈세탁이라기엔 돈이 오고 간 규모가 작습니다. 비자금도 마찬가지구요.”

“그럼 주가 조작일까요?”

나는 주식 차트를 켰다.

몇 년 되지 않은 신생 회사라 주식 값은 몇 만 원 선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자산 규모로 보나 연혁으로 보나 주가가 꽤 높게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산의 이름값 때문인가?

주가의 검색 기간을 1년, 그리고 3년으로 늘렸다.

약간의 로딩 끝에 나온 그래프가 물결치고 있었다.

“어우, 저는 주식 봐도 모르는데.”

“올라갔다 내려갔다 평범해 보이네요.”

나도 주식은 안 해 봐서 잘 모른다.

그런데 몇 군데 우뚝 치솟았다가 뚝 떨어진 곳이 보였다.

“원래 주식이 이렇게 요동치나요?”

“뭔가 발표하면 오르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떨어지고 그럴걸요.”

그렇다고 보기엔 상승과 하락이 기묘하게 닮아 있었다.

낮은 가격대에서 조금씩 오르다가 갑자기 확 뛰어 오른다.

그리고 며칠 안 되어 예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확 떨어졌다.

3년 치를 한꺼번에 띄워 놓고 보니 딱 세 번, 일정 주기로 그런 일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심전도 그래프 같았다.

“이거 규칙적이잖아요. 패턴 아니에요?”

“그렇게 보니 그렇네요. 뭐야, 진짜 주가 조작인가?”

“근데 주가 조작은 큰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거잖아요. 이 정도 폭이면 큰돈을 벌 수 있나요?”

“점점 폭이 커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게 정말 패턴이라면 곧 주기가 돌아와요.”

약 1년에 한 번, 주가는 요동쳤다.

그리고 확 뛰어오르기 전, 잔잔하게 조금씩 오르는 것이 전조라면 지금 이미 그것이 나타나고 있었다.

“애매하네요…… 탈세도 아니고 주가면 어디다 물어봐야 하는 거지? 금감원에 아는 사람 있는 분?”

“에이, 금감원 사람을 어떻게 알고 지내요.”

팀원들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문득 누군가가 떠올랐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나학진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님, 증권가에 찌라시 돈다고 하잖아요. 그거 사실인가요?”

-네. 걔네는 정보로 먹고 사는 애들이니까요. 돈 되는 정보는 다 돌죠.

“그럼 혹시 요즘에 지산 바이오 관련해서 뭔가 도는 얘기 없나요?”

-지산 바이오 말씀이시죠? 잠시 후 전화 드리겠습니다.

나학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던 답이 돌아왔다.

-지산 바이오에서 조만간 뭔가를 터뜨린다는 말이 있네요. 근데 이게 이상해요.

“여의도에서 나온 거 아닙니까?”

-여의도는 여의도인데 증권가가 아니라 정치권 쪽에서 나왔습니다. 한 의원이 술자리에서 슬쩍 기자에게 흘린 얘기래요. 지산 바이오 주식 당장 사라고.

여의도에는 증권가가 모여 있지만 반대로 국회의사당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나학진의 말이 내 의심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증권가에서 주식에 대한 정보가 도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얘기가 나오는 것은 상황이 다르다.

“뭐가 있다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자 팀원들이 물었다.

“진짜 주가 조작이에요?”

“근데 팀장님 생각이 맞다면 이거 지금 작업 치는 거잖아요. 막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거래 정지 같은 거 못 하나?”

“명확한 증거가 없잖아. 뭘 근거로 거래 정지를 요청해?”

“지금이라도 금감원이나 증권거래소에 연락해서 조사해 달라고 하면 되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다른 사람들이 소문 듣고 사기 전에 막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럼 우리가 얘기하는 동안에도 사는 사람은 늘어날 텐데. 일단 못 사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당장 사람들이 이 주식을 못 사게 할 방법은 있어요. 그렇게 해도 되냐가 문제죠.”

나는 실제 그들의 계획을 자세하게 아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내 행동으로 주가가 떨어져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본다면?

실제로 주가 조작은 없었다면?

다시 한번 자세히 보자.

정말 주가 조작이 맞는 것일까?

내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기묘하게 반복되는 패턴의 주가 그래프와 나학진이 물어다 준 소문.

좀 더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나는 지산 바이오의 최근 3년간 주식 변동 상황 명세서를 열었다.

“지금 당장 이것부터 하죠. 주식 변동 상황 명세서에 있는 주주 주민등록번호를 검색해서 양도소득이 얼마 있었는지 확인해 주세요. 그거랑 그래프랑 비교해 보죠.”

그리고 지루한 작업 끝에 나는 이들이 노린 것이 ‘주가 상승’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가 상승이 아니라 주가 하락을 노린 거였어요! 파생상품! 빨리 금감원에 연락 넣어 주세요! 증권거래소에도 연락하시고, 내일 바로 세무조사 나갈 준비 해 주세요!”

“네!”

시간이 없다.

나는 바로 나학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님, 지금 당장 소문이 퍼져야 하는데 가능합니까?”

-어디에 퍼지길 원하십니까?

“증권가에요. 오늘 내로 ‘신재현이 지산 바이오에 의혹을 품었다. 세무조사하러 간다.’는 소문이 퍼졌으면 합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나학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까 전화했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맡겨만 주세요.

나학진의 믿음직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믿고 맡겨도 된다.

“개새끼들. 오르면 파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떨어지는 데다 배팅을 해?”

제발 더 이상 지산 바이오의 주식을 사는 사람이 없기를.

나는 간절하게 빌었다.

***

신재현이 쳐들어온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사장이 쉬쉬하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하루도 안 되어 지산 바이오의 모든 임직원이 다 알 정도로 소문은 빨랐다.

아무리 회사의 존망이 달린 일이라고 해도 이례 없는 속도라서 누군가 개입했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사장은 일부러 연구실과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세무조사는 원래 예고 없이 하는 거잖습니까. 예고할 거면 사전통지서가 먼저 왔겠지요. 그러니 소문은 외부의 누군가가 작전을 치는 겁니다! 속지 마십시오!”

“옳습니다! 조사 대상에 대한 얘기 흘렸다가 잡혀간 조사국장 모릅니까? 우리 회사는 안전합니다!”

사장과 이사가 부리나케 불을 끄러 다녔지만 그 고생은 소용없는 짓이었다.

예고한 대로 신재현이 지산 바이오에 찾아왔다.

평소 세무조사 하던 때처럼 얌전히 온 것도 아니었다.

신재현은 회사 입구에서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열어젖혔다.

직원들의 시선이 한눈에 모이더니 그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이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신재현은 직원들의 얼굴을 스윽 훑어보더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소리쳤다.

“임성민 사장니이이임!!! 당장 나오세요!”

신재현의 목소리가 복도에 왕왕 울렸다.

어지간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신재현이 그냥 들어와도 겁에 질려서 도망갈 판인데, 분노한 신재현이라니.

직원들은 그의 시선에 서는 것조차 피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직원들이 얼굴만 내밀었다.

복도에 불편한 침묵이 감돌자 신재현이 다시 소리쳤다.

“주가 조작한 거 다 알고 왔으니까 다 엎어버리기 전에 나오라고!!!”

직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우리 회사가 주가조작이라고?”

“사장님이? 와, 미쳤는데.”

“신재현 개빡돌았다. 얼굴 봐라.”

“아오 씨, 눈에서 레이저 나오잖아! 누가 좀 가서 응대 해봐!”

“네가 가 미친놈아! 왜 사지로 떠밀어!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냐?”

그 많던 직원들이 로비와 복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서슬 퍼런 눈길에 그 누구도 안내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신재현은 로비에서 다시 외쳤다.

“사장님! 임성민 사장님! 완만하게 유지되다가 사장님의 신기술 발표가 나온 후로 주가가 상한가에 가깝게 치솟고, 약 일주일 후 은근슬쩍 그에 반발하는 기사가 나오면서 하한가를 치던데요! 사장님!!!”

안 나오면 이 자리에서 다 까발려 버리겠다는 기세였다.

신재현은 거리낌 없이 이어서 외쳤다.

“이상하게도 이때 큰돈을 번 사람들이 몇 있었습니다! 다들 오르는 걸 목표로 사는데, 마치 떨어질 걸 알면서 사는 것처럼요! 사장님! 듣고 계십니까! 제가 뭘 더 말해드리면 나오시겠습니까! 조사한 거 아예 여기서 다 말해 볼까요!!!”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린 신재현의 목소리가 사그라지기도 전에, 복도 저 너머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발소리가 우당탕탕 났다.

“아닙니다, 조사관님! 저 여기 왔습니다! 저, 저랑 말씀하십시오! 허억허억!”

어찌나 급한지 사장은 복도를 달려오다 넘어졌다.

무릎을 문지르면서도 사장은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신재현 앞에 선 사장과 그 뒤에 따라 온 이사는 눈을 마주치고는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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