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80화 (180/500)

180화. 원치 않는 선물(1)

“팀장님, 권 팀장님!”

나는 1팀 사무실을 문을 부리나케 두들겼다.

머지않아 사무실 문이 열리고 권현아 팀장이 나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하게 오세요?”

권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다.

그 반응을 보자마자 나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팀장님, 이 서류 왜 절 주셨습니까?”

“아, 그 서류요? 저도 받은 거예요.”

“어디서요?”

“출근하는 길에 세무서 사람이 주던데요. 자기 상사가 시켜서 왔는데 신 팀장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저한테 전달을 부탁하더라고요.”

“누가 줬습니까?”

“모르는 사람이에요. 공무원증을 봐서는 같은 세무공무원이고 정확한 소속은 모르겠네요. 전해 주면 알 거라고 하길래 조사 관련 건인가 보다 했는데요?”

권현아는 오히려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되물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다.

권현아는 중간에 낀 제3자일 뿐이다.

물론 알고서 숨기는 것일 수도 있다지만 내가 아는 권현아는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

떳떳하지 못한 것이 싫어 조사 2국장의 일탈을 내게 말해 준 사람이니까.

“기밀일 거라 생각해서 열어보지 않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던가요?”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내 얼굴이 심각해서인지 권현아는 순순히, 그리고 자세히 대답했다.

“8시 40분쯤에 서울청 밖에서 만났어요. 정확히는 들어오는 골목 쪽에서요. 제 얼굴을 알고 있더라고요. 현재 2팀과 관련 있는 거니까 신재현 팀장만 봐야 한다고 했어요. 직접 전달하라고 했더니 급한 일이 있어서 기다릴 수는 없다고 했고…… 신 팀장이 사무실 자주 비우는 건 저도 아니까 직접 전달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했죠.”

서울청 밖에서 만났다면 청의 CCTV도 소용없을 것이다.

“인상착의는요?”

“그냥 평범한 30대 남자였어요. 딱 봐도 공무원 같은 차림새였고.”

질답이 반복되자 권현아도 이상함을 눈치챈 듯했다.

“제가 전달하지 말았어야 했나요? 뭐가 잘못됐죠?”

“……중요한 서류 맞습니다. 그렇다고 권 팀장님께서 잘못하신 건 아닙니다. 알고 주신 것도 아니잖습니까. 문제가 있다면 권 팀장님의 호의를 이용해서 서류 전달을 부탁한 놈이 문제죠.”

“내용 물어봐도 돼요?”

“지금 뭐라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이것 역시 판도라의 상자거든요.”

그렇게 말하자 권현아는 더 묻지 않았다.

나도 그렇고 권 팀장도 그렇고 특수조사팀이다.

서류 한 장, 문장 한 줄의 위험성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감사의 마음과는 별개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는 것도.

“2팀은 또 고생 시작이네요.”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권현아의 안쓰러운 눈빛을 뒤로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팀원들이 잔뜩 궁금한 얼굴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테이블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봐도 됩니까?”

“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팀원들이 서류를 집어들어 종이를 넘겼다.

그리고 그들 역시 곧 표정이 변해갔다.

“지산 바이오의 회계 부정 및 주가 조작 의혹……?”

“뒷장 보니까 제목만 의혹이지 어느 정도 정리도 되어 있네요.”

“팀장님이 저희한테 비밀로 따로 조사하시던 겁니까?”

“아니요. 저도 방금 받은 겁니다.”

종이를 넘기던 손길이 우뚝 멎었다.

황민우가 심각하게 물었다.

“권 팀장님은 뭐라십니까?”

“자기도 전해 받은 거라 모른답니다.”

“그럼 뭐야, 내부고발자가 몰래 주고 간 건가?”

“제보일까요?”

“신재현이 유명하니까 제보 한 방 들어오면 확실하게 털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팀원들이 한 마디씩 의견을 개진했다.

하지만 제보라고 보기엔 석연찮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나와 내 팀은 유명하다.

일단 청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사무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사무실의 팀원에게 전달하면 되는 것이니 굳이 권현아 팀장을 붙잡을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혹시 신분증을 보이기 싫었던 건가?

제보자는 신분 노출의 위험이 있으니 방문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권 팀장 말로는 세무공무원이랬는데.

“팀장님은 껄끄러우신가 봅니다.”

황민우가 내 기색을 살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그렇네요. 타이밍이 너무 좋아요. 제가 지산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건 사실입니다. 제 사적인 감정이 얽힌 것이기도 하죠. 이건 마치 그걸 알고서 넘긴 것 같아요.”

지산 바이오는 지산 그룹 전체에 비하면 말단 중의 최말단이다.

상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생 회사이고, 주력 제품도 아직 개발 단계에 있어서 특이사항도 없다.

그러나 내게는 큰 힌트였다.

지산은 거대한 만큼 어디서부터 파고들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렵다.

섣불리 파냈다간 감당하기 어려운 산을 만날 수도 있다.

“팀장님은 지산으로 파고들 틈을 원하고 계셨죠.”

내 사정을 알고 있는 황민우가 팀원들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팔다리는 아직 건드리기엔 너무 크죠. 손가락 같은 것을 원했습니다.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것들이요.”

“팀장님이 건드리셨을 때, 출혈을 감수하고 팀장님을 치기보단 차라리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새로 회사를 차릴 만큼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들이요.”

내 말에 의문을 가진 것은 장세훈이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는 알 수 없는 일이잖아. 수십 개나 되는 계열사 중 어느 것이 팔이고 어느 것이 손가락인지는 내부자만 아는 거라고.”

“그래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조금씩 조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왔어요. 제 생각이 맞다면 이건 딱 조건에 들어맞는 회사일 겁니다.”

팀원들이 새삼스럽게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진짜 내부고발자인가?”

“나쁘게 생각하면 저를 이용해 지산 그룹 자체를 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겠죠. 한번 파기 시작하면 절대 지산 바이오 하나로 끝나지 않을 테니.”

“파는 족족 고구마 줄기처럼 주르륵 나오겠죠. 지산에서는 중간에 끊어내려 할 테고.”

“음, 혹시 팀장님의 팬이어서는 아닐까요? 아니면 팀장님의 능력을 믿어서거나. 우리나라에서 지금 지산을 쳐줄 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길가서 물어보면 다 팀장님 이름을 말할걸요?”

“그래서 이건 어떻게 할 거야? 조사 안 할 거야?”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해야죠. 상대 노림수가 뭐든 간에 제가 탈세를 봐 버렸습니다. 무조건 해야 해요. 알면서도 넘어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팀원들은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함정이면 그것까지 부숴 버리는 분이셨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의해서 조사할게요. 뭐라도 흘러들어가는 일 없도록.”

팀원들은 함정에 좀 더 무게를 싣는 것 같았다.

함정일 수도 있고 내 손을 빌려 지산을 치려는 복수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그런데 이 방식 말입니다. 어쩐지 친절하지 않습니까? 이 회사부터 시작하라는 이정표 같기도 하고 밑 재료 손질은 다 해뒀으니 알아서 요리해 먹으라는 배려처럼도 느껴집니다.”

지산 바이오의 서류 위에 피어오른 숫자들이 흐릿하게 뭉쳤다가 흩어졌다가를 반복했다.

뭉게뭉게 떠오른 그것들이 어쩐지 선물에 달린 리본처럼 보였다.

“일단 함정, 제보, 복수, 선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봅시다. 왠지 이걸로 끝날 것 같지는 않군요. 조사하다 보면 뭔가 접촉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럽게, 우리는 조사에 착수했다.

***

지산 바이오는 큰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몇 년 전 세계적 대유행을 불러일으켰던 가축 전염병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할 때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직 명확한 치료제도 없어 걸리면 무조건 살처분하는 방법뿐이었고, 이 때문에 피해를 입은 축가는 셀 수도 없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가격이 폭등했고, 자연스럽게 대체재인 다른 육류 가격이 따라 올랐다.

물가는 쑥쑥 올랐다.

어느 정도 정상화된 지금도 잊을 만하면 어디선가에서 재등장해 축가를 긴장시켰다.

지산 바이오가 발표하려는 것은 바로 가축 전염병 치료제에 대한 연구였다.

“발표가 멀지 않았습니다. 준비는 어떻습니까?”

지산 바이오의 사장은 긴장된 얼굴로 동석한 이사에게 물었다.

중요한 회의지만 주위에 다른 참석자는 없었다.

그만큼 내밀한 이야기였다.

“윗분들께 소식은 전부 전해 드렸습니다.”

“다들 이번 기획 확실하게 이해하신 것 맞죠? 이번엔 단순히 주식만 사는 게 아닙니다. 실수로라도 이해를 잘못하셨다간 큰돈을 날릴 수 있어요.”

“그럼요. 저희 쪽 사람이 나가서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언제 무엇에 투자하셔야 하는지까지 전부요.”

요즘 금융감독원은 귀신이다.

상시 모니터링도 가동하고 있어서 단순히 주가 조작이 가능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러니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안전을 위해서는 멀리 돌아가야 했다.

“거금이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확인은 수십 번 해도 부족함이 없어요. 기름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름칠이라 함은 뇌물을 뜻하는 것이었다.

주가 조작이 아무리 완벽해도 의혹을 가진 사람은 분명히 나온다.

그러니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도록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입을 막는다.

대한민국에서는 돈만 있으면 그것이 가능했다.

“그것도 준비 다 해 두었습니다. 이제 실행만 하면 됩니다.”

“앞으로 이런 프로젝트를 몇 번만 성공하면 본사에서도 우리를 그룹에서도 윗줄에 올려주실 겁니다. 그리고 김 이사와 나도 좀 더 위로 가는 거고요. 내 말 잘 알죠?”

사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신신당부했다.

사실 지금까지 비슷한 짓은 몇 번이고 해왔다.

물론 시험 운전이나 다름없는 적은 금액들이었다.

말이 주가 조작이지, 사실 주식 시장은 정보와 파생상품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이들이 한 것은 높은 분들에게 미리 정보를 흘리고, 그분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민간에 정보가 공개되는 타이밍을 조절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모두 성공했다.

이들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시점이었다.

그런데 몇 번의 성공 때문인지 위에서는 대번에 큰 금액의 조작을 요구해왔다.

위에서 까라는데 어쩌겠는가.

원래 용도와 다른 목적으로 세워진 회사는 지산 바이오 말고도 여럿 있다.

그들보다 먼저 성과를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예. 저도 목숨을 건 일입니다. 염려 마십시오, 사장님. 다 잘될 겁니다.”

사장과 이사는 두 손을 맞잡았다.

자신들이 하려는 짓이 어떤 것인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번 일로 손해를 보게 될 수많은 일반인의 눈물은 알 바 아니었다.

그들의 피눈물이 강을 이루고 그들의 시체가 산을 이룬다 해도, 지금 이 둘에게는 이번 일로 이득을 볼 윗분들이 중요했다.

“첫 번째 발표는 무조건 장황하고 거창하게 하세요. 어떻게든 주가를 최대한 올려야 합니다.”

“너무 허위로 하면 걸릴 위험이 있습니다. 식약처도 눈독 들이게 되면…….”

“무슨 겁이 그렇게 많아요? 저번에 뉴스 못 봤습니까? 의료용 아닌데 허가 내 준 것도 있고, 기준치 초과했는데 인증 마크 내 준 적도 있고. 식약처도 워낙에 바빠서 스리슬쩍 묻어가면 신경 못 써요. 그러니까 최대한 시선을 끌어 봐요. 찌라시도 좀 흘리고!”

“아, 알겠습니다.”

이제 초읽기만 남았다.

사장과 이사는 혹시라도 놓친 것이 없는지 만반을 기하며 발표까지 남은 날짜를 셌다.

“딱 3일만 버티면 됩니다.”

“이 안에 계획이 무너질 만한 거창한 사건이 일어날 리는 없겠죠.”

둘은 애써 가슴을 진정시키며 주식 차트를 켰다.

“응? 이거 왜 이래? 김 이사, 이거 왜 이러냐고.”

안정세를 유지해야 할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제,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당황한 김 이사가 떨리는 손으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혈색이 가신 얼굴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시, 신재현이 지산 바이오에 세무조사 들어온다는 소식이 퍼지고 있답니다.”

“저승사자가 왜 우리한테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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